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은
소설가
김경은 소설가는 소설 외에 이런저런 잡글을 쓰는 중. 최근 <나타나다><매일 안녕하세요><마오리전사><애스컴시티> 등을 씀. 신화의 시대, 시대의 신화: 신화는 새롭지 않지만, 언제나 새롭게 읽힌다. 오랜 세월 만들어져 온 신화가 있는가 하면 오늘의 우리가 만들어 가는 신화도 있다. 신화의 시대에서 이 시대의 신화까지를 더듬어 갈까 한다.
김경은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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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우리 조상은 왜 머리사냥을 했을까
오래전 읽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홍승수 역, 사이언스북스, 2004)는 천문대중서를 표방했지만 종합선물세트 같은 인문학서였다. 트로이전쟁을 끝내고도 10년이 지나서야 이타카로 귀환한 오디세이의 방랑기 《오디세이아》처럼, ‘나는,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가’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인위 선택으로 진화한 ‘사무라이게’를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알쏭달쏭한 자연의 조화를, 인간의 정보를 담은 레코드를 우주선에 넣어 띄워 보내는 프로젝트에서는 표표히 우주를 떠가는 지적생물체의 절대고독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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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인간과 동식물이 동등한 인도네시아 신화
신화의 세계는 상식과 반대되는 행위와 사고로 자주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그러나 그 원리를 이해하면 사유의 지평이 확대되며 타자를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미래에 실현되는 상상력은 종종 과거와 연결되어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신화의 세계에 도착하는 이것이 신화의 힘이기도 하다. 식물은 한자리에 붙박인 생명활동 전략을 선택해 동물과는 다른 계를 구성해왔다. 인류는 힘과 지식을 동원해 식물을 길들이고 재배했으며 인류사는 그렇게 영역을 넓혀온 역사이기도 하다. 이러한 연유로 자칭 ‘만물의 영장’ 인간은 식물계를 동물계보다 하위로 분류하지만, 그것은 일면적 사고일 수 있다. 관점의 문제인데 결국 무엇이 살아남아 전해지는가 하는 ‘이기적인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은 공룡처럼 언젠가 멸종할 운명이며 ‘공룡 시대’에도, 인류세에도 건재하는 유전자들은 종이나 계를 불문하고 저들끼리 협력하며 ‘진화의 칼날’을 넘어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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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 어떤 작품일까
황석영 작가의 『철도원 삼대』(영문판 Mater 2-10)가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에 실패했다. 『해 질 무렵』(영문판 At Dusk)이 지난 2019년 1차 후보에 오른 이래 그의 작품으로는 두 번째 오른 작품이었다. 2022년 정보라의 『저주 토끼』와 2023년 천명관의 『고래』에 이어 3년 연속 한국의 작가들이 부커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앞서 2016년에는 작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이 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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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애도하지 못하면, 귀환하는 undead 뱀파이어
올해로 세월호 참사 10주년이다. 유족과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재난 참사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추모행진을 벌였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같은 패턴의 사고가 반복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2년 전 이태원 참사를 지켜보며 되새겨야만 했다. 국민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갈등의 불씨를 키운다. 제주 4.3항쟁, 광주 5.18민주화운동은 국가폭력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애도할 기회조차 오랜 세월 박탈해온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다. 예술에는 인간의 내면을 응시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역할이 있다. 애도하지 못해 벌어지는 비극을 문학(그리고 영화)은 여러 형식으로 형상화했고 뱀파이어물도 여기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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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해피엔딩으로 끝날 만큼 ‘세상은 단순하지 않아’
아, 그것만 갖췄더라면! 살면서 되돌릴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을 누구나 겪어보았을 것이다.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다고 보았)는데 사소한 실수 하나로 놓치는 아쉬운 기회 말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대중은 이를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로 선수들에게 격려와 찬사를 보낸다. 정해진 시간 동안 관람하면서 경기력뿐 아니라 임하는 자세나 과정 등을 지켜보기 때문에 가능한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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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민간전승신화는 왜 이렇게 에로틱할까
우리는 온갖 콘텐츠를 드라마로, 영화로, 혹은 게임으로 즐긴다. 일상에서 반복되는 현대인의 이러한 행위는 어디서 유래했을까? 기원은 사라지고 의례만 남은 콘텐츠들은 사람들을 더욱 미혹(迷惑: 마음을 홀리는 것)하는데, 이는 고대의 풍습이 무의식으로 살아남아 지금까지 내려오는 까닭이다. 미혹하는 강력한 이야기들 중에는 마녀와 마법사, 늑대인간, 뱀파이어 물(物)들이 있다. 이들 장르물에서 신비한 화소를 걷어내면, 풍요를 기원하는 민간전승의 풍속이나 민담이 그 안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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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긴긴밤, 인간이 지어낸 기묘한 이야기들
겨울이 깊은 1월이다. 냉‧온대와 대륙성, 계절풍 기후의 특징이 나타나는 한반도는 연간 기온의 변동 폭이 큰 만큼 겨울이 더 혹독하게 느껴진다. 최근에는 이상 기온으로 계절의 전형성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의 겨울은 춥고 길다. 긴긴 겨울밤을 생각하면 ‘독서의 계절’은 가을보다는 겨울이 더 제격일지 모르겠다.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동물 아닌가? 이러한 인간의 성격을 가리켜 호모 나랜스(Homo Narrans 이야기하는 사람)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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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만약에 진압해버렸다면...
