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에 머물러있는 시선

[홍예진의 애플파이4] 문화 콘텐츠와 정치 콘텐츠의 머나먼 거리

1951년 한국전쟁 당시 동생을 업고 탱크 앞에 선 소녀. 사진출처= U.S. Navy / Maj. R.V. Spencer, UAF
1951년 한국전쟁 당시 동생을 업고 탱크 앞에 선 소녀. 사진출처= U.S. Navy / Maj. R.V. Spencer, UAF

[홍예진 소설가(미 코네티컷 거주)] 두개의 잔이 챙 하고 부딪쳤다. 친구와 나는 각자의 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활짝 웃었다. 오랜만에 가진 저녁 약속이었고 장소는 새로 생긴 멕시칸 식당이었다. 실내 장식이 참신한 곳인데다가 칵테일도 음식도 맛이 좋아서 우리는 토요일 저녁 레스토랑의 활기를 흠뻑 흡수하며 떠들어댔다.

친구는 인도인들이 흔히 그렇듯 채식주의자이고 나는 잡식주의자인데 우리는 한 번도 서로가 지향하는 바를 강요하거나 날을 세워 상대를 건드린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화제는 들쭉날쭉 종횡무진, 지루한 적이 없었다. 나는 인도를, 친구는 한국을 가본 적이 없다. 대신 우리는 상대의 출신국과 관련된 막연한 이미지를 기본에 깔고 많은 것들을 묻고 알아간다. 이를테면 친구는 한국 사람들이 인도 음식을 즐겨먹는지 궁금해 하고, 나는 커리에 곁들여 나오는 따끈따끈한 난(Naan)이 한국인에게 익숙해진지 한참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식이다.

테이블에 음식이 깔리면 식탐을 핑계로 우애를 다진다. 내 접시에 있는 플랜테인 조림 일부가 친구의 접시로 이동하고, 나는 친구가 손수 싸서 내밀어준 콜리플라워 타코를 받아먹는다. 나는 미국인이 다 된 양 눈을 굴리며 맛있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고, 친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다. 그 속내가, ‘봐! 채소만으로도 맛있잖아!’인 걸 알지만 그쯤이야 뭐.

한국 음식을 맛보고 있는 인도인들. 사진출처= 버즈피드인디아 유튜브
한국 음식을 맛보고 있는 인도인들. 사진출처= 버즈피드인디아 유튜브

“한국 사람들, 대체 못하는게 뭐니?”

친구가 두 번째 또띠야를 손바닥에 얹고는 말했다. 요즘 인도에서 한국 음식이 대유행이라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 영화, 음악이 인도에서 난리야 난리!” 인도 현지인들의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면 한국 음식을 직접 해서 먹어보는 포스팅이 다수 올라오고, 한국 음식과 인도 음식을 접목해 퓨전을 만들어내는 풍조도 엿보여서 그 땅에 부는 K바람을 감지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 내 K콘텐츠 초기 소비자층 중 인도계 2세들이 상당수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본국에서도 그렇게 되었다는 건 새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듣기 좋은 말이니만큼 나도 친구의 비위를 맞춰주고 싶어서 한국에서 잘 알려진 인도인 ‘럭키’ 이야기를 해줬다. 참깨 사업을 하느라 한국에 체류하다가 ‘비정상회담’이라는 예능 프로에 출연해 유명해졌다는 것과, 인도인 특유의 융화에 능한 성품이 돋보인다는 나의 사견까지 덧붙여 말해주자 친구도 관심을 보이며 흥미로워했다. ‘당신네’의 무언가를 ‘우리네’가 좋아한다는 단순한 화술은 얼마나 효과적인 윤활유인가. 우리는 민간외교의 모범생이라도 된 듯 의기양양 고무되어 즐겁게 식사를 하고 알맞게 취해 헤어졌다.

