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열풍에 부치는 ‘술의 기원’ 신화
[김경은의 ‘신화의 시대, 시대의 신화’] 디오니소스 신화 아닌 우리의 ‘술’ 신화 제주 ‘자청비’ 신화 대표적..다양한 서사 눈길 술 신화에 ‘인간살해’ 빈번히 등장하는 이유?
위스키 열풍이 20, 30대를 휩쓸며 이어지고 있다. 2007년 정점을 찍으며 하락하던 위스키 수입액은 2021년 반등 이후 증가 추세란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관계 맺는 방식이 바뀌면서 우리의 일상은 달라졌다. 음식문화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와 혼밥에 혼술, 홈술 족까지 늘어났다. 회식문화를 즐기지 않던 MZ세대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주로 직장 상사가 주도하는 집단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났다.

우리가 아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
판매처가 다양해진 양주를 구매하려 대형마트나 편의점 앞에서 몇 시간씩 대기하는 ‘위스키 오픈런’, 중장년의 술로 인식되던 양주를 구매하고자 50, 60대 사이에 섞여들어 줄지은 젊은 층은 더 이상 이채로운 모습도 아니다. 이들은 인스타그램에 좋아하는 술병 사진을 올려 자신의 취미를 인증한다. 때때로 당근마켓 같은 중고사이트에는 몇천 원에서 몇만 원까지 하는 양주 공병이 올라온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결된 같은 취미의 애호가와 신제품 정보를 주고받고 브랜드에 얽힌 역사를 공부한다.
사랑과 정염으로 똘똘 뭉친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 얽힌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 카오스와 신비는 한통속이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세멜레 사이에서 잉태된다. 헤라의 계략으로 불에 탄 세멜레의 잔해에서 건져져 제우스의 허벅지를 인큐베이터 삼아 태어났다.
그의 힘의 원천, 포도주는 사랑(하던 소년 암펠로스)을 잃고 얻은 무기였다. 포도주는 들림 상태를 만들었으며 그를 받드는 여인들을 결집시켰다. 그런 의미에서 자양강장 음료라는 꼬리표를 붙인 ‘박카스’(바쿠스 Bacchus, 로마신화에서 술의 신)는 찰떡 같은 네이밍이다.
디오니소스 축제라는 밀교 의식은 온갖 탄압에도 날로 뻗어나갔고 축제에 참여한 여인들은 인간을 초월한 힘을 얻었다. 엑스터시에 빠지면 이들은 희생자를 만들어내곤 했다. 오늘날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 가운데서도 가장 대중적인 존재로 우뚝 섰다. 이번 글에서는 연예인들의 연예인처럼 대문자 ‘술의 신’이 된 디오니소스가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술에 얽힌 ‘인신공희’의 신화
술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혼돈’과 ‘인간 살해’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우리나라 술의 기원담도 이러한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야기는 병든 아버지를 둔 아들이 산속으로 약을 구하러 들어가며 시작된다. 그가 심심산속을 택한 것은 한겨울에 딸기를 구한다거나 심마니 눈에나 띌 산삼을 구하려는 이유가 아니었다. 사람의 간을 얻으려면 사람들 눈을 피해야 했다. 처음엔 발이 안 떨어졌으나 아버지를 살리겠다는 효심이 멀쩡한 목숨을 셋이나 처치하는 패륜을 이겨낸다.
이렇게 선비와 중, 미치광이 셋을 죽인 아들은 시신을 산속에 묻고 간을 얻어 돌아온다. 아버지는 살아났고 양심에 찔려 그 자리를 찾아간 아들은 못 보던 곡식이 자란 것을 발견한다. 아들이 베어온 곡식은 비를 맞으며 알곡에 싹이 텄다. 여기서 발효해 생긴 물을 마시고 아들은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선비처럼 얌전하다가, 중 염불하듯 중얼거렸고, 끝내는 미치광이처럼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아들이 거둬온 곡식은 밀이었다.
효심이 주요 모티프인 것을 보면 유교적 가치관이 투사된 한참 후대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이 설화에서 시대의 가치관을 걸러내면 곡식과 술의 기원을 전하는 원형이 드러난다(김헌선, 밀의 기원담의 하이누웰레적 성격, 2010). 이러한 성격의 신화들은 인간을 제물로 바치던 인신공희(人身供犧)의 기억을 품고 있다.
덧붙여지거나 삭제될 뿐 설명을 시도하지 않는 신화를 보며 당황하는 대목 가운데 하나가 살인일 것이다. 그나마 위 이야기에서는 ‘효’라는 사상을 덧붙여 이해를 구하고 있다.
수확은 ‘곡령을 살해’하는 의미
술의 기원을 말하려면 주원료인 곡물 이야기부터 꺼낼 일이다. 살해는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이며 생산활동이었다. 인류의 선조들은 동물을 사냥하며 얻은 인식을 식물 획득에도 적용했다. 수렵시대의 동물 살해는 인간에게 식량을 마련해주었다. 해와 달의 움직임과 자연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던 농경시대에 접어들어서도 곡식 재배와 수확에 마찬가지 원리가 작용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1년을 주기로 계절이 변하는 동안 파종한 곡식은 땅 위로 올라와 자라고 열매 맺는다. 동물을 사냥하듯 곡식을 잡아서 베면 ‘곡령(穀靈, 곡식에 깃든 정령)’은 살해된다. 그렇지만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어김없이 생장하는 산천초목을 겪으며 재생, 부활로 받아들였다. 이런 원리에 따르면 삶과 죽음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한 쌍으로 순환하는 현상이다.
유럽 곳곳에는 재배지에 숨어 있던 곡령을 의인화하고 현실로 받아들여 마을에서 마지막으로 수확을 거둬들이는 농부를 공격하는 관습도 있었다. 아주 옛날에는 실제로 살인이 있었다고 신화학자들은 말한다.

