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커녕 반성조차 않는 사람들
[전우용의 역사에서 얻는 교훈] 법에서 ‘반성’은 얼마나 큰 면죄의 절차인가 법관·검사들, 숱한 오류에 반성한 적 있나 남을 억울하게 만들고는 죄책감조차 안느껴
“반성의 기미가 없다.” 검찰이 중형을 구형할 때, 또는 판사가 중형을 선고할 때 종종 하는 말이다. 거꾸로 그들은 “피고인이 깊이 반성하는 점을 참작하여...”라고 말하기도 한다. 반성은 한 인간이 자기 내면을 성찰하는 일이라서, 남이 그 진정성 여부를 판정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반성하는지 아니면 반성하는 척만 하는지 남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한국의 법조인들은 당사자의 ‘반성’ 여부에 상당한 비중을 두어 기소하고 판결한다. 그렇다보니 반성하는 척하는 사람들은 가벼운 형을 받는 반면, 끝까지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사람들은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이유로 중형을 받는 일이 늘 되풀이된다. 정말 죄가 없어서 끝까지 항변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무거운 처벌을 받는 아이러니가 생기는 것이다.
법의 이름으로 저지른 만행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내란예비음모, 내란선동 등의 혐의로 기소된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등 36명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2심대로 형을 확정했다. 18시간 후, 이들 중 8명이 사형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른바 ‘인혁당 사법살인’이다. 법원의 이 판결 때문에 유족들까지 ‘간첩의 가족’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힌 채 형극(荊棘)의 세월을 살아야 했다. 30년 뒤인 2005년 12월 27일 서울중앙지법은 이 사건을 재심하기로 결정했고, 2008년 1월 23일 대법원은 ‘사법살인 희생자’들이 ‘무죄’였다고 판결했다. 2021년 7월, 국정원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사과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법원은 아직까지 공식 사과하지 않았다. 당시 피해자들을 체포, 구금, 고문했던 중앙정보부 직원들, 그들을 기소했던 검사들, 그들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던 1심, 2심, 최종심 판사들은 아무도 직접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는커명 반성의 뜻조차 표시하지 않았다. 당시 대법원 판사 중 한 명이자 유일하게 소수의견을 냈던 이일규는 2007년 경향신문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과거는 과거로 놔두자’며 법원 차원에서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어쩌면 ‘군사 독재정권이 시킨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인지도 모른다.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군사독재’가 형식상 종식된 뒤에도, 나아가 1992년 이른바 ‘문민화’ 이후에도 검찰과 법원이 억울한 피해자를 만드는 일은 계속되었다. 1991년 4월 26일, 명지대 학내 시위를 진압하던 경찰은 1학년 신입생 강경대를 쇠파이프와 곤봉으로 때려 죽였다. 이는 4년 전 박종철의 피와 수많은 시민의 눈물로 일군 민주주의가 다시 죽어간다는 신호와 같았다. 이틀 후인 4월 29일에는 전남대학생 박승회가, 5월 1일에는 안동대학생 김영균이, 5월 3일에는 경원대학생 천세용이 각각 민주주의를 살리자며 자기 몸에 불을 질렀다.
젊은이들의 자결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서강대 총장 박홍은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나온 직후, 경찰은 서강대학교 옥상에서 분신한 전국민족민주운동 연합 사회부장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필(代筆)했다는 혐의로 같은 단체 총무부장 강기훈 씨를 체포했다. 남의 유서를 대필한다는 것은 보통사람의 상상력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일이었고, 사건의 전후 맥락으로 보아 조작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당시 언론사들은 사실인 것처럼 보도했다. 검찰은 강기훈 씨를 기소했고 1, 2심 법원과 대법원은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가 끝까지 혐의를 부인한 것은 오히려 ‘반성하지 않는 파렴치’의 증거로만 간주되었다.

