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라이프

들쭉 연맹 유산

[레시피 나라의 앨리스]

바삭하고 담백한 팝오버, 신선한 블루베리 과육이 톡톡 터지는 콩포트,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깜짝 놀랄만한 화합의 맛을 만들어낸다.
바삭하고 담백한 팝오버, 신선한 블루베리 과육이 톡톡 터지는 콩포트,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깜짝 놀랄만한 화합의 맛을 만들어낸다.
그래픽= 최소영
그래픽= 최소영

올케들이 그림을 욕심내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투자 가치가 있는 그림이었다면 큰 올케언니가 탐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얄팍한 안목이긴 해도 분야를 막론하고 돈이 될 것 같은 상업적 흐름은 잘 감지해내는 사람이라서 그림에서 비전을 보았을 시 순순히 내게 넘겼을 리가 없다. 이 그림에서는 돈 냄새를 못 맡은 거지. 자칭타칭 미니멀리스트가 되어버린 작은 올케언니는 말할 것도 없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곤도 마리에를 표방하고 있는 작은 올케가, 좋게 말해 고풍스럽고 한 끗 차이로 구닥다리이기도 한 이 그림을 면벽 수행에나 딱 좋을 자기 집에 걸고 싶어할 리는 없으니까.

엄마는 숨을 거두기 전 마지막 몇 달 동안 줄곧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 그림은 꼭 내가 가져야 한다고. 엄마의 병세가 급격히 심해지고 나서 한 말이 아니었더라면 올케들이 의구심을 품었을 수도 있다. 혹시 그 그림에 보통 사람들이 알기 어려운 특별한 사연과 값어치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하지만 엄마가 주걱이니 냄비니 어쩌고 하다가 느닷없이 그림 이야기를 꺼내곤 하니까 올케 언니들은 그 그림도 낡은 주방도구처럼 시답잖은 것이겠거니 했을 것이다. 그림은 오랫동안 엄마의 주방 한쪽 벽에 걸려 있었다. 폐품과 다를 바 없는 고물 살림 도구로 취급받아도 이상할 게 없기는 했다.

그림에 관한 비밀을 알게 된 건 내가 고등학교 일학년 때였다. 이 혈통 여자들이 만으로 열여섯 살 되었을 때 알리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딸들만 내려받게 되어있는 전통이고, 모계 혈통을 이어갈 수 없는 오빠들은 애초에 이 운명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날, 그러니까 내가 열여섯 살이 되던 날, 엄마는 일찍 퇴근해 들어와 있었다. 이미 대학생이 된 오빠들은 각자 자신의 진로나 연애 문제 등에 정신이 팔려있어서 집에 붙어있는 일이 드물었다. 생일이라고 특별한 이벤트를 벌이는 집안 분위기는 아니라서 그날도 여느 때처럼 엄마랑 외식이나 하고 용돈을 좀 받겠거니 했다. 어렸을 때는 생일 즈음이면 아빠한테 연락이 오기도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일도 슬그머니 없어지고, 따라서 우리는 모두 아빠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살게 되었다.

그날, 의식을 치르기 전 엄마가 일러주기를, 이것은 ‘선택’이라고 했다. 운명을 거부하고 싶으면 그래도 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혈통 안에서 딸을 가진 엄마라면 때가 왔을 때 아이에게 비밀을 알려주고 일단 한 번은 그곳으로 데리고 가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준비할 것은 세 가지. 엄마가 늘 가지고 있던 무쇠 냄비, 나무 주걱, 그리고 들쭉 열매였다. 지금은 블루베리라는 말로 더 많이 쓰이는 그 검푸른 열매 말이다.

