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속 외발, 악마의 잔치, 밤의 전투

[김경은의 ‘신화의 시대, 시대의 신화’] 신데렐라 신화에서 이어진 방계 신화들 신발→절름발이→뼈→공양의식으로 수천년전 풍습과 신화, 현대에도 남아

프랑소와 자비에 파브르, 스핑크스와 외디푸스, 1806~1808, 캔버스에 유화, 50.2 x 66cm, 뉴욕 다헤쉬 미술관, 미국
프랑소와 자비에 파브르, 스핑크스와 외디푸스, 1806~1808, 캔버스에 유화, 50.2 x 66cm, 뉴욕 다헤쉬 미술관, 미국

신데렐라의 방계 이야기 ‘외디푸스’

현대를 사는 우리와 고대인 사이에는 아득한 시간의 강이 놓여 있지만 고대인들의 세계관은 생활 곳곳에 남아 질긴 생명력을 입증한다. 지난번 신데렐라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카를로 긴즈부르그는 『밤의 역사』(문학과지성사, 2020)에서 이질적인 문화들에 어째서 ‘절름발이’를 주제로 하는 신화와 의식이 널리 나타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탈리아인인 그는 국내에 『치즈와 구더기』로 이름을 알린 미시사(微視史) 연구의 대가다.

그가 예로 든 ‘절름발이’의 대표적 인물로는 외디푸스가 있다. ‘외디푸스’는 ‘부어오른 발’이라는 의미로 갓난아이 때 발목에 구멍을 뚫어 유기하는 바람에 얻은 이름이다. 긴즈부르그는 한쪽 발에만 샌들을 신어 발생하는 불편한 걸음걸이도 같은 유형의 신화로 보았다.

수많은 이본(異本)을 뒤져 ‘샌들 한 짝만 신은 채 나타난 이아손, 샌들 한 짝을 받은 페르세우스, 왼쪽 다리에 부상을 입은 텔레포스, 아이게우스의 금장식 샌들 한 쌍을 발견한 테세우스, 발의 신경을 끊어 동굴에 숨겨둔 제우스’ 등을 열거한다. 그런가 하면 테티스는 아들을 신처럼 막강하게 단련하고자 아킬레우스의 발목을 잡고 밤마다 불 속에 넣기를 반복해 ‘아킬레스 건’이라는 말을 유래시켰다. 무도회에 구두 한 짝을 남기고 온 신데렐라도 이 유형에서 빠질 수 없다.

긴즈부르그는 신화에서 ‘기형’ 또는 ‘비대칭 보행’은 이승과 저승 사이를 떠도는 존재들의 표식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사후 세계로의 여행은 수천 년 동안 신화나 탈혼 상태의 경험에 콘텐츠를 제공해 왔다. 직접 겪은 죽음을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초월하는 극단적이고 은유적인 입회의식이나 혼이 빠져나가 펼치는 여행만큼 죽은 자들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 적합한 화소가 있을까?

그에 따르면 외디푸스가 고대국가의 변방에서 보낸 기간이나 스핑크스와 벌이는 대결은 사후 세계로 떠나는 여행에 해당한다. 다만 이러한 입회의식이라는 특징이 다른 영웅들의 이야기에 비해 흐릿하게 남아 있어, 발의 표식을 통해 신화의 전통으로부터 상속한 특징을 알아볼 수 있을 뿐이다. 한편 모친과의 고의적 근친상간은 후대의 판본으로 내려갈수록 표현이 완화된다.

뼈를 통해 부활하는 여러 신화들

마찬가지로 신데렐라가 한쪽 발에만 구두를 신은 채 절뚝거리며 돌아오는 모습은 죽은 자들의 세계를 방문한 ‘기표’이며 신발을 두고 온 무도회장은 ‘사후의 세계’가 된다. 가장 오래된 신데렐라 기록으로 단성식의 『섭한』을 기억할 것이다. 뼈를 수습해 묻어주자 죽은 물고기가 살아나고 선물을 주는 화소(話素)는 위 이야기뿐 아니라 스코틀랜드(새끼 양)와 인도(암소나 물고기)의 판본에도 있다. 얼핏 무관해 보이는 ‘절름발이’와 뼈를 수습하는 신화소는, 방계로 뻗어나가는 신데렐라의 판본으로 분류되는 까닭에 연관성이 더 분명해진다.

