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진압해버렸다면...
[김경은 소설가가 쓴 대체역사] 12월12일 그날 밤 8공수특전여단장이 그대로 서울로 진격해 전두환과 반란군을 진압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1997년 전두환 무기, 노태우 징역 17년형
긴박하고 긴 밤이었다
그날 체포된 전두광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죄목은 군 형법상 반란죄였다. 반란자들의 수괴였으므로 최고형에 처하는 게 당연했다. 최측근 노태건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반란모의 참여, 반란 중요임무 종사, 불법진퇴, 지휘관 계엄지역 수소(守所)이탈, 상관 살해, 상관 살해미수, 초병살해의 죄목을 달고, 무기징역에서 강제 전역까지 그날 행위와 결과에 따라 주변의 별들도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다만 간부급을 제외한 사병들에게는 귀대 조치후 병영 이탈 금지령이 내려졌다.
그날, 긴박하면서도 긴 밤이었다. 전방의 병력이 서울로 향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윤흥중 여단장은 께름칙했다. 윤과 노, 두 사람이 직접 대면할 일은 별로 없었다. 후임 여단장으로 그와 바통터치 한 게 둘 사이에 가장 굵게 새겨진 인연이면 인연이랄까.
전두광을 그림자처럼 따르는 이가 노태건이라는 사실은 윤을 긴장케 했었다. 그 일을 두고 윤 여단장은 참모 가운데 한 사람인 함립 중령과 교감한 바 있었다.
“그들에겐 전적이 있습니다!”
윤도 그 점에 주목했다. 유신헌법이 공포된 육 년 전엔 초동 발각되었고 그보다 십 년 전에도 비슷하게 무마됐다면, 이번에 전두광은 다리를 건넜다. 비겁한 역대 수괴들이 그랬던 것처럼 건너자마자 다리를 봉쇄해버렸다. 다리는 적과 아를 가르는 경계였다. 무겁게 가늠해도 모자랄 경계를 초개처럼 가르는 가벼움이 그날 그들을 신출귀몰 날뛰게 한 비결이다. 전과 노, 두 사람이 나란히 있는 그림은 그 자체로 불길한 예감이었다. 전은 습관성에다 중독자였다.

행동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날 두 번째 회군 앞에서 윤이 내린 결단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작동했다. 하나 노의 인상, 둘 하극상, 셋 결정적 전화 한 통이었다.
사실 판세는 어느 측에 유리하다고 단언할 수 없었다. 참모총장을 체포할 때만 해도 전두광은, 재가만 받으면 일은 끝난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이 그렇게 시간을 끌 줄 누가 알았겠나. 노태건은 전방의 병력을 서울로 돌려 궁지에 몰린 전두광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는 장군들은 없었다. 그러나 긴급 상황에서 군인이 안다는 기준은 하나다. 행동으로 옮기느냐, 아니냐. 오직 그것으로 판단할 일이었다.
8공수특전여단장 윤흥중은 처음 이태신 수경사령관으로부터 상황을 전해 듣고 망설였다. 받아들이지 않아도 하극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길게 끌지는 않았다. 1개 대대를 긴급 대기시켰고 자정을 넘기는 사이렌 소리에 맞춰 출동 명령을 내렸다. 십 분도 지나지 않아 대대는 경인고속도로를 탔다. 같은 시간, 반대쪽의 2공수특전여단도 참모장 이기룡 대령의 지휘로 신월동을 내달리고 있었다. 양 공수부대의 목적지는 서울 세종로, 청와대를 둘러싼 경복궁 일대였다. 반란군이 모여 있는 곳은 경복궁 내 수경사 30경비대대였다.
