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오랜 골치 ‘홍수’, 신이 내린 벌이었을까
[김경은의 ‘신화의 시대, 시대의 신화’] 서양에선 신이 인간을 응징하고, 새 문명 창조 동양에선 홍수는 ‘자연재해’...응징의 신 없어 ‘길가메시’, ‘백년동안의 고독’ 등의 홍수신화는
‘홍수의 신’ 없는 우리나라 홍수 설화
마을을 둘러싼 논과 밭을 보며 살던 어릴 적, 가뭄과 장마, 태풍에 예민하게 반응하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작물의 상태를 쉽게 관찰할 수 있던 탓이다. 할아버지는 타고난 농부셨다. 비가 거칠게 내리는 날이면 긴 우의를 걸치고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무너지는 논둑을 막으러 집을 나섰다. 밭농사보다 논농사를 주로 짓던 집안에서 할아버지는 자식보다 벼를 더 소중히 여겼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장마나 태풍이 몰고 온 홍수로 물이 찬 논바닥에 알곡을 달고 처참히 쓰러진 벼를 보면 멋모르던 어릴 적에도 가슴이 덜컹했다. 올해는 흉년일까 걱정하지만 수확이 끝나고 나면 마을에 모여 농악놀이가 벌어지고 할아버지는 징을 울리며 어김없이 풍년가를 불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장마나 태풍은 농사 절기의 일부였고 폭풍우를 이긴 벼들은 할아버지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아 어엿한 농작물로 자라났다. 사실 수리조합이 있어 전천후농업이 가능하던 지역이라 가뭄은 큰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을 떠올리면 가뭄보다 홍수에 대한 인상이 깊게 박혀 있다.
신화학자들은 우리나라에도 홍수 이야기가 있지만, 특정한 신이 존재하지 않고 파괴한 내력이 드러나지 않는 점에서 설화의 위상에 그친다고 말한다. 구전되어온 우리의 이야기로는 ‘남매혼설화’가 있다.
세상이 물에 잠기고 남매만 살아남자 인류 번식을 위해 근친혼을 맺었으며 우리가 이들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다. 남매혼설화는 중국 윈난(雲南)성의 신화와 거의 동일한 화소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참고할 점은 있다. 동아시아 일대에는 세상을 만든 창세신화에서 근친혼으로 이어지거나, 창세신화에서 홍수신화를 거쳐 근친혼으로 이어지는 신화들이 퍼져 있다(김헌선, 「한국 홍수설화의 위상과 비교설화학적 의미」, 민속학연구 제31호).
그런데 왜 홍수신화에는 남매끼리 또는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근친상간 화소가 등장할까? 이에 대해 박계옥은, 신에게만 허용되는 금기에 대한 동경이 서려 있으며,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남매가 카오스의 상황에서 하나로 합쳐지면서 시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인류를 재창조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한국 홍수설화의 신화적 성격과 원리」, 새국어교육 Vol.0 No.75).

‘길가메시’ 서사시에 등장하는 홍수신화
대홍수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로도 유명하고 호메로스의 서사시보다 1500년이나 앞선 서사시 ‘길가메시’에도 등장한다. 우룩(Uruk)의 왕, 길가메시는 여행길에 만난 우투나파시팀에게 신들의 모임에 참석한 경위와 영생을 얻은 비결을 묻는다. 우투나파시팀의 얘기는 이랬다. 인간세상의 소란을 참지 못한 신들이 심판을 결정하면서 이를 주도한 엔릴이 앞장선다. 엔릴은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등장하는 흙, 폭풍우, 대기를 관장하는 바람의 신이자 땅의 지배자였다. 물의 신 에아는 우투나파시팀에게 이 사실을 꿈으로 계시하면서 배를 만들고 모든 생물의 종자를 실으라고 말한다.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린 그는 지시대로 배를 완성한다. 엿새 동안 폭풍과 태풍이 몰아치며 세상을 휩쓸지만 그는 배를 띄워 재앙을 피한다. 대홍수가 지나자 다그치는 엔릴에게 에아는 “슬기로운 자가 꿈에 그 비밀을 알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엔릴은 그 말을 받아들여 우투나피시팀 부부에게 영생의 축복을 내린다(N.K. 샌다즈 편역, 『길가메시』 서사시, 이현주 역, 범우사, 2019).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이윤기 역, 민음사, 2011)에도 제우스가 홍수로 세상을 응징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폭군 뤼카온에 대한 소문이 제우스의 귀에도 들어가자 제우스는 그가 다스리는 아르카디아에 들어간다. 신분을 암시하는 제우스에게 백성들은 경배하지만 뤼카온은 무례한 언행을 일삼는다. ‘죽여서 안 죽으면 신이고 죽으면 요리를 만들어 잔치를 베풀겠다’고 떠든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라진 제우스를 대신해 포로 하나를 끌어와 목을 자르고 호언한 대로 이행하는 술책마저 쓴다. 분노한 제우스는 그를 늑대로 만들고 집은 불로 다스렸으며 인간세상은 홍수에 빠뜨린다.
홍수신화 역시 세계 곳곳에 분포하며 위의 서양 신화들은 타락한 인간을 물로 심판하고 있다. 반면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이야기에서는 홍수를 천재지변으로 그린다.
