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물 오르는 버드나무, 모계신앙의 ‘지킴이’
[김경은의 ‘신화의 시대, 시대의 신화’] 고려·조선 태조 로맨스에 등장한 버들잎 동명성왕의 어머니 유화부인부터 한라산 지은 설문대할망, 그리고 주안댁 가족 지킨 버느나무..다정한 ‘버드낭구집’
우리나라에서 봄의 전령은 단연 버드나무다. 더 정확히는 버드나무 종류다. 한겨울 추위가 물러가는 2월 말이면 개천가에서 물오른 버들개지를 볼 수 있다.
그 버들개지가 봄을 알리는 사진으로 올라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 완연한 봄이다.
버드나무는 물을 좋아하여 냇가나 강, 호수 가에서 잘 자라며 전국 어디서나 흔히 보는 수종이었다. 그런 만큼 도시 어디를 가나 ‘버드나무집’이라는 간판을 내건 음식점이 쉽게 눈에 띄었으며 지금도 인터넷에 치면 이 이름이 여전히 많이 올라온다.
로맨스 신화속 ‘매파’ 버들잎
어디든 있는 버드나무는 급체를 염려해 물 한 바가지에 띄운 나뭇잎으로도 곧잘 등장했다. 로맨스 스토리에 출현해 매파의 역할을 해낸 셈이다. 버들잎이 ‘낭만 소품’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는 육백 년, 천 년 전까지 훌쩍 거슬러간다.
이성계가 신덕왕후를 둘째 왕비로 맞은 인연이나 태조 왕건이 신혜왕후를 만나는 장면에는 공통으로 물과 버들잎이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고려와 조선의 태조는 둘 다 버들잎 띄운 물 한 바가지를 얻어 마시고 이들 왕후를 맞이했다.
이들보다 윗대의 역사에서 버드나무 하면 연상되는 인물로는 유화(柳花)가 있다(버드나무 柳, 꽃 花-편집자 주). 유화부인은 활 잘 쏘기로 유명한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을 낳았다. ‘물의 여신’ 유화는 최근 황석영이 쓴 <철도원 삼대>(창비, 2020)에서 친근하게 살아 움직이는 인물로 재탄생한다.
철도원 삼대 집안에는 주안댁이라는 신묘한 인물이 구전돼 5대손에 이른다. 주안댁은 1대 철도원이던 이백만의 아내로 호칭에서 알 수 있듯 인천 주안 출신이다. 인천은 바다를 낀 도시로 주안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천일염전이 조성되었고 그녀의 아버지 ‘만이 아저씨’는 주안염전에서 일하던 염부였다.
주안댁이 이백만과 결혼하는 데는 만이 아저씨가 큰 역할을 했다. 천지개벽한 세상에서 기술 가진 이백만의 능력을 높이 사 딸과 맺어줄 계략을 꾸민 것이다. 그가 사윗감을 집으로 불러 술을 먹이고 재운 뒤, 같은 방에 밀어넣은 딸과 혼인시키는 행위는 해모수를 상대한 하백의 음모와 다르지 않다.

해모수 신화속 유화부인
웅심연(熊心淵)에서 놀던 하백의 세 딸은 해모수에게 유인돼 구리집에서 술을 마시고 잔뜩 취한다. 낯선 남자가 나타나자 두 동생, 훤화와 위화는 도망가고 첫째 유화만 해모수에게 잡히고 만다. 이를 안 하백이 크게 노했고 해모수는 유화가 일러준 대로 용거(龍車)에 올라 하백을 찾아간다.
지략 대결을 벌인 끝에 하백은 그를 ‘천제의 아들’로 인정했다. 성혼을 허락하고도 사윗감이 못 미덥던 하백은 연회를 베풀어 곯아떨어진 해모수를 가죽자루(革轝)에 가둔다. 여기 유화를 밀어 넣고 용거에 실어서는 물에 띄웠다.
이백만은 미래의 장인 의견에 따랐지만 해모수는 도중에 유화의 금비녀를 뽑아 가죽자루를 뚫고 탈출했다는 점이 다를 뿐, 두 서사의 중요 화소는 상당 부분 일치한다. 이상의 같은 흐름, 다른 결말은 해모수가 신계의 인물이라면 이백만은 장삼이사라는 데서 비롯한다.
해모수는 어떤 신이었을까
‘왜 해모수는 한사코 유화를 떠났을까?’ <동명성왕>을 동화로 읽은 어릴 적부터 품어온 의문이었다. 언제든 취하고 버리는 그리스신화의 남성 신들처럼 해모수를 이해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당시 부족 간의 세력다툼으로 해석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해모수의 행위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성간 애정 문제로 또는, 권력다툼으로 해석해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남는다. 유화의 말을 들어 굳이 용거를 끌고 용궁까지 갈 성의면 해모수에게도 마음은 있었다는 뜻이다. 남녀상열에 불꽃이 튀며 한창 도파민이 나올 때고 밀월기간이라는 것도 있다.