일요일에는 남편도 하이킹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다. 주말마다 만나 일대의 숲 이곳저곳을 탐험하는 모임이다. 구성원은 남편 외 이탈리아계와 독일계인데, 혈통을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이지 조부모 세대 때부터 미국에서 태어나 일족을 이루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미 몇 세대 위부터 이민자의 정체성은 지워지고 자신을 ‘그저 미국인’으로 느끼는 이들.

남편이 이들과 격의 없이 지낸지도 꽤 되었는데, 하이킹에서 오고 간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미국의 백인 중년층이 어떤 생각들을 하고 지내는지 짚어볼 지점이 보인다. 일례로, 요즘 라디오에서 케이팝이 왜 이렇게 자주 나오는 거냐고 누군가 의문을 표하면, 다른 이가 답하기를 케이팝 팬으로 자라난 미국 내 아시아계 2세들이 사회에 나오게 된 걸 주목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이 대중문화를 이끌어갈 방송작가나 PD 같은 직종에 진출해 자신들의 ‘스타’를 소환하고 노출시키고 있다는 점을 거론한다. 그 분석을 한 눈 밝은 친구가 이번 하이킹을 마친 후 남편에게 던진 말이라고 한다.

“어이, 요즘 한국이 대중문화 시장을 완전히 잡아먹고 있던데? 티브이를 보면 어떤 채널을 돌려도 한국 관련되지 않은 게 없더라고! 대체 한국 사람들, 못하는 게 뭐야?”

뉴욕 유엔 빌딩 앞 BTS의 퍼포먼스 장면. 사진출처= Billboard.com
뉴욕 유엔 빌딩 앞 BTS의 퍼포먼스 장면. 사진출처= Billboard.com

정작 한국계는 ‘편향된 모국 정보’에 혼란

남편과 내가 각자 나가서 전해들은 이야기를 곱씹고 있자니 지역 내의 한국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중 일부는 미국으로 이주해서 반세기를 지내온 사람들이다. 나를 만날 때면 타국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살아야했던 본인의 과거가 겹쳐 보인다며 눈가를 적시는데, 그들로부터 받는 관심과 환대로 나 역시 위안을 얻기도 해서 만날 때마다 마음이 간다.

그런 그들이 최근 자주 탄식을 뱉으며 한국 걱정에 미간을 좁히곤 한다. 한국을 필요 이상으로 염려하다 심지어 분개에 이르기도 한다. 그들과 나 사이의 공통분모가 고국인지라 대화가 이어지면 결국 한국 소식을 나누게 되는데, 그때마다 한국의 정세에 핏대를 세우니 난감하기 그지없다. 그들의 의식 속에선 한국은 곧 공중분해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고, 바람 앞의 등불이며, 집권 여당은 작정하고 나라를 해하려는 사람들로 우글우글 차있는 집단이었다.

소속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표적으로 한 편향 정치 정보가 지구촌 곳곳에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비극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정보를 나르는 통로가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통로로 도착한 고국의 소식이 단비일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운 이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을 주는 별천지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통로가 언젠가부터 별빛 대신 먼지를 날라다 뿌려대고 있는 것이다. 고국을 디스토피아로만 보게 하는 오염 물질을.

그들은 내가 자신들처럼 힘겹게 이민 생활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반찬을 나눠주고 텃밭에서 가꾼 작물을 아낌없이 싸주는 이들이다. 그들이 극단적 콘텐츠에 물들어 모국의 그늘에 몰두해있는 모습을 보면 서글프고 착잡하다. 오래 전에 한국을 떠난 그들에게는 한때 엄청나게만 보였을 미국. 그토록 대단했던 나라가 한국의 소프트파워에 열광하고 있다. 오랜 세월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온 이들에게서 이 멋진 광경을 목도하는 기쁨을 빼앗는 이는 대체 누구일까.

글쓴이

홍예진 소설가

홍예진 소설가 겸 에세이스트. 미국 코네티컷의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다. 재외동포문학상 공모에서 단편소설로 대상을 받으며 작품 발표를 시작했다. 산문집 <매우 탁월한 취향>과 장편소설 <소나무극장> 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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