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은 왜 머리사냥을 했을까
[김경은의 ‘신화의 시대, 시대의 신화’] 우리 뇌의 R-영역에 숨겨진 폭력성 ‘머리사냥’ 고대신화의 실체는 “생식 능력 획득하려는 신화적 살해” 폭력성, 현대사회에도 남아있어
머리사냥과 우리 뇌의 R-영역
오래전 읽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홍승수 역, 사이언스북스, 2004)는 천문대중서를 표방했지만 종합선물세트 같은 인문학서였다. 트로이전쟁을 끝내고도 10년이 지나서야 이타카로 귀환한 오디세이의 방랑기 《오디세이아》처럼, ‘나는,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가’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인위 선택으로 진화한 ‘사무라이게’를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알쏭달쏭한 자연의 조화를, 인간의 정보를 담은 레코드를 우주선에 넣어 띄워 보내는 프로젝트에서는 표표히 우주를 떠가는 지적생물체의 절대고독을 느꼈다.
인간의 뇌는 R-영역, 변연계, 대뇌 피질 세 단계에 걸쳐 진화했다는 폴 맥린의 학설을 소개하는 대목도 흥미로웠다. 인간의 뇌는 잘 설계된 구조가 아니라 특정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 위에 덧씌워지고 덧씌워진 무계획의 소산이다. 인간의 행동을 충동이 지배할 때, 포유류의 변연계와 대립하는 파충류의 뇌인 R-영역은 출몰한다. 그러니까 ‘사람을 죽이겠다’는 통제 불능의 분노는 먼 옛날 인간의 뇌리 깊숙이 각인되어 보존돼온 것이다.
이러한 R-영역이 활개치던 시대의 이야기가 ‘머리사냥 신화’에 새겨진 것 아닐까? 지난 원고(칼럼: 인간과 동식물이 동등한 인도네시아신화) 에서 소개한 ‘하이누웰레 신화’의 주인공인 세람섬 사람들의 또 다른 신화에는 ‘머리사냥’ 이야기가 있다. 옌젠과 니게마이어는 하이누웰레의 살해를 머리사냥의 한 형태로 보고 있는 것이다.
즉, 태곳적 사건에서 하이누웰레가 살해당하면서 인간에게 유용한 구근식물을 가져다주었는데, 이는 왕성한 생명력을 상징할뿐더러 생식력의 비결을 담고 있다는 요지였다. 머리 사냥이 생식 능력을 획득하려고 신화적 살해를 반복하는 제의라고 그들은 말한다.
죽음과 생식력의 관계를 더 분명하게 말해주는 세람섬의 신화로는 ‘바나나와 돌의 대결’이 있다. 인간이 생겨나기 전에 인간의 존재 방식을 두고 둘은 싸운다. 결론은 영생하지만 생산성이 없는 돌이 아니라, 영생하지 못하나 생식력을 갖춘 바나나의 생명력이 승리해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우리가 아는 인간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머리사냥 신화의 전말
아돌프 엘레가르트 옌젠과 헤르만 니게마이어가 쓴 『하이누웰레 신화』(이혜정 역, 뮤진트리, 2014)에 따르면 신화를 바탕으로 하는 세람섬의 머리사냥 설화들은 인간이 어떻게 머리사냥으로 나아갔는지 보여준다. 이들이 처음부터 머리사냥을 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전쟁이 없던 시기에 누누사쿠 사람들은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마이날라에 도착했다. 거기 사람들은 손으로 상대의 머리를 치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를 즐겼다. 이때 진 사람은 죽은 것으로 쳐서 놀이에서 빠졌다. 알루네 지역에서는 어느 날인가, 사람들이 놀고 있는 곳에 맹금 한 마리가 머리털을 뜯어 죽인 쥐를 떨어뜨렸다. 사람들은 이를 모방해 머리카락을 뽑기로 했고 잘 안 뽑히자 칼을 사용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머리카락이 잘린 사람은 놀이에서 빠졌다. 마을 대 마을로 시합할 때면 마이날라 사람들이 이겼다.
