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 인간이 지어낸 기묘한 이야기들
[김경은의 ‘신화의 시대, 시대의 신화’] 민담보다 먼저 형성된 신화 ‘이야기’였기에 오늘날까지 이어져 인간은 겨울밤 ‘이야기하기’를 즐겼다
겨울이 깊은 1월이다. 냉‧온대와 대륙성, 계절풍 기후의 특징이 나타나는 한반도는 연간 기온의 변동 폭이 큰 만큼 겨울이 더 혹독하게 느껴진다. 최근에는 이상 기온으로 계절의 전형성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의 겨울은 춥고 길다. 긴긴 겨울밤을 생각하면 ‘독서의 계절’은 가을보다는 겨울이 더 제격일지 모르겠다.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동물 아닌가? 이러한 인간의 성격을 가리켜 호모 나랜스(Homo Narrans 이야기하는 사람)라 부르기도 한다.
불안을 잊고 안정을 취할 때나, 무료함을 떨칠 때 이야기(하기)는 효과적이다. 들판의 생명이 마르는 날씨 험한 겨울, 기나긴 밤을 흘려보내는 데 이야기만 한 게 또 있을까. 아파나세프가 편집한 천여 페이지의 『러시아 민화집』(서미석 역, 현대지성사, 2004)을 펼쳐놓은 겨울밤은 얼마나 든든할 것인가. 민담보다 먼저 형성된 신화의 성격에는 여러 측면이 있지만, 그것이 이야기라는 사실은 신화가 오늘날까지 생명을 이어오게 한 강력한 특징 중 하나일 것이다.
신화의 역할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가장 보편적으로는, 우리는 어디서 생겨나 어떻게 살았고 어떤 변곡점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는지 부족의 역사를 이야기로 만들어 다음 세대에 전하는 역할을 들 수 있다. 또 강력한 통치 이념으로 자리 잡아 국가를 통일하는 역할도 있다. 삶에 지혜를 주는 정보를 이야기에 담아 전하기도 하며 자연의 섭리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설명을 얻기도 한다.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말하는 창세기라든지, 인간의 수명은 왜 유한한지, 하늘은 왜 그렇게 높은지 따위의 거대한 질문에 답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제비 꼬리는 왜 가운데가 갈라졌는지, 십이간지 동물에 왜 고양이가 빠졌는지, 일상의 시시콜콜한 현상을 위트와 해학으로 설명하는 이야기도 있다. 무엇보다 신화에는 역사와 이데올로기, 정보, 현상에 대한 설명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하기’ 그 자체를 즐기는 기능도 있다.

“다 끝났다. 나는 바람을 죽였다”
러시아 북동부에 사는 축치족 원주민들이 구술한 그들의 신화(블라디미르 보고라스, 『축치족 신화』 김민수‧김연수 역, 2015)는 언제나 “옛날에”로 시작한다.
옛날에 노부부가 있었고 둘 사이에는 과년한 딸이 있었다. 어느 날 딸은 해골을 주워서 모자를 씌우고는 자기 방에 숨겨놓았다. 해골을 보며 웃는 딸의 웃음이 침실 밖으로 새어 나오자 어머니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딸은 모자를 보고 웃는다고 시침을 뗀다. 해골을 가방을 겸한 베개에 숨겨두었지만 이내 어머니에 의해 발각되고, 딸이 무언가에 씌었다고 생각한 노부부는 딸에게서 도망칠 계획을 세웠다. 딸을 데리고 땔감을 마련하러 간 어머니는 묶을 끈을 가져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집으로 돌아왔고 딸을 버렸다.
노부부는 천막집을 해체해 배에 싣고 출발했으며, 이를 발견한 딸이 달려와 매달렸지만 매몰차게 뿌리쳤다. 우는 여자 앞에서 해골은 처음 말을 꺼냈고, 불을 피워 그 속에 자기를 던지라는 요청이었다. ‘얘기할 상대마저 없어지면 혼자 남는데 무슨 말이냐’고 여자는 따졌고, 몸을 얻을 방편이라며 해골은 고개를 들지 말라는 당부까지 했다. 한동안 타오르던 불길이 사그라들자 멀리서 순록 떼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가죽옷을 차려입은 어엿한 남자가 마차를 몰아 그녀 앞에 섰다.
시간은 흘러 추위가 시작되는 초가을, 딸의 부모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을을 발견하고 찾아왔다가 딸을 만났고 딸은 이들에게 순록을 잡아 대접했다. 일부러 골수에 뼛조각을 넣었고 뼛조각이 목구멍을 찌르는 바람에 여자의 부모는 죽었다. 이 이야기는 내용만 보면 부모를 죽이는 패륜이지만 신화에 윤리‧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비판은 일단 뒤로 미뤄두자. 구술자는 마지막에 이야기를 이렇게 갈음한다. “다 끝났다. 나는 바람을 죽였다.”
구술의 주인공들이 사는 지역은 러시아 북동부 추콧카 반도다. 눈보라가 계속되는 동안은 사냥과 여행을 중단하고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야 한다. 이야기가 하나 끝날 때마다 기원을 담아 “바람을 죽였다”고 얘기하고, 또 돌아가며 이야기를 하여 길고 지루한 날을 흘려보낸다. 집 안에 발이 묶여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바람도 멈추게 마련이고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게 된다. 이야기가 눈보라를, 바람을 이기는 것이다. 그야말로 킬링타임 이야기지만, 킬링타임 이야기의 힘이기도 하다.