나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냄비를 불에 올리고 들쭉 열매를 쏟아부었다. 냄비 안의 내용물이 진자주색 거품을 올리며 끓기 시작하자 엄마가 문제의 그 주걱을 건네주었다. 엄마가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냄비 속에 주걱을 담그고 젓기 시작했다. 바로 거기까지가 그림과 똑같은 장면이었다. 중년 여자는 지켜보고, 소녀는 냄비 안의 내용물을 나무 주걱으로 젓는. 다시 말해 그림은 이 혈통을 지닌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어느 한 시점에 거쳐 가야할 일을 알리는 전령이자 통로인 거였다. 그림 속 주걱과 냄비의 손잡이 장식은 엄마가 가지고 있는 것들과 똑같았다. 주걱 손잡이 끝과 냄비 손잡이에 들쭉나무 이파리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림 속 여자들 옆쪽에 난 창으로 들쭉나무 가지 하나가 삐죽이 고개를 들이밀고 있어서 냄비 안에서 끓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암시한다. 그림 속 낡은 조리대 주변에도 들쭉 열매들이 흩어져 굴러다닌다.

내가 주걱을 돌릴 때마다 엄마는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넷…… ”

이윽고 열여섯을 세고 난 후, 엄마가 내 손목을 잡았다. 이제 멈추라고 외치면서. 그때였다. 엄마와 나와 주걱과 냄비와 들쭉 시럽이 단숨에 녹아 뒤섞이더니 빙글빙글 돌면서 하나의 중심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희한하게도 전혀 뜨겁지 않았고, 어지럽지도 않았다. 잠시 후 정신이 들자마자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그림 속으로 들어와 있다는 것을. 우리가 냄비를 마주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우리를 둘러싼 배경이 그림 속의 그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칠이 벗겨진 회벽, 낡은 원목 조리대, 마른행주 위를 뒹구는 들쭉 열매들. 창을 넘어 들어온 들쭉 나뭇가지 한 줄기까지 그림 그대로였다. 그림 속에 들어오니 창밖이 보였다. 넓은 마당 한가운데에 커다란 초대형 수정 그릇이 있고, 여자들이 그 주변을 에워싸고 서성대거나 앉아있거나 하면서 노닐고 있었다. 수정 그릇에 들어있는 것이 들쭉 시럽이라는 걸 알 수 밖에 없는 게, 여자들 몇 명이 각자 가져온 냄비속 내용물을 수정 그릇 속에 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들쭉 연맹 모임이야. 일 년에 한 번씩 각자 끓여온 들쭉 시럽을 수정 그릇에 부은 다음 섞어서 나눠 마시지. 들쭉 시럽은 우리가 나누는 혈맹의 징표란다. 네가 이 의식을 받아들이면 오늘부터 넌 들쭉 연맹의 일원이 되는 거야. 하지만 내키지 않으면 거부해도 돼. 이것은 온전히 네 선택의 여부거든. 싫으면 그냥 돌아가 원래대로의 삶을 살면 된단다.”

나는 창 안쪽에 서서 들쭉 시럽이 찰랑거리는 수정 그릇 주변의 여자들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어째서 내가 이 연맹에 가입할 수 있는 혈통인 건지 알 수 있었다. 우리 모두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에는 같은. 엄마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든 네 마음이 바뀌면 다시 돌아올 수 있어. 오늘처럼 의식을 치르고 그림 속으로 들어오면 되는 거야. 들쭉 시럽을 마시고 연맹의 일원이 되는 거지. 주걱으로 시럽을 젓는 횟수는 네 나이 만큼이란다. 내년이면 열일곱 번, 다음 해에는 열여덟 번, 알겠니?”

엄마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 어떤 몸짓도 보여주지 않았으나 엄마는 알아차렸다. 나는 연맹의 일원이 되고 싶지 않았고, 엄마는 내 눈빛에서 그걸 읽은 것이다. 엄마가 말했다.

“좋아. 그럼 냄비 속의 내용물을 여기다 버리렴.”

