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을 능욕하는 궁극 목표는 무엇일까
[전우용이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 그들에겐 일본군에 항거한 독립운동가는 ‘위선자’이거나 ‘정신 이상자’ 였고, 자기 이익을 위해 동포에게 총을 쏜 백선엽 같은 사람이 ‘모범’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하는 게 있다
김구가 한 게 뭐가 있어?
1990년대 중반의 어느날, 소규모 학술회의 뒷풀이 자리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사학자로 잘 알려졌던 사람이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따지고 보면 김구가 해놓은 게 뭐가 있어? 이봉창 윤봉길 같은 젊은이들 부추겨서 테러한 게 독립에 도움이 됐나? 아까운 목숨만 잃게 만들었지. 그랬다고 일본의 통치 방식이 달라지기나 했나? 긴 안목에서 보면 김성수가 한 일이 훨씬 많지. 학교도 세우고 공장도 짓고 언론사도 만들었잖아. 우리 역사 발전에 실질적 도움이 된 건 이런 것들이야. 김성수 보고 친일파라고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일본에서 근대 지식과 경험을 받아들이고 보존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만큼 사는 거야. 북한을 보라고. 친일파 청산한답시고 일본인들에게 배운 근대 지식과 단절한 탓에 저 지경이 됐잖아. 친일파를 욕할 게 아니라 오히려 감사해야 해. 그런데 역사학계는 뭐하는 거야? 사람 죽이고 사회 혼란시킨 사람들만 추켜세우잖아? 우리 근현대사 교육은 근본적으로 잘못 됐어. 독립운동가는 아주 소수였는데도 최익현, 안중근, 안창호, 김구 같은 사람들 이야기만 잔뜩 써놓고, 실질적으로 역사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은 친일파로 몰고 말이야. 근현대사 교과서를 경제사 중심으로 다시 써야 해. 그래야 우리나라 사람들도 편협한 민족의식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어.”
나보다 한참 선배였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는 속으로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자가 기계적·속물적 유물론자로 전향했구나”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신자유주의로 거듭나는 반공주의
1991년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는 ‘이데올로기의 대지진’으로 이어졌다. 학계에서든 사회운동권에서든, 마르크스주의적 전망을 가졌던 사람들 상당수는 자기 세계관과 역사관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실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국제무역에서 고립된 북한이 겪은 경제적 참상은 이런 생각을 더욱 부추겼다. 사상적 전향을 결심한 사람들은 당대의 기득권 세력에 접근했다.
그런데 기득권 세력에게는 이념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반공주의’가 그들이 내세우는 유일한 이념이었는데, 공산주의가 망한 마당에 그 단순한 안티테제인 ‘반공주의’가 앞으로도 계속 한국 사회를 지배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전향한 사람들은 무지성적 ‘반공주의’와는 다른, 과학적 이론에 입각한 새로운 이념을 창조하고 확산하는 것이 자기들에게 부여된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찾아낸 이론은 당대 선진 자본주의 세계를 휩쓸고 있던 ‘신자유주의’였는데, 말이 ‘신자유주의’이지 본질에서는 19세기 자유주의와 다르지 않았다.
아담 스미스 경제학을 중핵으로 한 19세기 자유주의는 ①모든 것은 완전히 자연의 필연적인 힘에 귀속되어야 하며 도덕법칙과 경제법칙 사이에는 어떠한 상호관계도 없다. ②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은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된다. ③경제 주체들의 상호관계를 규정하는 최고, 유일의 법칙은 무제한의 자유경쟁이다. ④국가권력이 어떤 형태로든 경제활동에 개입하는 일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자연의 필연적인 힘’은 곧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그 이전까지 인간 행위와 윤리를 지배했던 ‘신의 섭리’를 완전히 대체했다. 다만 ‘자유시장’에서 ‘평등하게’ 거래하는 인간은 ‘신의 섭리를 의식하는 선(善)한 인간’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에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인간’이었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이 모범으로 여겨온 ‘인간상’을 극적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인류중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시장형 인간’
인간은 누구나 ‘다면적’이다. “멀쩡한 사람도 예비군복 입혀 놓으면 양아치가 된다”는 우스개가 있듯이, 시장에서 표현되는 인간상과 다른 공공장소에서 표현되는 인간상은 다르다. 시장에서 콩나물값 100원을 깎으려고 가난에 찌들어 보이는 상인과 승강이하는 ‘인간’이, 연말에는 불우이웃을 위해 수백 만원을 기부하기도 한다. 평생 시장바닥에서 행인들과 악다구니를 쓰며 모은 돈을 말년에 대학이나 고아원에 전액 희사하는 사람도 있다. ‘시장에서 보이는 인간상’이 인간상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시장에서 보이는 인간상에만 주목하는 사람들은, ‘시장형 인간’, 즉 ‘이기심을 최대로 표현하는 인간’을 인간의 표준이자 모범으로 설정한다. 이것이 ‘시장주의’다.
