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 기묘한 세상
[전우용의 역사에서 읽는 지혜] 조국의 현실세계와 한동훈의 ‘뒤집힌 세계’ 한동훈에 수사는커녕 사과 요구조차 사라져 선과 악의 경계 사라진 세계...끔찍해질 것
생지옥은 있을까
기묘한 이야기. 근래 시즌 4가 공개되어 다시금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제목이다. 이 드라마 속 이야기는 두 개의 세계에 대한 상상에 기초해서 전개된다. 하나는 비범하거나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을 영위하는 ‘현실 세계’고, 다른 하나는 현실의 공간 요소들이 뒤집어져 있는 ‘뒤집힌 세계’다. 건물, 자동차, 자전거, 기타 소품 등 현실 세계에 있는 ‘물건’들은 뒤집힌 세계에도 그대로 있다. 다만 뒤집힌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다. 뒤집힌 세계에서는 하나의 거대한 괴물이 수많은 괴물을 조종한다. ‘현실 세계’와 ‘뒤집힌 세계’ 사이에는 몇 개의 문이 있고, 괴물들은 이 문들을 통해 현실 세계로 나와 인간을 납치하곤 한다. 뒤집힌 세계에 들어갔거나 끌려간 인간은 괴물들의 에너지원이 된다.
구 소련의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 평행 이론 등 ‘현대적 사유’가 추가되기는 했으나, 이 드라마의 상상을 떠받치는 것은 아주 오래된 세계관이다. 인류는 먼 옛날부터 ‘현실세계’와 대립하는 두 개의 세계를 상상해 왔다. 하나는 천국, 다른 하나는 지옥이다. 내가 보기에, ‘기묘한 이야기’가 그리는 ‘뒤집힌 세계’는 지옥에 대한 현대적 상상의 표현이다. 드라마 속 괴물 데모고르곤은 옛 사람들이 상상했던 악귀 나찰 또는 사탄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뒤집힌 세계에는 모든 괴물을 지휘하는 염라대왕에 상당하는 괴물도 있다.
물론 지옥의 실재(實在) 여부를 입증할 수는 없다. 그곳은 논증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에 있는 공간이다. 다만 믿음이든 망상이든 지옥에 대한 생각이 선악(善惡)의 구분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인류는 한편으로 자기 또는 타인의 행위를 선악(善惡)으로 구분해 이해하고, 다른 한편으로 보답받지 못하는 선행과 징계받지 않는 악을 목도하면서 천국과 지옥을 생각했다. 착하게 산 사람이 죽은 뒤에 가서 보답받는 곳이 천국, 악하게 산 사람이 죽은 뒤에 가서 처벌 받는 곳이 지옥이었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지옥은 악한 인간을 끔찍하게 괴롭히는 괴물들과 그들의 수괴(殊怪)가 지배하는 곳이다. 악인들만 모여 있는 곳에 왜 별도의 괴물이 있어야 하는지는 의문이지만.
인류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상상을 통해 선(善)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문화를 형성, 발전시켜 왔다. 인간의 윤리관과 도덕률, 정의감은 이런 문화를 토대로 형성되었고, 이들 중 일부는 인간의 행위를 직접 강제하는 법률이 되었다. 선한 인간들이 모여사는 천국을 지상에 구현하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숙원(宿願)이었고, 정치의 궁극 목적이었다. 같은 이유로 악이 창궐하는 세상은 ‘생지옥’으로 묘사되었고, 근대 이후의 전체주의는 실제로 세계 도처에 생지옥을 만들었다.
