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향신료
[레시피 나라의 앨리스]

쉬어가기 좋은 곳이지요? 한동안 찾아와 앉는 사람이 없었던 탓에 귀퉁이에 이끼는 좀 끼었지만 말이에요. 말이 나왔으니 밝혀두는데, 사실 이건 무척 공들인 비석이랍니다. 앨리나가 루이지애나 최고의 석공을 찾아가 주문한 것이니까요. 화려하고, 편안하고,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의자 형태로 만들어달라고 했다지요. 그때만 해도 앨리나는 평생 나를 잊지 못할 거라고 여긴 모양이에요. 비석 하나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쓰다니요. 결과적으로 나쁠 건 없었어요. 세실도 여기서 만났으니까요.
내 묘지를 찾아오는 앨리나의 발걸음이 점차 뜸해지다가, 결국 더는 오지 않게 되고, 삼십 년쯤의 세월이 지나고 난 후였지요. 그날도 오늘처럼 화창한 날이었어요. 한 여자가 저쪽 끝에서 천천히 걸어와서는 제 무덤 앞에 멈춰서더니 자리를 잡고 앉더군요. 당신처럼 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당신이나 세실이나 둘 다 좀 묘한 사람들이에요. 공동묘지에 찾아와 산책하는 사람을 평범하다고 보긴 어렵지 않겠어요? 물론, 뉴올리언즈에서 여기처럼 호젓한 곳이 없기는 해요.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 조용히 숨을 돌리기엔 제격이죠.
세실은 절망에 빠져있었어요. 얼굴은 까칠했고 누가 툭 건드리면 당장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요. 전날 거절 통보를 받은 참이었거든요. 왜 그런 것 있잖아요. 귀하의 원고는 잘 읽어보았으나 출판은 할 수 없겠다는 식으로 시작되는 퇴짜 편지 말이에요.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요? 세실은 그 와중에도 노트에 적어대고 있었거든요. ‘이젠 어쩌지? 내 원고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넝마에 불과하단 말인가, 어쩌고저쩌고…….’ 정말이지 그녀는 못 말리는 글자광이었어요.
그러다 세실은 감정에 북받친 모양인지 펑펑 울기 시작했어요.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위로해줄 수 없는 내 처지가 원망스럽더군요. 유령 주제에 할 수 있는 게 있어야죠. 그래서 난 한참을 울고 난 세실이 감정을 추스르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무작정 그녀를 따라갔어요. 글쎄요. 아마 저도 외로웠었던 것이겠지요. 앨리나가 발길을 끊은 이후로 내 무덤에 와서 운 사람은 세실이 처음이었거든요. 피붙이 하나 없는 천애 고아의 묘지를 찾아와줄 사람이 있을 리 없잖아요. 세실의 눈물은 다른 슬픔을 담은 것이었지만 내 곁에서 감정을 터뜨려서 그런지 애착이 가더군요. 세실을 따라가 집을 알아둔 나는 그날 밤 다시 찾아갔어요. 그녀의 꿈속으로 들어간 것이지요. 그것이 산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꿈속에서 나를 만난 다음 날, 세실은 오전 내내 자신의 책상 앞을 서성댔어요. 아침 햇살을 어깨에 얹고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었죠. 그날 오후엔 타자기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우더군요. 며칠 후 세실이 다시 내 묘지를 찾아왔어요. 나 역시 그날 밤 또 세실의 꿈속으로 찾아 들었고요. 세실의 묘지 방문과 나의 꿈속 답례 방문은 그렇게 이어지게 되었죠. 물론 세실은 그 모든 걸 꿈이라고만 생각했지만요. 세실에게 내 묘지는 영감을 주는 비밀의 휴식 장소 같은 것이었죠. 찾아와 머물다 가면 꿈을 선사해주는.
상관없었어요. 교류가 이어지면서 세실의 얼굴에 생기가 도는 걸 보는 게 즐거웠거든요. 내가 해주는 이야기를 세실이 글로 적어 옮기고, 그것이 차츰차츰 두툼한 원고가 되어가는 것에 까닭 모를 만족감이 생기더라고요. 앨리나와의 로맨스가 절정이었을 때 벌어진 나의 죽음, 비탄에 빠진 앨리나, 그리고 앨리나를 다정하게 위로하다가 결국 그녀를 신부로 맞은 이가 다름 아닌 나의 숙적이었다는 사연이 세실의 필력을 통해 생생하고 드라마틱한 소설로 거듭나게 된 거죠. 맞아요. 당신도 아는 유명한 작가 세실리아 모레노가 바로 나의 세실이에요. 출판사에서 번번이 퇴짜만 맞던 무명 작가 세실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준 소설 <기적의 향신료>는 그렇게 탄생한 거랍니다. 이상한 건, 그렇게 한 번 성공하고 나자 다음부터는 세실이 쓴 소설은 무조건 잘 팔리더군요. 심지어 이전에 퇴짜맞고 제 무덤가에 와서 울게 한 그 소설마저도요.
