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라이프

근원을 향해서

[레시피 나라의 앨리스]

그래픽= 최소영
그래픽= 최소영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소예타?”

모한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물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웃어 보였다. 또 식사 중에 정신을 놓고 있었던 거다. 그 영상을 본 이후로 빈번하게 생기는 일이었다. 모한이 다른 음식을 시켜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떤 음식이 앞에 있어도 별로 당기지 않을 것 같았다. 모한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잔을 들어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고 피자를 베어 물었다. 다시 그 영상이 떠올랐다. 그 사람들도 그 국수를 먹을 때 맥주를 마셨다. 그 맥주와 이 맥주는 같은 맛이 날까? 나는 늘어지는 치즈를 앞니로 끊어내는 모한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자기는 그런 적 없어? 보호구역의 샘플들처럼 생물학적인 몸으로 진짜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

모한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주변을 살폈다. 레스토랑은 붐볐고, 음악 소리도 꽤 커서 내 말이 다른 테이블 쪽까지 들릴 리는 없었다. 그래도 모한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아니 별로.”

모한은 내 눈을 응시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주의하라는 신호다.

‘안돼, 소예타. 알잖아. 쓸데없는 망상을 과하게 키우면 버그로 인식될 수 있다는 걸.’

물론 아는데, 그다지 걱정 안 한다. 나는 보호구역 관찰 연구원의 존재감이 크다는 것까지도 아니까. 나를 제거해도 데이터는 남겨둘 수 있지만, 뉴클리어스는 우리 연구원들이 보호구역을 지켜보면서 획득한 유대감을 유용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보호구역 내 생물학적 인류 샘플의 몸 안에 우리 디지털 인류가 이식될 때, 두 자아의 충돌을 최소화할 수 있는 도구로 쓰일 수 있으니 말이다. 샘플들과 흡사한 감성은 뉴클리어스가 상위층에 두고 조심스럽게 다루는 정보다. 이는 연구원들만 알고 있는 비밀이고, 그걸 알지 못하는 모한은 내 돌발 의식이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내가 그리 쉽게 제거될 대상이 아니라는 걸 모르니까.

신중한 동시에 시니컬한 성향의 모한의 사고방식은 이렇다.

“어차피 우리는 생물 인류의 평균 수명을 전후로 한 계산값에 의해 죽기로 되어 있잖아. 사망 연령대야 다 달라도 말이야. 아무려나 지구 회복기는 아직 이백 년이나 더 남았고, 우리 세대는 그때까지 살아있지도 않을 것이고, 생물로의 귀환은 한참 이후 세대의 이야기지. 난 대안 현실에 만족해. 생각해봐. 조상들의 삶에서는 언어도, 인종도 제각각이었고, 구역을 나누며 서로 싸우고 죽이기도 하면서 살았다잖아! 끔찍하지 않아?”

모한은 순간을 유쾌하게 소비하며 살 줄 안다. 세기말적 고민에 빠져 있기엔 아까울 정도로 잘생기기도 했다. 이토록 수려한 테니스 코치가 나처럼 칙칙한 공부벌레와 짝이 된 걸 보면 뉴클리어스의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는 것이다. 우리는 유전자 균형 프로그램 안에서 통계와 확률의 질서로 만났고, 아마도 오륙 년쯤 후엔 우리의 장단점이 상호보완된 아기를 낳게 될 것이다. 생물 인류에게로 이식되는 시기에 존재할 디지털 인류의 마지막 세대는 오백 년 동안의 지구 회복기에 뉴클리어스가 모든 아이덴티티를 취합해 만들어낸 완벽한 인류가 될 것이다. 건강하고, 아름답고, 똑똑하고, 선한 유전 정보를 가진.

나는 포크를 들었다. 일단 눈앞의 리조또를 먹기로 했다. 모한이 맞다. 어차피 우리는 디지털화를 거치며 개편된 존재들이다. 인류가 디지털화되어 대안 현실로 업로드된 후 뉴클리어스는 모든 문제의 화근이었던 인종, 언어, 국적, 종교를 뒤섞고 폭력성은 극소량의 필요치만 남겨두고 거의 삭제시켰다. 잔여 폭력성이 가끔 확장되어 문제를 일으켜도 바이러스 퇴치 프로그램이 처리하므로 금세 해결된다. 대부분의 디지털 인류는 모한처럼 대안 현실에 만족하고 산다. 다만 샘플 인류를 지켜보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혼란이 올 수도 있는데, 그걸 귀띔해준 이는 연구소 내 상담 심리학자 셀루이였다. 연구원들의 유전자 히스토리 차트를 볼 수 있는 존재.

빗소리. 한밤중에 일어나 침대를 빠져나왔다. 빗줄기가 창을 때리고 처마 밑에 고인 물이 홈통을 따라 내려가는 소리에 잠이 깬 것이다. 창에 맺힌 빗방울 그림자가 모한의 한쪽 뺨에 그림을 그려놓고 있었다. 잠귀가 어두운 모한은 이 정도 소음에는 끄떡없이 잔다. 예민한 나만 이 모양이다. 서재로 가서 홀로그램을 열었다. 모한이 깰까 봐 사운드를 소거한 뒤 다시 그 녹화 클립을 재생했다. 유독 왜 이 클립에 마음이 가는 것일까. 따지고 들지만 않는다면 보호구역 내 생물 인류 샘플들과 대안 현실 디지털 인류들의 격차는 거의 없다.