“이것이 전부였다”
이런 이야기의 속성은 아메리칸 인디언 신화에도 두드러진다. 친구인 검은 표범이 죽은 딸을 보고 싶다며 저승에 가겠다고 나섰고, 만류하던 코요테는 정작 자신이 똑같은 일을 당하자 말리는 딸의 말도 무시한 채 저승으로 간다. 이승에서 하던 놀이가 저승길에도 존재했지만 거기 사람들은 밤에만 돌아다니는 탓에 코요테는 외로웠다. 딸과 동행할 때는 언제고 홀로 떨어져나와 길을 가는 코요테를 보면 즉물적이다.
도중에 개구리 소년들이 먹을 것을 달랬지만 모른 척했고, 개구리 소녀들이 먹을 것을 외쳤을 때는 말벌을 꺼내 골탕을 먹인다. 개구리들이 쫓아오자 눈을 내리게 했고 푹푹 빠지는 길을 계속 갔으며 쫓아오는 개구리들을 피해 “열려라, 나무”를 외치고 그 안으로 들어가 1년을 버텼다. 거기서 코요테가 먹은 요리는 자신이 배설한 똥이었으며 그곳을 떠나 길을 가다가 딱따구리 사냥에 실패했다.
코요테는 길을 가다 힘들다며 항문을 떼어냈고 팔 한쪽을, 다리를, 머리를 차례차례 떼어내 던졌으며 나중에는 도로 항문을 주웠고 없어진 눈 한쪽을 찔레 열매로 만들어 달기도 한다. 도박을 할 때마다 졌으며 코요테가 달리자 검은 표범도 달렸고 노파로 변장한 코요테를 쫓아온 사람들이 변장한 코요테에게 코요테의 행방을 묻지만 코요테가 시치미를 떼는 바람에 사람들은 빈손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코요테가 마침내 하는 말은 “너희들은 절대 나를 못 이긴다”였다(김남일, 『꽃처럼 신화』, 2017).
이 이야기를 보면, 처음에 등장했다 사라진 검은 표범이 후반에 갑자기 튀어나오고 코요테는 되는대로 행동하며, 개구리 소년이 등장하니 소녀가 출현하고, 고개 너머 호랑이에게 팔다리를 떼어주는 우리 민담과 유사한 화소도 끼어든다. 신체의 일부를 하나씩 떼어냈으니 그것들을 다시 붙이는 장면도 나오고, 이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가는 이야기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 그렇지만 ‘아무 말 대잔치’면 어떤가. 둘러앉아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이야기는 마지막을 이렇게 끝맺는다. “이것이 전부였다.”
이는 바람을 죽이고 끝났다고 선언하는 축치족 이야기의 다른 버전 아닌가. 아메리카 원주민은 빙하기 때 아시아에서 베링해협을 건너간 사람들이므로 뿌리가 같은 두 지역 신화는 유사한 화소를 많이 공유할 수밖에 없다.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조한욱 역, 문학과지성사, 1996)에는 이들이 이야기를 어떻게 확장해나가는지 알려주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북아메리카 인디언인 주니족 대표단의 통역사로 일하던 프랭크 해필턴 커슁은 이들과 돌아가며 서로 이야기를 들려준 일이 있었다. 그는 이탈리아 민담집에서 본 「수탉과 생쥐」를 풀어놓았고 1년이 지나 다시 방문했을 때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수탉과 생쥐」의 모티프가 살아 있는, 그렇지만 이들 부족 방식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 원주민이 얼마나 이야기에 진심인지, 낯선 이야기에도 얼마나 열려 있는지 알려주는 에피소드다. 그러니까 공통의 조상에서 갈라진 이들은, 날씨가 험한 추콧카반도에서만 이야기를 즐기는 게 아니었다.
아라비안나이트와 데카메론의 공통점
그렇다고 유전자가 거의 일치하는 축치족과 아메리카 원주민만이 이야기를 받치는 것은 아니다. 『아라비안나이트』에서 샤리아르 대왕의 만행을 중지시킨 것은 남다른 이야기 솜씨를 지닌 ‘세헤라자데’였다.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피렌체 교외의 별장에 모인 남녀 열 명이 하루 하나씩 돌아가며 열흘 동안 펼치는 이야기 형식이다. 이들은 중세에 창궐하던 페스트 때문에 외딴 교외에 모였다.
코로나19로 3년 넘는 세월에 걸쳐 팬데믹을 통과한 현대인에게 데카메론의 상황과 이야기의 힘은 이전과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외부와 단절한 팬데믹 시절의 현대인은 넷플릭스 같은 OTT를 이용해 드라마를 즐겼다. BTS의 팬덤 파워로 K-pop이 확고한 위상을 차지한 데 이어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연이어 히트하면서 한국이 콘텐츠 강국으로 확실히 자리 잡은 것도 이 시기였다. 드라마, 영화는 물론 K-pop도 유니버스를 형성하는 단계로 나아가며 서사를 획득했다. 어쨌든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이야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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