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력(迫力)과 막무가내(莫無可奈)
[전우용의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 역사상 모든 국가범죄는, 어떤 명령이든 물불 가리지 않고 박력있게 추진한 사람들이 저질렀다. 일본 군국주의의 유산이 박력이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박력
감사원은 본디 현직 관리들의 탈법(脫法), 비위(非違), 권한 남용 등을 감찰하던 조선시대 사헌부의 후예 격인 부서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과 동시에 새 사무처장이 취임한 뒤, 감사원은 검찰 특활비 유용 의혹 등 현직 공직자들에게 제기되는 비위 혐의들에는 철저히 눈을 감고 오직 전 정권 정책의 당부(當否)를 파헤치는 데 몰두하고 있다.
북한 땅에서 피살된 공무원의 사후 처리와 관련해 ‘월북 조작 의혹’을 제기했고, 그와 관련해 검찰은 국정원까지 압수수색했다. 임기가 보장된 국민권익위원장의 뒤를 캐다가 이렇다 할 혐의가 발견되지 않자 애초에 기관장에게는 적용하기 어려운 ‘근태(勤怠)’를 문제 삼았다. ‘표적 감사’를 주도한 혐의로 고위공직자수사처의 수사 대상이 되어 소환 통보를 받은 사무처장은 다섯 번씩이나 소환에 불응한 채 버티고 있다.
이러는 사이에도 감사원의 활약은 대단해서, 산술평균과 기하평균조차 분간 못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통계조작 의혹’을 제기했고 최근에는 기후위기 대응 방책으로 전 세계에서 확산중인 ‘신재생에너지’ 생산 정책에서 비리 의혹을 찾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공수처도 사헌부의 후예인 셈인데, 감사원 사무처장이 공수처의 소환 통보에 불응하면서 다른 공직자들의 비위를 감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요 자가당착이다. 감사원이든 공수처든 비리 감찰을 거부하는 공직자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그런데도 이런 행태를 두고 ‘박력 있다’고 칭찬하는 사람이 꽤 많다.
‘박력’이라면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인요한씨도 뒤지지 않는다. ‘추대’된 건지 ‘임명’된 건지는 불분명하지만, 그는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정치활동을 한 중진 국회의원들에게 ‘다른 지역으로 가라’고 요구한다. 당사자들이 거부의 뜻을 보이자, ‘말 안 들으면 매를 들 수’ 있다고까지 협박한다. 국회의원은 지역 주민의 정치적 대표다. 어느 지역에서 출마할지 정하는 것은 한국인의 헌법상 권리다. 출마할 때 어느 정당의 공천을 받을지 정하는 것도 한국인의 헌법상 권리다. 하지만 그는 한국인의 헌법상 권리를 무시하는 발언을 공공연히, 그리고 주저없이 내뱉는다.
최근 새로 임명된 KBS 사장도 ‘박력’의 새 경지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그가 임명되자마자, 각 부처 간부들이 발령 받기도 전에, 여러 프로그램이 폐지되거나 진행자가 바뀌었다. KBS는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시청자나 청취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방송법과 노동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하다. 사장이 바뀌자마자, KBS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행정 전산망 마비 사태로 수많은 사람이 불편을 겪은 날 전국의 모든 방송이 이 사태를 첫 번째 뉴스로 다뤘지만, KBS는 이를 여덟 번째 뉴스로 배치했다. 첫 번째로 배치된 것은 APEC에 간 윤석열 대통령 관련 뉴스였다. 전두환 시절의 ‘땡전뉴스’를 확실히 소생시킨 셈이다.
물론 이들뿐만이 아니다. 징용 노동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면제해 준 일, 욱일기를 게양한 일본 해상 자위대함을 우리 해역에 들인 일, 일본 항공자위대가 독도 상공을 일본 영공으로 표시해도 묵인해준 일, 어느날 갑자기 주식 공매도를 전격 금지한 일, 백선엽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는 문구를 삭제한 일, 육사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한 일, 양평 고속도로 노선을 갑작스럽게 바꾼 일 등등.
일본 군국주의에서 등장한 박력
윤석열 정권에서 일어난 숱한 일이 사전 예고 없이, 사회적 공론화 과정 없이, 야당이나 시민사회와 토론 없이, ‘박력있는’ 누군가들에 의해 전격적으로 결정, 추진되었다. 이런 일처리 방식을 두고 ‘잘한다’고 박수 치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 이런 정책들에 전혀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적폐청산이라는 개혁 과제를 앞에 두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다가 실패한’ 문재인 정권보다는 윤석열 정권의 ‘박력 있는’ 일처리 방식이 낫다고 평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박력’은 과연 정치적 미덕일까? ‘박력’은 1930년대 중반에 나온 ‘신조어(新造語)’였다. 당시 대륙 침략전쟁을 획책하던 일본 군국주의는 박력(迫力)이라는 말을 새로 만들어 ‘남성의 미덕’ 중 하나로 배치했다. ‘밀어붙이는 힘’이라는 뜻의 이 말은 본디 후진기어도, 핸들도 없는 원시적 탱크 같은 무기에나 어울리는 말이었다. 지휘관이 갖추어야 할 미덕은 상황을 보아가며 진퇴(進退)를 결정하는 유연성이지 무턱대고 압박하는 박력이 아니다. 박력은 명령에 따라 물불 가리지 않고 상대를 향해 돌진할 줄만 아는 졸병의 미덕이었다. 일본 군대 지휘관의 관점에서, 졸병과 탱크는 그리 다르지 않은 존재였다.
해방 이후 6.25 전쟁과 군사독재 시기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에는 졸병의 덕목인 ‘박력’을 높이 평가하는 문화가 고착되었다. 최고 권력자와 그 가족의 사적(私的) 욕망에 따른 명령이든, 아니면 도저히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속적 동기에 따른 명령이든, 일단 명령을 받으면 ‘박력’ 있게 추진하는 것이 공직자의 미덕으로 취급되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박력은 미덕’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막무가내로 행해지는 박력의 위험성
하지만 민주정치는 군사작전이 아니다. 어떤 사안이든 상호 설득과 토론으로 이견을 좁히고 다수가 동의한 다음에 추진하는 것이 민주정치다. 그래서 민주정치는 더디고 지루하며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명령이 인도적인지 아닌지 따지지 않고, 합리적인지 아닌지도 따지지 않고, 명령이 내려오면 즉각 ‘박력 있게’ 추진하는 것은 기계의 미덕이지 사람의 미덕이 아니다.
정책 집행으로 피해를 입을 사람들의 항변을 묵살하고 그들을 ‘척결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것은 ‘평범한 악마’ 아이히만 같은 자들의 미덕이지, 상식과 교양을 가진 ‘현대인’의 미덕이 아니다. 요컨대 ‘박력’은 기계형 인간, 그래서 쉽게 악마가 될 수 있는 인간이나 미덕으로 여길 수 있는 성향이자 행태다. 윤석열 정권 고위직 인사들이 과시하는 ‘박력’에서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저들은 아마도 명령 이행 과정에서 탈법이나 불법을 자행하더라도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자기 편이니 문제가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박력’을 떠받치는 지성(知性)은 ‘막무가내(莫無可奈)’다. 사람이면 할 수 없는 일,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무지성이 ‘막무가내’다. 법이 ‘막무가내’를 뒷받침하면, 막무가내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 영향권 안에 있는 사람 모두가 파멸에 이르는 법이다. 역사상 모든 국가범죄는, 어떤 명령이든 물불 가리지 않고 박력있게 추진한 사람들이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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