한 마을이 아이를 키워낸다

[홍예진의 애플파이] 로보틱스 클럽을 통해 엿본 미국 사회의 작동 방식

로보틱스 대회에 참가한 미국의 고등학생들. 사진출처=firstinspires.org
로보틱스 대회에 참가한 미국의 고등학생들. 사진출처=firstinspires.org

제이미(가명)가 고등학교 졸업 댄스파티에 참석하지 않은 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결혼식을 앞둔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고르느라 고민하며 들뜨는 것만큼 미국의 여고생들에게는 졸업 댄스파티에 입을 드레스가 그 계절의 초관심사다. 그러나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의 제이미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동급생들이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는 동안 제이미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날 제이미의 일정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방과후면 늘 시간을 보내왔던 로보틱스 동아리방에서 편안한 옷차림으로 후배들과 무탈한 저녁 시간을 보낸 것이다. 졸업 댄스파티에 참석하지 않은 아싸 제이미를 인싸로 만들어준 건 그로부터 며칠 후 있었던 다른 행사였다.

작은 단위의 지역 사회 안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첫 아이를 대학에 보내는 과정에서 나는 그간 몰랐던 미국 사회의 일면을 경험했다. 한 마을의 대표 공립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지역 사회가 되도록 골고루, 온갖 이름을 붙여서 장학금을 주어 떠나보내는 관습이 있다는 것이었다. 장학금의 액수는 최소 75달러에서부터 시작해 많게는 수천 달러에 이르고, 행사장의 단상에서 장학금을 받는 졸업생들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그 돈의 출처도 밝혀진다. 동네의 크고 작은 가게들, 독서클럽, 친목 단체, 로터리 클럽, 가든 클럽, 골프 클럽, 요트 클럽, 아이들이 거쳐온 지역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학부모 단체, 개인 기부자 등등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곳에서 매년 기부금이 걷히는 것이다.

제이미는 그해의 졸업생 중 가장 여러 번 호명되어 최고 액수의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도 성실하고 반듯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마을과 학교가 합심해 격려를 보낸 것이다. 수줍은 얼굴로 단상에 나가 장학금 봉투를 받았던 제이미는 집에서 멀지 않은 대학에 진학해 적성에 맞는 분야의 공부를 하고 있다. 졸업 후에는 자신을 후원해준 출신 지역의 기업에 취업하고 싶다면서,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과 가까이 더불어 살 계획이라고 한다. 제이미는 그 내용을 담은 편지를 로컬기업들에 보냈고, 이를 토대로 다음 해의 학비 마련을 위한 추가 장학금도 받았다. 제이미가 고교 시절에 몰두한 로보틱스 클럽을 후원해준 기업들이 지역 사회로 돌아올 제이미를 위해 소위 애프터케어까지 해주게 된 것이다.

‘로보틱스 클럽’과 FIRST

제이미, 그 아이와 동급생인 내 큰 아이, 작은 아이까지 이어 활동 중인 로보틱스 클럽은 고교생 방과후 동아리다. 우리 동네의 로보틱스 클럽은 학군 내 공립학교 부설 프로그램으로 시작되었고, 지역 내 기업에 근무하는 엔지니어 학부모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을 추진했다. 현재 로보틱스 대회를 주관하는 여러 단체중 FIRST(For Inspiration and Recognition of Science and Technology)라는 조직에 등록되어 활동 중이다.

FIRST 프로그램은 미국의 발명가 딘 케이멘(Dean Kamen)과 MIT의 기계공학과 교수인 우디 플라워(Woodie Flowers)에 의해 개발됐다. 성장기 아이들이 기술 및 공학 분야의 재능을 자극받고 꽃피울 기회에 노출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1989년에 FIRST라는 단체를 조직한 딘 케이멘은 이를 자신이 성취한 일생의 성과중 가장 자랑스러운 것으로 여긴다고 했다. 시즌 피날레로 열리는 결승전만 해도 800여 팀에 이르는 전 세계 고교 로보틱스 클럽 학생들이 모여드는 국제 규모의 대형 행사가 되었으니, 케이멘의 자부심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 생의 보람중 결정체는 무엇보다 몸담은 분야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일 아닌가.

FIRST 외에도 로보틱스 대회를 운영하는 조직이 몇 군데 더 있는데, 각 단체는 참가 로봇의 사이즈와 경기 운영 방식을 차별화해 대회를 진행한다. FIRST의 경기에는 제한된 제작비와 무게로 로봇을 만들어야 참가할 수 있다. 대회장은 그라운드에 베이스홈과 골이 있는 식으로 구성이 되고, 각 팀에서 만든 로봇들이 돌아다니며 공이나 큐브를 집어 올리고 골인시키는 식으로 득점한다. 로봇이 균형을 잡아가며 기어오르거나 매달리는 등 매해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요구되는 퍼포먼스도 득점이나 감점 포인트로 작용한다. 근거리 팀들과 승부를 겨룬 결과 본선 진출 자격이 주어지면 시즌 끝에 열리는 월드챔피온십에서 해외 팀들과 대결하게 된다. 이 무대가 바로 공학 분야의 차세대 육성과 관련한 각국의 입장이나 처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생생한 현황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FIRST 로보틱스 대회 게임 방식 발표 영상