김진영이 왜 나를 설득하려 하는가
그러나 8공수와 2공수는 중간에 방향을 되돌려야 했다. 통행금지 시간이었으므로 이들의 질주를 가로막은 정체는 교통체증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수경사 소속 김진영 대령이 8공수의 회군을 설득했다. 하필 그가 나선 상황이 윤은 거슬렸다. 김진영(본명)이 명령받아야 할 상관은 누군가? 전두광의 수족이 되어 직속상관인 이태신 사령관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하다니, 하극상 아닌가? 하지만 이대로 내달리는 게 무슨 상황을 의미하는지 사태의 엄중성을 아는 윤은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8공수와 2공수 가운데 회군을 멈춘 것은 어느 쪽일까? 답은 번연히 나와 있는 듯했다. 한쪽은 소속이 다른 수경사령관의 요청이었고, 다른 쪽은 직속상관의 명령을 수행 중이었으나 육군지휘부가 나서서 막고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 지휘부에서 친히 달려왔으니, 제아무리 직속상관의 명령이 있었더라도 일개 대령 이기룡은 도리 없었다. 그러자 그의 상관인 도희철이 죽을 힘을 써서 부대로 달려갔고 부대는 명령을 받들어 다시 출동을 준비했다. 상명하복은 군의 원칙이었다. 그러나 그런 원칙이 도희철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그는 상관인 공수특전사령관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
‘똥별’이 된 기라성들
도희철은 다리 저쪽의 전두광과 한패였다. 명백한 하극상이요, 내란임이 안개 속에서도 드러났다. 2공수 출동 소식에 놀란 육군지휘부는 B2 벙커를 팽개치고 수경사 CP로 줄줄이 대피했다. 벙커에는 헌병감과 그를 지키는 사병들만 남았다. 결단의 시간에 고유권한인 작전 명령을 포기한 채, 강고한 요새를 버리고 기라성(綺羅星) 같은 장군들이 전장을 떠난 것이다. 줄행랑치는 이들에게 ‘후퇴’는 언어도단, 우르르 몰려가는 ‘별’들에게는 ‘기라성’이라는 말조차 붙이기 아까웠다. 소식을 듣고 반란군들은 한껏 고무된다. 끊어진 다리 양쪽으로 ‘똥별’들이 즐비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에서 전두광은 망나니 춤을 추고 있었다. 애초에 함께 다리를 건넌 뒤에도 우왕좌왕하던 무리는 곧 광포한 우두머리 뒤로 몰려가서 줄을 섰다. 배신과 하극상의 무질서가 난무하며 마구 휘두르는 칼날에 무고한 희생자들이 속출했다. 전 군의 목을 조이며 인질극을 벌인 시간이었다. 용이 됐든, 뱀이 됐든 머리만을 고집하는 꼴사나움, 눈에 검은 띠를 가리고 두억시니처럼 마구 날뛰었다. 그날 전두광이 각인한 아군은 그의 뒤에 줄지은 ‘똥별’들뿐이었다.
그 속을 꿰뚫고 행동한 군인은 이태신 수경사령관, 김준엽 헌병감, 공수혁 특전사령관이었다. 그러나 전두광이 그렇게까지 비열하게 나올 줄은 그들도 몰랐다. 그들 셋을 요정에 잡아두고 반란을 일으켰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상황을 파악한 뒤에는 무슨 조치가 필요한지 정확히 알았다. ‘발견 즉시 체포하라.’ ‘저항하면 사살해도 좋다.’
모든 것은 단순했다. 행동하는 군인에게 복잡한 행동강령을 요구하면 그게 난센스였다. 그랬으므로 평소 위아래 없이 오만한 전두광의 태도는 이들에게 눈엣가시였다.막상 임무는 희생을 치르고 우여곡절 끝에 완료되었다. 자신에게 무슨 권한이 있는지 모르는 육군참모차장과 국방부 장관이 갈팡질팡하고 꿩처럼 머리를 숨기는 바람에 희생자들이 발생했다. 공수혁 특전사령관은 아들처럼 보살피던 4공수여단장 하창수의 공격으로 총상을 입었고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 오진호 소령은 목숨을 잃었다.
그 시각, 8공수여단장 윤은 이 사실을 모르는 채 고속도로를 회군하고 있었다. 수경사령관의 전화를 다시 받기 전까지.
노의 사사로움은 그때부터 위험했고
윤은 복잡한 심경으로 노태건과의 인연을 떠올렸다. 노가 떠난 자리에 후임으로 앉으면서, 윤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저절로 알게 되었다. 노는 8공수가 창설되던 1974년 부임한 첫 여단장이었다. 그래선지 8공수 곳곳에는 그의 자취가 묻어 있었다. 사병들이 노가 작사, 작곡한 <특전사 8여단가>를 부를 때면 그가 여전히 8공수여단장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늘 윤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셈이었다.
