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잘 모르겠어

[홍예진의 애플파이 6] 1995년 프랑스 총파업, 그땐 큰 강이 흘렀는데

1995년 11월 30일 교통 파업의 여파로 카풀을 시도하는 파리 시민. 사진=AFP
1995년 11월 30일 교통 파업의 여파로 카풀을 시도하는 파리 시민. 사진=AFP

배를 타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하늘은 잿빛으로 낮게 깔려 있었고, 곧 눈이나 비가 내릴 양 대기가 꾸물꾸물했다. 우리는 내면의 노파심이 만류하는 목소리를 외면하면서, 그 배에 몸을 실었다. 어떻게든 되지 않겠느냐며, 돌아올 방법에 대해선 크게 고민하지 않는 만용을 부린 것이다. 그날만은 반드시 시내로 들어가야 했다. 더는 견딜 수 없었으니까.

1995년 프랑스 노동자 총파업

그때 나는 파리 외곽의 한 마을에 위치한 작고 낡은 아파트를 다른 유학생과 나눠 쓰고 있었다. 파리를 벗어나면 금세 도달하는 마을이긴 해도 지하철 노선이 닿지 않아 몽빠르나스 기차역에서 국철을 타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지하철역이 촘촘하게 박혀있고 도시 규모가 작아 웬만한 곳은 걸어서도 다닐만한 파리 시내와는 사정이 달랐다. 지방에서 갑작스레 수도권으로 이동했던 나는 급하게 집을 구하느라 조건을 꼼꼼히 따지지 못했었고, 이사를 하고나서야 그 마을의 교통이 불편한 걸 깨닫고는 파리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거처를 알아보던 중이었다.

하필 그 마을에 거주하는 잠깐의 기간 동안 프랑스 근대사에 한 획을 그은 대규모 총파업이 벌어진 것이었다. 버스, 지하철, 기차, 항공기를 망라한 프랑스 전국의 모든 대중교통 운행이 전면적으로 중단된, 실로 어마어마한 파급력의 근로자 봉기였다. 짧게 끝나지도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산발적으로 파업과 집회가 벌어지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전국의 대중교통이 일제히 멈춰 섰는데, 어렴풋이 기억하기로 한 달 가까이 갔었던 것 같다.

당시 정권을 잡은 자크 쉬락 대통령과 알랭 쥐페 총리가 야심을 품고 시행하려던 복지 제도 개편 계획이 발단이었고, 연금, 가족수당, 의료보험 등 전면적인 복지 예산 축소 선언에 국민들이 똘똘 뭉쳐 정부와 맞선 것이다. 프랑스가 어떤 나라인가. 근로자들의 여름휴가는 한 달이나 되며, 우체국이나 은행도 점심시간에는 셔터를 내리고, 일요일에는 대부분의 수퍼마켓이 문을 닫던 곳 아닌가. 혁명으로 왕정을 무너뜨리고 왕과 왕비를 광장으로 끌고나와 목을 친 역사의 흔적은 그들의 생활 곳곳에 배어 있었다. 그 나라에서 가장 성대하게 기념하는 국경일이 혁명일인 걸 보면 그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당시의 쉬락 정부가 그걸 간과한 것이었다.

자가용 없이 도시 바깥에 살고 있던 나와 룸메이트는 파업 기간 동안 꼼짝없이 발이 묶였다. 학교 수업은 사정이 그러하니 금세 체념했지만 젊은 몸과 마음이 고요한 교외 마을에 갇혀있으니 피가 들끓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파업이 끝나길 학수고대하며 뉴스를 들여다보고, 겨울이라 인적 없이 스산하기만 한 공원을 거닐고, 아파트 옆 작은 상점에서 생필품을 사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버스가 다니질 않으니 평소 장을 보던 수퍼마켓에도 가지 못해서 식사 메뉴도 한정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주민 M에게서 배로 파리에 들어가는 방법을 전해 들었다. 마을 교차로에서 뻗어나가는 비탈길을 한참 내려가면 세느강 줄기를 타고 마을과 파리 중심부를 왕복하는 배의 선착장이 있는데, 그 배가 민영 유람선이라 파업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는 거였다. 인내심 수은주가 파열할 지경에 있었던 우리는 반색하며 선착장의 정확한 위치를 물었다. M은 자기 친구도 불러 넷이 함께 파리에 가서 놀다오자고 제안했지만 우리는 그의 추파는 요령껏 따돌리면서, 그로 하여금 배의 시간표를 불게 하는 것에 성공했다. 하! 누가 청춘을 순수하다고 했나.

필자가 잠시 살았던 파리 외곽 마을의 강변 풍경이 담긴 골동품 엽서. 이미지출처=Cartorum-Cartes postales anciennes localisées
필자가 잠시 살았던 파리 외곽 마을의 강변 풍경이 담긴 골동품 엽서. 이미지출처=Cartorum-Cartes postales anciennes localisées

그날 배를 탄 건 결과적으로 바보짓이었다. 파리에 도착해 잠깐은 해방감에 들떠 이곳저곳을 쏘다녔지만 우리는 곧 돌아갈 배편을 걱정해야 했다. 배에서 내릴 때부터 조금씩 나부끼던 눈발이 두어 시간 후에는 거리를 새하얗게 뒤덮는 폭설로 변한 것이다. 우리의 염려는 현실이 되어 결국 배가 끊기고 말았다. 유일한 교통수단은 택시뿐이었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택시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고, 더구나 시내를 벗어나는 택시는 있지도 않았다.