그날 체포된 전두광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죄목은 군 형법상 반란죄였다. 반란자들의 수괴였으므로 최고형에 처하는 게 당연했다. 최측근 노태건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반란모의 참여, 반란 중요임무 종사, 불법진퇴, 지휘관 계엄지역 수소(守所)이탈, 상관 살해, 상관 살해미수, 초병살해의 죄목을 달고, 무기징역에서 강제 전역까지 그날 행위와 결과에 따라 주변의 별들도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다만 간부급을 제외한 사병들에게는 귀대 조치후 병영 이탈 금지령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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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신화에서 동물은 왜 인간보다 존중받았을까
지난 10월 29일은 이태원 참사 1주기였다. 정부의 방관을 넘어선 방해 속에, 책임자 처벌을 위한 진상 규명은 한 발짝도 진전이 없었고 제대로 된 추모와 애도조차 할 수 없는 상태로 시간은 흐르고 있다. 관(官)의 무책임한 행위 앞에서 생명 존중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생태주의 신화에는 ‘생명 존중’사상이 잘 드러나 있다. 동물과 인간의 격에 구별이 없고, 동물이 오히려 상위에 올 때도 많다. 대칭적 세계관을 기본으로 하는 이들 신화는 기후 위기 시대를 맞아 새롭게 조명받는 인상이다.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 공주>를 기점으로 아이누 신화는 그 맨 앞에 놓인다. 그런데 이런 생태주의 신화를 보다 보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생명에 대해 무자비한 경우도 있다. 아이누 신화에서 올빼미 신이 부르는 노래 「콘쿠와(コソクワ)」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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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마야인의 스포츠는? 소음, 그리고 문명 창조
45억 명이 넘는 아시아인의 축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지난 9월 23일 개최되었다. 출전 선수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함성과 탄식이 같은 시간대 아시아 전역에서 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신(神)’들이 있다면 어떤 반응을 나타낼까? 수메르 왕조의 신화를 담은 『길가메시』를 보면 하계(下界)의 소란이 신들의 응징을 불러왔다. 인간 숫자가 불어나면서 불평불만이 많아지자 신들이 견디다 못해 큰 비를 내린다. 불평과 민원은 오늘날 아파트 생활을 주로 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자주 발생한다. 심하면 아래위층 사이에 칼부림으로 번지는 불행한 사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이 큰 무리를 이루면서 시끄럽고 무질서해지고 신들마저 노하는 과정에서 ‘소란’ 또는 ‘소음’은 무엇을 의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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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인류의 오랜 골치 ‘홍수’, 신이 내린 벌이었을까
마을을 둘러싼 논과 밭을 보며 살던 어릴 적, 가뭄과 장마, 태풍에 예민하게 반응하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작물의 상태를 쉽게 관찰할 수 있던 탓이다. 할아버지는 타고난 농부셨다. 비가 거칠게 내리는 날이면 긴 우의를 걸치고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무너지는 논둑을 막으러 집을 나섰다. 밭농사보다 논농사를 주로 짓던 집안에서 할아버지는 자식보다 벼를 더 소중히 여겼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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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펄펄 끓는 지구, 신화는 태양을 탓한다
장마가 끝나자 한여름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8월 들어서기 무섭게, 하루 한두 번 폭염주의보를 알리는 문자가 쌓여간다. 한낮의 태양은 머리 꼭대기에서 이글거리고 숨 막히는 더위가 외부활동을 힘들게 한다. 폭우로 전국에 사상자가 발생하던 지난 7월, 미국 남부에서는 폭염으로 선인장이 말라 죽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는 11년 만에 눈이 내렸다. 중국 베이징은 1951년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72년 만에 고온 일수 최다치를 기록했으며 하얼빈이나 쑤이저우(随州)에서는 정전 등으로 가축이 폐사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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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신화속 외발, 악마의 잔치, 밤의 전투
현대를 사는 우리와 고대인 사이에는 아득한 시간의 강이 놓여 있지만 고대인들의 세계관은 생활 곳곳에 남아 질긴 생명력을 입증한다. 지난번 신데렐라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카를로 긴즈부르그는 『밤의 역사』(문학과지성사, 2020)에서 이질적인 문화들에 어째서 ‘절름발이’를 주제로 하는 신화와 의식이 널리 나타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탈리아인인 그는 국내에 『치즈와 구더기』로 이름을 알린 미시사(微視史) 연구의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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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인어공주, 신데렐라 그리고 PC한 현대신화