의문은 전관수(「주몽신화의 고대 천문학적 연구」, 2008)의 가설이 풀어주었다. 그에 따르면 해모수와 유화의 이야기는 음력 10월이면 고구려에서 벌이던 수신제(隧神祭) 시기, 그믐달이 뜨는 날부터 초승달이 뜨는 날까지의 사건이다.
아침에 세상을 다스리고 저녁이면 하늘로 올라가는 해모수의 행적은 태양의 운행과 일치한다. 동부여를 떠나는 주몽에게 씨앗 주머니를 쥐여준 유화는 ‘곡식의 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농사와 밀접한 ‘달의 신’으로도 인식된다.
이 신화는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 보이지 않는 해와 달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고대인들의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만날 일 없는 해와 달의 궤적을 해모수와 유화의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다.
해모수가 만든 구리집, 하백의 궁, 하백이 둘을 가둬 띄운 가죽자루는 모두 빛이 새어나오지 않는 공간이다. 날이 밝을 무렵, 물 위로 떠오르기 직전 해모수는 가죽자루에서 탈출해야 하는 것이다.
한라산을 지은 ‘설문대할망’으로
인간계의 주안댁은 살아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품 넉넉한 대모신의 면모를 보여준다. 가장인 남편이 사실상 부재한 집안에서 두 아들을 살뜰히 거둬 먹이며 시누이 막음이, 며느리 신금이와 함께 모계사회를 구가한다. 주안댁은 두 아들이 어릴 때 죽었으니 큰며느리 신금이와는 사후에 대면한다. 죽어서도 집안일에 관여하며 막음이 고모와 함께 두 아들을 키웠고 집안에 들인 며느리들 앞에도 나타난 것이다. 남편과 둘째 아들은 그녀가 죽어서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는데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아서 믿지 않았는지 믿지 않아서 나타나지 않았는지 그 선후 관계는 분명치 않다.
을축년(1925년) 대홍수 때는 자칭 ‘제물포 갯것’이라던 출신답게 물에 빠진 사람들을 족족 건져내어 며칠을 거둬 먹이며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실현한다. 살아 있을 때의 행적이었으며 오백 명의 아들을 낳아 먹여 살린 ‘대모신’ 설문대할망의 스케일이다.
둘은 죽음을 맞는 비극적 순간마저 희화화된 모습으로 일치한다. 한 자루나 되는 고구마를 삶아 몇 개 먹고, 한밤중에 나머지를 먹어치우다 즉사한 주안댁의 모습이나 깊은 바다도 아니고 기껏 산정호수인 물장오리에 빠져 죽는 설문대할망의 최후나 우스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설문대할망이 누군가.
앞치마에 흙을 나르다 뚫어진 구멍으로 새어나온 흙이 오름을 형성하고 마지막으로 부은 흙이 한라산이 되었다는 창세신화의 주인공 거녀신(巨女神)이다. 평소 한라산을 베고 누우면 관탈섬에 다리를 걸쳤고 제주 앞바다에서 빨래를 하느라 한라산에 걸터앉아서는 걸리적거리던 뾰족한 정상을 떼어내버린 이력의 소유자다.
퇴조하는 모계신앙의 ‘지킴이’ 버드나무
설문대할망의 어이없는 죽음은 모계신의 퇴조를 의미한다. 두 아들 중 두쇠는 옥사하고 한쇠는 월북한 뒤, 막음이 고모마저 만주로 떠나자 주안댁도 더 이상 세상에 현현하지 않는다.
<철도원 삼대>는 한국소설에 비어 있는 식민지기 노동운동사를 근대자본주의의 상징인 철도와 엮어 형상화했다. 소설의 주요 무대인 영등포와 인천이 1899년 개통한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으로 연결되면서 서사가 펼쳐진다.
우리 시대의 대가 황석영은 역사소설이자 리얼리즘 색채가 짙은 작품에 왜 주안댁 같은 인물을 등장시켰을까?
주안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여성서사이자 가족서사는 엄혹한 시절에도 일상은 있었음을 이야기하면서 집안을 끌어가는 수평적 관계의 모계사회를 구현한다. 때로는 유화가, 때로는 설문대할망이 연상되는 주안댁의 서사는 탄압-저항, 밀정-활동가의 숨 막히는 대결에 숨통을 틔워준다.
이를 황석영은 소설에 끌어들인 ‘민담’ 기법이라고 말했다. 그의 표현으로는, 민중의 일상이 쌓여 역사가 되려면 ‘구라’가 필요하고 이것이 민담이다.
주안댁이 활약하던 시절, 철도원 가족의 집은 버드나무가 지켰고 사람들은 그 집을 가리켜 ‘버드낭구집’이라고 불렀다.
유화를 닮은 주안댁은 어디서든 자라고 아무 때나 나타나는 우리 곁의 다정한 버드나무, 그 나무가 드리운 ‘버드낭구집’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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