온갖 공작으로 죄를 창조한 검사들
2007년 12월, ‘대통령 직속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고(故) 김기설 씨의 필적이 담긴 문서를 새로 발견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및 7개 사설 필적 감정 기관에 감정을 의뢰하고, 강기훈 씨가 유서를 대필하지 않았다고 결론내렸다. 이 결론을 토대로 위원회는 법원에 이 사건의 재심을 권고했다. 강기훈 씨는 2008년 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재심 절차는 2009년 9월부터 시작되었다. 검찰은 즉시 재심이 부당하다며 항고했다. 2014년 2월 서울고법은 강기훈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나 검찰은 다시 상고했다. 대법원은 재심이 시작된 지 6년만인 2015년 5월에야 그의 무죄를 확정했다. 당시 그는 억울한 옥살이와 ‘남의 유서까지 대신 써준 극악무도한 인간’이라는 비난 속에서 암(癌)과도 싸워야 하는 상태였다. 투옥된지 23년만에 ‘무죄’라는 확인을 받기는 했지만, 그의 인생을 철저히 망가뜨린 사람들 중 단 한 사람도, 그에게 직접 사과하지 않았다. 그를 체포했던 경찰, 그를 기소했던 검사, 1, 2, 3심에서 그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던 판사들 중 그에게 사과한 사람은 없었다. 사과는커녕 변명조차 하지 않았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가 당선된지 한 달 뒤인 2013년 1월, 국정원은 탈북민 출신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가 북한 간첩 활동을 했다며 긴급 체포했다. 선거운동 기간 중 직원들의 조직적 댓글 공작이 발각되는 등 국정원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던 때라 이 역시 ‘공작’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당시의 언론사 대다수는 ‘사실’인 양 보도했다. 앞의 두 사건과는 달리 법원은 검찰의 기소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유우성 씨는 1심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은 무죄,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법과 여권법 위반은 유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계속 항소했으나 고등법원과 대법원의 판결도 같았다. 재판 과정에서 국정원이 중국 정부 발행 서류를 위조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일로 국정원 직원 몇 명이 ‘경징계’를 받았지만, 유우성 씨를 끝가지 괴롭혔던 검사들 중 그에게 미안하다는 뜻을 표시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검찰은 그의 다른 ‘혐의’를 찾아내 별건으로 기소하는 몽니를 부렸다.

2019년 9월, 이른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다시 특정되었다. 무기징역형을 받고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인 이춘재였다. 이로써 진범으로 몰려 20년 가까이 억울한 감옥 생활을 이어가던 윤성여 씨가 ‘무죄’임이 밝혀졌다. 2020년 12월, 이 사건을 ‘처리’했던 경찰, 검찰, 법원이 윤성여 씨에게 ‘조직 차원’에서 사과했다. “경찰에서의 가혹행위와 수사기관의 부실수사 및 제출된 증거의 오류를 법원이 재판과정에서 발견하지 못해 결국 잘못된 판결이 선고되었고, 그로 인해 2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옥고를 치르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을 피고인에게, 법원이 마지막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에 대하여 사법부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재심 선고공판 재판부) “피고인이 이춘재 8차 사건의 진범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히 확인됐다. 수사의 최종 책임자로서 20년이라는 오랜 기간 수감생활을 하게 된 점에 대해 피고인과 가족에게 머리 숙여 사죄한다.”(검찰) “재심 청구인을 비롯해 피해자, 가족 등 관련된 모든 분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뒤늦게나마 재수사를 통해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을 검거하고 청구인의 결백을 입증하였으나, 무고한 청년에게 살인범이라는 낙인을 찍어 20년 간의 옥살이를 겪게 하여 큰 상처를 드린 점 깊이 반성한다.”(경찰)
경찰, 검찰, 법원 모두가 사과한 것은 한국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국민 개개인의 인권의식이 확장된 때문일 수도 있고, 당시 범정부 차원의 논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윤성여 씨를 체포, 구속, 기소, 판결할 당시의 경찰관, 검사, 판사 중 그에게 ‘직접’ 사과한 사람은 없었다.
‘죄책감’조차 없이 시민을 괴롭히는 존재
대한민국 헌정사 75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사형당했거나 옥살이를 했는지 다 알 도리는 없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와 법원의 ‘재심’을 통해 ‘억울한 희생’이었음이 밝혀진 사례는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검사와 판사도 사람인 이상 실수할 수 있다. 판단착오 때문이든 확증편향 때문이든 자존심이나 체면 때문이든, 본의 아니게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진짜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수많은 오심(誤審)과 오판(誤判)이 전부 고의나 압력, 또는 청탁 때문이었다고 볼 이유는 없다. 그렇더라도 자기 잘못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끼쳤으면, 반성하고 사과해야 인간이다. 인간은 반성으로 자신을 개선하며, 사과로 타인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존재다. 반성과 사과가 없으면, 개인도 사회도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 헌정사 75년 동안, 자기 때문에 죽은 사람, 자기 때문에 인생이 파탄난 사람, 자기 때문에 가정이 무너진 사람에게 직접 사과한 검사나 판사가 있다는 ‘미담(美談)’은 들어본 적이 없다. 정말로 억울해서 끝까지 항변하는 사람들에게는 ‘반성의 기미가 없다’며 중형(重刑)을 구형하고 선고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기가 남들을 억울하게 만든 일에 대해서는 ‘사과는커녕 반성도 않는’ 관행과 문화가 너무 오래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지금 이 나라는 그런 ‘직업문화’와 ‘직업윤리’를 체질화한 사람들이 다스리고 있다. 반성할 이유도 사과할 필요도 없는 ‘죄’에 대해서는 ‘죄책감’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인간 양심의 최저선이 ‘죄책감’이다. 죄책감 없이 타인을 괴롭히는 ‘존재’들이 다스리는 세상이, ‘인간세상’일 수는 없다. 인간의 법이 무너지고 인간 세상이 망가지는 것은, 언제나 ‘인간의 도리’를 지키지 않는 자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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