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관과 능력지상주의

[전우용의 역사에서 읽는 지혜] 정진석 발언은 강자의 논리인 ‘약자 혐오’ 식민사관은 ‘강한 민족’ 의식으로 극복안돼 ‘힘 숭배’하는 능력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재야 단체 정진석 비대위원당 친일 망언 규탄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재야 단체 정진석 비대위원당 친일 망언 규탄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조선 식민사관의 탄생

“조선 왕조는 중기 이후 사화(士禍), 당쟁(黨爭) 등의 내분을 거듭하면서 정체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고,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위기를 맞이해서도 청국(淸國)에 기대어 잔명(殘命)을 보존하려는 면모를 보였을 뿐이다. 일본이 청국 세력을 몰아내고 조선을 독립시켜주는 한편으로 선의(善意)에서 우러나온 충고와 조력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그를 거부하고 다시 러시아 세력을 끌어들이는 등 사대주의적 구태(舊態)를 답습했다. 비정(秕政)은 계속되었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으며, 러시아의 야욕은 갈수록 노골화하여 결국 일본은 전쟁을 통해 동양평화의 항구적 기틀을 다지는 수단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후에도 일본은 조선이 독립의 내실을 다질 수 있도록 힘써 도왔으나, 조선은 오히려 헤이그 밀사 사건이나 안중근의 흉행(兇行) 등으로 일본의 선의를 배신하고 동양 전체의 화근(禍根)이 되었으니, 일본 천황은 마침내 조선인이 일본인과 함께 문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병합의 결단을 내렸다.”

일본이 한국을 병합한 직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일한병합의 경위’를 위와 같이 정리했다.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져 망했고, 일본은 조선과 전쟁을 한 적이 없다”는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주장과 같은 취지였다. ‘조선자멸론’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명제는 이후 총독부 발행 교과서에 빠짐없이 실렸고, ‘조선사 연구자’들은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천명한 이 명제가 ‘진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다. 조선인은 사대주의적, 기회주의적이고 당파싸움만 일삼으며, 나태하고 근시안적인데다가 공익(公益)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익(私益)만 챙긴다는 ‘조선인관’, 그런 조선인들이기에 스스로 역사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수천 년간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조선사관’은 그 결과로 만들어졌다.

'대한매일신보'가 한일합방으로 인해 총독부 기관지로 탈바꿈한 '매일신보'
‘대한매일신보’가 한일합방으로 인해 총독부 기관지로 탈바꿈한 ‘매일신보’

우열의 논리로는 식민사관 극복에 한계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일제강점기에 구축된 ‘조선사/한국사 체계’를 ‘식민사학’이라고 명명(命名)한 것은 1960년대 말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꽤 오랫동안 식민사학은 ‘일본 군국주의의 한국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관변(官邊) 어용 역사학자들이 왜곡, 날조한 한국사상(韓國史像)’으로 정의되었다. 당연히 식민사학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을 주체로 하는 관점을 정립하고, 일제 관학자(官學者)들이 왜곡, 날조한 역사적 ‘사실’들을 제대로 구명해야 한다는 과제가 제시되었다. 1970년대 한국 역사학계의 많은 성과가 이 과제 인식에 기초하여 이루어졌다. 그런데 민족사학으로 식민사학에 ‘대항(對抗)’할 수는 있었으나 그를 ‘극복(克復)’할 수는 없었다. 식민사학은 ‘일본 민족사학’의 다른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민족 제일주의와 한국 민족 제일주의 사이에서 접점을 찾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식민사학 극복론’이 제기되던 무렵에는 식민지 상태를 경험했던 다른 나라들에서도 동일한 문제의식이 대두했다. 제국주의자들을 ‘주체’로 삼고 식민지 피지배 민족을 ‘타자(他者)’로 삼는 역사관은 식민지 피지배 민족 구성원들의 입을 막은 채 제국주의자들만 떠들어대는 ‘토론장’과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고조되었다. 문제는 ‘사학(史學)’이 아니라 그 배후에서 작동하는 ‘사관(史觀)’에 있었다. 제국주의 지식인들이 구축한 ‘식민사학’의 밑바탕에는 ‘자민족 우월의식’이 있었고, 이는 식민지 피지배 민족 지식인들이 나름의 ‘자민족 우월의식’으로 무장한다고 해서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민족을 우열(優劣)로 나누고 우월한 자는 열등한 자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여기는 ‘힘 만능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가해자를 찬양하고 피해자를 혐오하는 역사관을 극복할 수 없었다.