저자는 뼈를 통해 부활하는 신화가 유라시아를 넘어 아프리카 일부와 북아메리카까지 방대하게 퍼져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빙하기에 아메리카로 넘어간 인디언들은 그들의 신화도 가져간 것이다. 우리나라 무속신화에 등장하는 서천서역국의 환생꽃은 뼈만 있으면 죽은 자를 살려내는 주술 도구다. 한편 아시아는 탈혼, 아프리카는 빙의로, 주술에서 수행하는 접신 양상은 사뭇 다르다.

긴즈부르그는 공통된 신화소가 이처럼 전 세계에 퍼지게 된 이유로 세 가지 가설 즉, 확산, 공통의 출처로부터 유래, 인간의 의식구조로부터 유래 중 두 번째 가설에 비중을 둔다. 유사동질성 추론을 통해 그 기원은 유라시아 대륙의 샤머니즘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여기에는 스키타이족이 개입돼 있다.

유럽과 중앙아시아를 매개한 이들 유목민은 곳곳에 수수께끼 같은 족적을 남겨놓았다. 그리스인들이 진출한 흑해 지역에서 발견되는 무덤의 부장품에 그리스와 이들의 유품이 섞여 있다거나 아킬레우스를 ‘스키타이족의 군주’라 명명한 알카이오스의 시 한 구절, 헤로도토스가 언급한 스키타이족의 기원(헤라클레스와 반은 여성이고 반은 뱀인 여성신 사이에서 태어남) 등 저자가 파헤친 증거는 단속적으로 넘쳐난다.

그러니까 긴즈부르그에 따르면 탈혼 상태에서 벌이는 사후 세계의 여행(입회의식)과 그 표식으로서의 ‘절름발이’는 아시아에서 건너간 스키타이족을 매개로 연결된다.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널리 퍼지며 고대인의 의식을 지배하게 된 신화는 세간에 관습으로 뿌리내린다. 특히 기독교 권력은 이들 ‘이교도’들을 동화시키려다 결과적으로 민간신앙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정교나 로마 카톨릭은 공히 아시아와 지중해 세계의 의례와 신화를 ‘성스러운 역사’에 결부시킴으로써 그들을 ‘그리스도교화’한다.”(미르치아 엘리아데, 『신화와 현실』, 한길사) 이는 불교나 유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토착하는 과정에서 민간신앙과 결합한 현상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이 순탄할 리는 없었다.

아즈텍 문명의 인신공양 그림
아즈텍 문명의 인신공양 그림

악마의 잔치를 왜 벌였을까

『밤의 역사』는 14세기 재판기록에 자주 등장하는 패턴화한 피고인들의 진술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주로 사회적 약자인 나병환자, 기독교와 대립하는 유대인이나 무슬림 같은 비기독교인에게 ‘악마의 잔치’를 벌였다는 혐의를 씌워 법정에 세웠다. 때때로 이들은 반란자로 지목되는데, 대개는 심한 고문 끝에 받아낸 진술이었다. 밤이면 들이나 숲에서 벌어지는 ‘악마의 잔치’는 식인과 난교, 근친상간이 근간이었으며, 이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범죄이면서 무의식에 각인된 금기였다.

무의식에 가라앉은 원형을 길어 올리고 보면 ‘악마의 잔치’나 ‘밤의 전투’는 샤먼 의식에서 영향을 받은 민간신앙(신화에서 유래한 관습)이었다. 따라서 풍요를 기원하던 의식이었지만 유일신 사상이며 신흥종교인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해괴한 이단에다, 기승을 부리는 밀교로 몰아가기 좋았다.

사람들은 범죄자나 반역자로 몰리면서까지 왜 이런 행위를 멈추지 않았을까?

