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운 콘비프에서 흥겨운 컵케이크까지
[홍예진의 애플파이 10] 성 패트릭 축제일에 짚어본 아일랜드 분쟁사
미세스 아무개가 점심 파티를 취소한다고 알려와서 내심 반가웠다. 예정된 식사 메뉴는 콘비프였는데 나는 소금에 절인 고기를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원래 당일에 하고 싶은 게 있었다. 성 패트릭 기념일 퍼레이드 구경을 나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파티가 없어진 게 오히려 좋았다. 최근에 읽은 책 밀크맨이 아일랜드와 영국 사이에서 정치적 분쟁사를 겪은 북아일랜드 배경의 소설인데, 만연체로 그득한 장편을 어렵게 읽어냈던 직후라 관련된 민족의 축제를 통해 보상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 이후로 아들네 가족을 만나지 못한 미세스 아무개에게 성 패트릭 축제일은 좋은 구실이었다. 미세스 아무개네가 ‘맥키나’나 ‘오브라이언’ 같은 아일랜드계 성씨를 가진 집안이 아니긴 해도 대수로울 건 없다. 아일랜드계가 흔한 이 지역에서는 그날이 돌아오면 초록색으로 치장하고 콘비프와 흑맥주를 먹고 마시는 관습에 다들 익숙하니까. 아무개씨네 가족이 영국계 성씨를 가졌다고 해서 그날을 기념하지 말란 법은 없는 것이다.
미세스 아무개는 대도시에서 상류사회의 삶을 사는 아들 자랑을 끝도 없이 해왔던 터라 내게 직접 보여주고 싶긴 했을 것이다. 바쁘다며 자주 오지 않는 아들네도 불러들일 겸, 내게 자랑도 할 겸 아일랜드 명절을 핑계로 님도 보고 뽕도 따려던 거였는데 아들네가 사정이 있어 못 온다고 한 것이다. 실망스럽고 기운이 빠진 미세스 아무개는 파티를 취소해버렸고, 이는 우리 가족이 부록이었다는 방증이었다. 따라서 나는 말끔한 기분으로 축제 구경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차량 통행을 막아놓은 다운타운 일대는 초록의 물결로 들썩들썩 북적였다. 지역 내 아일랜드계 혈통들은 다 모여들었을 것이고, 아일랜드와 아무 상관이 없는 지인들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성 패트릭 축제를 지역행사로 받아들이고 참여해 분위기를 돋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성 패트릭 기념일은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 파트리치오를 기리는 날이고, 그날의 상징색인 초록은 그가 삼위일체를 설파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클로버 색에서 유래한다. 축제 분위기에 일조하느라 나도 초록 목도리를 두르고 나갔는데, 현장의 에티켓으로도 방한용으로도 아주 쓸모가 있었다.
아일랜드 민요가 울려 퍼지는 거리에서 인파에 떠밀려 걷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쉽게 눈에 띄는 건 피자였으나 이국적인 축제에 와서까지 흔해 빠진 걸 먹고 싶진 않았다. 와중에 염치없게도 콘비프가 당겼다. 미세스 아무개가 대접하겠다고 했을 땐 하찮게 여겼던 주제에 말이다. 나는 분위기에 휘둘리는 알량한 입맛에 혀를 차며 거리 한쪽 모퉁이의 아이리시 펍으로 향했다.
막상 술집 앞에 도착하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활짝 열린 문으로 보이는 실내의 인파가 어마어마했다. 자리 차지는 고사하고 주문할 차례가 오지도 않을 것 같았다. 가질 수 없으면 더 간절해지는 법. 뜨거운 솥에서 막 꺼내 모락모락 김을 내는 콘비프, 같이 삶아낸 감자, 당근, 양배추가 먹음직스럽게 어우러진 한 접시가 아른거렸다. 나는 미리부터 자리를 잡고 점심부터 해결할 걸 그랬다고 투덜거리며 술집 앞에서 또 돌아서야 했다.