하루는 이웃 마을 여자들 31명이 시합을 하러 마이날라로 가다가 바로 그 맹금을 보았다. 맹금은 쥐의 머리털을 물어뜯고는 남은 몸통을 떨궜다. 여자들은 이 장면을 따라하기로 한다. 마이날라 사람들이 늘 마을 대항전을 이기는 게 불만이던 것이다. 마이날라에 도착했을 때, 마침 사람들은 모두 일을 나가고 노인 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여자들은 손쉽게 일을 처리했고, 노인의 머리를 들고 돌아오는 길에 바투 코코바 산 위에서 한숨 돌리기로 한다.
한편 마이날라에서는 마을의 여자가 남자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고, 남자들은 즉시 돌아와 머리가 없는 시신을 확인했다. 산으로 뒤쫓아간 남자들은 여자들의 머리를 잘랐고 이를 계기로 무기를 들고 싸우는 전투와 머리 사냥이 생겼다. 이때 여자들이 싸워서는 안 된다는 협정도 맺어졌다.
타이완과 중국에 전승된 머리사냥
이러한 인간 살해 풍속을 대표하는 머리 사냥은 세람섬을 포함하는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중국이나 타이완, 필리핀 등에 두루 퍼져 있었다. 여기서는 홍윤희의 논문을 참고해 타이완의 쩌우(鄒族, Tsou)족과 중국 와족(佤族)의 신화를 소개하겠다.
타이완의 원주민들 사이에 퍼져 있는 머리사냥 습속은 유사한 모티프를 공유하면서도 부족이 놓인 환경에 따라 차이를 드러낸다. 쩌우족의 신화는 주로 홍수와 엮여 있다. 대홍수로 옥산(玉山)에 몰려든 인류 조상들은 아직 농사짓는 법을 몰라 수렵과 채집생활을 한다는 이야기까지는 공통 모티프다.
하루는 개 한 마리를 죽여 대나무에 걸어두자 사람들이 좋아했으며 누군가 원숭이 머리를 제안하고 실현하니 더 보기 좋았다. 이어서 사람 머리로 바꾸면 더 멋있겠다고 해서 누구나 인정하는 말썽쟁이의 머리를 걸었고 이후로 사람들은 머리사냥을 즐기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다른 설화의 서사는 이렇다. 신을 기쁘게 할 의도로 산양을 잡아 걸어놓고 노래를 하려니 별로였고 개를 걸고 부르니 소리가 좋아졌다. 다음으로 원숭이, 말썽쟁이 아이로 나아가자 천신이 기뻐했다. 또 다른 이야기는 머리를 바꿔 걸어두는 대로 홍수의 기세를 꺾어 잠재우고 날씨를 좋아지게 하는 효험을 보면서 야생 동식물도 늘어났고, 머리사냥을 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이외에도 형제 넷이 조모(祖母)를 살해하고 신이 조모를 부활시켜주면서 효도하는 대신 머리사냥을 하게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아들을 데리고 물고기를 잡으러 갔던 아버지가 아들을 잃었으나 훗날 하늘에서 창과 방패, 적의 머리가 떨어졌고 마지막으로 어른이 된 아들이 내려와 마야스비(종종 사람의 머리를 하늘에 바치기도 하는) 의례를 가르쳐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이상, 홍윤희의「타이완 쩌우족의 머리사냥 신화에 나타난 폭력과 생태윤리」(중국소설논총 제61집, 2020)에서).
