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길의 시대와 지금

[고 강만길 선생을 추모하며]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에서 “분단극복” 역설 남한은 분단下 발전· 성장과 민주주의 이뤄 일각서 ‘분단의 현상유지’ 바라는 세력있어 윤석열, 전쟁 위기상황이 좋다는 것인가

1988년 10월7일 통일문제금요강좌에 나온 강만길 교수. 사진= 연합뉴스
1988년 10월7일 통일문제금요강좌에 나온 강만길 교수. 사진= 연합뉴스

며칠 전 작고하신 역사학자 강만길 선생은 조선 후기 상공업사 부문에서 내재적 발전론을 뒷받침하는 등 한국 근현대사 전반에 걸쳐 뛰어난 업적을 많이 남겼지만, 그의 대표작은 뭐니뭐니 해도 1978년에 출간된 사론집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이다.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일제강점기 ‘민족사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자기 시대의 역사학이 사관(史觀)과 방법론 양면에서 지향해야 할 바는 ‘분단 극복’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제강점기 ‘관변(官邊) 역사학’은 식민지 통치권력의 한민족에 대한 강권적 지배와 수탈을 역사적으로 합리화·정당화하기 위한 ‘식민사학’이었으니, 이에 대한 안티테제로 정립된 것이 ‘민족사학’이었다.

왜 ‘분단’ 이라는 역사 인식인가

E.H.Carr가 설파한 바와 같이, 역사란 ‘미래를 전망하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대화이다. 일제강점기 민족의 해방과 독립이라는 ‘미래’를 전망하면서 들여다 보는 과거와 일제의 식민지배라는 ‘현실’을 긍정하면서 들여다 보는 과거가 같을 수는 없었다. ‘식민사학’이 우리 민족을 끝모를 자괴감과 패배의식으로 몰아넣는 사학이었던 반면, ‘민족사학’은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사학이었다. 방법론의 세련성이나 고증의 엄밀성 등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였다. 근래 한국 학계 일각에는 일제강점기의 ‘민족사학’을 두고 ‘정치의식을 앞세운 비과학적 역사학’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탈정치성’을 내세우면서 현실을 무조건 긍정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이다. 역사학은 공동체의 집단 기억을 다루는 학문이다. 불의하고 무도한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폭력으로 지배하는 식민지 현실에서, 그 현실 극복의 전망 없이 과거를 회상하면, 언제나 그 ‘현실’을 정당화·합리화하는 견해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우리 민족을 식민지 노예 상태에 묶어 두려 한 관변 ‘식민사학’은 물론, ‘탈정치적’ 역사를 표방하며 미래를 전망하지 않고 ‘과거 그 자체’에만 매몰되었던 ‘실증사학’도 반민족적이었다.

굳이 선생의 견해가 아니더라도, 오늘날 한국인 대다수는 우리의 집단 기억을 왜곡한 것이 ‘식민사학’이며, 그에 맞서 우리의 ‘민족적 자존감’을 지킨 것이 ‘민족사학’이었다는 사실은 안다. 선생은 ‘민족사학’과 ‘식민사학’에 대한 평가 기준을 ‘자기 시대’ 역사 인식에 대입했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과제가 해방과 독립이었다면, 이 시대 우리 민족의 과제는 ‘분단 극복’, 즉 통일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선생은 우리 민족이 처한 시대 상황 전체를 규정하는 핵심 문제가 ‘분단’이라고 천명했다. 사실 이런 견해를 공공연히 주장하는 데에 필요했던 것은 식견보다 용기였다.

당대의 집권세력은 1인 영구 집권 체제가 ‘한국적 민주주의’로 호도되는 황당한 현실, 고문과 사법살인 등 인권유린이 거리낌없이 자행되는 참혹한 현실, 노동자들이 하루 18시간씩 혹사당하면서도 항변조차 할 수 없는 숨막히는 현실을 만들어 놓고선, ‘북한 공산집단’과 대결해 이기려면 이 모든 불의와 부조리를 참아야 한다고 윽박질렀다. 물론 ‘분단상황’을 이용해 무도한 지배를 정당화한 것은 북한 권력집단도 마찬가지였다. 당대 한반도 남북 모두를 지배했던 ‘총체적 불의’가 분단에 말미암은 것임은 분명했다. 이 불의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분단 극복’ 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쟁 없는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위험했다. 남북 당국 스스로 7.4 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천명해 놓고도, 민간인들이 ‘평화통일’이나 ‘민족대단결’을 운위하는 것은 불온시했다. 역대 독재정권은 통일을 향한 민족의 꿈을 독재 정당화의 명분으로 삼았다. 그들에게는 분단이 최적의 상황이었다. 독재정치로 국민을 괴롭히면서도, 국민이 괴로운 건 전부 ‘북한 공산집단’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통일은 실현될 수 없는 ‘민족의 소원’에 그쳐야 했다. 그들은 분단 덕에 총력안보니 총화단결이니 국론통일이니 하는 구호 아래 국민의 인권을 마음껏 짓밟을 수 있었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4년, 선생은 ‘평화통일 방안의 하나로 연방제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당대의 언론들은 선생을 포함해 ‘고려연방제를 지지하는 지식인’들을 맹비난했다. 1986년에는 국회에서 “우리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면책특권을 가진 국회의원 유성환이 구속되기도 했다. 남북한 정권 모두에게 통일은 ‘적대적 공생관계’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정권 밖에서 통일을 꿈꾸고 통일 방안을 구상하며 통일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려는 사람들은 박해받았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과 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장(오른쪽)이 청와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2005년 노무현 대통령과 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장(오른쪽)이 청와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분단 체제는 극복되었나