마르크스 유물론에서 속물적 유물론으로 전향한 사람들은, ‘반공주의’를 ‘시장주의’로 보완하여 새로운 이념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주장했다. 이들은 ‘반공주의’뿐이었던 구(舊) 우파, 즉 올드 라이트와는 다른 ‘신(新) 우파’, 뉴라이트를 제창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담론 세계에 본격 등장한 것은 2004년의 일이었다. 물론 ‘시장주의’는 본래 ‘반공주의’와 짝으로서 둘의 결합이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국가가 모든 경제영역에 개입했던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에는 표면에 내세우기 어려운 이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계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진전이 둘의 재결합을 촉진했다.
그런데 19세기 자유주의가 폐기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세계대공황과 뒤이은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사익 지상주의’가 개인 차원에서나 기업 차원에서나 국가 차원에서나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빚을 수 있는지, 인류가 함께 깨달았기 때문이다. 모든 시장 참여자가 자유롭게 경쟁하는 ‘완전히 공정한 시장’은 환상일 뿐이고, 경쟁의 가장 궁극적인 형태는 전쟁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시장은 강자(强者)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공간이었고, 사람조차 ‘이익 창출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이념은 ‘열등’한 존재로 지목된 인간 집단에 대한 혐오와 대량학살로 이어졌다. ‘도덕법칙’에서 ‘해방’된 인간은 인류가 그때까지 상상해 온 어떤 악마보다도 잔인하고 악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는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시장 개입, 강자들이 가진 ‘경쟁력’을 제어할 수 있는 약자들의 또 다른 ‘경쟁력’이 필요하다는 데에 합의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는 이 합의를 무효로 돌리려는 사조(思潮)였다.
독립운동가를 ‘위선자’로 찍어야하는 이들
같은 조건에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 사람이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을 봤을 때, ①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어 구하려는 사람이 있고, ②자기가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구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으며, ③발만 동동 구르면서 누가 와서 저 사람 좀 구해줘요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다. 물론 ④못 본 척하는 사람도 있고, 심하면 ⑤“헤엄도 못 치면서 뭐하러 물에 들어갔다가 저런 일을 당하나”라며 오히려 위기에 처한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을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라고 가정하면, ①이 적극적 독립운동가, ②가 소극적 독립운동가, 또는 독립운동 지원 세력, ③이 보통사람들, ④가 수동적 친일파, ⑤가 적극적 친일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을 구하려 들지는 않는다. 그런 사람이 다수인 시대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껏 인류는 ‘이타심’에 따라 행동한 사람들을 본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배워왔다. 어떤 공동체든 그런 사람들을 ‘모범’으로 삼아야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회는 결코 공동체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뉴라이트가 상정하는 인간의 ‘모범’은 다섯 번째 인간형이다. ‘시장형 인간’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이 목숨까지 거는 행위’는 미친 짓이다. 그들에게 자기 가족들까지 희생시키면서 막강한 일본군에 맞서 싸운 홍범도 같은 독립운동가들은 ‘위선자’이거나 잘못된 이념에 정신을 내어준 ‘정신 이상자’다. 그들에게는 자기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국인이면서 일본군대에 들어가 동포를 향해 총을 쏜 백선엽 같은 사람이 ‘모범’이다. 독립운동가, 민주화운동가, 인권운동가들에게 ‘공산전체주의자’라는 낙인을 찍고, 자기 이익만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기까지 한 자들을 ‘영웅’으로 추켜 세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 “친일파는 열심히 산 사람들이라 후손도 부자고 독립운동가는 대충 산 사람들이라 후손도 가난하다”라는 어떤 시사만화가의 말이다.
시장주의의 말로(末路)는 ‘지옥’
‘시장주의자’들은 물질 생산과 소비의 증가, 시장의 확대가 곧 역사 발전이며, 역사 발전은 ‘합리적 이기주의자’들이 이끈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이 인류가 수천 수만 년간 구축해 온 ‘인간에 대한 상식’과 배치된다고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인류의 ‘시장 접촉면’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넓어졌다. 100년 전 사람들 절대다수는 기껏 닷새에 한 번 정도 ‘시장생활’을 경험했다. 하지만 오늘날 시장은 개개인의 침실에까지 침투했다. TV홈쇼핑을 보면서, PC나 휴대전화기로 인터넷 최저가 검색을 하면서, 현대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시장형 인간’이 된다.
모든 인간관계를 ‘거래관계’로 이해하고 삶의 목적을 ‘사익 극대화’에 두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뉴라이트에게는 이런 ‘극단적 이기주의자’가 늘어나는 것이 역사 발전이다. 이런 이념에 사로잡히면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나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들 앞에서 ‘시체팔이’ 운운하게 된다. 이런 자들의 눈에는 시체도 ‘상품’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하는 게 있다. 미래에 시장이 민족공동체와 국가공동체를 해체 또는 약화시키고 ‘인류’를 통합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 인류는 결코 ‘공동체’가 될 수 없으리라는 점이다. 극단적 이기주의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 지옥(地獄)이다. 눈 앞에 펼쳐질 지옥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자기와 자기 자식의 인간성이 ‘시장형 인간’으로 고착되는 걸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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