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는 우리 시대의 역사의식을 바로잡기 위해 정치 현안에 대해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는 역사학자다. <우리 역사는 깊다>, <내 안의 역사>, <민족의 영웅 안중근> 등의 저서를 냈다.
전우용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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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한일수교 60년, 일본이 북한과 수교 나서면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해결’ 이후 본격적인 대북 접촉에 나설 것이라고 예측하는 국제관계 전문가가 많다. 며칠 전 일본 총리 이시바 시게루는 트럼프가 일본에 오면 ’납북자 가족‘과 면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이 북한의 범죄행위를 고발함으로써 북미 관계 개선을 막겠다는 뜻인지, 아니면 일본의 납북자 가족이 북한에 있는 친척을 하루속히 만날 수 있도록 교류 기회를 열어달라는 뜻인지는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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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Korea: If Yoon Suk-yeol Returns
On the day Yoon Suk-yeol’s impeachment motion was passed, tens of thousands of people held a rally against the impeachment at Gwanghwamun Square. The following weekend, they staged another large-scale protest demanding the nullification of the impeachment and calling for a “second martial law.” Wreaths expressing wishes for the impeachment to be overturned were lined up in front of the Constitutional Court. According to Gallup, 21% of the public opposes the impeach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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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윤석열이 복귀한다면
윤석열 탄핵안이 가결되던 날, 광화문 광장에서는 수만 명이 탄핵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다음 주말에도 ‘탄핵 무효, 2차 계엄’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헌법재판소 앞에는 탄핵 기각을 염원하는 화환들이 늘어서 있다. 여론조사업체 갤럽에 따르면, 탄핵에 반대하는 국민이 21%에 달한다. 윤석열의 계엄 선포와 계엄군의 국회 진입을 ‘내란’으로 인정하고 내란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겠다고 한 국무위원은 한 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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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노벨문학상 논란: 그들의 ‘지적 무능과 나태’
“대한민국 역사왜곡 작가 노벨상, 대한민국 적화 부역 스웨덴 한림원 규탄한다.” 며칠 전 대한민국애국단체협의회 등 5~6개 단체 회원들이 주한 스웨덴 대사관 앞에 펼쳐놓은 현수막에 적힌 글귀이다. 저들은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작품들이 ‘역사를 왜곡’했다고 주장하며, 한강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한 스웨덴 한림원은 한국 현대의 ‘거짓 역사’를 세계적으로 공인하는 ‘부역행위’를 저질렀다고 강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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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뉴라이트와 일본 찬양, 이승만 숭배
“지금까지 친노(親盧)계열의 진보세력만이 소리를 높이고 이와 다른 견해는 냉전수구 또는 반(反)개혁으로 공격받기 일쑤였다. 새로운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뉴 라이트(New Right)’가 건강한 비판세력으로 자리 잡을지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의 시장중심주의를 내세운 ‘뉴 라이트 신(新)보수’의 중추적 역할을 기대한다.”(동아일보 2004.11.7. 사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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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독립운동의 민주주의와 친일의 군국주의
일본이 한국을 강점한 직후인 1911년, 일본 헌병은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 사건’을 날조하여 한국인 독립운동가 105명을 체포, 고문, 투옥했다. 이 과정에서 1907년에 조직된 ‘신민회(新民會)’라는 조직이 드러났다. 조직 이름은 ‘민(民)을 새롭게 하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본디 한자 민(民)은 ‘피눈물 흘리는 눈’을 형상화한 상형문자다. 외부에서 온 전사(戰士) 집단이 특정 지역을 정복하고 토착 농경인들에게 성을 쌓게 한 뒤 자기들은 그 안에 들어가 살면서 성 밖의 농경인들을 수탈하는 것은 고대 문명 형성사의 기본 서사(敍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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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친일과 혐한의 한일 우호
