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과학은 믿을 수 없어

[홍예진의 애플파이5] 미국내 ‘백신 의무화’ 반발 목소리 커져 ‘과학적인’ 사람조차 의심하는 세태에 대해

백신을 접종하는 의사, 접종받는 이, 그걸 바라보는 군중의 모습을 담은 1870년의 일러스트 "Vaccinating the Poor” by Solomon Eytinge Jr. 이미지출처=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백신을 접종하는 의사, 접종받는 이, 그걸 바라보는 군중의 모습을 담은 1870년의 일러스트 "Vaccinating the Poor” by Solomon Eytinge Jr. 이미지출처=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홍예진 소설가(미 코네티컷 거주)] 브라이언은 트렁크를 활짝 열어둔 채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차를 하면서 흘끗 보니 그의 차 안에는 판매하기 좋게 개별 포장된 쿠키와 케이크 등이 잔뜩 들어차 있었다. 이미 다녀간 학부모들이 많은가 보았다. 학부모들이 십시일반 준비해 온 디저트는 행사 때 팔 것들이었고, 판매 수익금은 아이들이 활동하는 교내 클럽의 운영 경비로 쓰이게 될 예정이었다.

나는 차에서 케이크 상자를 꺼내들고 배시시 웃으며 브라이언에게로 다가갔다. 내 컵케이크가 홈메이드가 아닌 걸 의식한 탓에 스스로도 좀 비굴하게 느껴지는 미소였다. 학부모 노릇의 일환으로 디저트 준비할 일이 있을 때마다 어지간하면 미국 엄마들처럼 직접 만들려고 노력은 하는데, 바쁜 일이 한꺼번에 겹치는 바람에 이번엔 짬을 낼 수가 없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혹시라도 직접 구웠냐고 물으면 유명한 베이커리에서 샀다는 걸 피력할 작정이었다.

교내 클럽 행사에서 만난 엔지니어

어쩌면 케이크가 문제는 아니었다. 클럽의 선두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대표 격 학부모들에게는 늘 빚진 기분이 들곤 했다. 더구나 브라이언은 미국 첨단 군사 기술의 선봉급인 핵잠수함 제조업체 엔지니어 아닌가.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 분야 클럽의 특성 상 지역 사회 엔지니어 학부모들의 지원은 학생들에게 요긴하다. 가끔씩 과자나 구워낼 뿐인 내가 그마저도 노동력을 들이지 않고 때웠을 경우, 브라이언 같은 학부모 앞에서 주눅이 들지 않기란 어려웠다.

걱정은 기우였다. 브라이언은 케이크가 수공품인지 기성품인지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는 내 케이크 상자에는 형식적인 눈길만 주고는 포장지 같은 감탄을 짧게 내비친 후 가족의 근황을 물었다. 브라이언과 나는 금년 가을 대학에 진학한 각자의 첫아이 소식을 전하면서, 판데믹 2년 차에 접어든 시점에서 대학들이 캠퍼스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정보를 나누었다.

브라이언의 아이는 멀리 중부에 있는 소규모 크리스천 대학교로 진학했고, 내 아이는 집에서 멀지 않은 동부의 큰 대학으로 진학했다. 따라서 우리는 조금씩 다른 지역 정서나 대학 운영진의 지향점이 학교 행정에 어떻게 반영이 되는지 피차 궁금했던 것이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대면 수업을 하느냐는 브라이언의 질문에 나는 긍정으로 답했다.

“그렇대. 백신 접종 확인만 되면 대면 수업에 들어갈 수 있다나봐. 아직 백신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 같은 경우는 학교에서 접종받게 해주고 면역 형성 기간 지나면 바로 동등하게 수업 받게 된다니 다행이지 뭐야! 학교 측 설명을 다 듣고 나니 기숙사 들여보내면서도 안심이 되더라고.”

같은 의견일 거라고 은연 중 믿었던 것일까? 내 무의식 속에서, 이 사안 관련 찬반은 지성의 유무에 따른 것이라는 분류법으로 작동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놀랍게도 브라이언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옳은 처사인지 모르겠어. 물론 백신을 맞기는 해야지. 하지만 그걸 의무화한다는 게 말이 될까? 더구나 새로 나온 이 백신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잖아!”

그때까지 난 코로나 백신에 관해 음모론을 펼치거나 접종을 의무화하는 것에 뜨악해하는 사람들은 교육받지 못한 계층일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올바른 정보를 신뢰할만한 경로로 전달받지 못하는, 일종의 선 밖의 사람들에 한한 일이라고 간과했던 것이다. 브라이언 같은 반응을 보인 사람을 주변에서 실제로 본 것이 처음이기도 했다.

며칠 전 만났던 학부모만 해도 백신을 거부하는 이들을 못 참아주겠다며 펄펄 뛰지 않았는가. 그 엄마는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활동을 위해 드나드는 기관에서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이들을 출입금지 시키는 것에 격렬한 찬성을 표했고, 그 규율을 시행하는데 있어서 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면 자기가 돕겠다며 열변을 토했다. 직업이 변호사라고 했다.