소금물에 재워두었다 삶아 먹는 콘비프는 뼈아픈 음식이다. 영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 아일랜드의 목초지에서는 엄청난 수의 소가 자라고 있었으나 식민지의 국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영국은 아일랜드에서 키워 도축한 소를 죄 본토로 가져갔고, 아일랜드인들은 감자를 주식으로 연명하다가 대기근을 겪었다. 그때 많은 아일랜드인들이 조국을 버리고 떠났다니 그들이 민족 축제일에 콘비프를 먹는 건 과거의 설움을 보상받는 의식이기도 한 것이다.
소설 밀크맨의 배경인 북아일랜드는 영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많았던 지역으로, 종교, 경제, 정치의 대립 속에서 숱한 분쟁과 유혈사태를 겪어왔다. 90년대 말에 와서야 벨파스트 협정이 이루어지고, 영국으로 남기를 원하는 쪽의 개신교 파 무장 세력과, 아일랜드와의 통합을 주장하는 천주교 파 무장 세력 간의 분쟁이 간신히 가라앉았다.
밀크맨의 작가 애나 번스는 바로 이 벨파스트에서 삼십 년에 걸친 분쟁을 겪으며 성장했다. 정치와 종교로 대립하는 양측 무장 세력의 린치, 고문, 살인, 의심, 고발, 누명, 감시, 테러가 만연한 현실을 지나왔고, 그 시기에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로 소설을 썼다. 어떤 소설가는 어떤 소재를 택하든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천착하게 되는 주제가 있는데, 애나 번스에게는 북아일랜드 분쟁사가 그럴 것이다. 밀크맨 이전에 집필한 작품들도 그 소재 주변을 맴돌고 있다.

소설 속 지명과 인물에는 이름이 없다. 이쪽과 저쪽, 국경 너머와 물 건너, 남자친구, 반대자들, 핵소년, 알약소녀, 오래된 친구, 아무개 집안의 아무개 등이 고유명사를 대신한다. 그럼에도 독자는 그것들이 어디를 말하고 누구를 칭하는지 알 수 있다. 오히려 그 익명성이 정치 분쟁으로 시끄러운 지구촌 곳곳의 모습에 소설과의 유사성을 대입하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은유와 돌려 말하기,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이어지는 긴 문장 때문에 가독성이 좋은 소설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이 소설에 강한 목소리를 부여하는 건 대의에 매몰된 지역 사회 안에서 개인의 존엄이 무너지는 비극을 희극적 문체로 거리감을 만들어주고 동시에 세밀하게 그려낸 점이다.
북아일랜드인들이 영국 소속으로 남기를 원했든 그렇지 않든, 섬의 현 지도를 보면 부자연스럽긴 하다. 그리 크지 않은 섬에서 한 귀퉁이만 국경을 긋고 영국에 속해있는 것보다는 섬 전체가 한 나라인 게 그럴듯해 보이긴 하니까. 하지만 그건 그 땅과 아무 이해관계가 없이 지도를 그림으로만 보는 내 시각이다. 그 땅에 속해 온갖 입체적 망에 삶이 꿰인 이들에게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므로 섬에는 국경선이 그어지고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남았을 터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만족스럽고 누군가에게는 실망스러운 결과였을 것이다.

퍼레이드의 하이라이트인 백파이프 악단의 행진을 한동안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걸어서 단골 케이크 가게로 갔다. 케이크 가게에 가면 무언가 기념할만한 걸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성 패트릭 데이 특별 컵케이크가 진열대 위에 그득했다. 흑맥주가 들어간 케이크 시트에 아이리쉬 크림 리큐어로 만든 프로스팅과 초록색 반짝이 설탕으로 장식된 컵케이크를 골라 포장해 달라고 했다. 집에 돌아가 따끈한 커피에 곁들여 먹으면 만족스러운 성 패트릭 데이로 마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축제는 기대보다 훨씬 더 흥겨웠다. 나는 국적도 민족도 종교도 따지지 않는 그곳에서, 소설을 읽느라 몸에 묻혔던 아일랜드인들의 과거사를 떨구어냈다. 퍼레이드 행렬이 시가의 중심을 향해 가면서 백파이프 소리도 엷어지고 있었다. 초록색 목도리를 여미며 차를 세워둔 곳으로 걷는 내 손끝에서 케이크 상자가 달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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