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니까 정답이다!

[홍예진의 애플파이3] 안목을 존중해주면 작동하는 ‘성공 방식’

Target 매장에 들어온 LP진열 코너. 사진=홍예진
Target 매장에 들어온 LP진열 코너. 사진=홍예진

[홍예진 소설가(미 코네티컷 거주)]

카트를 밀고 가다가 멈춰선 건 레코드 진열대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LP를 판다고?’

그곳은 대학가도, 도시의 상점가도, 벼룩시장도 아니었다. 필요한 물건들이 적힌 리스트를 훑으며 분주하게 생필품을 찾아다니기 마련인 체인스토어 ‘타겟(Target)’이었다. 씨리얼, 세제, 양말 같은 걸 사러가는 곳에 살짝 별난 취향으로 취미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나 어필할 코너가 생긴 것이다.

아니 이 기업, 힙스터 모드를 지향하는 거야? 생활용품 매장 브랜드면서? 타겟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사실 매우 좋아한다. 나만 그런 건 아닌 게, 대화 중 이곳을 화제로 삼으면 미국 여자들 대부분이 호들갑 리액션을 보이며 입을 모은다.

“나 타겟 너어어어무 사랑하잖아! 거기만 가면 계획에도 없던 물건을 집어 담게 된다니까!”

‘물 관리’ 하는 타겟

타겟이 고가의 물건을 파는 곳은 아니다. 일반 생필품이라도 디자인과 색감이 구린 건 매장에 들이지 않을 뿐이다. 오직 가격으로 승부하는 월마트와는 ‘물’이 다른 것이다. 종합해보면 타겟이 주력하는 것이 바로 물 관리다. 매장 인테리어, 물건 진열 방식,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예뻐야 한다는 미감 중시, 그로 인해 유입되는 취향의 소비자층까지.

접시 한 장, 속옷 한 벌을 사면서도 자신을 제법 괜찮은 취향의 소유자로 여길 수 있도록 안목 우대 마케팅을 구현한다고 할까. 대접해 주는대로 자기 위치를 인식하게 마련인 인간의 심리란 이토록 얄팍하고 알량한 것이지만 어쩌랴. 우리가 그런 존재인 것을.

그래도 LP 코너는 파격이긴 했다. 생활용품을 사러가서 음악, 그것도 복고 감성의 물성을 가진 레코드를 집어 드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찬찬히 진열대를 훑어봤는데, 앨범의 수가 많지는 않았다. 팝의 고전 비틀즈부터 이매진드래곤이나 테일러스위프트 같은 최근 뮤지션들 앨범을 적당히 섞어 겨우 구색을 갖춰놓은 정도였다. LP 진열대가 있는 곳은 애플과 삼성의 최신 기기들이 전시된 공간 바로 옆이었다. 첨단과 복고. 그야말로 대척점에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이 초근접 거리에서 공존하는 걸 보며 나는 LP 코너가 판매를 위해 할애된 공간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그 지점은 이른바 감성 전략 공간, 즉 ‘우리는 이런 것도 판다’고 어필하려고 꾸민 에스프리 진열 장소였다. 실용성이 없음으로서 효용을 창출하는 곳. 취향과 감성에 소구하는 이 기업의 마케팅 방식이 한층 더 이미지 지향적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카트에 담았던 물건들을 계산하기 위해 그 자리를 떴다.

제대로 된 다양성 컨셉

계산대에 도착하기 전 다시 걸음이 멈춘 건 속옷 코너 앞에 내걸린 사진들 때문이었다. 내 시선을 잡아챈 사진 속에서는 세 가지 톤의 피부색을 가진 모델들이 란제리를 입고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라틴계, 아프리카계, 아시아계 여성이 ‘마치 주류처럼’ 가장 큰 사이즈의 화보로 제작되어 란제리 코너 전면을 장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 살면서 어느 장소를 가든 마음 한 쪽에 늘 품고 있던 위축 심리에 진동이 일었다. 고착되어 티눈처럼 배겨버린 것을 떼어내자며 누군가 고약을 내밀 때의 기분이라고 할까.

미국 광고 시장의 새로운 주류가 된 다양성 컨셉의 란제리 광고. 사진= 홍예진
미국 광고 시장의 새로운 주류가 된 다양성 컨셉의 란제리 광고. 사진= 홍예진

모두가 알다시피, 부끄럽게도 아시아에서조차, 오랫동안 광고 시장은 깡마른 백인 모델의 무대였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광고 시장은 다양성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미국인의 ‘보통 체격’을 대변하는 모델은 더 이상 생경한 존재가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통통한 마네킹에 놀라지 않는다. 모델들의 피부색도 다양해졌다. 그럼에도 란제리 코너에 내걸린 사진들에 내 걸음이 멈춘 건 다방면으로 공들인 연출이 돋보였기 때문이었다.