”종로 네거리 우리 동포들의 상점지대로부터 북촌 일대의 휑뎅크렁하며 비인 듯하며 어둠침침한 그것에 비하여 모든 사람의 눈을 현혹케하여 마지 않는 그 광경에 우리 정신까지도 전부 거기에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지방에서 올라온 우리 동포들이 한 번 이곳을 구경하고 이 땅을 밟을 때에 얼마나 찬란할 것인가. 이 놀람과 찬란이 드디어 부러움과 동경(憧憬)의 표적으로 변하여 그네들의 머리 속에다 깊고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별건곤』 19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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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애국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고문기술자로 잘 알려진 이근안은 지난 2017년 한 시사주간지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당시 시대 상황에선 고문이 애국이었다. 애국은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그가 자기에게 고문받은 후유증으로 돌아간 김근태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었을 것 같지는 않다. 박종철을 고문해 죽인 경찰들 역시 유족에게 사과한 적 없다. 사람을 고문해 허위 자백을 받아내고 그 후유증으로 죽게 만들었으면서도 죄의식이 아니라 자부심을 느끼는 심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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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민중시대의 종언과 조국혁신당
2000년 1월 30일, 민주노동당이 공식 출범했다. 분단 이후에도 진보당, 민주혁신당, 사회대중당 등 진보적 강령을 내건 정당들이 명멸(明滅)했으나 반공이 ‘국시(國是)’인 상황에서 노동자 농민의 권익을 옹호한다는 정당이 대중적 기반을 갖기는 어려웠다. 민주노동당은 전국적 지지 기반을 확보한 대한민국 최초의 진보정당이었다. 1970년 11월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을 계기로 노동자들의 처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정권의 노골적인 친재벌 반노동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가톨릭노동청년회, 도시산업선교회 등의 종교단체가 노동자들을 도왔고, 노동자들 스스로 자기 처지를 개선하려는 의지도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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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그들이 이승만을 숭배하는 이유
자칭 보수세력이 이승만 우상화 다큐멘터리 홍보에 열심이다. 영화 ‘서울의 봄’이 1300만 관객을 돌파했을 때는 관심도 보이지 않던 KBS가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관객이 18만 명을 넘어선 소식은 흥분해서 전한다. 국민의힘 정치인과 친윤(親尹) 유명인사들은 “영웅은 이제 외롭지 않다”는 둥, “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는 둥, 심지어 “잘못 배운 역사가 한 둘이 아니다”라는 둥 하며 마치 자기들이 이제까지 ‘속아서’ 이승만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것처럼 회오(悔悟)의 감상을 토로한다. 도대체 누가 그들을 속였다는 말인가? 박정희가? 아니면 전두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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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그곳에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장. 전북 지역 국회의원 한 사람이 입장하는 대통령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국정기조를 바꾸셔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국민이 불행해집니다.” 대통령은 악수한 손을 거둬 들이고 못 들은 척 계속 앞으로 나갔다. 그는 대통령 뒤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려 했다. 그의 짧은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대통령 경호처 요원들이 그의 입을 틀어막고 두 팔과 두 다리를 들어올린 채 행사장 밖으로 나갔다. 이 상황에서 ‘끌려 나갔다’는 말은 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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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12·12 계엄군과 오늘의 검찰
1979년 12월, 나는 대학입시를 1년도 채 남겨두지 않은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다. 비상계엄 상황이라 학교 ‘야간 자율학습’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야간 타율학습’이라도 하려고 서울역 부근에 있던 단과 학원에 등록했다. 12월 12일에서 며칠쯤 지난 때의 일로 기억한다. 밤 9시경, 학원 수업이 끝나 집에 가려고 서울역 앞 육교 위에 올라섰다. 육교 위에는 총 든 계엄군 2명이 서 있었다. 시국이 어수선하던 때라 육교 위의 행인은 내 앞 5~6m쯤에서 걸어가는 젊은 여성뿐이었다. 마침 그 전날 내린 눈이 굳어 있는 상태였는데, 계엄군 한 명이 젊은 여성 뒤로 달려가 미끄러지며 발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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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박력(迫力)과 막무가내(莫無可奈)
