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파괴와 ‘자유민주주의’
[전우용의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 윤석열 정부의 ‘공동체 파괴’ 7개월 부자만 돕고 약자는 생활난으로 몰아 공동체 파괴로 발전하는 국가는 없어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온가족의 생활이 그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또는 번갈아 환자를 돌보며, 환자가 하던 일을 분담해서 처리한다. 음식도 환자의 회복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선택하며, 가족들끼리 대화를 나눌 때에도 환자의 마음을 상하게 할 만한 이야기는 전하지 않는다. 평소 가정 내 권력관계가 어떠했든, 환자는 가족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된다. 아픈 사람이 회복된 뒤에야, 가정은 ‘평온한 일상’을 되찾는다. 이런 게 보통 가족의 생활수칙이다. 아픈 구성원을 방치하고 소외시키거나 멸시하는 가족이 가족답게 유지될 수는 없다.
‘약자’를 보호하는 공동체
가족은 인간 공동체의 최소 단위이자 기초 단위다. 규모에 관계없이, 공동체들의 운영원리는 가족 공동체의 운영 원리를 기본으로 삼는다. 국가나 민족이 ‘공동체’로 인식되는 한, 이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통념과는 달리, 보통사람들이 국가와 민족을 ‘공동체’로 생각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인류 문명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국가는 왕의 사유물이었고, 귀족과 평민이 한 부류로 묶이는 ‘공동체’는 종교적 상상력 안에서만 존재했다. 국민과 민족이 ‘공동체’의 일종이라는 생각은 ‘민주주의’라는 개념과 거의 동시에 출현했다. 구성원들이 신분으로 나뉘지 않고 역할로만 나뉜다는 생각이 자리 잡은 뒤에야, ‘민(民)들의 공동체’를 상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민족’과 ‘국민’이라는 말은 1900년대 초에야 사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국민 공동체’나 ‘민족 공동체’는 오랫동안 상상 속의 당위적 실체로만 존재했다. ‘한국인의 국민 공동체’나 ‘한민족 공동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일제 식민지 통치권력은 한국인들을 ‘국민 공동체’의 일원으로 편입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사람이 실존한다고 믿었던 ‘민족 공동체’도 분단 때문에 두 동강이 나 버렸다. 남북한 각각에 수립된 정부들은 ‘국민 공동체’를 만들었다고 표방했으나, 사실 그것은 공동체가 아니었다. 자기 일신의 영화(榮華)를 위해 ‘민’을 노예로 부린다는 점에서, 현대의 독재자와 옛날의 왕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현대의 독재자들이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는 것이나, 옛날의 왕들이 ‘백성은 나의 적자(赤子)’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 사탕발림에 불과했다.
국민이 무도(無道)하거나 탐욕스러운 통치자를 평화적이고 합법적으로 갈아치울 수 있을 때에야, 통치권력은 비로소 국민을 두려워 한다. 그리고 어떤 체제에서든 국민의 다수는 상대적으로 약자이거나 빈자(貧者)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역사가 오래된 나라들은 대체로 ‘복지국가’의 면모를 보인다. 가난하고 아픈 구성원들을 먼저 돌보아야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건, 공동체 안에서 생활해 온 인류의 보편 상식이다.
‘국민 공동체’를 파괴하는 윤석열 정부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는 공동체의 기본 운영 원리에 완전히 배치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작년 10월 이태원에서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당한 150여 명을 조롱하고 유족들에게 침묵하라고 윽박지르는 자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행정부와 국회에서도 이러는 자들이 있다. 희생자들을 우리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라 ‘죽어 마땅한 존재’로 취급하는 태도가 만연한 사회에서, 권력이 힘없고 가난한 국민들을 학대하고 무시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7개월간 내놓은 정책들은, 정확히 ‘국민 공동체’를 파괴하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법인세와 부동산 보유세를 인하하고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한 규제들을 철폐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자, 윤석열 정부는 건설 원가도 시장가도 아닌 건설사가 책정한 ‘분양가’ 대로 매입하겠다고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쌀 생산 농가의 생산비 보전을 위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는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공언했다. 정부는 겨울철 서민의 생활고를 덜어주기는커녕 연료값을 폭등시켰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조만간 전기 상하수도료와 교통요금, 맥주 막걸리 세금까지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공공요금과 간접세 인상은 전형적인 대중수탈로서,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하는 정책이다. ‘공동체’의 유지를 책임진 정부가 부자들만 도와주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생활난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오히려 공동체 파괴에 앞장서고 있는 셈이다.
윤석열 정부가 유별나게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에 집착하는 것도 ‘공동체 파괴’ 의지의 표현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민족적 민주주의’나 ‘한국적 민주주의’ 등 ‘수식어가 붙는 민주주의’를 경험했다. 북한의 ‘인민 민주주의’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 앞에 붙는 수식어는 언제나 민주주의를 다른 가치에 종속시키겠다는 의지,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려는 시도와 결합해 있었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 시장경제’라는 이름의 정글 자본주의 논리로 민주주의를 제약함으로써, ‘민주적 공동체’인 ‘국민 공동체’를 붕괴시키려 하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공동체 파괴’ 논리를 ‘국가 발전 논리’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국가를 공동체로 이해하는 한, 국가 발전은 공동체의 발전이어야 한다. 공동체를 파괴함으로써 발전하는 국가가 있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계급지배의 도구’에 불과하다. 국가가 계급지배의 도구로 퇴행하는 것은, 국가 공동체 구성원 절대 다수에게는 끔찍한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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