성의 없이 구색만 갖춘 ‘껍데기 다양성’에 씁쓸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이를테면 백인 모델은 가장 예쁘고 날씬한 이로 선정해 센터에 두고, 피부 톤을 다양화하기 위해 동원된 모델들이 체격의 다양화 역할까지 맡은 광경을 여러 차례 봤던 터라 가끔씩 괘씸했던 것이다.

큰아이가 입시를 치르는 동안 집으로 날아들었던 대학 브로슈어들에서도 마찬가지 경우를 발견하곤 했다. 여러 문화권의 학생들을 차별 없이 수용하는 척 캠퍼스 내 학생 무리를 앵글에 담았는데 ‘잘생긴 백인 남학생’이 중심에 잡혀있는 구도를 보면 그 배치가 우연이라고 봐지지가 않는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니까 시도는 해볼게. 하지만 중심에 서는 것과 최고 미남미녀로 보이는 것만은 내 줄 수 없어.’라는 식의 허울뿐인 다양성 홍보는 결국 반발심만 일으키게 마련이다. 소수자들이 기만을 알지 못하는 천치는 아니니까.

그날 내가 마주한 란제리 모델들에는 체격, 인종, 연령을 통틀어 주류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중심에 선 흑인 모델은 늘씬하지만 머리가 희끗희끗한 장년층이고, 왼쪽 올리브 톤 피부의 모델은 젊은데 살집이 있는 체형이며, 중간 체격의 아시아계 모델은 통념을 부수겠다는 듯 흑인 모델과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 위에 배치된 단독 화보의 백인 모델은 미국의 성인 여성 평균 체형을 가진 이였다. 오른편에서 아름다운 은발을 자랑하는 장년층 여성의 뒷모습을 보면 그 역시 평범한 체형의 모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섯 중 한 명도 ‘젊고 깡마른 백인 여성’은 없었다.

나는 이 사진들을 기획한 전담팀의 노력에 감탄했다. 이들은 기존의 고가 패션 촬영물에 들이는 명암, 색조, 보정의 기술과 노력을 다양성을 추구한 중저가 상품 매장 화보에서도 똑같이 동원해 고퀄 화보로 만들어낸 것이다. 당연한 결과로 사진은 감각적인 매장 인테리어에 녹아들듯 어우러졌다.

넷플릭스 최고 화제작인 K드라마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최고 화제작인 K드라마 ‘오징어 게임’

‘탐미’ 본능을 채워준다면야!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고 만든 K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초대박 히트를 기록했다. 취향에 따른 호불호도 있고, 여성 캐릭터를 남성중심의 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서로 소비했다는 지적도 있다. 어쨌든 오징어게임이 불특정 다수의 세계인에게 어필한 건 사실이라 이 창작물을 공전의 히트작으로 이끈 코드를 분석하는 시도가 많다. 타인을 죽여야(밟아야) 성공하는 세상의 구조에 환멸과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에 거울을 들이댄 창작물이 처음은 아니다. 그럼 오징어게임은 왜 광풍이 됐을까.

자잘한 건 차치하고 굵직한 것만 꼽자면, 서사를 이끌어가는 게임의 룰이 단순해서 이해하기 쉽다는 것과 컨셉추얼한 미감으로 눈을 즐겁게 해준 점이 폭넓은 열광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탐미는 인간의 속성이다. 중저가 물건을 사러간 곳에서도 감성과 취향을 대우받으면 우쭐해지는데, 미술품을 오마주해 연출한 미장센으로 안목을 자극해주면 누군들 마다할까. 미술을 몰라도 기꺼이 미술관에 놀러가는 게 우리네인 걸. 한편 인간은 내면의 찌질이를 숨기고 사는 존재다. 중저가 매장 소비자가 됐든, 주눅 든 소수인종이 됐든, 세상이 원망스러운 루저가 됐든, 탐미 본능을 충족시켜주고 안목을 우대해주면 이렇게 외치지 않겠느냔 말이다. 통쾌해 하면서. “이거야 바로! 내가 찌그러져 있었을 뿐이지 취향이 없냐고 어디!”

글쓴이

홍예진 소설가

홍예진 소설가 겸 에세이스트. 미국 코네티컷의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다. 재외동포문학상 공모에서 단편소설로 대상을 받으며 작품 발표를 시작했다. 산문집 <매우 탁월한 취향>과 장편소설 <소나무극장> 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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