최근 개봉한 디즈니의 <인어공주>를 놓고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논쟁이 뜨겁다. 모든 종류의 편견이 섞인 표현을 쓰지 말자는 정치적·사회적 운동인 PC운동과 관련해 인어공주의 주인공이 왜 흑인이냐를 두고 논쟁이 일었다. 디즈니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를 개봉한 이래 <신데렐라>(1950)를 제작해 연이은 흥행을 거둔 바 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미녀와 야수>, <라푼젤>, <겨울왕국>, <알라딘>, <포카혼타스>, <뮬란>, <모아나> 등 세상의 온갖 공주를 끌어오거나 공주 격의 주인공을 내세운 애니메이션으로 흥행몰이를 해왔다. 워낙 지명도가 높아 디즈니가 손을 댄 동화는 대중에게 ‘디즈니 판본’으로 각인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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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아주 ‘오래된 미래’와 농업혁명의 거짓 신화
기후 변화와 인류의 위기를 말하는 요즘, 식량의 무기화에 대비한 미래산업으로 농업이 떠오르고 있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위기 국면으로 들어섰다고 진단하는 기후학자들에 따르면 농업은 미래산업이 아니라 당면한 문제다. 농사를 짓기 시작한 1만 년 전 신석기 시대부터 인류는 정착 생활로 전환했다고 알려져 있다. 농경이 메소포타미아를 기점으로 뻗어나갔다던 종래의 학설은 각 지역에서 자생했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이에 따르면 먼저 시작한 곳이 좀 더 우월한 문명이고 나중에 발생한 곳은 처진 문명이라 말할 수 없다. 문화 양식은 지역의 환경이나 사정에 따라 결정되는 현상적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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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위스키 열풍에 부치는 ‘술의 기원’ 신화
위스키 열풍이 20, 30대를 휩쓸며 이어지고 있다. 2007년 정점을 찍으며 하락하던 위스키 수입액은 2021년 반등 이후 증가 추세란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관계 맺는 방식이 바뀌면서 우리의 일상은 달라졌다. 음식문화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와 혼밥에 혼술, 홈술 족까지 늘어났다. 회식문화를 즐기지 않던 MZ세대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주로 직장 상사가 주도하는 집단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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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봄물 오르는 버드나무, 모계신앙의 ‘지킴이’
우리나라에서 봄의 전령은 단연 버드나무다. 더 정확히는 버드나무 종류다. 한겨울 추위가 물러가는 2월 말이면 개천가에서 물오른 버들개지를 볼 수 있다. 그 버들개지가 봄을 알리는 사진으로 올라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 완연한 봄이다. 버드나무는 물을 좋아하여 냇가나 강, 호수 가에서 잘 자라며 전국 어디서나 흔히 보는 수종이었다. 그런 만큼 도시 어디를 가나 ‘버드나무집’이라는 간판을 내건 음식점이 쉽게 눈에 띄었으며 지금도 인터넷에 치면 이 이름이 여전히 많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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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곰을 만나는 마음
폭설 예보가 뜨면서 며칠 동안 한파가 맹위를 떨치던 며칠 전이다. 이럴 때는 아침 운동이고 뭐고 이불 속을 나오기 싫어진다. 십 년 넘게 들여온 습관이건만(물론 중간에 뭉텅뭉텅 쉴 때도 있었지만)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왜 인간은 곰이나 개구리, 뱀처럼 겨울잠을 안 자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울릉도에 70cm 넘는 눈이 내렸다는데, 눈 폭탄에 가스비 폭탄까지 활동하기 험한 겨울마다 동면하면 좀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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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추어리
30여 년 오해와 이해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저는 2022년 12월 26일, 하루 늦게 접했습니다. 1942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나 올해 80세로 영면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하필 인천역을 빠져나오고 있었습니다. 올봄 코로나에 감염되면서 지병이 악화한 게 선생님의 사인이었습니다. 목적지를 지나치는 바람에 헐떡이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그러다가 인천역에서 만석동 일대까지 걷던 지난해 일을 떠올렸습니다. 그 순간 공장지대의 굴뚝이 눈에 들어왔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책장이 닳도록 읽던 옛 기억까지 함께 떠올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