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사람이 되어
[레시피 나라의 앨리스]

제이슨이 포장 음식이 담긴 종이봉투를 들고 식당을 나서는데 샌드위치를 먹고 있던 남자 둘이 흘끗거렸다. 누가 봐도 제이슨은 동네 사람 같지 않을 것이고, 식당 앞에 세워둔 제이슨의 고급 세단에는 뉴욕 번호판이 붙어있으니 양쪽을 번갈아 오가는 그들의 시선에 삐딱함이 묻어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제이슨은 그런 눈빛을 잘 알고 있었다. 뉴햄프셔에 올 때를 제외하면 잊고 살긴 하지만 제이슨도 원래 이곳 사람이니까. 겉모습은 뉴요커라도 제이슨의 표피 아래에서는 여전히 촌동네 출신 남자의 혈액이 흐르고 있다.
늪지대로 가는 길에는 낙엽이 수북했다. 11월치고는 이상하리만치 온화한 기후가 이어지고 있었다. 뉴햄프셔의 가을이라 믿기 어려웠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겠지만 어쨌든 추운 것보다 나았다. 뉴욕에서 서둘러 출발했음에도 오두막에 도착했을 무렵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제이슨은 시동을 끄자마자 조애나에게 간략한 문자를 보냈다. 도착했어. 오전에 제이슨이 집을 나설 때 조애나는 침대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형한테 안부 전해줘. 같이 가보지 못해서 미안.”
명절을 앞둔 주말이라 조애나는 정신없이 바쁠 예정이었다. 이번 추수감사절 만찬에는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오빠네까지 모일 수 있게 되어서 웨체스터의 친정집이 모처럼 바글거리게 생겼다. 조애나는 만날 때마다 상냥하게 신경을 긁는 올케를 의식하며 꿇리지 않을 드레스도 준비해야 하고, 외손녀의 성적을 궁금해하면서 요청받지 않은 진학 상담을 자처하는 모친에게 말려들지 않을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한다. 물론 그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제이슨 역시 조애나를 동반해 뉴햄프셔에 올 생각은 없었다. 조애나가 찰리의 오두막 안으로 들어설 때 지을 표정 같은 건 생각하기도 싫으니까.
아무튼 추수감사절을 처가 식구들과 함께하는 건 관례가 되어버렸고, 대신 제이슨은 명절 전 주말에 뉴햄프셔로 와서 찰리와 저녁을 함께 먹고 다음 날 뉴욕으로 돌아간다. 크리스마스에도 찰리와 함께하기는 어려운 게, 그때는 또 반드시 가야 하는 스키 여행으로 일정이 차 있었다. 조애나는 어릴 때부터 다니던 스키 리조트의 가족 멤버십 이용권을 날려 먹으면 큰일 나는 줄 알기 때문에 매해 여름 서둘러 예약을 해둔다. 그러니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고향을 찾는 것은 제이슨이 자기 쪽의 가족을 챙기는 나름의 방편인 것이다.
찰리는 수염이 덥수룩한 채로 문을 열어주었다. 형제는 맨송맨송하게 잠깐 끌어안고는 어릴 때처럼 요! 소리를 내며 주먹을 맞부딪쳤다. 잠시 어색하게 웃은 다음 제이슨이 음식 봉투를 내밀었다. “여기, 저녁 먹을 거 사 왔어!” 포장해온 랍스터 파이가 오븐에서 데워지는 동안, 두 사람은 맥주를 마셨다. 찰리가 조애나의 안부를 물었고, 이어 에버렛의 근황에 관해서도 물었다. 제이슨은 조애나도 인사를 전하더라고 했지만, 에버렛에 관해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섯 살 때까지는 에버렛도 찰리를 반가워하고 따랐으나, 지금은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더구나 제 삼촌이 침침한 오두막에 은둔해 음모론자들과의 연결망에 의지해 산다는 걸 알면 치를 떨 것이다. 극단적 페미니스트이자 극단적 동물보호주의자인 에버렛은 자신과 다른 방면의 극단주의자들을 극단적으로 경멸하기 때문에 제이슨은 딸아이 앞에서 찰리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맥주 더 할래?” 찰리가 빈 맥주병을 가리키며 물었다.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이자 찰리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준 다음 수건을 손에 감고 오븐 속의 랍스터 파이를 꺼냈다. 뒷마당 쪽으로 나 있는 주방 문가에는 찰리의 다이빙 수트가 걸려있었다. 찰리는 오두막 뒤편의 하천 때문에 이곳으로 왔다. 늪지대라 물살도 유유하고 잠수 연습에 더할 나위 없다는 게 이유였다. 낚시꾼의 임시 숙소로나 쓰면 모를까, 살림집으로 알맞은 곳은 아니어서 헐값이었던 오두막은 아버지가 그나마 남긴 작은 유산이 바쳐진 제단이 되었다. 오두막으로 오기 전, 찰리는 제니퍼와 함께 살던 집에서 한동안 홀로 지냈었다. 오랫동안 같이 살면서도 찰리와 제니퍼는 결혼하지도, 아이를 갖지도 않았었는데, 지금 제니퍼는 다른 주로 가서 간호사로 일하며 다른 남자와 결혼해 산다.
