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끓는 지구, 신화는 태양을 탓한다

[김경은의 ‘신화의 시대, 시대의 신화’] 신화속 가혹한 지구 날씨 이야기 대부분 다수의 태양이 등장해 혼란 영웅은 활을 써서 태양을 떨어뜨리고 SF소설은 두 태양 사이에 갇힌 ‘지구’ 묘사

'천지왕본풀이'에 등장하는 대별왕과 소별왕
'천지왕본풀이'에 등장하는 대별왕과 소별왕

신화에도 ‘지구 열대화’ 있다

장마가 끝나자 한여름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8월 들어서기 무섭게, 하루 한두 번 폭염주의보를 알리는 문자가 쌓여간다. 한낮의 태양은 머리 꼭대기에서 이글거리고 숨 막히는 더위가 외부활동을 힘들게 한다.

폭우로 전국에 사상자가 발생하던 지난 7월, 미국 남부에서는 폭염으로 선인장이 말라 죽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는 11년 만에 눈이 내렸다. 중국 베이징은 1951년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72년 만에 고온 일수 최다치를 기록했으며 하얼빈이나 쑤이저우(随州)에서는 정전 등으로 가축이 폐사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이상 기온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몇 해 전부터 부쩍 강도가 높아졌다. 올해는 5월부터 우리나라 기온이 영상 30도를 웃돌기 시작했으며 시베리아의 6월은 40도에 가까워 이상 기온을 경고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가 아니라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라고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위험을 감지하지 못해 서서히 죽어가는 ‘끓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인류는 이대로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지구는 항상 춥거나 뜨거웠고 인류는 모처럼 ‘지구답지’ 않은 온화한 시기에 살고 있다는 설도 한편에서는 제기된다. 이를 인정하더라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증대시키는 인간의 온갖 활동이 항상 사나웠던 지구의 환경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활로써 해를 떨어뜨린다

‘사나운’ 지구의 날씨를 뒷받침하는 신화로 홍수신화가 세계에 널리 퍼져 있으며 동아시아의 여러 민족 신화에는 가뭄을 물리치는 신화도 있다. 가뭄 신화로는 『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하는 명사수 ‘예(羿)’의 영웅담을 비롯해 제주도 신화 「천지왕본풀이」의 주인공 대별왕과 소별왕 이야기, 몽골의 에르히 메르겐, 일본의 아만자쿠, 아이누의 아이누락쿠르 등의 일화가 있다.

기원전 4세기경에 지어진 '산해경'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사전이자 주술적인 교과서다. 여기에 등장하는 명사수 '예'
기원전 4세기경에 지어진 ‘산해경’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사전이자 주술적인 교과서다. 여기에 등장하는 명사수 ‘예’

이 가운데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신화는 ‘예의 영웅담’일 것이다. 예는 동이(東夷)족의 주신이라 이예(夷羿)라고도 하는데, “제준(帝俊)이 하사한 붉은 활과 흰 주살”로 하계의 어려움을 없애고 백성들을 고통으로부터 구제한다(『산해경』, 정재서 역주, 민음사, 2014). 수렵민인 북방민족 출신답게 활을 메고 떠나 한꺼번에 떠오른 열 개의 태양 가운데 아홉 개를 맞춰 떨어뜨리고 하나만 남긴다.

그런가 하면 제주도 신화 「천지왕본풀이」의 대별왕과 소별왕은 해와 달의 숫자를 조정하여 세상의 무질서를 평정한다. 해와 달이 둘씩 떠 있는 혼란을 바로잡겠다고 나선 옥황상제 천지왕은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그의 아들을 통해 실현한다. 그러려면 자식을 낳아야 했으므로 지상으로 내려와 총맹부인과 혼인하고 그 곁에 한동안 머문다. 천지왕이 돌아간 뒤 그의 예언대로 총맹부인은 대별왕, 소별왕이라는 쌍둥이를 낳았다. 훗날 출신을 캐묻는 두 아들에게 어머니는 아버지의 신분을 밝혀 부자를 상봉시킨다. 드디어 천지왕은 큰아들에게는 이승을, 작은아들에게는 저승을 맡겼지만 욕심 많은 작은아들 때문에 상황은 뒤집힌다. 소별왕이 온갖 내기를 제안해 지혜로운 대별왕을 속임수로 이기고는 이승을 맡은 것이다.

막상 세상에 내려와 보니 혼란도 그런 혼란이 없었다. 소별왕은 그제야 자신의 무능을 깨닫고 내기를 무르자고 말하지만 대별왕은 그런 법은 없다고 아우를 타이른다. 다만 큰법만 잡아주겠다고 내려온 대별왕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일월(一月) 수를 조정하는 것이었다. “천 근 활에 천 근 화살을 매어” “앞에 오는 해는 남겨두고 뒤에 오는 해를 쏘아 동해바다에 던졌”고 같은 방법으로 달은 “서해바다에” 던진다. 이로써 백성들이 낮에는 더워서 죽어가고 밤에는 추워서 죽어가는 고통을 바로잡고 생태계의 이상현상도 돌려놓는다(『제주신화』 김순이, 여름언덕, 2016). 「천지왕본풀이」는 생태계의 이상현상을 이렇게 묘사한다.

초목과 새와 짐승들이 사람의 언어로 말을 하여 뒤범벅인 데다, 삶과 죽음에도 분별이 없었다. 귀신을 부르는 소리에 사람이 대답하고 사람을 부르는 소리에 귀신이 대답하고 있었다. (제주신화, 71쪽)

이러한 문제를 요즘의 현상으로 말하자면 사막에서 말라 죽는 선인장이나 바닷속에서 떼죽음 당하는 산호, 살 곳을 잃어가는 북극곰의 아우성일 것이다.