천만으로 출발한 샘플 인류는 삼백 년 동안 그래온 것처럼 지속적으로 번식하며 개체수를 늘릴 것이다. 예정대로 지구도 점점 회복되고 있다. 대안 현실의 본격 도래 전 선발된 샘플 인류는 뉴클리어스가 만든 통일 언어 <유니토>를 습득하고 그 언어로 보호구역 안에서 잘 살아오고 있다. 인종 간 교배 원칙도 잘 지켜왔고, 샘플 인류 4대쯤에 이르러서는 보호구역 내의 인종 구분은 의미가 없어졌다. 우리도 보호구역의 환경 변화에 맞추어 시스템 정비를 거듭해왔으니 훗날 생물 인류에게로 이식되어도 큰 차질은 없을 것이다. 샘플 인류도 디지털 인류도 불미스러운 과거의 자취는 거의 걸러냈으니까. 뉴클리어스는 우리가 과거의 유전 정보에 오염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지구 회복기가 끝나면, 우리 디지털 인류는 다시 취합되어 그때의 샘플 인류 개체수에 맞게 이식용 소프트웨어로 빚어진다.

홀로그램 속 세 사람은 가족이다. 부부와 어린 딸. 아이는 일곱 살쯤 되었을까. 보호구역 내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섬에 살고, 남편 쪽은 어부다. 아내는 남편이 전날 가지고 들어온 해산물로 새로운 요리를 개발했다며 뽐을 내고, 아빠와 아이는 흥미진진한 눈빛을 마주치며 호들갑스럽게 분위기를 내준다. 이윽고 국수가 상에 놓이고 남편은 성게알이 올라간 메밀국수에 젓가락을 가져간다. 국수 맛을 본 남자가 하는 말.

“트러플이 들어갔네?”

나도 남자를 따라 그 말을 해본다. 며칠째 수십 번을 돌려봤으니 이 가족의 모든 동작을 똑같이 연기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홀로그램으로 손을 뻗었다. 저들이 먹는 음식. 대체 왜, 이 음식을 먹는 장면이 이토록 눈에 밟히는 걸까. 어째서.

셀루이가 일러줬다. 파일을 열어 보여줄 순 있지만 그 뒤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이토록 강렬하게 근원을 파악하고자 하는 이는 처음 본다며 흥미로워하기도 했다. 과거를 들추어낸 아이덴티티를 뉴클리어스가 어떻게 처리할지는 셀루이도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혼란을 가져올 버그로 인식될까, 축적한 감성 가치의 존재감 덕에 계속 우대받을까. 끝내 파일을 연 건 내 판단이 ‘우대’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일 것이다.

파일 속 내용에 의하면, 디지털화 직전의 마지막 생물 인류, 그러니까 나의 조상은 섬마을 소녀였다. 어머니는 일본인이고 아버지는 중국인이었다. 소녀의 아버지는 식재료 유통업을 하느라 세상의 이곳저곳을 떠돌았다고 한다. 소녀도 부모도 인근 해변에서 나오는 해물로 만든 음식을 좋아하…… 까지 읽었을 때였다. 갑자기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는가 싶더니 경보음이 울렸다. 삐익! 삐익! 삐익! 삐익!

암흑 속에 얼마나 오래 있었던 것일까. 일 년? 십 년?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일지도. 그 기간이 얼마나 되었든, 지금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작고 하얀 점 쪽으로 이동 중이다. 나는 이식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환생하는 것일까? 저곳이 다시 또 대안 현실일지, 보호구역일지, 그도 아니면 먼 미래의 회복된 지구일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나는 그저 떠밀려 움직이고 있다. 하얀 점 가까이.

- 레나앨 프로젝트 -

트러플의 깊은 맛, 마요네즈의 고소함, 굴소스의 감칠맛이 어우러진 성게알 메밀국수.
트러플의 깊은 맛, 마요네즈의 고소함, 굴소스의 감칠맛이 어우러진 성게알 메밀국수.

음식- 황창민 셰프

프랑스 파리 꼬르동블루 졸업. 프렌치 레스토랑 라뜰리에, 베이커리 카페 그랑부아, 파사드 운영을 거쳐 현재 다수 기업의 사내 카페 및 라운지 운영 전문업체 ㈜라뜰리에 대표.

사진- 이정민 작가

포토 스튜디오 [단편] 운영자. 사진과 판화를 접목하고, 한지와 패브릭을 활용하는 회화적 사진 작업으로 활동 중. 한국공예디자인 문화진흥원, 문화재청, 한국문화재 재단, 북촌한옥청, 북촌문화센터 등지에서 열린 다수의 전시에 참여. 마켓컬리, 이성당, 에프북언더, 주얼리 브랜드 JIGUM 전속작가.

글- 홍예진 소설가

재외동포문학상 소설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발표 시작. 산문집 [매우 탁월한 취향], 장편소설 [소나무 극장] 저자. [더 칼럼니스트]에 홍예진의 애플파이 코너 연재 중.

글쓴이

레나앨 프로젝트

신개념 요리 컨텐츠 [레시피 나라의 앨리스]를 위해 모인 사람들. 셰프 황창민, 사진작가 이정민, 소설가 홍예진이 빚어내는 [레나앨 프로젝트]는 음식 및 요리법에 초단편 소설을 곁들여 소개한다. 입체적 요리 컨텐츠를 추구하는 크리에이터 그룹.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