FIRST가 미국의 단체라 결승도 미국 내에서 열리고, 올해의 경우 텍사스의 휴스턴이 대회를 유치했다. 나흘 동안 벌어진 월드챔피온 결승에서 올해의 우승은 NASA 인근의 팀이 따냈다. 이전에도 여러 번 우승을 거머쥔 미국내 고교 최강팀중 하나이고, 해당 학교의 학부모들과 기술 멘토링을 해주는 리더들 다수가 NASA의 엔지니어라니 놀랄 것 없는 결과다. 비록 우승은 하지 못했더라도 한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팀들이 있게 마련이라 주최 측은 기업가 정신, 창의성, 엔지니어링, 디자인, 안전, 제어, 미디어, 품질과 프로그램 핵심 가치 예시 등 여러 분야로 세분화해 상을 수여한다. 우리 동네 팀은 올해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상을 받았다.

마을 어른, 지역기업도 멘토로 참여

로보틱스 클럽은 로봇을 디자인하는 캐드 팀, 실물로 만드는 하드웨어 팀, 작동하게 하는 프로그래밍 팀, 클럽 운영에 필요한 모금과 홍보를 진행하는 마케팅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어떤 팀도 기성세대의 경험에 기댄 전문지식과 노하우 없이는 굴러갈 수 없다. 즉 학생들의 독립성과 자발성만으로 그럭저럭 운영되는 성격의 동아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체계적인 운영 보조도 필요하고, 아이들을 지도하는 각 부서의 기술 멘토 없이는 로봇을 만들 수도 없다.

가을 학기가 시작되면 학부모와 멘토들이 모여 연간 예산 산출, 모금 행사 기획, 굿즈 제작 판매, 로컬기업으로부터의 후원 요청, 지역 봉사 기획과 실행, 지역 언론 홍보, 지역내 어린이 여름 캠프를 통한 로보틱스 조기 교육 유도 등 클럽 관련 세부 계획을 짠다. 학부모들은 월례 모임을 하면서 이 안건들을 구체화하고, 1월이 되어 로봇 제작에 들어가는 본격 킥오프 시즌에 들어가면 당번을 정해 팀원 전체가 먹을 수 있는 수십 명 분량의 저녁 식사를 돌아가면서 준비한다. 로봇 제작을 마치고 3월부터 두 달간의 경기 시즌이 오면 학생들은 멘토들의 지도하에 팀 소유의 콘테이너 트럭에 로봇을 싣고 주말마다 근거리 내의 팀들과 대항하는 대회에 참가한다. 현실적으로는 결승전 참가를 목표로 하고, 이상적으로는 월드챔피온 트로피를 꿈꾸면서. 5월이 되면 로보틱스의 시즌은 끝나고, 학생들은 학년말 시험 준비에 집중하는 등 여름 방학이 오기 전 교과목을 총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토록 품이 많이 드는 활동에 사적인 경비가 얼마나 들지, 각 팀을 이끄는 멘토들에게 줄 보수는 얼마나 들지 궁금할 것이다. 개인 경비가 전혀 안 든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수업료를 낸다거나 멘토들이 보수를 받고 일하는 식으로 클럽이 운영되진 않는다. 학부모들이야 아이들을 위해 자발적 봉사를 하는 것이지만, 로컬 기업체의 엔지니어들이 어째서 보수도 없이 그 많은 시간과 기술을 고교생 동아리에 할애하는 걸까 싶어 처음에는 나도 의아했다. 그들이 즐거움과 보람으로 학생들과 일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동네 조기 축구회에 나오면서 보수를 기대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학생들과 어울려 로봇의 본체를 만들고, 코딩을 가르쳐가며 프로그램을 짜서 로봇을 작동하게 하는 기쁨, 대회에 나가 승부를 겨룰 때의 쾌감, 이것이 공학 분야의 괴짜들이 동네 로보틱스 동아리에서 얻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그들의 퇴근 후 일과에 충분한 저녁 시간이 고스란히 남겨지기에 가능하다.

