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을 시작하며...’빅애플’의 만찬
[홍예진의 애플파이1] 뉴욕의 애칭 ‘빅애플’과 미국 대표음식 ‘애플파이’ 미국서 빅애플의 애플파이 같은 얘기 하고파 반가운 브로드웨이 쇼 준비...뉴욕의 멋 재현할까
[홍예진 소설가] 오래 전, 뉴욕에 사는 지인의 집에서 추수감사절 만찬 모임이 있었을 때였다. 나는 파이를 구워가기로 했었고, 모임의 규모가 제법 컸으므로 파이를 세 종류나 준비했다.
초콜릿크림파이와 블루베리파이를 만들었고, 구색을 맞추기 위해 추수감사절 전통 메뉴인 펌킨파이도 구워갔다. 본식이 끝나고 후식이 나갈 차례가 되어 내가 만들어간 것들을 꺼내놓고 살짝 우쭐해 했다.
애플파이 빠트린 추수감사절 파티라니
‘누가 파이를 세 종류나 만들겠어? 다들 깜짝 놀랄 걸!’ 하는 마음이었다. 디저트에 기대가 크다는 제프리가 주방으로 와서 내 파이들을 보고 실망한 표정을 짓기 전까지는.
제프리의 아내가 귀띔해줘서 알게 됐는데, 애플파이가 빠진 것이 문제였다. 애플파이는 펌킨파이와 더불어 추수감사절 전통 메뉴고, 미국의 대표 소울푸드 중 하나다. 그러니까 제프리는 추수감사절인데 애플파이를 먹을 수 없는 게 서운한 거였다.
“시골에서 자라서 그래. 제프리는 애플파이에 아이스크림 한 스쿱 얹어서 먹고, 낮에 남긴 칠면조살 발라내 야식으로 샌드위치 만들어 먹어야 추수감사절답게 보내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샌드위치도 꼭 어릴 때 먹던 그 싸구려 원더브레드 식빵으로 만들어야 제격이라나? 뉴욕에 산 게 벌써 몇 년인데 저렇게 시골티를 낸다니까!”
제프리의 아내가 흉보는 척 남편의 입맛을 ‘쉴드’쳐줬지만 이미 빈정이 상해버린 나는 제프리가 얄미웠다. 딴에는 성의껏 레시피를 뒤져가며 다양한 파이를 만들어갔는데 애플파이 하나 없다고 심드렁해하니 괘씸할 수밖에.
애플파이가 ‘보통의 미국인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가정 음식이라는 걸 이때의 일화를 통해 알게 되긴 했다. 사실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추석에는 송편을, 설에는 떡국을 먹고 싶어 하는 내 향수와 다를 바 없긴 하니까.

비꼬는 표현 ‘빅애플’, 사과나무 없는 뉴욕의 ‘애칭’으로
미국의 대표 음식들이 대개 그렇듯 애플파이도 칼로리 폭탄이다. 설탕, 버터, 탄수화물을 들이부어 만드는 애플파이를 ‘옷빨’에 목숨 거는 뉴요커들이 즐겨먹을 리 없건만 공교롭게도 뉴욕의 애칭은 ‘빅애플’이다.
20세기 초반, Edward S. Martin이라는 저널리스트가 국가의 수액을 다 빨아먹는 ‘빅애플’이라며 뉴욕이 독점하는 수혜를 꼬집은 바 있는데, 차후 이 표현을 뉴욕에 진출하는 걸 영광으로 여기는 이들이 즐겨 쓰면서 빅애플은 ‘대처(大處)’라는 의미의 별명으로 이미지를 바꾸게 되었다.
내가 사는 코네티컷의 해변 마을은 뉴욕과 보스턴의 중간쯤에 위치하는데, 가까운 듯 사뭇 다른 두 도시 간의 차이는 물론이요, 그 주변 일대를 아우르는 스몰타운들도 저마다의 성격을 지녔다.
동시에 코네티컷을 포함한 이 일대는 뉴욕과 보스턴이 발산하는 정서적 파장을 함께 타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 지역 어디를 가든 그곳의 몸통 일부는 숙명적으로 미국의 북동부 정서라는 교집합으로 맞물린다. 과수원이 존재할리 없는 뉴욕의 별명이 빅애플이면서, 뉴요커 중에도 고향의 애플파이를 그리워하는 스몰타운 출신들이 있는 것처럼.
따라서 이 칼럼에는 주변의 애플파이들을 통해 투영되는 미국 이야기가 담길 것이다. 별 수 없이 미국이 주도하게 마련인 지구촌의 거대담론 텐트 아래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일반 기사가 담지 못하는 결을 쓰다듬고, 그 촉감을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코비드19 직격탄 맞은 뉴욕, 올해는 화려한 멋 재현할까
빅애플의 브로드웨이 쇼가 다음 달(9월) 14일을 기점으로 재개된다고 한다. 코비드19의 직격탄을 가장 먼저, 가장 세게 맞고 숨죽이고 있었던 뉴욕이 마침내 자신의 애플파이를 다시 구워내겠다고 선언하고 오븐을 데우고 있는 것이다.
관련 보도를 통해, 판데믹 기간 동안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었을 빅애플의 공연관계자들이 얼마나 들떠있는지 생생하게 흘러나온다. 보는 사람의 심장도 펄떡거릴 정도다.
빅애플의 애플파이는 본래의 맛 그대로를 재현해내게 될까? 애플파이가 돌아온 뉴욕의 만찬장으로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어 환호할까? 그러고 보니 애플파이의 계절이 목전에 와있다. 집근처 사과 농장의 열매들이 하루가 다르게 탐스러워지고 있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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