‘백신 의무화’에 동의하지 않는 일부 미국인들

불과 며칠 후 나는 정부에서 의무화하려는 백신의 안전성에 의구심을 표하는 학부모와 맞닥뜨린 것이다. 게다가 과학기술의 주도 하에 펼치는 정책에 누구보다 열려있을 거라고 짐작되기가 쉬운. 놀랍긴 해도 그간 다양한 미디어를 접하며 형성된 기시감이 있었으므로 나는 우회적으로 대응했다. 선량한 태도로 상대하던 이와 껄끄러워질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다시 한 번 미소 쿠션을 꺼내들었다. 조금 전과 의도는 달랐다. 시판 케이크 만회용 미소와 대립 방지용 미소의 차이랄까.

“내가 원래 한국 사람이거든? 한국이 어쩌다보니 백신 수급이 좀 늦어졌었는데 한국 사람들은 정부가 백신 얼른 못 구해놨다고 난리를 치고 그랬었어. 물론 백신 접종 거부하는 사람들도 없진 않은데, 그런 사람들이 접종 예약을 취소하면 그 찬스라도 이용해 접종 선점하려는 경쟁도 치열했었고. 백신을 못 구해서 난리인 나라들이 아직도 얼마나 많은데, 백신을 쉽게 맞을 수 있는 나라 사람들이 이러는 건 솔직히…….”

타국의 경우를 전하는 정도로만 선을 지키고 나는 말끝을 흐렸다. 브라이언과 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정적은 제 3의 인물이 등장하는 바람에 깨졌고, 나는 브라이언과 그 사람이 인사 나누는 틈을 타 적당한 핑계를 대고 자리를 벗어났다.

오렌지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바이든 정부의 백신 의무화 정책을 반대하는 주. 이미지출처=wvtm13.com
오렌지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바이든 정부의 백신 의무화 정책을 반대하는 주. 이미지출처=wvtm13.com

의심과 개인신념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했을까

미연방 정부는 11월 20일을 기점으로 코비드19 백신을 의무화하려던 중이었다. 비상시국이라지만 정부가 사람들에게 강제로 주사를 놓을 순 없다. 연방정부가 고안해낸 방법은 노동법에 근거해서 100인 이상의 사업장이 자체적으로 코비드19 대응 보건 규율을 시행할 수 있도록 법안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미 다수의 기업이 OSHA: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 rules(산업 안전 보건 규칙)에 동의하고 백신 의무화가 본격 시행될 날짜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예컨대 특별한 의학적 사유가 없음에도 직원이 백신을 거부하면 해고하거나, 백신을 거부할 시 일주일에 한 번씩 코비드19 테스트를 받게 하거나, 마스크 착용을 요구해도 기업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연방 정부가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OSHA rules을 근거로 한 코비드19 백신 의무화는 출항 전부터 다수 주정부들의 반발과 소송에 부딪쳐 시행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주로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한 주정부에서 OSHA rules를 개인 사업장에 적용하는 것에 반기를 들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가치 지향은 ‘자유’다. 접종 여부는 개인의 자유 의지로 결정할 일이며, 아울러 과거의 사례들로 비추어봤을 때 정부가 주도하는 의료과학 관련 규율이라는 것도 무조건적으로 따를 일인지 의심해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 공중보건 역사의 치부인 우생학법에 의한 강제 불임 시술 사례와 흑인 대상 매독 실험 사례 등이 이들의 주장이 힘을 얻는데 연료가 되고 있다.

문제는 이 목소리가 정치적 연대 속에서 힘을 얻어 기존의 보건 시스템을 이루는 구조의 축에 균열을 야기하는 형국으로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일부 백신 거부 강경파들은 성장기의 아이들이 공립학교를 다니려면 의무로 제출해야 하는 필수 백신 접종 기록과 관련한 규율까지 흔들고 있다. 정치적 편향성과 의학에 대한 불신이 보건 질서를 교란하고 있는 것이다.

브라이언이 근무하는 핵잠수함 제조업체와 코비드19 백신을 개발한 제약회사의 연구소는 공교롭게도 이 소도시 안에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이웃해 있다. 양사 직원들은 기분 전환으로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근방의 식당이나 퇴근 후의 맥주 한 잔을 즐기기 위해 들르는 술집을 공유한다. 브라이언의 아이와 내 아이가 활동하는 클럽의 학부모 모임에도 두 회사의 엔지니어와 연구원 부모들이 섞여있다.

그럼에도, 코비드19 백신과 관련한 브라이언의 의심 및 개인적 신념에 설득이 가능한 순간들은 없었던 것일까. 무력감을 호소할 자격은 내게도 없다. 나만 해도 브라이언과의 대립을 피하기 위해 순간적 모면을 택하지 않았는가. 누구나 확성기를 들 수 있고, 진위를 구분할 수 없는 정보가 도처에 널려 부유한다. 모두의 귀와 입이 그 어느 때보다도 비대해진 지금, 우리는 설득되는 시대를 사는 걸까 설득이 불가능한 시대를 사는 걸까.

*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가명으로 기입했습니다.

글쓴이

홍예진 소설가

홍예진 소설가 겸 에세이스트. 미국 코네티컷의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다. 재외동포문학상 공모에서 단편소설로 대상을 받으며 작품 발표를 시작했다. 산문집 <매우 탁월한 취향>과 장편소설 <소나무극장> 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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