곡식의 신이 된 ‘자청비’ 신화
전국에 분포하는 「제석본풀이」나 제주도의 「세경본풀이」, 「초공본풀이」 등은 여성 수난사이면서 여성이 주체인 농경신화다. 특히 「세경본풀이」는 ‘자청비(自請妃)’라는 술 이름으로도 유명한 세경신(농사신)의 내력을 풀이하는 무가다. 우리나라 신화는 기록으로 전하는 건국신화와 구술 형식의 무속신화로 갈린다. 지식인의 안목으로 필터링 된 건국신화와 달리 민간에 구전되던 무속은 다양한 층위의 화소를 내포하고 지역이나 구술자에 따라 여러 판본이 생성됐다.
‘자청비’의 행동은 사랑하는 문도령을 향한 열망을 동력으로 펼쳐진다. 청중을 상대로 긴 시간 연희되는 서사를 정리하면 이렇다.
문도령을 냇가에서 처음 만난 자청비는 그와 함께 공부하겠다고 남장을 하고 따라나선다. 둘은 잠시 맺어지나 천제의 아들 문도령이 아버지로부터 결혼 명령통지서를 받아 떠나며 이별하게 된다. 실의에 빠진 자청비는 문도령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하인 정수남의 꼬드김에 뒤를 따른다.
자청비는 정체성을 의심하는 동문과 훈장의 시험을 통과해야 했고 하인 정수남의 수모도 견뎌야 했다. 항상 주체적 의사 결정권을 행사해온 자청비는 정수남의 학대를 손 놓고 당하기보다 살해하는 쪽을 택한다. 두 번이나 서천행을 단행한 자청비의 첫 여행은 정수남을 살리려는 의지에서 비롯한다. 결과는 환생꽃을 얻어오고 정수남의 소생으로 이어진다.
문도령을 찾아 다시 집을 나선 자청비는 베 짜는 할머니의 수양딸이 된다. 문도령의 혼수 베를 주문받고 사연을 새겨 넣었으나 재회는 불발되고 자청비는 노파의 집에서 쫓겨난다. 중으로 떠돌다가 하늘나라로 올라갔고 시아버지의 가장 혹독한 시험을 통과하며 문도령과의 혼인은 성사된다.
자청비의 시련은 이쯤에서 그치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하늘에 변란이 일어나 죽은 문도령을 살리려고 다시 서천행.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자청비가 곡물 종자를 받아 내려오면서 문도령과 자청비, 정수남은 나란히 상·중·하 세경신으로 자리 잡는다.

‘술의 기원’ 신화가 경계하려는 것은
자청비의 지시로 아홉 마리의 말과 소를 끌고 산에 나무하러 간 정수남은 이들 가축을 잡아먹었다. 수렵신의 면모를 드러내는 일화로 두 인물의 갈등은 수렵에서 농경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농경신화는 긴 세월을 거치며 불교와 유교적 색채를 수용해 이야기에 살이 붙고 생명력을 얻었다. 서천행에서 고난을 이기고 문도령뿐 아니라 자신을 괴롭힌 정수남까지 살려낸 자청비는 하늘과 인연이 닿은 채 곡식의 신으로 인정받는다. 자청비의 여정에는 살인과 재생이 반복되고 문제를 해결한 자청비는 농경신의 자격을 얻는 것이다.
입안에서 천천히 음미하고 목젖을 축이며 넘기는 위스키는 시간이 만들어낸 술답게 시시각각 맛과 향이 변한다. 형편에 따라 가성비를 따져 질적 수준을 조절할 수 있고, 희소성이 만들어내는 투자가치까지, 위스키는 힙한 문화를 추구하는 20, 30대의 취향을 저격했다. 마음먹고 구매하면 야곰야곰 오래도록 마실 수 있어 외려 경제적이라는 계산까지 나온다. 그러나 기원담에서 굳이 세 사람을 살해하면서까지 경고하는 술의 위험성도 되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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