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 신데렐라 그리고 PC한 현대신화

[김경은의 ‘신화의 시대, 시대의 신화’] 9세기부터 내려온 1천여종 신데렐라 민담 신데렐라 신드롬 착한동화 vs 핏빛 잔혹동화 디즈니, 인어공주에서 PC운동 시도한 걸까

디즈니가 실사로 제작한 신데렐라의 한 장면
디즈니가 실사로 제작한 신데렐라의 한 장면

인어공주 이전에 신데렐라

최근 개봉한 디즈니의 <인어공주>를 놓고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논쟁이 뜨겁다. 모든 종류의 편견이 섞인 표현을 쓰지 말자는 정치적·사회적 운동인 PC운동과 관련해 인어공주의 주인공이 왜 흑인이냐를 두고 논쟁이 일었다.

디즈니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를 개봉한 이래 <신데렐라>(1950)를 제작해 연이은 흥행을 거둔 바 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미녀와 야수>, <라푼젤>, <겨울왕국>, <알라딘>, <포카혼타스>, <뮬란>, <모아나> 등 세상의 온갖 공주를 끌어오거나 공주 격의 주인공을 내세운 애니메이션으로 흥행몰이를 해왔다. 워낙 지명도가 높아 디즈니가 손을 댄 동화는 대중에게 ‘디즈니 판본’으로 각인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 동화로 알려진 옛이야기들은 세간에 떠돌던 민담을 ‘순한 맛’ 버전으로 각색해 기록하면서 내러티브가 고착되는 과정을 거쳤다. 이전까지는 신화의 원형을 끌어다 경쟁적으로 자기네 지역 이야기로 삼으면서 이본(異本)으로 우주를 형성해나갔다. 이때 구전은 ‘민담 유니버스’의 팽창을 주도하는 ‘원심력’이었다. 보태지고 빠지는 세월 동안 그 자체로 풍부하게 다듬어지는 한편, 이야기마다 원시수프, 즉 원천콘텐츠를 형성했다.

최근 개봉한 ‘인어공주’(왼쪽)와 디즈니의 원작 애니메이션
최근 개봉한 ‘인어공주’(왼쪽)와 디즈니의 원작 애니메이션

전세계 1000여종인 신데렐라 민담

이 가운데 ‘신데렐라’ 서사는 전 세계에서 고루 발견되는 신화 유형이다. 그만큼 신데렐라는 인류 보편 정서에 닿는 이야기라는 의미다. 이본(異本)을 비교하면서 변화된 지점을 좇다 보면 거기 개입한 다양한 욕망을 읽어낼 수 있다.

특히 이 신화의 주인공 캐릭터에서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용어가 파생된 것은 물론, 디즈니의 몇몇 ‘공주 시리즈’도 여기 속할 정도로 신데렐라 유형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콜레트 다울링이 1981년 책 <신데렐라 콤플렉스>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불행한 여성이 신분 상승을 위해 돈 많고 권력 있는 남자와의 결혼을 꿈꾸는 심리를 말한다.

가장 오래된 신데렐라 유형의 기록으로는 9세기 중국의 단성식(段成式)이 유양잡조(酉陽雜俎)에서 전하는 「섭한(葉限)」이 있다. 부모님이 연달아 죽은 뒤 아버지의 두 번째 아내는 섭한을 괴롭히고 섭한의 물고기까지 죽인다. 물고기 뼈를 수습해 숨겨둔 덕에 섭한은 원하는 것을 얻었고 축제에도 갔으며 잃어버린 신발 한 짝으로 타한의 왕과 결혼한다는 이야기다. 계모의 구박, 축제, 신발, 결혼이라는 신데렐라의 화소를 고루 갖췄지만 1년 뒤엔 왕의 욕망을 채울 수 없게 되었다는 후일담이 이어져 ‘행복한 결혼’이 결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 서사’의 전형은 어디서 비롯했을까? 세계에 산재한 신데렐라 유형의 민담은 1000여 종에 이른다. 널리 알려진 판본은 샤를 페로의 동화집(1695년 간행)에 실린 「상드리용(Cendrillon) 또는 작은 유리구두」(이하 상드리용)와 19세기 초 그림 형제가 수집한 민담 「재투성이 소녀」다.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를 뜻하며 불어로 옮기면 ‘상드리용’이다.

국내 공연을 가졌던 오페라 상드리용의 포스터
국내 공연을 가졌던 오페라 상드리용의 포스터

페로와 그림 형제 판본에서 크게 다른 점은 무도회에 앞서 준비하는 과정과 구두를 신는 장면, 의붓언니를 처리하는 결말 등이다. 요정이 마술지팡이를 휘둘러 주인공의 소원을 들어주는 설정은 페로 판본에만 나타나는데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여기서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결말에서 상드리용은 잘못을 뉘우친 두 언니를 귀족과 맺어준다. 상드리용은 자기 운명에 해를 끼치는 계모와 언니들에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순종형이며 미모 하나로 왕자와 결혼했다. 이것이 페로 동화의 메시지이며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들어맞는다.

이에 비해 그림 형제의 판본에서 무도회 참석은 재투성이가 어머니 무덤을 찾아 개암나무에 요구하고 새들이 소원을 들어줌으로써 실현된다. 개암나무는 재투성이가 눈물로 키운 것이면서 그녀가 요구해 아버지가 주워다 준 선물이었다.