감사원은 본디 현직 관리들의 탈법(脫法), 비위(非違), 권한 남용 등을 감찰하던 조선시대 사헌부의 후예 격인 부서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과 동시에 새 사무처장이 취임한 뒤, 감사원은 검찰 특활비 유용 의혹 등 현직 공직자들에게 제기되는 비위 혐의들에는 철저히 눈을 감고 오직 전 정권 정책의 당부(當否)를 파헤치는 데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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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원칙 중 하나는 ‘압도적인 힘에 의한 평화’다. 그는 취임 후에도 이 말을 여러 차례 했으며, 외교 안보 담당 고위 공직자들도 기회 있을 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했다. 고대 로마제국의 군사학자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가 남긴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말은 오늘날 평화에 관한 금과옥조(金科玉條)이자 명언(名言)으로 취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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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독립운동을 능욕하는 궁극 목표는 무엇일까
1990년대 중반의 어느날, 소규모 학술회의 뒷풀이 자리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사학자로 잘 알려졌던 사람이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따지고 보면 김구가 해놓은 게 뭐가 있어? 이봉창 윤봉길 같은 젊은이들 부추겨서 테러한 게 독립에 도움이 됐나? 아까운 목숨만 잃게 만들었지. 그랬다고 일본의 통치 방식이 달라지기나 했나? 긴 안목에서 보면 김성수가 한 일이 훨씬 많지. 학교도 세우고 공장도 짓고 언론사도 만들었잖아. 우리 역사 발전에 실질적 도움이 된 건 이런 것들이야. 김성수 보고 친일파라고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일본에서 근대 지식과 경험을 받아들이고 보존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만큼 사는 거야. 북한을 보라고. 친일파 청산한답시고 일본인들에게 배운 근대 지식과 단절한 탓에 저 지경이 됐잖아. 친일파를 욕할 게 아니라 오히려 감사해야 해. 그런데 역사학계는 뭐하는 거야? 사람 죽이고 사회 혼란시킨 사람들만 추켜세우잖아? 우리 근현대사 교육은 근본적으로 잘못 됐어. 독립운동가는 아주 소수였는데도 최익현, 안중근, 안창호, 김구 같은 사람들 이야기만 잔뜩 써놓고, 실질적으로 역사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은 친일파로 몰고 말이야. 근현대사 교과서를 경제사 중심으로 다시 써야 해. 그래야 우리나라 사람들도 편협한 민족의식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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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자유민주주의로 위장한 파시스트 전체주의
1986년 7월 16일, 인천지검 특수부장 김수장 검사는 이른바 ‘부천서 성고문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권(인숙) 양의 성모욕 주장은 운동권 세력이 상습적으로 벌이고 있는 의식화 투쟁의 일환이며, 이번 사건은 폭행 사실을 성모욕 행위로 날조 왜곡함으로써 자신의 구명과 아울러 수사기관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반체제 투쟁을 사회 일반으로 확산, 공권력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빚어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같은 날, 이 사건 관련 <공안당국 분석자료>가 각 언론사에 배포되었다. “좌경 의식화된 핵심 문제 학생들은 그들 스스로의 의식화 과정과 조직 활동, 투쟁 과정에서 상호 연대의식 고취, 일체감 조장 및 조직 이탈 방지 등을 위해서 ‘성(性)’을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의식화된 문제 남녀 학생 간에 ‘성’을 공유함으로써 사회의 규범과 인간의 윤리 파괴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들 좌경 의식화 세력은 ‘성’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의식도 내던져버림으로써 투쟁과 혁명을 위해서는 어떤 가치도 희생시킬 수 있다는 노선을 걷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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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염치(廉恥) 없는 정치
1999년 4월, 얼마 전 서거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한했다. 그는 우리 정부의 공식 환영식에 참석한 뒤 서울 인사동을 방문했으며, 자신의 73회 생일날에는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가 조촐한 잔칫상을 받았다. 여왕은 인사동에서 필방(筆房), 도자기점, 한복점 등을 방문했고, 당시 서울시장은 그에게 우리 전통 기법으로 만든 노리개와 쟁반을 선물했다. 여왕이 자기 돈 내고 산 물건은 없었다. 그는 한국의 ‘역사와 전통’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알려진 장소들을 방문함으로써, 거꾸로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나라’라는 영국의 이미지를 한국인들에게 판매했다. 여왕은 한국의 최상류층이 이용하는 ‘명품 판매장’은 방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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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추어리
