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
이 이야기가 하나부터 열까지 믿어지지 않는다 해도 할 말은 없다. 우선, 이 모든 것이 선상의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시작된다는 것부터가 비현실적이니까. 물론 연예인들이나 부자들이 강이나 바다에 호화 요트를 띄우고 노는 사진 같은 걸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조차 SNS 홍보를 위한 보여주기식 연출일 뿐 실제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문화는 아닐 거라고 여겨져 딱히 동경이 생기지도 않았다.
이 이야기가 하나부터 열까지 믿어지지 않는다 해도 할 말은 없다. 우선, 이 모든 것이 선상의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시작된다는 것부터가 비현실적이니까. 물론 연예인들이나 부자들이 강이나 바다에 호화 요트를 띄우고 노는 사진 같은 걸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조차 SNS 홍보를 위한 보여주기식 연출일 뿐 실제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문화는 아닐 거라고 여겨져 딱히 동경이 생기지도 않았다.
제이슨이 포장 음식이 담긴 종이봉투를 들고 식당을 나서는데 샌드위치를 먹고 있던 남자 둘이 흘끗거렸다. 누가 봐도 제이슨은 동네 사람 같지 않을 것이고, 식당 앞에 세워둔 제이슨의 고급 세단에는 뉴욕 번호판이 붙어있으니 양쪽을 번갈아 오가는 그들의 시선에 삐딱함이 묻어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제이슨은 그런 눈빛을 잘 알고 있었다. 뉴햄프셔에 올 때를 제외하면 잊고 살긴 하지만 제이슨도 원래 이곳 사람이니까. 겉모습은 뉴요커라도 제이슨의 표피 아래에서는 여전히 촌동네 출신 남자의 혈액이 흐르고 있다.
야스미나는 숙소의 안뜰을 둘러봤다. 여기를 담아보면 어떨까 싶었다. 기둥과 벽을 아우르는 타일의 색 조합도 예쁘고, 회랑을 둘러친 아치의 디자인도 볼만했다. 하지만 이미 이런 건 많이 찍었다. 마라케시나 메크네스에서도 비슷한 건축물을 질리도록 보지 않았는가. 카사블랑카를 종착지로 놔둔 건 분량이 많이 나올만한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 예상외로 이 도시가 특별한 감흥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슬람 대도시 풍경 곳곳에 비집고 들어가 있는 기능적 신 건축물 같은 것들이 이상하게 신경을 건드렸다.
은하수와 폭포. 사람들은 이걸 보러 우리 마을에 온다. 마을에 활기가 생긴 건 근래의 일이긴 해도 말이다. 사실 우리 마을은 인구가 워낙에 적고, 전에는 방문자들도 다 내국인이었다. 마을로 외국인 여행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한 건 최근 몇 년 새의 일이다. 아무리 절경이라지만 이 외진 곳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음, 그러니까, 먼 길 떠나길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 말이다.
올케들이 그림을 욕심내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투자 가치가 있는 그림이었다면 큰 올케언니가 탐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얄팍한 안목이긴 해도 분야를 막론하고 돈이 될 것 같은 상업적 흐름은 잘 감지해내는 사람이라서 그림에서 비전을 보았을 시 순순히 내게 넘겼을 리가 없다. 이 그림에서는 돈 냄새를 못 맡은 거지. 자칭타칭 미니멀리스트가 되어버린 작은 올케언니는 말할 것도 없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곤도 마리에를 표방하고 있는 작은 올케가, 좋게 말해 고풍스럽고 한 끗 차이로 구닥다리이기도 한 이 그림을 면벽 수행에나 딱 좋을 자기 집에 걸고 싶어할 리는 없으니까.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소예타?” 모한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물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웃어 보였다. 또 식사 중에 정신을 놓고 있었던 거다. 그 영상을 본 이후로 빈번하게 생기는 일이었다. 모한이 다른 음식을 시켜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떤 음식이 앞에 있어도 별로 당기지 않을 것 같았다. 모한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잔을 들어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고 피자를 베어 물었다. 다시 그 영상이 떠올랐다. 그 사람들도 그 국수를 먹을 때 맥주를 마셨다. 그 맥주와 이 맥주는 같은 맛이 날까? 나는 늘어지는 치즈를 앞니로 끊어내는 모한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아래층으로 내려온 에리카는 식탁 앞에 앉아 숨을 골랐다.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아이들 방 앞을 지나 침실로 가는 중이었는데 남매가 나누는 말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누나. 엄마도 티라미수 먹고 싶지 않을까? 아빠가 티라미수 만들어줄 때마다 기뻐했잖아. 엄마 집에도 좀 가져다주면 어때?” “말이 돼? 이번에는 아빠가 에리카를 위해 만든 거잖아!”
택시 기사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프랑스어 억양도 좀 이상한 것 같았다. 내가 아는 프랑스어라고는 인사말 정도에 불과하나 기사가 하는 말은 스페인어나 이탈리아어처럼 들렸다. 알아들을 수 없긴 다 마찬가지지만. 기사는 골목길에서 튀어나오는 차와 부딪칠 뻔했을 땐 거침없이 욕을 내뱉더니 광장의 분수대 근처를 지날 때 미인들이 보이자 태도가 돌변해 감탄사를 내지르기도 했다. 감정 기복이 그토록 순식간에 오르내릴 수 있다니, 신기한 캐릭터였다.
표면적으로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엄마는 평소처럼 따뜻한 아침상을 차려냈으니까. 탱글탱글하면서도 찰기 도는 밥은 상아빛 그릇 안에 소담스럽게 담겨있었고, 콩나물국의 간도 딱 맞았다. 문제는 계란프라이였다. 나는 기름을 넉넉히 둘러 튀겨낸 계란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묵묵히 먹어 치웠다. 노른자까지. 오빠와 나는 취향을 나누어 가지는 방법을 알았다. 밥상에 계란프라이가 오르면 흰자는 내 것, 노른자는 오빠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고, 각자의 몫으로 받아든 계란프라이가 하나든 둘이든 우리는 사이좋게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해 바꾸어 먹었다. 골고루 먹으라고 잔소리하던 엄마도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의 고집에 져주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엄마가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해 계란을 부쳐준 건 아니었다. 우리가 계란의 한 부위만 공략해 먹어도 모르는 척을 했을 뿐. 오빠는 이제 없지만 계란프라이는 똑같이 아침상에 올라오고, 나는 그것을 깨끗이 먹어 치우는 것으로 오빠의 죽음을 지운다. 아니 모른척한다. 상 위에 오빠의 부재를 남겨놓지 않는 것이다.
화면은 군더더기를 덜어 더 간결하게, 사진보다 글이 먼저 눈에 들어오도록 꾸몄습니다. 깊은 붉은빛으로 품격을 더했습니다.
세계는 지금 전환기에 서 있습니다. 한국의 정치·경제와 문화 역량도, AX(AI 전환) 시대의 기술도 함께 전환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혼란을 넘어 급변하는 세계를 희망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지혜를 담아내겠습니다.
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