왜 아무도 총파업을 원망하지 않을까

우리는 눈발이 몰아치는 거리에서 추위와 겁에 질려 사색이 된 채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남의 차라도 얻어 타 볼 심산이었다. 남들의 긍정적인 태도에 동화되어 안일하게 시내로 나온 어리석음을 자책하면서. TV 뉴스를 통해 중계되는 관련 보도를 보면서 우리는 굉장히 이상하고 생경한 점을 발견했는데, 이 엄청난 파업에 대해 흥분된 어조를 띄거나 불만을 표하는 사람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앵커는 정부와 시민연대 각각의 입장을 중립적으로 전했고, 현장 리포터는 이 상황을 시민들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견뎌내고 있는지 현장 스케치를 내보냈다. 그뿐인가. 리포터가 마이크를 들이대면 시민들은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심지어 미소를 짓기도 하면서 오토바이, 자전거, 롤러블레이드 등을 동원해 통학 및 출퇴근을 하고 있다며 담담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많이 걸으니 운동도 되고 나쁠 것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의구심을 품었다. 누구 하나 다급한 사람이 화면에 잡혀야 정상 아닌가? 사람마다 개인 사정이 있는데 이렇게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대중교통을 다 정지하면 사연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냐고 악다구니를 치는 이도 나오는 게 보통 아니냐고! 룸메이트와 나는 이런 의견을 나누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급기야 우리는 언론이 톤을 정해 보도를 하나보다고 의심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생각도 이내 거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 현실에서 만나는 프랑스인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파업에 관해 불만을 내비치지 않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아 몇 번인가는 슬쩍 떠보기도 했다. 소용없었다. 돌아오는 답의 골자는 다 같았다. 모두의 복지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는 거였다. 누구라도 차후 파업의 핵심에 들어가 있을 수도 있으니 현재의 이슈가 본인과 큰 관련이 없을지라도 인내하고 협조하는 게 옳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정말이지 내게는 충격적인 문화 체험이었다.

급할 때 SOS 칠 연고 하나 없는 이방인 신세를 망각하고 배를 탔던 건 그 때문이었다. 모두가 그토록 느긋했으므로 우리 역시 파업이 야기한 불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쪽으로 태도를 바꾸게 된 것이다. 폭설이 내리는 거리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동사할 운명은 아니었는지 흰 눈을 뒤집어쓴 채 파랗게 질려있던 우리 앞에 세단 한 대가 멈춰 섰다. 천신만고 끝에 마음 좋은 아주머니의 차를 얻어 타고 집에 돌아온 이후, 우리는 파업이 끝날 때까지 마을에 붙박여 지냈다. 돌아오는 길이 차단되었던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은 것이다. 쉬락 정부는 결국 복지 개편안을 철회했고, 파업은 근로자의 승리로 끝났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 1995년에 일어난 일이다.

큰 강으로 모이던 시절은 지나가고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2021년도 끝나가는 시기, 나는 미국에 살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는 자리에서 마주보이는 창밖에는 그날처럼 잿빛 하늘이 깔려 있다. 심지어 눈발도 날린다. 계절과 공기는 그날과 흡사하지만 많은 것이 변했다. 그때의 나는 복지 사수를 우선으로 알고 싸우던 사람들을 목도하고 있었고, 현재의 나는 시장 경제의 원리가 지배하는 대륙에서 살고 있다. 거기나 여기나 어떤 면에선 각자 변했으나 한 가지 접점은 있다.

사방의 냇물이 큰 강으로 모여들어 목적지로 가던 시절이 있었다. 95년의 프랑스 파업처럼 어마어마한 물줄기는 아닐지라도 한때 인간은 대의를 위해 개인의 불편을 견디는 것을 미덕으로 알기도 했던 것이다. 지금은 어디에도 하나가 되어 흐르는 강 같은 건 없다. 여러 갈래의 하천들이 저마다의 방향으로 흐르며 지구 표면을 골고루 뒤덮어 흐르고 있다. 실핏줄만으로 이루어진 몸뚱이처럼.

큰 강의 목적지가 늘 옳았던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대로 뻗어나가 대해를 만날 줄 알았건만 뜻밖의 지형에 부딪쳐 물길이 갈라지거나 방향을 트는 역사도 늘 반복된다. 하물며 각양각색의 가치가 충돌하는 시대인 지금, 우리는 각자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도달한다면 그 곳은 궁극의 지대인 것일까. 어떤 것도 확언할 수 없다고 느끼면서도 큰 물줄기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들이 작은 물길로 새어 증발해버리고 마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큰 강이 흐르지 않는 이 시대는 희망일까 재앙일까. 26년 전의 그날, 내가 탄 배는 강줄기를 따라 움직여 파리 시내로 나를 데려다줬다. 폭설을 예측하지 못한 나는 돌아오는 배를 타지 못했지만.

*이번 글의 제목인 ‘오늘은 잘 모르겠어’는 심보선 님의 시를 인용했습니다.

글쓴이

홍예진 소설가

홍예진 소설가 겸 에세이스트. 미국 코네티컷의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다. 재외동포문학상 공모에서 단편소설로 대상을 받으며 작품 발표를 시작했다. 산문집 <매우 탁월한 취향>과 장편소설 <소나무극장> 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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