강만길의 시대와 지금
며칠 전 작고하신 역사학자 강만길 선생은 조선 후기 상공업사 부문에서 내재적 발전론을 뒷받침하는 등 한국 근현대사 전반에 걸쳐 뛰어난 업적을 많이 남겼지만, 그의 대표작은 뭐니뭐니 해도 1978년에 출간된 사론집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이다.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일제강점기 ‘민족사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자기 시대의 역사학이 사관(史觀)과 방법론 양면에서 지향해야 할 바는 ‘분단 극복’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제강점기 ‘관변(官邊) 역사학’은 식민지 통치권력의 한민족에 대한 강권적 지배와 수탈을 역사적으로 합리화·정당화하기 위한 ‘식민사학’이었으니, 이에 대한 안티테제로 정립된 것이 ‘민족사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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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한국 언론 편파성의 기원(起源)
검찰에게 압수수색 당하는 집 앞에 늘어서서 음식점 배달원을 붙잡고 “짜장을 먹었나요, 짬뽕을 먹었나요, 아니면 찌개류를 먹었나요?”라고 묻던 기자들이 있었다. 검찰 직원들의 점심 메뉴가 ‘국민의 알 권리’와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 나름의 이런 중요도 판별 원칙을 다른 장면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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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도청당하고도 항의 한 마디 못하는 대통령과 정부 여당
1959년, 이승만 정부는 경기도청 남쪽, 당시 반공연맹회관에 있었는데 현재 대한민국 역사박물관과 미국 대사관이 있는 자리에 새 정부종합청사를 짓기로 결정하고 미국 건축회사와 일단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 결국 미국 대외원조처(Unites States Operation Mission, USOM)의 지원을 받기로 결정했다. 미국 대외원조처는 얼마 후 국제개발처(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로 개편되었는데, 한국 정부에 건설 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건물 한 채를 자기들이 사용하기로 했다. 공사는 1960년 2월에 착공되어 4·19와 5·16을 거친 뒤인 1961년 9월에 준공되었다. 이 두 건물이 완공된 뒤 경복궁 쪽 건물은 경제기획원 청사로, 남쪽 건물은 USAID 청사로 사용되다가 1970년 12월, 슬그머니 미국 대사관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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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일본 전범기업에 준 면죄부와 대한민국 헌법정신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제헌헌법 전문 앞 부분이다. 제헌헌법 이후 현행 제6공화국 헌법에 이르기까지 ‘삼일운동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대목은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았으며, ‘정의 인도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한다’는 대목은 유신헌법에서만 빠졌을 뿐이다. ‘삼일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는 것은 ‘우리 대한국민’이 나라를 운영하고 세계와 교류하는 헌법적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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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조국 유죄 판결의 또다른 의미
지난 2월 3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재판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마성영 김정곤 장용범 부장판사)는 검찰이 기소한 일부 혐의가 무죄라고 판단하면서도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유죄로 판단한 사항은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에 대한 감찰무마 혐의와 자녀 입시 또는 학업 비리, 딸이 받은 장학금이 사실상의 뇌물이라는 혐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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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공동체 파괴와 ‘자유민주주의’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온가족의 생활이 그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또는 번갈아 환자를 돌보며, 환자가 하던 일을 분담해서 처리한다. 음식도 환자의 회복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선택하며, 가족들끼리 대화를 나눌 때에도 환자의 마음을 상하게 할 만한 이야기는 전하지 않는다. 평소 가정 내 권력관계가 어떠했든, 환자는 가족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된다. 아픈 사람이 회복된 뒤에야, 가정은 ‘평온한 일상’을 되찾는다. 이런 게 보통 가족의 생활수칙이다. 아픈 구성원을 방치하고 소외시키거나 멸시하는 가족이 가족답게 유지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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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사과는커녕 반성조차 않는 사람들
