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로 나온 대마초, 중독되지 않는다고?

[홍예진의 애플파이] 대마초 유통 합법화 이후의 현실

합법화된 대마초 판매 상점 풍경. 사진출처= CT insider
합법화된 대마초 판매 상점 풍경. 사진출처= CT insider

미 동부 고교에서 일어나는 사례들

라일리는 원래 다른 그룹의 아이였다. 성적은 상위권에 들었으나 교내의 범생이들 속에서만 지내기엔 라일리가 평소 누리고 사는 것들이 학교 아이들의 평균치에서 한참 웃돌았다. 라일리에게는 학교 바깥의 시간을 함께 할 친구들이 필요했다. 해변 쪽으로 늘어선 고급 주택의 뒤뜰 수영장에서 생일 파티를 하는 아이들이 라일리의 친구들이었다. 지역 내에서 입김이 센 조부모를 중심으로, 라일리의 일가친척 모두가 동네 유지로 알려진 터라 라일리는 늘 기세등등했다. 비치하우스 풀파티에 단골로 초대받는 아이들은 그렇게 저마다의 유산이 있었다. 학교의 대표 미남미녀이거나, 근방의 마리나에 부모 소유의 요트가 있거나, 장학금이나 재정 보조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립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아이들.

그런 재력파 이너서클의 라일리가 갑자기 곁에 와서 얼씬거리니 이민자 가정의 아이들이 제법 섞인 ‘범생이’ 그룹에서는 뜨악할 수밖에 없었다. 사힐이 라일리의 레이다에 잡힌 남학생이었고, 사힐의 부모님은 인도계 이민 1세였다. 당시 사힐은 명문대의 유망학과에 합격한 후 부친으로부터 BMW 컨버터블을 물려받아 몰고 다니기 시작했었는데, 라일리가 사힐에게 다가온 때가 그 시기와 맞물렸다. 여자친구를 사귀어본 적 없는 사힐로서는 라일리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본격 연애로 들어가기도 전에 깨지고 말았는데,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보여준 라일리의 행동거지가 사힐을 창피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사힐의 친구들은 라일리의 이상 행동이 무엇 때문인지를 눈치채고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지만, 라일리는 달뜬 기분을 더 끌어올리고 싶어서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사힐은 대마초에 불을 붙이는 라일리를 말리다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크게 다퉜고, 사힐의 첫사랑으로 발전할 뻔한 짧은 썸은 그대로 막을 내렸다. 수영장 파티에서 어울렸던 친구들 사이에서는 허용되었던 기호품이 사힐의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금기가 되니 라일리에게도 어이없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졸업은 얼마 남지 않았고, 12년 동안 동네 초중고를 함께 다닌 아이들은 그해 여름이 끝나고 각자의 진로대로 이곳저곳을 향해 떠나 흩어질 참이었다.

한편 범생이 그룹의 한 남학생은 그 여름이 끝나기 전 가족 소유의 별장으로 친구들을 초대했다. 호숫가에는 요트도 있고, 초원의 끝에서 해가 떨어지는 광경을 포치에서 볼 수 있는 집이었다. 원래 아이들끼리만 가려던 여행이었는데 막판에 어른 한 사람이 따라붙는 것으로 계획이 수정되었다. 출발을 앞둔 며칠 전, 그 남학생의 동생 방에서 대마초가 나온 것이다. 곱게 기른 딸이 16살이 되자마자 대마초에 손을 댄 걸 알고 충격을 받은 부모는 아들에게도 경계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그집 아버지가 별장 여행 감독자로 동행하게 된 경위였다.

대마초 소유를 들킨 동생은 제 오빠와 달리 학교의 ‘핵인싸’ 그룹에 속해있었는데, 이후로 파티 금족령을 받게 되었다. 당사자로서는 보통 짜증 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 파티가 바로 라일리를 비롯한 교내의 핵인싸들만 초대받는 비치하우스 풀파티였으니 예쁘고 패셔너블한 부잣집 딸이 그곳에 발을 끊는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이는 전부, 현재 대학생인 나의 큰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인 작년 초여름 동네의 유복한 가정들에서 빚어진 대마초 관련 실사례들이었다.