두개의 세계...하나는 조국, 하나는 한동훈
지금 여기,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한다. 먼저 하나의 세계. 그가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되자마자 청문회에 앞서 그를 대상으로 하는 검찰 수사가 시작되었다. 그에게는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의 혐의는 없었으나 그의 아버지가 설립한 학교의 운영과 관련한 비리 혐의, 사모펀드에 가입하고 그 펀드가 큰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배후에서 움직인 혐의 등이 제기되었다. 인사 청문회 당일 당시 한 야당 의원은 “부인이 기소되면 사퇴할 거냐?”고 물었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검찰이 했다. 그의 부인은 피의자 조사 한 번 받지 않은 채 공소시효 마지막날 전대미문의 ‘표창장 위조’ 혐의로 전격 기소되었다. 그의 자녀들과 관련해서는 표창장 위조 외에도 학술 논문에 제1저자로 기재된 것, 인턴활동증명서 내용이 허위 또는 과장이라는 것 등의 혐의도 제기되었다. 검찰은 이 혐의의 사실 여부를 밝히기 위해 100차례에 가까운 압수 수색을 단행했다. 그의 아들에게 인턴활동증명서를 발급한 국회의원은 업무방해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4년 징역형이 확정된 그의 부인은 지금 감옥에 있고, 딸의 대학원, 대학 합격은 잇달아 취소되었다. 그의 동생도 감옥에 있다. 설령 그와 그의 가족이 ‘악행(惡行)’을 저질렀다 해도, 현세가 그에게 내린 징벌은 전례 없이 혹독했다. 물론 이것이 현세의 보편적 도덕률과 법의식에 합치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징벌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녀들이 ‘교수 부부를 부모로 둔 덕에 누린 특별한 혜택’에 대해 거듭 거듭 사과했다. 하지만 양심적이고 도덕적이라고 자처(自處)하는 정치인과 언론인들은 수시로 그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사과하랄 때마다 사과해도 또 사과하라고 한다. 정치평론가들은 이른바 ‘조국사태’ 때문에 더불어 민주당에 망조가 들었다고 단언한다. 그와 그의 가족은 아무나 짓밟고 침 뱉어도 되는 사회적 천민이 되었다. 그가 이 참혹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예측할 수 없다.
또 하나의 세계. 그도 법무부 장관에 지명되자마자 ‘검증’ 대상이 되었다. 그는 표창장 위조, 인턴증면서 허위 발급, 논문 제1저자 기재 등의 혐의로 ‘앞의 그’와 그 부인, 자녀들의 수사를 지휘한 사람이었다. 수사 결과를 두고 보자면 그의 법의식과 도덕적 기준은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듯했다. 하지만 그의 자녀와 관련해서도 유사한 문제가 불거졌다. 그의 딸은 어린 나이에 벌써 여러 편의 논문을 작성해 발표했다. 미국 명문대 합격에 성공한 그의 조카들도 마찬가지였다. 논문을 대필했다는 사람, 자기 논문을 표절 당했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잇따랐다. 며칠 전에는 그의 딸에게 봉사 활동 확인 도장을 미리 찍어준 증명서가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됐다. 아직 오지도 않은 7월에 봉사활동을 했다는 도장이었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물론 그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어떤 혐의든, 공식적으로는 수사 이후에야 확정된다. 당연히 수사가 없으면 혐의도 없다.
게다가 ‘두 번째 그’에게 공개 사과하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민 사회 일각에서 ‘첫 번째 그’를 수사했던 것과 같은 기준으로 ‘두 번째 그’를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는 있으나, 멀리 퍼지지 않는다. 검찰이 ‘첫 번째 그’의 집을 압수수색할 때, 그 집에 음식을 배달하고 나오는 배달원 앞에 떼지어 달려가 “짜장을 먹었냐, 짬뽕을 먹었냐, 한식을 먹었냐”고 묻던 언론인들은 이 문제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그’로 인해 윤석열 정부와 여당에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는 정치평론가는 아무도 없다. 그는 사회적 천민이 된 ‘첫 번째 그’와 정반대로 귀족으로 대접받는다. ‘첫 번째 그’가 사는 세계와 ‘두 번째 그’가 사는 세계 중 하나는 ‘뒤집힌 세계’다.
선과 악 나누는 경계 없다면 바로 ‘생지옥’
물론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며, 그렇기 때문에 현세도 둘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 둘을 분리해 각각 다른 세계에 배치하는 것은 종교적 신심(信心) 안에서나 가능하다. 그렇더라도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사는 사람들은 선과 악, 도덕과 부도덕, 윤리와 비윤리, 정의와 불의에 대한 관념을 공유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인간의 세계’는 유지될 수 없다. 공동선(共同善)과 공통의 가치가 없는 세계에서는 절제, 배려, 연민, 자선 같은 것들이 자리를 잃는다. 무엇이 선인지 알 수 없는 세상에서는 선행을 할 수 없다. 악이 지배하는 세상만이 아니라 선과 악의 경계가 사라진 세상도 생지옥이 되는 연유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가 묘사하는 대로, 현세와 ‘뒤집힌 세계’ 사이에 드나들 수 있는 통로만 있어도 현세는 끔찍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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