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오해와 이해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소설가 조세희 선생을 추모하며] 만석동 굴뚝 위에 섰던 아버지, 그의 주검 쇠공을 쏘아올리려던 계획은 성공했을까 그때의 모순과 갈등, 40년 지나도 그대로인데
조세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저는 2022년 12월 26일, 하루 늦게 접했습니다.
1942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나 올해 80세로 영면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하필 인천역을 빠져나오고 있었습니다. 올봄 코로나에 감염되면서 지병이 악화한 게 선생님의 사인이었습니다. 목적지를 지나치는 바람에 헐떡이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그러다가 인천역에서 만석동 일대까지 걷던 지난해 일을 떠올렸습니다. 그 순간 공장지대의 굴뚝이 눈에 들어왔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책장이 닳도록 읽던 옛 기억까지 함께 떠올랐습니다.
북성포구가 가까운 그 지역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배경으로 등장했습니다. 높다란 굴뚝과 통통배가 떠 있는 바다를 보면 ‘난장이네 가족’이 쫓겨나 이사한 도시 ‘은강’뿐 아니라 이사 전에 살던 재개발 지역도 북성포구 일대를 묘사하고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난쏘공>에 대하여
1978년 초판이 발간된 이래 148만 권에 달하는 부수를 발행하며 난쏘공이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불리던 소설은 대학생은 물론 중고등학생의 필독서였습니다. 저 역시 선배들이 이끌던 ‘세미나’에서 필독서로 읽었더랬습니다. 그때는, 불친절한 문체에다 도시빈민의 삶과 계급갈등을 그린 소설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제대로 읽지 못했다고 고백해야겠습니다.
이후 한국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겪으면서 1980년대 민주화 과정에 아주 적은 힘이나마 보태며 살았고, 훗날 자발적 선택으로 선생님의 소설을 다시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곤 책을 덮은 뒤에도 남는 장면들이 소설을 여러 번 읽게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불쑥불쑥 끼어드는 과거와 인물, 장소가 불편했지만 나중에는 그게 읽을수록 묘미였습니다.
40여 년이 흐르도록 사랑받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요. 소설은 산업화시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도시빈민의 삶을 중심으로, 중산층과 지식인, 서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단편들을 배치해 계층계급 간 갈등을 첨예하게 그려냅니다. 그리고 소설에서 제기한 모순과 갈등은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채 현재도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조세희의 ‘뼈다귀 문체’
문체라고 하죠. 소설이 품은 개성은 문장을 통해 드러나기 마련인데 선생님의 소설은 일체의 수사 없이 나아가며 구절구절 마디마다 절박하고 결연한 기운을 뿜어냅니다. 저는 그때 선생님의 글이 품은 그런 기운을 보고 ‘뼈다귀 문체’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을 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연작 가운데 동명의 중편 도입부에 나오는 위 문장은 이 소설이 어떤 성격인지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달나라를 꿈꾸며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아버지는 지옥에 불시착한 ‘어린 왕자’였습니다.
“나를 한방만 물어줄래.”
어린 왕자는 사막에서 만난 뱀에게 부탁했죠. 무거운 몸으로는 떠나온 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왕자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그가 사는 소행성을 찾아 하늘을 볼 것입니다.
하늘로 쏘아올리려 한 쇠공의 의미는
1929년생인 아버지 김불이의 본적은 ‘낙원군 행복면’으로 경기도에 속했다가 서울특별시에 편입돼 ‘낙원구 행복동’으로 바뀐 지역입니다.
일을 너무 많이 한 아버지는 아팠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걱정하며 두 아들더러 돈 벌어오라고 재촉했습니다. 아버지는 삼 년 전 다녀간 꼽추 아저씨를 어제 만났다고 착각하고 있었죠. 서커스단 일을 시작하겠다고 그 꼽추 아저씨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 가족들은 알아봤어야 합니다.
집이 철거되던 날 아버지는 사라졌습니다.
살아생전 아버지는 개천 건너 사는 청년에게 빌린 <일만 년 후의 세계>를 읽으며 교신을 시도했고 믿지 못하는 가족들에게는 “지섭에게 말해서 쇠공을 쏘아올려 보여주마”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선입견에 사로잡혀 아버지를 아이 취급하며 함부로 대했습니다. 지섭이 쏘아 올리려는 쇠공은 아버지의 본적이 의미하는 ‘낙원’과 ‘행복’을 난장이네 가족이 상징하는 약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상태로 가면 세상은 갑갑하다”던 선생님
선생님의 작품은 현실 모순을 갈등을 통해 그려내지만 날 것 그대로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노동문학’이라는 말이 붙으며 세대를 넘겨 사랑받고 있겠죠.
난장이 아버지는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쫓겨날 상황에 몰리자 굴뚝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어머니는 불안한 음성으로 아이들을 불렀고 큰아들 영수는 굴뚝 위에 선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그런 장면을 목격하고도 아버지 주검이 며칠 후 발견됐다고 해서 아버지의 계획이 성공했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런 장치들이 오해의 계기로 작동해 한 번 더 돌아보게 하는 힘이 난쏘공에 있더란 것입니다.
난쏘공 하면 떠오르는 기억의 앞줄에 있던 이 장면이 벌어진 장소가 만석동이라는 지인의 말을 듣고 오래전 이해와 오해가 교차하던 나의 독서 행위가 떠올랐습니다. 공장이 즐비한 곳에 우뚝 솟은 굴뚝까지 확인하자 이번엔 오랜 시간을 뛰어넘어 이해의 차례라는 생각이 지난해에는 들었습니다. 영수가 ‘최후의 시장’에서 영희에게 사준 줄 끊어진 기타나 자신을 위해 산 고장 난 라디오는 곳곳에 등장하며 이들의 처연한 삶을 제 가슴 깊이 들어 앉혔습니다.
선생님은 1978년 소설집을 낸 이후 더 이상 작품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궁금해하던 중 2008년, 30주년 기념 문집 침묵과 사랑 출간 소식을 접했습니다. 문집을 읽고 선생님의 고통과 작가 세계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상태로 가면 세상은 깜깜하다고 말씀하던 선생님은 달라지지 않은 세상에서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찾아다니신 겁니다.
오늘, 지난해 봤던 굴뚝을 바라보며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귀가해 책을 꺼내고 선생님을 기리다 보면 다시 오해는 시작될 텐데.
만석동에 그 많던 굴뚝이 점점 줄어간다던 지인의 말이 귀에 쟁쟁합니다.
몸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으면 작품을 쓰지 못하던 선생님을 깊이 애도하며 이제 영면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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