찰리가 협회에 빠져들기 시작한 건 제니퍼가 떠난 집에서 혼자 살 때였다. 음모론 추종자들이 대개 그렇듯 출발점은 유튜브였는데, 이후 찰리는 페이스북의 해당 그룹으로 발을 들이고 적극적으로 교류를 이어갔다. 협회의 기본 이론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환경 변화를 기반으로 형성된 것으로, 찰리가 제이슨에게 알려준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언젠가 빙하가 다 녹아 지구는 물로 뒤덮이겠지만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인류의 기원은 원래 물속의 어류였고, 그 증거는 각종 문헌을 통해 증명이 되어있다는 거였다. 다만 인류는 원래의 모습으로 역진화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매일 일정 시간 물속에서 잠수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잠수 시간을 점점 늘려가다 보면 언젠가는 물속에서 피부로 호흡할 수 있게 되는 지점에 이르고, 그때가 바로 우리 인류가 어류로 되돌아가 생존할 수 있게 되는 터닝포인트인 거였다.
협회원들은 각자의 생활 반경 내 강, 호수, 바다 등지에서 잠수 시간 늘리기를 연습하면서 일지를 적거나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해 소셜 미디어에 올리고, 격려하고, 연대하는 방식으로 교류한다. 이듬해 봄에는 버지니아의 백베이에서 연례행사가 있을 예정인데, 미 전역의 협회원들이 캠핑장에 모여 합숙하면서 단체 잠수 행사를 벌이고 화합의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찰리는 협회원들과 대면으로 만날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하며 들떠 있는 중이고, 그때를 위해 잠수 연습에 총력을 쏟고 있었다.
제이슨은 협회와 관련한 찰리의 마음을 돌려놓는 건 포기한 터였다. 대신 찰리가 늘어놓는 말을 경청하는 척으로 입장을 바꾼 지 좀 됐는데, 이번만큼은 걱정이 되어 참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듣자 하니 잠수 연습 시간이 도를 넘는 듯했다. 찰리는 어린 형제를 두고 일찍 세상을 떠난 모친을 닮아 폐가 좋지 않았다. 제이슨이 지능, 외모, 건강에 이르기까지 부모로부터 좋은 면만 물려받아 태어난 것에 비해 찰리는 반대였다. 제이슨이 되도록 찰리의 폐에 관해 언급을 피하는 이유가 형의 박탈감을 알기 때문인데,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기 어려웠다.
“형, 로첸버그 선생님은 계속 만나고 있어?” 찰리는 폐질환 담당의 이름을 듣고는 표정을 굳히더니 잠수 이야기를 멈췄다. 랍스터 파이를 먹는 동안 제이슨이 몇 가지 말을 더 붙여봐도 심드렁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조도가 낮은 불빛 아래에서 형제는 말없이 음식을 씹었다. 오두막 바깥에서는 까만 어둠이 엎드려 누워 늪지대 미물들의 밤 기척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침 공기는 전날과 달리 싸늘했다. 몸을 떨며 일어난 제이슨은 커피를 끓이려고 주방을 기웃거리다가 문가에 걸려있던 다이빙 수트가 사라진 걸 알아차렸다. 문을 열어보니 찬 공기가 와락 밀려들면서 방금 대지 위로 고개를 내민 햇빛이 눈으로 들어와 꽂혔다. 제이슨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문을 닫고는 재킷을 집어 입었다. 하천을 향해 몇 걸음을 걷는 동안 금세 공기가 앞섶을 헤집고 들어와서 제이슨은 재킷의 지퍼를 끌어 올렸다. 오두막과 하천의 거리는 5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하천의 가장자리는 드문드문 무리를 진 갈대 수풀과 고운 모래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하천 한가운데에,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고 큰 숨을 몰아 내쉬는 찰리가 보였다. 방금 잠수하고 올라온 듯했다.
오래전, 어머니가 살아있고 아버지는 청년의 모습에 가까운 시절일 때, 형제가 물에서 놀고 있으면 물가의 모래밭에선 클램베이크 연기가 피어오르곤 했다. 모래밭에 구덩이를 파고, 돌을 깔아 만든 임시 화덕이 달구어지면 아버지는 랍스터나 조개, 옥수수 같은 것들을 던져 넣고 해초를 덮어 익혔다. 아버지가 일하던 수산물 유통업장에서 싸게 구해온 것들을 인근 바닷가에서 익혀 먹고 노는 게 어린 시절의 휴가였다. 비행기를 타보기는커녕 주 경계 너머로 놀러 다니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가난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클램베이크 소풍 준비를 하는 날이면 디즈니랜드를 간다는 친구들의 자랑이 부럽지 않았다.
제이슨은 모래밭에 주저앉아 다시 찰리를 숨겨버린 물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수없이 던져본 질문이지만 답은 늘 제자리를 맴돌았다. 어머니가 죽고 난 후부터였던 것도 같고, 병이 도지는 횟수와 함께 찰리가 학교를 자주 빠지게 되면서부터였던 것도 같고, 전액 장학금을 보장받고 대학에 진학하게 된 제이슨이 뉴햄프셔를 떠나고 난 후부터였던 것 같기도 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제이슨은 이번에도 아내와 딸이 있는 뉴욕으로 돌아갈 것이고, 찰리는 이곳에 남아 자신이 믿는 신세계를 만나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할 것이었다.
아침 해가 고도를 높이면서 수면의 반사광 위치가 이동했다. 제이슨은 가느스름해진 눈으로 찰리가 자맥질해 내려간 물의 가운데 지점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잠수치고는 꽤 긴 시간이 지났는데 찰리는 물 위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갔는지도 몰랐다. 빛 반사가 시야를 흐려 보이지 않을 뿐. 제이슨은 더는 견딜 수 없어 눈을 감았다. 빛을 버텨내지 못해 내려앉은 눈꺼풀 안쪽에서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마침내 수중 호흡에 성공한 찰리가 날개 같은 지느러미를 펄럭이면서 광활한 바다 한가운데로 헤엄쳐가는.
- 레나앨 프로젝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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