천체의 운행을 활로 조정한다는 발상은 어디서 왔을까?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한겨레, 2006)를 쓴 조현설은 활쏘기가 내포한 샤머니즘적 주술성에 주목해 부정적 힘을 다스리는 의식으로 해석한다. 해가 둘 이상 나타나는 현상은 권력 교체기에 나타나는 왕권의 이상 징후로 보았다

반면 『세계신화여행』(실천문학사, 2015)을 쓴 김선자는 『산해경』에 등장하는 예(羿)는 희생하는 영웅으로서, 그의 행위에서는 수직적인 권력의 속성보다는 수평적 리더십을 읽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예의 활은 전쟁터의 무기가 아니라 재앙을 다스리는 수단으로 쓰였다. 이를 좀 더 분명히 이해하려면 같은 신화권(圈)의 같은 신화소로 구성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봐야 한다.

몽골에서는 하늘에 좀생이별이 너무 많으면 혹독한 추위가 닥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명사수 메르겐이 나섰고 하나라도 못 맞추면 사수의 생명인 엄지손가락을 자르겠다고 공언한다. 과연 쏘는 족족 명중했지만 하필 화살 한 대가 지나가던 제비 꼬리를 맞추는 바람에 별 하나를 비껴갔다. 메르겐은 엄지손가락을 잘라야 할 상황을 맞아서도 변명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초원의 동물이 되어 몽골 사람들의 먹을거리가 되었는데, 김선자는 이를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관을 드러낸 것”이라 했다.

태양이 6개가 뜨는 지구

그런데 하늘에 정말로 해가 두 개씩, 열 개씩 떠 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지구의 환경이 서식지로는 척박할 때가 더 많았다고는 하지만 하나의 항성을 8개의 행성이 도는 태양계보다는 두세 개 이상의 항성에 행성이 끼어 있어, 인간이 생존할 수 없이 혹독한 경우가 우주에는 더 흔한 걸로 알려져 있다.

왼쪽부터 아이작 이시모프, 아서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
왼쪽부터 아이작 이시모프, 아서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

이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로 1941년 아이작 아시모프가 쓴 「전설의 밤」과, 2013년 류츠신이 낸 『삼체(Three-body)』(이현아 역, 자음과모음) 3부작이 있다. 아시모프는 아서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과 함께 SF소설의 3대 거장으로 불린다. 2024년 1월, 넷플릭스에 공개될 예정인 『삼체』는 삼국지의 본고장 중국 소설답게 2000페이지에 달하는 대하 SF소설이다. 두 소설에서는 각각 6개의 태양과 3개의 태양이 행성을 거느린 세계가 등장하지만 벌어지는 양상은 사뭇 달랐다.

늘 하나 이상의 해가 떠 있는 「전설의 밤」의 사람들은 빛이 사라진 세상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공교롭게도 태어나보니 2000년을 주기로 발생하는 개기일식의 시대라면?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져서 대혼란을 겪는다. 2000년마다 종말이 찾아오고 이러한 정보와 지식을 다음 세대에 전송하도록 세팅하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무위로 돌아가는 인류사가 반복된다.

소설 '삼체'를 드라마한 중화TV방송 포스터.
소설 ‘삼체’를 드라마한 중화TV방송 포스터.

『삼체』 3부작 중 1편 『삼체문제』는 삼중항성계에 작용하는 삼체역학 때문에 자연현상 계산에 실패하는 항성계가 지구와 교신하고 지구에 원정대를 파견하는 이야기다. 지구의 인류는 삼체 세계를 시뮬레이션 게임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 혹한과 폭염이 반복되는 난세기(亂世紀)에 인간은 탈수(脫水)를 선택하고, 온난한 기온이 오랫동안 유지되는 항세기(恒世紀)가 도래하면 입수(入水)를 통해 문명을 발전시킨다. 대왕은 외부 환경을 차단한 궁에 거주하면서 때가 되면 돌돌 말아둔 인간의 가죽을 부활시키는 일을 관장한다. 태양이 행성 가까이 뜨는 날에는 그야말로 카오스다.

화염의 바다에는 세찬 파도와 소용돌이가 가득했고 태양 흑점이 유령처럼 불규칙한 노선을 따라 떠다녔다. 코로나가 금빛 긴소매처럼 천천히 펼쳐졌다. 탈수한 사람들과 탈수하지 못한 사람들 모두 불에 타기 시작했다. 마치 난로 속에 던져지는 땔감 같았다. (삼체 1편, 167쪽)

지구 온난화를 넘어선 열대화는 신화나 SF소설에서 볼 수 있던 두 개 이상의 태양이 뜨는 세계와 다름없는 인류의 위기다. 이를 해결하려면 지금껏 누려온 편의를 포기할 용기가 필요하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부정적인 힘을 다스리기 위해 활을 들었던 예나 대별왕, 메르겐처럼 인류는 서로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글쓴이

김경은 소설가

김경은 소설가는 소설 외에 이런저런 잡글을 쓰는 중. 최근 <나타나다><매일 안녕하세요><마오리전사><애스컴시티> 등을 씀. 신화의 시대, 시대의 신화: 신화는 새롭지 않지만, 언제나 새롭게 읽힌다. 오랜 세월 만들어져 온 신화가 있는가 하면 오늘의 우리가 만들어 가는 신화도 있다. 신화의 시대에서 이 시대의 신화까지를 더듬어 갈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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