선생이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을 출간한 뒤로 45년이 지났다. 우리는 일제강점 36년보다도 훨씬 긴 78년 동안 ‘분단시대’를 살고 있다. 당연히 ‘분단시대’가 만들어낸 삶과 의식의 기형성과 불구성도 여전하다. 혁명 사상이자 체제 이념으로서의 공산주의는 1990년 무렵 사실상 소멸했다. ‘북한 공산집단’은 외국 원조조차 받지 못하는 국제적 외톨이가 되었다. 반면 남한 사회는 빠르게 발전했다. 1987년 민주항쟁으로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룩했고, 1978년 1430달러이던 1인당 국민소득은 2022년 3만2000달러로 늘어났다. 살인적이던 노동시간은 주 최대 52시간으로 줄었고,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2000원 선으로 늘었다. 분단된 상태에서나마 경제규모는 세계 10위로까지 올라섰다. 2022년, 유엔 통계국은 대한민국을 ‘선진국 그룹’으로 분류했다. 반면 북한의 전체 경제규모는 광주광역시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북한이 핵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그것으로 한반도 전역을 파괴는 할지언정 통일할 수는 없다. 분명 김정은 본인도 ‘적화통일’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1978년 강만길 선생은 남북한 모두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反) 민주, 반(反) 민생, 반(反) 인간의 상황이 ‘분단체제’ 때문이라고 판단했고, 그 분단체제를 극복하여 통일을 이루는 것만이 민족 구성원 전체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길이라고 용기 있게 설파했다. 그런데 지난 45년간 우리는 분단 상황에서도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인권이 신장되며 노동자의 삶이 개선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목도했다. 그래서인지, 통일을 향한 염원은 시들해졌고 우리 시대를 ‘분단시대’로 인식하는 관점도 급속히 퇴조했다. 지금은 통일보다 ‘분단의 현상 유지’를 바라는 사람이 더 많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종종 나온다. 그런데 정말 이대로 좋은가? 남한의 민주주의는 진정 굳건한 토대 위에 서 있는가? 한국인들은 진정 ‘선진국민’다운 인간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가? 무엇보다도 우리는 안전한가?

휴전체제를 항구화하겠다는 것인가

과거에나 지금에나 분단체제는 우리의 생존과 민주주의의 기반을 언제든 무너뜨릴 수 있는 체제이다. 지금 윤석열 정권은 이 ‘사실’을 아주 명료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이 정권은 이미 소멸한 공산주의의 망령과 싸우는 것이 ‘애국’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전임 대통령을 ‘간첩’이라고까지 부르면서 분단체제가 만들어낸 ‘반공지상주의’를 다시 소환한다. 자국민 150여 명이 길에서 참사를 당해도 노동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분신해도 눈 하나 깜짝 않는 잔인성, 방사능 오염 폐수를 바다에 방류하려는 일본 정부 편에 서서 우려하는 자국민을 억압하는 반(反) 민족성, 거대 공기업의 손실을 줄이겠다며 생활 물가 인상을 조장하는 반(反) 민생성,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선제적으로 ‘적대의식’을 표출하여 국가 경제에 타격을 가하는 자해적 반(反) 국제성이 용인되는 것은 분단체제에 포획된 시민의식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28일, 자유총연맹 창립 기념식에 참석하여 “반국가세력들이 종전선언을 합창”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정권에서 북미간 종전선언을 주선하려 한 것은, 이를 통해 남북간 안정적인 평화 체제를 유지하고, 그를 발판으로 통일에의 전망을 세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윤 대통령이 지난 정권의 종전선언 추진을 비난하는 것은 북한을 무력 공격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휴전체제를 항구화하겠다는 의사 표현이다. 언제 전쟁이 재발할 지 모르는 상황을 지속하는 것이 평화체제로 이행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인가? 한편으로는 전쟁을 걱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초고층 빌딩들을 지어대는 이 코미디 같은 상황이, 불구적이고 기형적인 의식의 소산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강만길 선생은 세상을 떠났지만, ‘분단시대’의 역사인식과 현실인식은 여전하다. 분단 상황을 핑계삼아 반(反) 민족, 반(反) 민주, 반(反) 민생, 반(反) 인간의 정치를 하면서도 그를 ‘자유민주주의 수호’로 포장했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대의 담론 전략도 여전히 유효하다. ‘분단시대’의 기형적 역사 인식과 현실 인식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요즘 사람들도 ‘식민사학’에 찌들어 살았던 일제강점기 선조들과 다를 바 없다. 강만길 선생을 떠나 보내면서 한 번 생각해 보자. 분단 상황과 전쟁 공포의 일상화가 ‘자연스러운’ 것인지를. 그것이 자연스럽지 않다면, 그 상황에서 만들어진 지금의 현실인식과 역사인식도 자연스럽지 않다.

글쓴이

전우용 역사학자

필자인 전우용 교수는 우리 시대의 역사의식을 바로잡기 위해 정치 현안에 대해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는 역사학자다. <우리 역사는 깊다>, <내 안의 역사>, <민족의 영웅 안중근> 등의 저서를 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