중국의 홍수신화인 「사람을 만든 복희(伏羲) 오누이」(陶陽‧鍾秀, 中國神話)는 홍수가 진정되고 나자 오누이가 진흙으로 사람을 빚는 인류기원 신화다. 새가 물어다 준 씨앗을 키워 박이 열렸을 때, 49일간 큰비가 내린다. 반으로 가른 박을 타고 하나씩 차지해 살아남은 오누이는 진흙으로 각각 남녀 형상을 빚어 인류를 부활시킨다(서유원, 「중국 홍수신화와 인류 기원신화에 보이는 호로와 중국민족의 호로숭배」(아시아문화연구 제17집)에서 재인용).
백년동안의 고독, 마르케스가 그린 홍수신화는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안정효 역, 문학사상사)은 홍수신화와 근친상간의 화소로 세계관을 형성해 인류문명의 번성과 쇠락을 보여주며 철저한 파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이 창조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는 1967년에 발표한 이 작품으로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작품에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1920년대 콜롬비아에 들어온 바나나 회사와의 충돌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작품을 관통한다. 미국의 뒷마당으로 유린당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신화적이고 비현실적인 기법으로 그려낸 것이다.
마콘도라는 가상의 세계로 이주해온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슬라는 사촌지간이다. 근친상간이 지속되면서 돼지꼬리를 달고 태어난 바로 윗세대의 전례가 두려웠지만 이들은 결혼해버린다. 문제는 얼굴에 고독의 표상을 달고 나와 지나치게 금욕적이거나 정염에 휩싸이는 이 집안의 기질이었다. ‘정염파’ 큰아들 호세 아르카디아는 2세를 창녀와의 사이에서 낳고 가출했으며 집안의 혈통은 거기에서 이어진다. 막내딸 아마란타는 업둥이 언니의 연인을 짝사랑하다 이루어지려는 순간 걷어차고 조카와 썸을 타기도 하며 평생 고독과 갈등한다. 이처럼 어긋나는 관계 속에 잘못된 결정을 반복하다 6대에 이르러 돼지꼬리가 태어나며 이러한 비극은 계속 반복되리라는 암시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자손이 태어나면 (동종교배를 암시하나 싶을 정도로) 이름을 아들은 아르카디아, 아우렐리아노 가운데서, 여자는 우르슬라, 아마란타에서 따와 후대로 내려갈수록 누가 누군지 헛갈리지만 사실 이를 굳이 구분해야 할 만큼 내러티브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연금술에 빠져 발명을 꿈꾸는 부엔디아는 경제활동에는 관심이 없었고 다행히 우르술라가 굽는 동물 모양의 과자 사업으로 집안은 번창한다. 이들 부부는 마콘도의 유지로 문명 건설 1세대였다. 집안은 번창하는 자손과 드나드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으며 격에 맞춰 우르슬라는 유럽에서 호화 가구와 집기를 사들인다.

한편으로 이 집안에는 혁명과 노동자 파업에 간여하는 자손들도 나온다. 둘째 아들이자 2대손인 아우렐리아노는 보수파와 자유파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우연히 부정선거를 치르는 상황을 목격하고 혁명군에 뛰어들었고 이로써 가문은 부에 이어 명예를 획득한다. 그런가 하면 바나나회사 노동자들의 파업에 앞장선 5대손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는 대규모 파업을 주도한다. 20년간 지속된 전쟁과 대결에서 보수파와 다름없는 자신을 발견한 아우렐리아노 대령에게 남은 것은 자기부정뿐이었다. 반면 파업에 참여해 몰살당한 노동자 3000명 가운데 섞여 바다에 수장될 뻔한 세군도는 사람들을 각성시키려 하지만 사람들이 그 사태를 믿지 않았다.
비는 바나나회사의 파업에 피바람이 몰아치던 날부터 시작해 4년 11개월 이틀 동안 쉼없이 내렸다. 스스로 망각의 길을 택해 은둔하는 아우렐리오 대령과 집단 망각의 늪에 빠진 마콘도의 운명은 세상에서 잊히는 일만 남았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홍수가 마콘도를 덮었고 이때 조우한 우르슬라 아마란타와 아우렐리아노는, 영화는 옛말이 된 넓고 황량한 집안에 둘만 남아 고독에 몸부림치던 중이었다. 사생아로 갇혀 지내던 아우렐리아노와 유럽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우르슬라 아마란타는 그들의 촌수조차 몰랐다. 이렇게 6대손 아우렐리아노와 그의 숙모 사이에서 돼지꼬리 아이가 태어났으며 산모는 사망한다.
작품 마지막에는 아우렐리아노가 가문사를 기록한 양피지를 해독하는 순간 마콘도는 사라질 운명이고 되풀이될 수 없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철저한 파괴는 망각과 고독을 넘어 재창조를 반복하리란 점을 대홍수라는 신화의 세계와 소설은 암시한다. 부엔디아 가문사를 보더라도 세상은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재생과 건설은 삐딱선을 타면서 이어진다.
어릴 적, 그때는 몰랐지만 홍수 난 논자리는 재생과 수확으로 이어졌고 할아버지가 농사를 짓는 동안 반복되었다는 비밀을 나는 아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