참, 당신이 점심으로 가져와서 먹고 있는 그 음식 말이에요. 공동묘지 서쪽 출구로 나가서 세 블록 지나면 나오는 골목 모퉁이의 니콜라스 씨네 닭요리 맞죠? 난 냄새만 맡고도 알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 메뉴를 처음 만든 사람이 바로 나니까요. 그래요. 나는 니콜라스네 식당의 요리사였답니다. 이 근처를 찾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 소문난 ‘잭의 케이준 치킨’을 맛보려고 니콜라스네 식당에 들르죠. 잭, 그러니까 내가 일찍 죽는 바람에 그 영광을 오래 누릴 순 없었지만요. 아무튼 당시에는 이 일대에서 알려진 요리사가 된 거죠.
나를 고용했던 니콜라스 씨는 식당의 창업주고요. 지금은 그의 손자가 식당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지요. 하나의 가업이 3대를 이어가며 건재하고 있는 건 정말 멋진 일입니다. 근근이 이어가던 후미진 골목의 식당이 잭의 케이준 치킨 덕분에 맛집으로 소문이 나고, 니콜라스 씨는 부자가 되었으니까요. 나는 니콜라스 씨의 성공이 진심으로 기쁘답니다. 거리의 부랑아로 떠돌던 고아 소년을 고용해 주방일을 가르치고 결국 요리사가 되도록 품어준 사람이니까요.
니콜라스 씨네 식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묻혀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이것 봐요. 오늘도 당신 덕분에 ‘잭의 케이준 치킨’ 냄새를 맡고 있잖아요? 당신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군요. 어떤 기분인지 알지요. 바삭한 껍질에 촉촉한 고기, 이 맛을 볼 때면 누구나 지어 보이는 표정이거든요. 주방에서 홀 쪽을 내다보면 손님들이 다 지금의 당신 같은 표정을 짓곤 했죠. 난 요리사가 되고 나서야 타인에게 행복을 주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체험하게 되었답니다.
세실의 뒷이야기를 마저 해야겠군요. 꿈을 이룬 세실은 뉴올리언즈를 떠났어요. 성공한 소설가가 되어 뉴요커로 살아보는 게 원이었으니 미련 없이 고향에 등을 보였지요. 주목받는 창작자들이 득시글거리는 뉴욕에서 그럴싸하게 살아보고 싶기도 하지 않았겠어요? 맨해튼의 빌딩 창가에 걸터앉아서 한 손엔 술잔을 들고 담배를 피워대면서 고급스러운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말이죠. 아마 그렇게 살았을 거예요. 뉴올리언즈로 돌아오기 전까지는요.
세실이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더군요. 탐스럽던 머리칼도, 도전적인 눈동자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어요. 그래도 나는 그녀가 세실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보았어요. 등은 굽고 탄력 잃은 살 거죽엔 주름이 자글자글했지만, 그냥 알 수 있었어요. 말할 수 없이 반가웠지요. 하지만 그날은 세실이 묘지를 떠나는 것을 보며 따라가지도, 꿈속으로 찾아가지도 않았어요. 어쩐지 그러지 않는 게 맞는 것 같았거든요. 잘한 일이었어요. 그날 밤, 세실이 숨을 거두었으니까요.
저쪽, 티 올리브 나무가 어제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오늘은 향기를 본격적으로 뿜어내는군요. 그날도 그랬어요. 티 올리브 꽃향기가 한들한들 지나다니던 봄날 오후였죠. 청춘의 세실이 이 자리에 와서 털썩 주저앉았던 날 말이에요. 봄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절망에 빠져서요. 저 티 올리브 가지 하나가 뻗어나가 비석 하나를 쓰다듬는 모양새로 드리워진 게 보이나요? 그 비석이 바로 세실의 것이에요. 세실은 내게 슬픔과 희망과 성공과 회귀와 죽음을 다 보여주고는 이곳에 와 묻혔죠. 내가 그리워했다는 걸 마지막에야 알아차렸던 걸까요?
이제 식사를 마쳤군요. 묘지를 나서기 전, 티 올리브 나무 앞으로 걸어가 향기를 맡는 모습을 보니 안심입니다. 그래요. 그래야지요. 정말로 중요한 것들은 그렇게 가까이에 있는 것이거든요. 조금만 돌아보면 언제든 모습을 보여주는 것들이요. 맛있는 음식을 먹고, 꽃향기를 맡고는 멀어져가는 당신이야말로 이 계절 그 자체네요. 봄 말이에요. 뉴올리언즈의 훈훈한 봄 같은 당신, 안녕히 가세요.
- 레나앨 프로젝트 -

음식- 황창민 셰프
프랑스 파리 꼬르동블루 졸업. 프렌치 레스토랑 라뜰리에, 베이커리 카페 그랑부아, 파사드 운영을 거쳐 현재 다수 기업의 사내 카페 및 라운지 운영 전문업체 ㈜라뜰리에 대표.
사진- 이정민 작가
포토 스튜디오 [단편] 운영자. 사진과 판화를 접목하고, 한지와 패브릭을 활용하는 회화적 사진 작업으로 활동 중. 한국공예디자인 문화진흥원, 문화재청, 한국문화재 재단, 북촌한옥청, 북촌문화센터 등지에서 열린 다수의 전시에 참여. 마켓컬리, 이성당, 에프북언더, 주얼리 브랜드 JIGUM 전속작가.
글- 홍예진 소설가
재외동포문학상 소설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발표 시작. 산문집 [매우 탁월한 취향], 장편소설 [소나무 극장] 저자. [더 칼럼니스트]에 홍예진의 애플파이 코너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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