재배실의 대마초를 살펴보는 코네티컷 pharma staff. 사진출처= the CT mirror
재배실의 대마초를 살펴보는 코네티컷 pharma staff. 사진출처= the CT mirror

‘양반동네’ 코네티컷도 대마초 규제 풀려

꼬마 때부터 본 주변의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진 소동들을 접하고 난 몇 달 후, 내가 사는 코네티컷주에서는 대마초 관련 규제가 풀렸다. 만 18세 이상의 사용자에 한해, 의료용 목적의 대마초를 6포기까지 집에서 기를 수 있게 된 것이다. 2023년 7월부터는 허용치의 폭이 더 넓어진다. 21세 이상이면 의료용, 기호용 구분 없이 누구나 대마를 기를 수 있게 된다. 재배 조건이 붙기는 한다. 코네티컷 주정부 웹사이트에 공지된 내용을 보면, 대마는 실내 재배만 허용이 되고, 외부 쪽에서 보이는 마당에 기르는 것은 금지된다. 사용자의 경우, 담배 흡연이 금지된 곳에서는 대마초 흡연도 금지된다니 이는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이면 대마초도 피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직장 내 대마초 흡연을 주 정부 차원에서 따로 금지하진 않으나 공장이나 의료계와 같이 안전사고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직종은 예외로 한다고 적혀 있다. 이것 역시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대마초 흡연이 가능하다는 말이긴 한데, 직장의 경우는 대개 운영자의 재량으로 규율이 정해지니 실상 일률적이라고 볼 순 없다.

대마초의 유통과 소비를 합법화하자는 주장과 반대는 오래전부터 쟁점이었는데, 코네티컷에서는 개정 법안이 근 몇 년 새에 통과되어 대마초 재배와 유통 관련 규제를 단계적으로 풀고 있다. 취지는 간단하다. 중독성은 없으니 재배, 유통, 소비의 전 과정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려 관리 감독이 가능하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의 인식 속에서는 대마초가 마약이기에 정치권에서 규제를 풀자고 목소리 내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대마초 유통을 합법화했을 때 주정부가 얻게 되는 세 수익과 연결해 고려하면 온도가 달라진다. 콜로라도의 선례가 타 주 정부들에 유혹적인 본보기였을 것이다.

2021년 6월 기준 미국 내 50개 주의 대마초 허용 여부를 표기한 지도.
2021년 6월 기준 미국 내 50개 주의 대마초 허용 여부를 표기한 지도.

콜로라도주에서 대마초가 의료용으로 허가 난 것은 2000년이고, 기호품으로 허가 난 것은 2012년이다. 합법화된 대마초 재배와 유통 시스템은 콜로라도 주 정부의 예산을 풍족하게 해줬고 수많은 일자리 창출도 이뤄냈다. 이른바 경제가 살아난 것이다. 솔깃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막는다고 막지도 못할 바에야 모든 과정을 가시화해서 범죄의 온상인 마약 카르텔이 주무르는 검은 돈줄을 말리자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보수적인 분위기일수록 대마초 합법화를 긍정적으로 볼 리는 없어서 주로 진보 성향의 주들을 중심으로 대마초 관련 규제가 점진적으로 해제되고 있다.

코네티컷은 정치적으로는 진보를 표방하지만 실상 올드머니가 많이 살아 전통을 사수하는 보수적 이미지를 배경에 깔고 있다. 양반 행세를 한다며 코네티컷의 분위기를 조롱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예전에 즐겨보던 드라마에서도 코네티컷이 어떤 이미지인지 비춰주는 장면이 있었다. 극중 인물이 자신의 레코딩 스튜디오 앞에서 대마초를 피워대는 뮤지션 고객들 때문에 이웃과 마찰을 빚는데, 회유가 통하지 않자 성질을 버럭 내며 윽박을 지른 것이다. 그리 점잔빼고 살고 싶으면 코네티컷에나 가서 살지 뭐하러 캘리포니아에 죽치고 있는 거냐고. 한편 지극히 모범적이고 가정적인 남자가 유방암 치료 부작용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내에게 대마초를 구해다 주면서 잠시나마 환락을 경험하도록 숨통을 터주는 장면도 있었다. 캘리포니아가 배경인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사는 주에 관한 미국 내 인식의 윤곽이 잡혔다. 교육 수준이 높고, 부자도 많고, 전통에 집착하는 코네티컷에서 대마초 유통이 합법화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 약 때문에 내 아들 인생 조졌어!”