『신화와 현실』의 저자인 엘리아데는 고대사회의 의례는 기념이 아니라 반복에 의한 경험이라고 말한다. 신화적 세계관을 내면화한 민간의 의식을 제도로 불식할 수는 없었다. 고대인에게 기원의 경험은 주술적 힘을 획득하는 비결이었고 순환하는 시간 속에서 의례도 반복된다. 그렇다면 의례의 실상은 어땠을까?

긴즈부르그가 묘사하는 양상은 지팡이와 낫을 들고 밤새워 전투하고 화해하는 사례부터 봄을 맞아 가가호호 방문하고 축원하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풍속까지 다양하다. 이는 조지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 등장하는 “죽은 자들의 영혼이 지상으로 돌아오는 기간과 일치하는 고대의 봄 축제” 풍경과도 일치하며 우리 세시풍속에도 있다. 프레이저에 따르면 기독교의 영성체 의식은 첫 수확을 바치던 민간의 관습에서 흡수한 공양의식이며,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선교사들이 전하는 이 의식을 그들이 선행하던 공양의식으로 이해했다. 이러한 공양의식에는 곡식뿐 아니라 동물도 있었다. 물론 ‘인신공희’의 기억도 있는데 과격하던 초기의식에서 대체물을 찾아 완화되었을 것이다.

신화의 시대에 반복되던 의식은 의외로 그 생명력이 질기다. 오래전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한길사) 시리즈에서 읽은 ‘돌싸움’ 이야기는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유래나 의미는 생략하고 돌을 던지며 싸웠다고만 소개된 조선시대의 풍습은 충격이었다. 몸 여기저기가 깨지기 일쑤였고 때로는 머리까지 터져서 피칠갑 하는 일도 흔했다. 대개 같은 마을 청년끼리 편을 짜서 이웃 마을 청년들과 벼를 벤 들판에 모여 싸웠단다. 줄다리기나 팽이치기, 제기차기가 아니라 상처뿐인 놀이라니, 이해할 수 없었다. 기원은 사라지고 행위만 남은 풍습이 후대에 남긴 감정이었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90세 넘은 어르신께 소싯적 생활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 돌싸움 얘기를 듣고는 “도대체 왜?” 저절로 반문이 튀어나왔다.

“아니, 뭐 그 시대에 헐 만한 놀이가 있나? 들에 나가면 그저 흔한 돌 주워서 던지고 싸우는 거지.”

“그럼 머리도 깨지고 그랬겠네요?”

“아니 놀이로 하는 건데 그렇게까지 심하게야 하나? 그냥 흉내나 내다 마는 거지.”

그 정도로는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서 더 들은 내용은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읽은 책에서는 싸움의 수위가 그렇게 헐렁하지 않았다. 극단적 사건으로 점철된 외디푸스의 내러티브나 의식들이 그랬던 것처럼 돌싸움도 점점 수위가 완화되지 않았을까.

그러고는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밤의 역사』에서 ‘돌싸움’을 연상시키는 구절을 다시 접하게 됐다. “달력상의 특정한 시기마다, 같은 도시 또는 심지어 같은 가문에 속하는 구성원들이 무슨 이유로 서로 죽이기 위해 하루 종일 그토록 격렬하게 돌팔매질을 하며 전투를 벌였는지 알 수 없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돌싸움’은 아득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신화의 자취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곁에는 수천 년 전 풍습과 신화의 무의식이 엉뚱한 기원을 뒤집어쓰고 남아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지 않겠나.

글쓴이

김경은 소설가

김경은 소설가는 소설 외에 이런저런 잡글을 쓰는 중. 최근 <나타나다><매일 안녕하세요><마오리전사><애스컴시티> 등을 씀. 신화의 시대, 시대의 신화: 신화는 새롭지 않지만, 언제나 새롭게 읽힌다. 오랜 세월 만들어져 온 신화가 있는가 하면 오늘의 우리가 만들어 가는 신화도 있다. 신화의 시대에서 이 시대의 신화까지를 더듬어 갈까 한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