한편, 중국의 와족에게는 연중 주요 의례로 파종 전과 추수 전에 지내는 ‘머리 사냥(獵頭) 제사’가 있었다. 장정들이 매복해 적대 부족의 사람이나 여행자를 사냥해 머리를 조달했고 때때로 다른 마을의 죄인을 사오기도 했다. 사제인 모빠(魔巴)는 영혼을 달래며 그들 부족을 살펴달라고 제문을 읊는다. 무참히 사냥해 가져왔을지언정 머리를 바치는 제사에서는 망자가 주체로 전환하는 것이다(이상 홍윤희의 「중국 와족의 머리사냥 의례와 그 신화적 의미」(한중언어문화연구 제42집, 2016)에서).
위에서 소개한 세람섬 부족들이나 와족, 타이완의 고산족으로 불리던 원주민족들은 20세기까지도 머리사냥 습속을 이어왔다. 와족의 경우, 대개의 마을에서 머리사냥이 사라진 후에도 이들의 중심 거주지인 ‘아와산(阿佤山)’ 지역에서는 이 풍속을 1950년대까지 유지했다고 한다(홍윤희, 같은 논문). 나상진은 와족 사이에 오랜 기간 머리사냥 습속이 남았던 이유로 척박한 산간지역이라는 고립된 환경을 꼽았다. 생존을 위한 기원이 간절할수록 자연의 결실에 품는 경외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나상진, 「윈난성(雲南省) 남부 소수민족의 곡물신화와 의례-윈난성 하니족·와족을 중심으로」, 외국학연구 제31집, 2015).
이는 타이완의 산간지역 거주 원주민들에게도, 생명력이 왕성한 구근식물의 비밀을 발견하기 이전의 세람섬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환경이 척박할수록, 대상에 무지할수록 적응하려는 인간의 심리는 두려움에 휩싸이고 행동은 과격하면서 양가적 폭력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그러한 폭력의 정점에 머리사냥이 있었음을 신화는 말하고 있다. 인간의 신이 폭력적인 건 신을 발견한 인간이 폭력적이라는 의미다.
‘머리사냥’의 폭력성, 현대에도 남아있어
홍윤희는 머리사냥이라는 폭력성은, 폭력 주체가 가장 큰 희생을 치름으로써 자연과 문화를 역전시킨 결과라고 해석한다. 고대인의 세계관에는 그들이 처한 환경에 따르는 생태윤리가 확립돼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울러 생태위기 시대에 인간 중심의 생태주의를 벗어나 생물과 무생물을 아우르는 자연과학적 사고로 확장할 것과, 사회·정치적 생활 양식을 새로운 생태주의 패러다임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덧붙인다. 생태주의의 옳고 그름은 생존 문제와 직결된 이슈이므로.
홍윤희가 쩌우족 신화로 입증한 것처럼, 이상에서 말한 머리사냥의 기원은 농경 사회뿐 아니라 수렵사회에도 해당할뿐더러 인류 보편의 사고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머리사냥을 죽음과 출산이라는 생식력의 비밀이라고 통찰한 옌젠과 니게마이어의 사유와 통한다.
필자의 칼럼에도 이러한 고대인의 세계관이 반영돼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1년 반 써온 필자의 글이 희생제의에 내어준 비중은 컸다. 자청비가 농경의 신으로 인정받는 여정에 살인과 재생이 반복된 것이나, 뽀뽈부에서 공놀이에 사용되던 잘린 머리 역시 죽음을 거쳐야 재생이 가능하다는 자연의 이치를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머리사냥이 시작된 고대는 생존을 위해 “공격적 행위, 정형화된 의식 행위, 자기 세력권의 방어, 계층적 위계 질서의 유지” 따위를 관장하는 R-영역이, 포유류로 살아가는 변연계의 공감영역과 대등하게 작동하던 시대 아니었을까. 현대라고 ‘머리사냥 시대’의 폭력성이 덜하지는 않다.
욕망이 지배할수록 본능에 따르는 충동은 커지고 폭력적인 사회로 나아간다는 걸 요즘 벌어지는 각종 사건·사고는 말해준다. 파충류와 공유하는 인간의 뇌 영역은 소멸한 것이 아니라 위태롭게 감춰져 있을 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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