한편 무도회를 조르는 재투성이에게 계모는 공연한 일로 심술을 부린다. 접시의 콩을 아궁이 속에 뿌리고는 콩을 골라내라는 미션. 계모는 약속을 어겨가며 같은 행위를 요구하고 그럴 때마다 소녀가 부른 새들이 날아와서 솎아준다. 어려움이 닥치자 바로 새를 호출하는 재투성이는 평소에도 무덤은 물론, 새들과 소통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형제 판본에서는 지루할 정도로 같은 패턴의 시퀀스가 반복된다. 콩을 솎아내는 장면이랄지, 무덤가에서 개암나무에 요구하고 무도회에 참석한 다음 쫓기듯 돌아와 한번은 비둘기집에, 또 한번은 배나무에 숨는 장면 하며, 뒤쫓아온 왕자와 아버지가 마주치고 아가씨의 행방을 물을 때마다 아버지가 ‘설마 재를 뒤집어쓴 아이는 아니겠지’ 생각하는 장면이 그렇다.

숨어있는 잔혹한 이야기

민담은 메시지를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대중음악과 마찬가지로 단조로운 반복을 이용한다”고 나카자와 신이치는 말한다(<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동아시아, 2003). 구술로 전하는 민담은 문자텍스트와 달리 들으면 휘발하는 성질 때문에라도 이러한 각인 효과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림 형제 판본의 결말을 보면 페로가 왜 이 대목을 삭제했는지 알 수 있다. 의붓자매들은 구두에 발을 맞춰 각각 발가락과 뒤꿈치를 잘라냈고 고통을 참으며 신발을 신었다. 왕자는 그런 자매를 의심 없이 말에 태우고 간다. 결국 의붓자매는 동생의 결혼식에 따라가다 새들이 눈을 쪼아 앞을 못 보게 된다.

그러니 책을 출간하고 귀족들 앞에서 낭독되는 마당에 페로는 반복 장면과 잔인한 요소들을 쳐내어 흥미를 극대화해야 했다. 귀족과 같은 부자를 험하게 다뤄서 좋을 일도 없었다. 독자 등급 확대는 상업적 성공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고, 이것은 그림 형제의 기록 의도와 다른 지점이다. 그림 형제가 살던 시대의 독일은 혼란기였고 민담을 살아 있는 민족정신으로 보아 이를 계승하려던 형제는 가능한 한 원전을 살렸다.

그런데 왕자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한눈에 반해 온 나라를 뒤질 땐 언제고, 새들이 날아와 피에 젖은 구두를 지적하고서야 신부가 가짜라는 걸 알아차리다니. 기이한 장면이 아닌가? 이렇듯 신화나 민담에는 당연하다는 듯, 아무런 설명 없이 진행되는 장면이 출몰한다. 이쯤되면 왕자가 찾는 신붓감은 ‘재투성이’라는 특정 여성이 아니란 이야기다.

디즈니가 2023년에 선택한 스토리는

결혼의 조건이 작디작은 발이라면 전족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중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었다고 신화는 말하고 있다. 왕비가 되는 시험을 통과하려면 세상에서 발이 가장 작아야 한다. 과도하게 집착하는 ‘페티시즘’이며 성적 은유다. 이러한 성적 요소는 불편한 신발 한 짝이라는 이미지로부터 외디푸스로 이어지고 근친상간으로 뻗어간다. 잃어버린 신발 한 짝으로 표현되는 신데렐라는 결핍의 존재로서 신화적 인물을 표상하며 복잡한 층위를 내포한다. 아궁이, 콩, 개암나무, 새는 저승 또는 신계를 현세와 이어주는 매개물로 아궁이 가까이 있는 문제적 인물인 신데렐라는 매개자가 된다. 가히 ‘네버엔딩 스토리’다.

디즈니는 초기에 무한 확장 유형의 서사에서 복잡한 층위는 삭제하고 메시지를 단순화한 페로의 전략을 선택했다. 그러나 대중도 보는 눈이 있고 안목은 높아지게 마련이다. 그에 따라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공주들도 순종형에서 자기주장을 하는 주체적 인격으로 백 년 동안 서서히 변화했다. 동의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말이다.

새로움보다 반복되는 익숙함이 웃음의 포인트인 <개그 콘서트>처럼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중이 기대하는 포인트가 있을 것이다. 작정하고 싹 바꾸는 모험을 하든가, 디즈니 영화를 아는 관객의 요구에 맞춰 선을 넘지 않든가. 적당히 버무려 무성의하게 PC(정치적 올바름)로 안배하고 도배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그 선이 어디인지는 대중을 상대로 흥행하면서 조 단위 수익을 올리는 디즈니가 고민할 일이다.

글쓴이

김경은 소설가

김경은 소설가는 소설 외에 이런저런 잡글을 쓰는 중. 최근 <나타나다><매일 안녕하세요><마오리전사><애스컴시티> 등을 씀. 신화의 시대, 시대의 신화: 신화는 새롭지 않지만, 언제나 새롭게 읽힌다. 오랜 세월 만들어져 온 신화가 있는가 하면 오늘의 우리가 만들어 가는 신화도 있다. 신화의 시대에서 이 시대의 신화까지를 더듬어 갈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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