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을 만나는 마음
[김경은의 ‘신화의 시대, 시대의 신화’] 동북아에 흩어져있는 다양한 ‘곰 신화’ 곰의 ‘동면’은 부활이자 재생의 상징 곰을 연성화시킨 현대, 진짜 곰 만나면
- 신화의 시대, 시대의 신화 신화는 새롭지 않지만, 언제나 새롭게 읽힌다. 오랜 세월 만들어져 온 신화가 있는가 하면 오늘의 우리가 만들어 가는 신화도 있다. 신화의 시대에서 이 시대의 신화까지를 더듬어 갈까 한다.
폭설 예보가 뜨면서 며칠 동안 한파가 맹위를 떨치던 며칠 전이다.
이럴 때는 아침 운동이고 뭐고 이불 속을 나오기 싫어진다. 십 년 넘게 들여온 습관이건만(물론 중간에 뭉텅뭉텅 쉴 때도 있었지만)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왜 인간은 곰이나 개구리, 뱀처럼 겨울잠을 안 자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울릉도에 70cm 넘는 눈이 내렸다는데, 눈 폭탄에 가스비 폭탄까지 활동하기 험한 겨울마다 동면하면 좀 좋을까.
우리 조상은 동굴에서 쑥과 마늘로 백일을 버틴 곰 아닌가 말이다.
곰은 동서양에서 두루 사랑받는 동물이다. 건국신화에 의하면 우리의 반쪽 혈통을 차지하면서 일찍이 그 위엄을 드러낸 바 있다. 서양에서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아바타로서 다산과 괴력의 상징이다. 현대에 와서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곰돌이 푸로, 테디베어라는 인형으로 변신해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건국신화로 우리와 인연을 맺은 이래, 연성화된 캐릭터로 우리 곁에 친근하게 머무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제분업체의 로고도 곰이고 최근 편의점에 가면 ‘곰표 맥주’도 있다.
한민족에게 최초 다이어트 성공 신화?
그렇지만 우리에게 곰은 최초에는 불굴의 의지로 각인된 동물이다. ‘아랫집 윗집 사이에 울타리는 있지만’으로 시작해 ‘우리는 한겨레’라는 결말로 달려가는 게 좀 뜬금없지만 소싯적 음악 시간에 배운 노래에도 나오는 ‘단군의 자손’, 그 단군의 어머니가 곰이었다.
혼자 틀어박혀 백 일을 지내기도 어렵지만 쑥과 마늘만 먹으며 그 시간을 버티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어릴 적엔 ‘동굴에서 보내는 식이요법의 나날’을 못 견디고 뛰쳐나간 호랑이의 인내심을 탓했지만 세상 물정을 알고 난 뒤로는 곰이 미련할 정도로 지독하다는 걸 깨달았다.
쑥과 마늘을 먹으며 지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쑥이나 마늘은 더운 성질을 띠는 식물로 몸이 찬 사람들에게 좋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서 ‘마늘’은 매운맛이 나는 자생식물 ‘달래’였다는 설이 강하다. 후대에 들여온 마늘이 매운맛의 대세로 자리 잡자 그 이름을 내줬다는 것이다.
음식에 제약을 두고 몸에 쌓인 독소를 비워내면 병약한 사람도 건강해지기 마련이다. 다이어트의 원리다.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다이어트의 적은 맛없는 음식보다 그 기간에 만나는 사람들이다. 일하느라 맺는 관계, 직장을 다니고 약속을 정하고 사람을 만나고 회식하느라 대면하는 유혹을 못 이겨 작심삼일로 끝나기 십상이다.
단군신화가 이런 인간의 나약한 면을 미리 짚어 ‘동굴 백일’을 제안했는지까지는 모르겠다. 다만 건강해지려면 음식으로 몸을 정화하면서 관계를 가려 마음을 다스리는 게 필수다. 이렇게 백 일간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나타난 웅녀와 환웅은 결혼한다. 웅녀의 프로젝트는 우리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다이어트 성공기인 셈이다. 군살 빠지고 피부도 고와져 미인이 된 웅녀에게 청혼하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폭발적으로 성장한 다이어트 산업이 기세가 꺾이기는커녕 갈수록 첨단 기술이 동원되는 현대사회에서 곰은 또 다른 의미로 상징성을 띠는 것 아닌가.
인간이 곰이 되고 곰이 인간이 되는 동북아 신화
왜 곰은 되고 호랑이는 안 됐을까?
이정재의 <동북아의 곰문화와 곰신화>에 따르면 중국 대륙으로 내려갈수록 호랑이 씨족 설화가 득세하고, 시베리아 쪽으로는 곰을 시조신으로 하는 유형이 많단다.
곰 신화는 환웅이 내려온 백두산에 한정되지 않는다. 공주의 옛 지명 웅진(熊津)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웅진은 한성시대를 마감한 백제가 사비(오늘날의 부여)로 천도하기 전에 거쳐간 도시다. 금강변 나루 일대를 지칭하던 옛 지명 고마나루에는 곰 전설이 내려온다.