나는 엄마가 가리키는 개수대에다 내가 끓여온 들쭉 시럽을 쏟아 부었다. 냄비가 바닥을 보인 순간 우리는 다시 집 주방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고 난 뒤, 나는 한 번도 들쭉 연맹 모임에 가지 않았다. 엄마에게 그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고, 엄마 혼자 매년 연맹의 파티에 간다는 걸 알고 있어도 모르는 척하는 걸로 일관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일부러 찾아가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 후 13년이 흘렀다. 오빠들은 각자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고, 나와 함께 살다가 요양원으로 간 엄마는 이제 세상에 없다. 요양원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엄마도 들쭉 연맹 모임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냄비와 주걱도 집에 있었고, 요양원에서 엄마에게 불을 쓰게 할 리는 없으니까. 나는 냄비와 주걱이 들어있는 수납장을 흘끗 보고는 벽에 붙은 가족사진으로 시선을 돌렸다. 올케언니들이 가끔 좀 얄밉게 굴기는 해도 오빠들과 나는 괜찮다. 나 같은 동생에게 그만큼 무던하게 구는 것만 봐도 오빠들은 나무랄 데 없다. 정말로 그렇다. 하지만…… 하지만……

들쭉 연맹을 자꾸 떠올리게 된 게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가물가물하다. 엄마가 아프고부터인 것 같기도 하고, 엄마가 죽을 거라는 걸 알고 난 후부터인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해지자. 실은 훨씬 이전부터였을 것이다. 성장기가 지나가고, 내가 영원히 지금의 몸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마음 깊이 인정하게 되었을 때부터. 그림 속에서 개수대에 들쭉 시럽을 쏟아버리기 전 엄마가 일러준 말을 곱씹게 된 건 나 자신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난 후부터였으니까.

“언젠가 말이야. 도저히 안되겠다 싶을 때가 올 수도 있어. 살다 보면 힘을 합쳐줄 이들이 필요한 때가 오거든. 누구에게나. 네가 너를 도저히 바꿀 수 없어서 힘겨우면 세상을 바꿔야지. 하지만 혼자서 하기는 어려운 일이야.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오면 들쭉 연맹이 있다는 걸 기억해. 그들과 함께하라고. 알았지?”

나는 그림을 마주하고 앉았다. 열여섯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그때의 나는 혈통의 굴레에 갇히길 거부했던 열여섯이었고, 지금의 나는 연결망의 힘을 아는 스물아홉이다. 두 번의 수술 후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나는 이제 들쭉 연맹에 손을 내밀기로 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도 결국엔 나와 비슷한 독립의 과정을 거쳐 가게 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나는 주걱과 냄비를 넣어둔 곳 쪽으로 방향을 돌려 움직였다. 어느새 들어와 있는 오후 햇살이 내 휠체어 바퀴에 제 몸을 걸고 빙글빙글 따라붙었다.

- 레나앨 프로젝트 -

음식- 황창민 셰프

프랑스 파리 꼬르동블루 졸업. 프렌치 레스토랑 라뜰리에, 베이커리 카페 그랑부아, 파사드 운영을 거쳐 현재 다수 기업의 사내 카페 및 라운지 운영 전문업체 ㈜라뜰리에 대표.

사진- 이정민 작가

포토 스튜디오 [단편] 운영자. 사진과 판화를 접목하고, 한지와 패브릭을 활용하는 회화적 사진 작업으로 활동 중. 한국공예디자인 문화진흥원, 문화재청, 한국문화재 재단, 북촌한옥청, 북촌문화센터 등지에서 열린 다수의 전시에 참여. 마켓컬리, 이성당, 에프북언더, 주얼리 브랜드 JIGUM 전속작가.

글- 홍예진 소설가

재외동포문학상 소설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발표 시작. 산문집 [매우 탁월한 취향], 장편소설 [소나무 극장] 저자. [더 칼럼니스트]에 홍예진의 애플파이 코너 연재 중.

글쓴이

레나앨 프로젝트

신개념 요리 컨텐츠 [레시피 나라의 앨리스]를 위해 모인 사람들. 셰프 황창민, 사진작가 이정민, 소설가 홍예진이 빚어내는 [레나앨 프로젝트]는 음식 및 요리법에 초단편 소설을 곁들여 소개한다. 입체적 요리 컨텐츠를 추구하는 크리에이터 그룹.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