약자 학대를 범죄시해야 식민사관 극복 가능

인류 지성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의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힘 만능의 논리’가 갖는 잔인성과 ‘반(反)인간성’을 자각했다. 나치 치하의 독일인들은 강자(强者)라는 이유로 수백 만 유대인을 잔인하게 학살했으며, 유대인들은 약자(弱者)라는 이유로 아무 잘못도 없이 끔찍한 고통 속에 방치되었다가 참혹하게 죽었다. 죽은 사람들의 ‘인간성’뿐 아니라 죽인 자들의 인간성도 말살되었다. 역사상 인류가 상상했던 어떤 악마도, 수용소 안의 나치 독일 병사들보다 악랄하지 않았다. 이런 참상을 낳은 것은 ‘강한 민족’ 구성원에게는 사람을 잔인하게 학대하고 죽일 권리가 있다는 생각, ‘약한 민족’ 구성원은 동물처럼 학대받다가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제국주의 역사관이든 식민사관이든, 이런 생각과 결별해야 극복할 수 있었다. 종전(終戰) 직후 UN이 제정한 ‘세계인권선언’에서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고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식민사관은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고 인간이 인간을 학대하는 행위 자체를 범죄시해야 극복할 수 있다. 100여 년 전 3·1운동 당시 우리 선조들도 이 이치를 분명히 인식하고 ‘인류평등의 대의(大義)’를 극명(克明)했다. 해방 직후 백범 김구가 ‘힘이 있어도 다른 나라를 억압하지 않는 나라’를 꿈꾸었던 것도, 같은 취지에서였다. 도의(道義)가 아니라 힘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힘 없는 자는 동물이 되고 힘 있는 자는 괴물이 된다. 이것이 인류가 세계대전과 대량학살의 역사를 겪고 얻은 보편 교훈이다.

한국 사회 ‘힘 숭배’에서 벗어나야

최근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발언에서 핵심 문제는 ‘친일’보다는 ‘약자(弱者) 혐오’에 있다. 가해와 피해의 관계에서 모든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고 가해자의 책임을 면제하는 것은 전형적인 제국주의 논리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의 기득권자들이 생각은 하더라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었던 말을 공공연히 내뱉었다. 그리고 이는 근래 한국과 몇몇 나라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우경화 현상과 맞닿아 있다. ‘가난한 사람은 부정식품 이하라도 사 먹을 수 있어야’, ‘노동자가 주 120시간이라도 일할 수 있어야’ 등,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발언들은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것이 ‘보편적 약속’이어야 한다는 현대 인류의 합의에 정확히 배치되는 반(反)지성적이고 반(反)문명적이며 반(反)인간적인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당선된 것은 ‘강자의 가해는 당연한 권리이며, 피해는 약자가 자초(自招)한 것’이라는 생각이 넓게 퍼져 있는 상황의 반영이다.

지금 검찰은 대통령 부인과 처가 식구들의 주가 조작, 학력 및 경력 조작, 부동산 투기와 관련한 혐의들에 대해서는 전혀 손을 대지 않으면서 전직 대통령과 야당 대표와 관련한 ‘의혹’들을 ‘범죄화’하는 데에 전력을 기울이다시피하고 있다. 없는 죄를 만들어 뒤집어 씌우는 것을 강자와 승자의 당연한 권리로,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쓰는 것은 약자와 패자의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행위의 불공정성과 편파성이 인지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 문화, 승자독식,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모두 ‘힘 숭배’에 기인한다.

하지만 힘을 숭배한다고 해서 힘을 얻는 것은 아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횡포에 눈을 감고 억울한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선, 억울해도 하소연할 데 없는 사람만 늘어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강자의 논리’ 또는 ‘능력지상주의’는 대다수 사람을 ‘할 말 없는 피해자’로 만든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침략과 학살을 외면하면서 집단 피해자인 우리 민족에게 망국의 모든 책임을 돌리는 ‘정신착란’이 발생하는 이유이다.

우리 역사에서 식민사관이나 친일(親日) 논리는 애초부터 ‘강자 중심주의’이자 ‘약자 혐오주의’와 결합해 있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무도한 횡포가 용인되는 사회에서는, ‘제국주의 역사관’이자 ‘식민사관’이 역사관의 기본이 될 수밖에 없다. 정진석 씨의 발언을 두고 ‘식민사관’이니 ‘친일’이니 하기 전에 우리 안의 식민사관 즉, ‘힘 있는 가해자를 숭배하는 태도’를 먼저 극복해야 한다.

글쓴이

전우용 역사학자

필자인 전우용 교수는 우리 시대의 역사의식을 바로잡기 위해 정치 현안에 대해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는 역사학자다. <우리 역사는 깊다>, <내 안의 역사>, <민족의 영웅 안중근> 등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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