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당하고도 항의 한 마디 못하는 대통령과 정부 여당
[전우용의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 미국, 이승만 정부때부터 우리 정부 도청 박정희 ‘안가’ 이용도 美도청 때문일지도 주권국이 항의조차 못해...굴욕에 가까워 혹시 NSC아닌 다른 곳 도청했을 가능성은?
미 대사관이 저 자리에 있게 된 연유
1959년, 이승만 정부는 경기도청 남쪽, 당시 반공연맹회관에 있었는데 현재 대한민국 역사박물관과 미국 대사관이 있는 자리에 새 정부종합청사를 짓기로 결정하고 미국 건축회사와 일단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 결국 미국 대외원조처(Unites States Operation Mission, USOM)의 지원을 받기로 결정했다. 미국 대외원조처는 얼마 후 국제개발처(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로 개편되었는데, 한국 정부에 건설 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건물 한 채를 자기들이 사용하기로 했다. 공사는 1960년 2월에 착공되어 4·19와 5·16을 거친 뒤인 1961년 9월에 준공되었다. 이 두 건물이 완공된 뒤 경복궁 쪽 건물은 경제기획원 청사로, 남쪽 건물은 USAID 청사로 사용되다가 1970년 12월, 슬그머니 미국 대사관으로 바뀌었다.

‘슬그머니’라고 한 것은 당시 미국대사관 이전과 관련한 행사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도 이사를 하면 ‘집들이 잔치’를 한다. 하물며 대한민국의 동맹국이자 ‘사실상의 종주국’이던 미국의 대사관이 이전을 했는데도 그 흔한 ‘축하 리셉션’ 한 번 없었다. 미국 대사관은 군사작전을 감행하듯 비밀리에 이전했고, 한국 정부도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한참 후에야 을지로에 있던 미국대사관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박정희 대통령도 신경 거슬렸던 미국의 도청
미국대사관이 비밀리에 이전한 이유는 누가 보아도 명백했다. 당시는 정부종합청사(현 정부서울청사)가 완공된 직후였다. 광화문 뒤의 중앙청과 USAID 청사 옆의 경제기획원을 합하면, 대한민국 행정부 전체가 새 미국대사관의 감시·감청 반경 안에 들어가는 셈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미국대사관 이전 직후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 특별보좌관 제도’를 새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본래 청와대는 조선총독의 관저(官邸), 즉 숙소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그 기능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도 변하지 않아 대통령은 경무대(윤보선 대통령 때 청와대로 개칭) 대통령 관저에서 중앙청까치 출퇴근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의 역할은 행정 각부와 대통령 사이의 연락을 담당하는 정도에 머물렀다.
박정희는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 한마디 한마디가 다 감시·감청당할 우려가 있는 공간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청와대 특별보좌관 제도’ 창설은 정부의 핵심 기능을 중앙청과 정부종합청사에서 청와대로 옮기려는 의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후 청와대 수석보좌관들의 권한이 각부 장관들의 권한보다 비대해지는 기형적 정치 구조가 만들어졌다. 박 대통령이 밤에 청와대 부근 안가(安家)의 술자리에서 중요한 정책사항을 결정했던 것도, 미국대사관의 감시·감청을 피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1977년에는 미국 뉴욕타임즈가 미 중앙정보국(CIA)의 청와대 도청 의혹을 보도하기도 했다.

도청 필요없는 나라 한국인데, 왜 도청했을까
그런데 미국이 한국 정부기관이나 청와대 안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도청할 이유는 별로 없었다. 미국과 한국은 ‘비대칭적 동맹관계’인데다가 전시작전권을 미군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군사 · 외교 문제에 관한 정보는 거의 공유한다. 미국은 한국 내정에 관한 기밀 정보들도 어렵지 않게 입수할 수 있다. 미국 정부 등의 장학금을 받아 미국에서 공부한 뒤 귀국하여 최고위직에 오른 사람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다. 게다가 대한민국에서 미국에 기밀정보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사람은 없다. 미국은 누구를 통해서든 원하는 정보를 쉽게 입수할 수 있다. 미국 정부에 한국은 ‘도청할 필요가 없는 나라’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도 도청을 한 것은, 미국 정보요원이나 대사가 직접 불러 묻거나 따질 수 없는 극소수 몇 사람의 말을 직접 들어보기 위해서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은 미국이 도청할 필요가 거의 없는 나라’라는 사실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 미국의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의 핵심 문제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도청’이 아닐 수도 있다. 미국 정부가 도청을 하지 않고서는 NSC 회의 내용을 알 수 없으리라고 보는 게 오히려 비합리적이다. 미국 언론은 NSC 도청 의혹만을 보도했지만, 도청 장치가 NSC 회의 때에만 선택적으로 작동했을 리는 없다. 미국은 도청으로 또 어떤 기밀 정보를 입수했을까?
물론 미국 정보기관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도청을 했다. 2013년 미국 CIA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각국 주미대사관의 통화내용을 도청한 사실이 드러나자,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동맹국 사이에 도청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히 항의했다. 프랑스 외무장관은 미국 정부의 공식 해명을, 멕시코 정부는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으며, 브라질 대통령은 미국의 스파이 활동에 대한 항의 표시로 국빈방문까지 취소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앞으로 도청은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한국은 그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었던 모양이다.
‘굴욕’이라는 표현도 아까운 대통령실
미국 정보기관에게 도청당했던 다른 나라들의 반응과 비교해 보면, 이번 도청 사안에 대한 윤석열 정부와 여당, 대통령실의 반응은 ‘굴욕’이라고 표현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도·감청을 왜곡해 동맹을 흔들려는 세력은 국민 저항 받을 것”(대통령실), “제3국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여당 대표),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가진 정황은 없다”(국가안보실 제1차장) 등이다. 동맹국 대통령실을 도청하는 행위가 ‘동맹을 흔드는 행위’이며, 도청 자체가 ‘악의의 표현’이다. 백보를 양보하여 ‘비대칭적 동맹관계’ 때문에 강경히 항의는 못한다 하더라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 문제를 ‘한국에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지렛대로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정부와 여당은 철저히 미국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다.
미국 정부 사람들조차 하기 어려운 변명을 한국 정부와 여당 인사들이 대신 해 주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미국이 도청으로 입수한 정보 중에, NSC 회의 내용보다 더 심각한 것들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람이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으며 굴욕을 감수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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