대마초가 의료용으로 얼마만큼 도움이 되는지, 혹은 위험하거나 해로운 건 아닌지 나는 판단하지 못한다. 다만 대마초 관련 규제와 인식이 풀어지고 있는 현실을 사는 시민으로서 체감하는 건 있다. 요즘에는 뉴욕의 거리를 걷다보면 곳곳에서 대마초 피우는 냄새가 난다. 퀭한 눈을 하고 길가에 쭈그려 앉은 노숙자가 모여있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그 냄새가 맴돈다. 뉴욕 같은 대도시만 그런 것도 아니다. 코네티컷 소재의 명문대학 예일대 캠퍼스에서 지척인 뉴헤이븐의 공원을 지날 때도 이곳저곳에서 그 냄새가 난다. 돌아보면 누군가가 달뜬 태도나 목소리로 자신의 상태를 노출하고 있다. 신학기가 되어 학교로 돌아간 아들의 대학기숙사 건물 복도를 지날 때도 어느 방에선가 새어 나오는 그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최근에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인 영화를 봤다. 마약 중독으로 재활시설에 들어가 있는 아들이 크리스마스 직전 예고 없이 집에 나타나 온 가족이 긴장에 휩싸이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였다.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한 엄마는 명절을 앞두고 집을 찾은 아들에 마음이 약해져서 약속한 규율을 보류하고 크리스마스가 끝날 때까지 아들을 집에 머물게 한다. 그 기간에 갑자기 개가 실종되고, 아들과 함께 개를 찾으러 다니게 된 엄마는 아들의 성장기에는 미처 몰랐던 마약 관련 암초들을 뒤늦게서야 깨닫는다.

한 마을에서 사소하게 일어날 수 있는 작은 계기로 본인도 모르게 넘게 되는 중독의 입문과 심화 과정이 플롯인 이 영화는 마약 관련 이야기가 으레 그렇듯 절망적이었는데, 그 절망의 핵이 일상의 평지에 놓여 있었다는 게 오싹했다. 크리스마스 쇼핑을 나갔다가 만난 아들의 과거 주치의에게 엄마가 분노를 쏟아내는 장면이 그랬다.

“알츠하이머라 기억나지 않는 게 아니라 기억나지 않는 척하는 거겠지! 내 아들이 하키 하다가 다리 부러졌을 때, 그 진통제 처방하면서 당신이 그랬지? 중독되는 약 아니라고. 이 빌어먹을 인간아! 내 아들, 그 약 때문에 인생 조졌어! 알아?“

마약 소재 영화가 때로는 해피엔딩인 경우도 있다. 갖은 위험을 무릅쓴 주인공 덕에 마약 조직 소탕 작전이 성공하는 엔딩은 얼마나 통쾌한가. 그러나 그런 영화가 마약에 중독된 인물을 핍진하게 다루는 건 본 적이 없다. 궁극의 절망은 해피엔딩의 카타르시스에 흠집을 내니까. 영화는 현실의 중독자를 제거하는 장르 선택이 가능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이다 같은 플롯은 현실에 없다. 수익성의 관점이 선악의 기준까지 조정하는 시스템 앞에서 그 무엇도 예측할 수 없이 살아가는 우리가 있을 뿐.

*본문에 등장하는 실제 인물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글쓴이

홍예진 소설가

홍예진 소설가 겸 에세이스트. 미국 코네티컷의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다. 재외동포문학상 공모에서 단편소설로 대상을 받으며 작품 발표를 시작했다. 산문집 <매우 탁월한 취향>과 장편소설 <소나무극장> 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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