나루 맞은 편 연미산에 사는 암곰에게 납치된 사냥꾼은 곰과 지내면서 새끼를 낳는다. 인간세계를 못 잊은 사내는 도망쳤고 이를 쫓던 곰은 새끼들을 안고 강물에 몸을 던진다. 사람들은 사나워진 물살을 잠재우려 곰의 넋을 위로하는 사당을 세웠다.
신화는 주류의 이야기로 정리되므로 그렇지 못한 세력의 이야기는 이설로 전해진다. 백제가 사비로 천도했을 때 곰으로 표상되는 웅진의 토호 세력은 새끼를 안고 투신한 곰의 신세였다. 주로 장소와 엮이는 전설은 신화가 되지 못한 한을 비극적 결말로 항변할 때가 많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중국 동북부의 어룬춘족과 어원커족 신화에도 있다. 새끼를 반으로 갈라 사내에게 보내고 다른 반은 자신이 키우는 결말이 다를 뿐 스토리라인은 일치한다. 이 지역 알타이계 부족 신화에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이 산에서 길을 잃고 곰과 살면서 낳은 아이가 부족의 시조가 되는 이야기도 널리 퍼져 있다. 인간은 곰이 되고 곰은 인간이 되는 대칭적 세계관을 지녔으며 산신인 곰과 결합하여 영웅적 인간이 탄생하는 신화 유형이 흔하다.

한편 아이누족의 전통 의식인 이오만테(イヨマンテ)는 곰과 관련한 풍습이다. 새끼 때 포획한 곰이 다 자라면 마을 사람들은 잡아먹기 전에 곰의 얼굴을 치장하여 의례를 치른다. 그러면 죽은 곰은 그의 친척들에게 돌아가 인간이 그를 얼마나 존경하고 정성을 다해 대접했는지 전한다고 믿었다.
시베리아에서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샤먼이 되는 과정을 곰-되기로 받아들였다. 이글루 안에서 변변한 담요 한 장 없이 한 달 넘게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며 비몽사몽 간에 그들이 영접하는 신은 곰이다.
다시 신화를 말하는 것은, 곰을 만나는 것은
숲길을 혼자 걷다 부딪히는 거대한 몸집의 곰은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다. 화가 나면 어떤 맹수와 싸워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을 지녔다. 그런가 하면 맛있는 꿀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섬세하고 지혜로운 동물이다. 무엇보다도 겨울이면 사라졌다가 봄이 오면 나타나는 곰은 부활의 상징이었고 동굴은 재생의 공간으로 받아들여졌다. 자주 부딪히는 곰을 지켜본 고대인들은 그 뜻을 다 알아챌 수 없는 자연과 곰을 동일시하여 신으로 받들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어리석어 보일 수 있으나 여기에는 자연을 친근하게 여기면서도 두려워하는 사상이 담겨 있다. 문명을 일군 인간이 만 년이 넘도록 자연을 보존하며 살아온 비결이다.
만약 우리가 길을 가다 곰과 부딪히면 어떻게 될까?
동물원이나 굿즈샵 같은 곳 말고, 신화나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현실에서 연성화한 캐릭터가 아니라 분노한 아르테미스의 아바타를 말이다. 지리산에 곰을 풀어놓은 지도 20년이 다 돼간다니 이는 더 이상 남 일이 아니다. 방생에 성공해 지금은 4세대 반달가슴곰이 태어났단다. 드물게 인간을 공격했다는 뉴스로도 나오고 이웃 덕유산으로 넘어갔다가 번식기에 돌아온다는 그들의 생태 습관도 들린다. 우리 주변에서 퇴출됐다 귀환한 곰에 대처하는 방법을 우리는 교육받은 적도 없는데 말이다.
천년이 흘러야 신화가 된다는 말은 왜곡과 압축을 거치며 살아남아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문자가 없던 시대에 구전되고 때로는 단절과 발견을 거쳐 널리 알려지는 과정에 벌어진 일이다. 신화가 지혜를 줄 수 있는 것도 신화의 이런 성격 때문이다. 그렇다고 신화가 꼭 천 년 전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속도전으로 나아가는 현대에 생성되는 신화도 있다.
게다가 오늘 여기에서 신화는 좀 더 적극적 의미를 띠고 있다. 날카로운 이빨도 발톱도 없고 빠르지도 않은 두발짐승이 당면한 문제는 맹수의 습격과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는 일이었다. 자연은 극복 대상이 아니라 항상 귀 기울이며 겪어내야 할 두려운 존재였다. 환경은 다르지만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은 대가를 치를 인류에게 신화는 옛날로 돌아가자는 단순 환원론 이상의 것을 열어 보인다. 지금 신화를 말하는 것은 우리가 길을 가다 만날 곰을 대하는 자세를 갖추는 일과도 같다.
신화가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고 캐릭터 상품과 결합하며 콘텐츠로서 인기를 얻는 시대에 이런 것들을 곁눈질하며 과거의 신화와 현재의 신화를 아울러 지면을 채워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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