사익 추구를 위한 학원이나 업체가 아니라도 경비가 많이 드는 동아리 활동인 건 사실이다. 로봇 제작비를 비롯해 대회 참가 시 이동, 숙박, 식대에 이르는 경비 등을 다 합치면 연간 수만 달러에 달하는 액수가 든다. 멘토가 아닌 학부모의 영향력이 가장 많이 미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고, 마케팅 팀 학생들은 타 팀원들이 로봇 제작과 프로그래밍에 집중해 있을때 경비 조달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다수 기관과 기업체에 편지를 써서 후원을 요청하고, 팀 유니폼 셔츠나 모자 등 굿즈를 디자인해 판매하고, 웹사이트를 관리하고, 주말 브런치 행사 등을 기획해 티켓 판매도 하고, 행사 당일 이벤트인 경품 추첨을 위해 지역 내 소상공인들을 설득해 매장에서 취급하는 제품을 기부받고, 경품 추첨 티켓도 찍어 판매한다. 이 모든 일을 어른들의 지휘하에 직접 해보고, 하나의 단체가 프로젝트를 성사해 나가는 과정을 습득하는 것이다. 비용 소모와 운영 난이도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미국의 공립 고등학교 방과 후 동아리 활동은 대개 비슷한 방식으로 돌아간다. 즉, 내 아이만을 위한 각자도생이 아닌, 내 아이가 속해 활동하는 동아리 전체가 매끄럽게 돌아가도록 학부모들이 협력해서 도움을 주는 식이다.

올해 FIRST 행사에 한국 팀은 없어

미국인들의 생활 방식을 잘 모르던 시절에는 종종 의문을 품곤 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어째서 간단히 돈을 걷어 해결해도 될 것 같은 일을 매사에 떠들썩하고 복잡한 행사를 벌여 치르나 싶었다. 매사를 민첩하고 기능적으로 처리하는데 익숙했었던 내 정서에 변화가 온 건 미국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방과후 활동을 서포트하는 방식을 지켜본 결과였다. 로컬기업의 지원, 행사를 통한 지역민들의 친목 도모, 클럽 활동과 연계된 기부와 봉사를 일상화하는 연습, 지역 미디어를 활용하는 방법 등 어른이 되었을 때 할 일들을 학생들이 미리 체험해보게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바로 미국식 방과후 활동의 올바른 전형이라는 걸 체득하면서 이민 1세대로서 이 나라의 정서를 배운 것이다.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이룬 것, 느낀 것, 때로는 실패를 통해 배운 것까지 잘 버무려서 이른바 ‘입시 에세이’라는 걸 쓰게 된다. 미국 입시의 정도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좋아하는 분야에서의 활동 내역’이나 ‘지역 사회에서 봉사한 내역’이라는 것들은 학원이나 컨설턴트가 짜주는 맥락없는 활동의 수집이 아니라 동네에서 할 수 있는 방과후 활동과 봉사, 그리고 체험 수기로 연결되는 포트폴리오였다.

FIRST에 등록된 미국 내 고교 로보틱스 클럽은 2022년 기준 2646개 팀에 이르고, 미국 외 팀까지 포함하면 총 26개 국가의 3225개 팀이 집계된다. 판데믹으로 줄어든 숫자라 원래는 더 규모가 크다. 리스트는 아래와 같은데, 이들 중 미국 팀을 제외한 강자 팀이 이스라엘 팀에 몰려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만한 포인트다. 유태계는 동아시계 못지않게 교육열이 높은 민족이니까. 하지만 중국, 대만, 싱가폴, 베트남에도 참가 팀이 있는데 한국에는 없는 현실은 고민해봐야 할 지점으로 보인다. 이 대목을 쓰고나서 확인하니, 올해 처음으로 한국에서 한 팀이 참가하려고 등록했다가 판데믹 상황이 심각해져 취소했다고 한다.

2022년 FIRT 로보틱스 대회에 등록된 각국 고교생 팀들의 숫자.

United States of America (2,646)
Canada (175)
Turkey (105)
Mexico (76)
Israel (57)
China (49)
Australia (35)
Chinese Taipei (35)
Brazil (12)
India (5)
Dominican Republic (3)
Netherlands (3)
Japan (3)
United Kingdom (2)
Poland (2)
Chile (2)
Kazakhstan (2)
Libya (1)
New Zealand (2)
Singapore (2)
Ukraine (1)
Argentina (1)
Colombia (1)
Czech Republic (1)
France (1)
Germany (1)
Indonesia (1)
South Africa (1)
Switzerland (1)
Vietnam (1)

FIRST를 설립한 딘 케이멘은 난독증이 있어 수월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세상을 배우려는 의지는 누구보다 강했고, 결국 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열정을 피웠다. 결국 그는 낙후 지역민들을 구원한 획기적인 정수 시스템, 세그웨이 전동휠 및 신개념 휠체어 아이봇(Ibot)을 고안해낸 발명가가 되었다. 끝으로 첨부한 영상을 통해 로보틱스 경기장을 달구는 학생들의 환성을 들어보길 바란다. 딘 케이멘이 얼마나 멋진 세계를 만들어냈는지. 어린 시절의 학습 장애가 오히려 기적이 된 한 인간의 드라마를.

2021년 로보틱스 경연대회 장면.
글쓴이

홍예진 소설가

홍예진 소설가 겸 에세이스트. 미국 코네티컷의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다. 재외동포문학상 공모에서 단편소설로 대상을 받으며 작품 발표를 시작했다. 산문집 <매우 탁월한 취향>과 장편소설 <소나무극장> 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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