노는 온화한 듯 극성맞았다. ‘샌드리 백’ 백 개를 들고 베트남에서 깜짝 귀국한 일화를 읽었을 때였다. 첫날 책상 맨 윗서랍에서 발견한 노트에는 그의 필체로 보이는 메모가 빼곡했고 중간 페이지쯤에 있던 글로, 그가 20사단 소속으로 베트남에 파병됐을 때 일이었다
“위험한데요.”
올려다보는 윤의 눈빛이 날카로웠는지 함 중령은 자세를 고치며 덧붙였다. “청소하던 사병이 건네는데 하필 그 페이지가 펼쳐졌습니다.” 함은 훔쳐본 게 아니라는 뜻을 피력했다. 베트남에 파견된 사단장에게는 매달 간식과 일상용품을 채운 수백 개의 샌드리 백이 내려왔다. 소속 부대인 20사단 장병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기겠다며 그 자루에 주목했을 노의 눈썰미, 훈훈한 풍경이건만 윤의 낯은 저도 모르게 찌푸려졌다.
‘전쟁터에서 사사로이…’ 군에서 정을 엮는 가족주의는 당사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위험했다. 함 중령은 대뜸 그 점을 지적했다. 윤의 상관 공수혁은 골프를 치자고 컨트리클럽으로 몇몇 간부를 부를 때마다 노의 얘기를 꺼내곤 했다. 모나지 않은 데다 꼼꼼하고 성실한 노가 오죽 주의 깊게 상관을 보필했으려나. 바로 그런 점이 하극상도 아무렇지 않게 일으키게 했다. 그의 최종 가족은 ‘하나회’였다.

결정적인 전화 한통, 진압하러 간다!
윤 8공수여단장은 수경사령관으로부터 다시 전화를 받았고 그의 요청은 곡진했다. 다시 방향을 돌렸으나 철군 명령이 다시 떨어졌다. 부천 I.C를 지났을 무렵이다. 이번에는 육군참모차장이 수화기 건너편에 있었다. 회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협정’이라는 말이 걸렸다. 반란군과 협정이라니, 철수하는 걸 보고난 후 회군하는 게 이치에 맞았다.
잠시 망설이는 윤에게 참모장이 전화를 걸어 같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철수하는 게 좋겠다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누가 그러더냐는 질문에 어딘지 모르겠다는 답이 넘어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답답한 마음에 저절로 튀어나온 말투였다. 평소 윤은 참모장에게 예우를 다하고 있었다. 부대 내 참모장은 여단장보다 낮은 직급이었지만 하대할 지위는 아니었다.
“글쎄 대세가 기울었으니 귀대하는 게 좋겠다고…… 아무래도 돌아오십시오.” 갑자기 무력감을 느끼며 윤은 전화를 끊었다.
쿠데타 중독자들의 말로(末路)
잠시 그대로 있던 윤은 참모장에게 전화를 되걸었다. 두 번씩이나 돌아가려니 허탈해서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전화는 함이 받았다. 참모장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는 것이다. “소속을 밝히지 않았지만……” 보안사의 문일평 목소리 같다고 했다. “제 의견은 평소에 충분히 전달드렸습니다만.” 윤이 묻자 건너온 함의 대답이었다.
함은 보안사에서 문일평 수하로 잠시 있었으나 잡음을 일으켜 보직 변경된 신분이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보안사에서 왔으니 좌천이었다. 문의 사무실에는 전두광의 지시를 받아 터키, 칠레, 아르헨티나 등 온갖 사례의 쿠데타란 쿠데타 서적이 수집돼 있었다고 한다. “말도 마십시오. 아무리 친위였다지만 중독자예요. 롤모델이 누군데.” 함이 흥분해서 말한 적 있었다.
윤은 그대로 서울로 진격할 것을 운전병에게 명했다. 8공수의 대대 병력은 그대로 내달려 경복궁 앞에 멈춰섰다. 30경비대대로 쳐들어가자 알아서 손을 드는 투스타, 쓰리스타 사이에서 슬그머니 진압군 쪽으로 와서 서는 이 별, 벽에 바짝 붙어 뒤로 숨는 저 별까지 있었다.
그 속에서 전두광은 홀로 격렬히 저항했다. 줄줄이 엮어 몰고 나올 때도 주저앉으며 대열을 이탈했다. 노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한 줌도 안 되는 그들의 수괴, 중독자들의 말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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