“반성의 기미가 없다.” 검찰이 중형을 구형할 때, 또는 판사가 중형을 선고할 때 종종 하는 말이다. 거꾸로 그들은 “피고인이 깊이 반성하는 점을 참작하여...”라고 말하기도 한다. 반성은 한 인간이 자기 내면을 성찰하는 일이라서, 남이 그 진정성 여부를 판정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반성하는지 아니면 반성하는 척만 하는지 남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한국의 법조인들은 당사자의 ‘반성’ 여부에 상당한 비중을 두어 기소하고 판결한다. 그렇다보니 반성하는 척하는 사람들은 가벼운 형을 받는 반면, 끝까지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사람들은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이유로 중형을 받는 일이 늘 되풀이된다. 정말 죄가 없어서 끝까지 항변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무거운 처벌을 받는 아이러니가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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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해괴한 애도, 희한한 조문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사례(四禮)는 본디 사생활 공간에서 가족 단위로 치르는 의례다. 그래서 이를 ‘가례(家禮)’라고도 했다. 옛날에는 역병이나 전쟁, 자연재해 등으로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는 일이 생겨도 장례는 각 집에서 따로따로 치렀다. 조문(弔問) 또는 문상(問喪)이란 가족을 잃은 집, 즉 상가(喪家)에 방문하여 망자(亡者)가 죽은 이유를 묻고 유족을 위로하는 행위였다. 상가는 병원 영안실이나 공사립 장례식장이 아니라 망자가 살던 ‘집’이었다. 한 마을에서 거의 동시에 여럿이 사망하는 일이 생기면, 여러 집이 동시에 상가가 되었다. 망자들의 위패를 한 집에 모아놓고 ‘합동장례’를 치르는 법은 없었다. 다만 전사(戰死)한 장병들이나 아사(餓死)한 백성들의 위패를 한 곳에 모아 놓고 치제(致祭)하는 일은 더러 있었다. 이를 ‘위제(慰祭)’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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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식민사관과 능력지상주의
“조선 왕조는 중기 이후 사화(士禍), 당쟁(黨爭) 등의 내분을 거듭하면서 정체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고,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위기를 맞이해서도 청국(淸國)에 기대어 잔명(殘命)을 보존하려는 면모를 보였을 뿐이다. 일본이 청국 세력을 몰아내고 조선을 독립시켜주는 한편으로 선의(善意)에서 우러나온 충고와 조력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그를 거부하고 다시 러시아 세력을 끌어들이는 등 사대주의적 구태(舊態)를 답습했다. 비정(秕政)은 계속되었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으며, 러시아의 야욕은 갈수록 노골화하여 결국 일본은 전쟁을 통해 동양평화의 항구적 기틀을 다지는 수단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후에도 일본은 조선이 독립의 내실을 다질 수 있도록 힘써 도왔으나, 조선은 오히려 헤이그 밀사 사건이나 안중근의 흉행(兇行) 등으로 일본의 선의를 배신하고 동양 전체의 화근(禍根)이 되었으니, 일본 천황은 마침내 조선인이 일본인과 함께 문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병합의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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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사실과 진실, 저질과 악질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미셸 푸코는 ‘지식이란 주체와 타자(他者)의 분리 및 양자 사이의 권력 관계를 반영하는 담론으로서, 핵심 문제는 그 진실성이 아니라 어떤 담론을 진실로 받아들이게끔 하는 사회적 공모관계’라고 설파했다. 지식은 ‘알려는 의지’의 소산이기 때문에, 지식을 탐구하고 공유하는 자들의 사적 욕망과 환상, 목적의식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의 역사가 헤이든 화이트는 “역사 서술이란 역사적 진리를 발견, 정리하는 작업이 아니라 어떤 사실에 관한 기술을 역사적 진리라고 믿게 만드는 서사 구조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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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무오류의 군주와 기군망상죄
지난 5월,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재자이자 부정축재자였던 마르코스와 이멜다 부부의 아들이 당선됐다. 국내 언론사들은 이 사건에 대해 “독재자의 아들‘이 당선됐다며 필리핀 국민들이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는 투로 보도했다. 마르코스 2세 대통령의 당선 책임을 그의 상대 후보에게 돌린 언론사는 없었다. 그러나 막상 한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와 관련해서는 야당이 된 민주당이나 그 후보였던 이재명의 책임이 크다는 식으로 보도한다. 며칠 전 지난 대선 때 민주당 후보였던 이재명 의원은 ‘저소득 저학력층 중에 국민의힘 지지자가 많다’고 말했다가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정의당의 비대위원장은 “시민과 언론 탓에 나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민주 정치의 지도자가 가져야 할 인식이 아니다”라고 논평했다. 이 논평의 전제는 ‘다수 시민의 결정은 언제나 옳다’이다. 그런데 필리핀 국민은 어리석고 한국 국민은 현명하다는 것이 국제적으로 공인될 수 있는 명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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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검찰국가의 법치
내가 어렸을 적에는 서울 변두리에도 여기저기에 공터가 있었다. 평시에는 아이들의 놀이터였지만, 가끔은 떠돌이 약장수패가 공연장으로 사용하거나 곡마단이 대형 천막을 치기도 했다. 그런 날은 온 동네 축제일이었다. 무료든 유료든 동네 사람 대다수가 공터로 몰려가 공연을 구경했다. 공연에서 빠지지 않은 게 세칭 ‘불쇼’였다. 웃통 벗은 남자가 불 붙은 몽둥이를 빙빙 돌리기도 하고 입안에 넣었다가 빼기도 했다. 특히 용가리처럼 입으로 불을 뿜는 묘기를 부릴 때면, 좌중에 탄성이 일었다. 자기 아이가 혹시라도 불에 데일까봐 등 뒤로 자리를 옮기게 하는 부모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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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기묘한 이야기, 기묘한 세상
기묘한 이야기. 근래 시즌 4가 공개되어 다시금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제목이다. 이 드라마 속 이야기는 두 개의 세계에 대한 상상에 기초해서 전개된다. 하나는 비범하거나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을 영위하는 ‘현실 세계’고, 다른 하나는 현실의 공간 요소들이 뒤집어져 있는 ‘뒤집힌 세계’다. 건물, 자동차, 자전거, 기타 소품 등 현실 세계에 있는 ‘물건’들은 뒤집힌 세계에도 그대로 있다. 다만 뒤집힌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다. 뒤집힌 세계에서는 하나의 거대한 괴물이 수많은 괴물을 조종한다. ‘현실 세계’와 ‘뒤집힌 세계’ 사이에는 몇 개의 문이 있고, 괴물들은 이 문들을 통해 현실 세계로 나와 인간을 납치하곤 한다. 뒤집힌 세계에 들어갔거나 끌려간 인간은 괴물들의 에너지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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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제왕무치(帝王無恥)와 소시오패스
고대 로마의 황제 네로는 대화재 이후 이반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수많은 기독교인을 학살했다. 그는 십자가에 매달기, 산 채로 불태우기, 굶주린 사자 앞에 세우기 등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잔인한 방법을 총동원했다. 그는 자기 행위를 비판한 혐의가 있는 사람들마저도 참혹하게 죽였다. 품행이 나쁘다고 소문난 포파에아라는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자기 부인 옥타비아에게 누명을 씌워 죽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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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경무대 총독 꽌저와 용산 총독 관저
몇 해 전 한양도성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작업을 추진하면서, 연구팀은 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의 하나로 ‘현재에도 방어시설로 사용되는 중세 성벽’이라는 점을 들었다.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이코모스(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관계자들도 이 점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와대 뒤쪽은 백악과 성벽, 곳곳에 설치된 초소들이 ‘철통방어’를 한다. 시내에서 청와대에 접근하는 통로도 적다. 일본이 중일전쟁을 도발하던 무렵, 육군 대장 출신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는 백악 남쪽 기슭 경무대(景武臺)에 새 관저를 지으라고 지시했다. 전쟁이 한반도에까지 파급될 경우에 대비해 ‘전시 최고 사령부’를 가장 안전한 곳에 두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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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나는 왜 ‘부끄러운 서울대’ 1만인에 서명했나
나는 5·18 민주화운동 이듬해인 1981년 서울대에 입학했다. 합격 사실을 알고난 뒤 몇 달간은 목표를 이뤘다는 성취감, 치열한 경쟁에서 이겼다는 우쭐함,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감 등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관한 소문은 들었으나, 과장된 헛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입학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다. 점심시간, 학생식당으로 들어가려는데 2층 난간 위에서 어떤 학생이 유인물을 뿌린 뒤 뭐라고 외치다가 경찰에게 잡혀가는 모습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어른들에게 “대학 가면 데모하지 마라. 신세 망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탓에, 데모하는 학생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그는 왜 스스로 ‘신세 망칠’ 짓을 한 걸까? 그는 왜 제적 당하고 감옥 간다는 걸 잘 알면서도 저렇게 무모한 짓을 한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