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
[레시피 나라의 앨리스]

이 이야기가 하나부터 열까지 믿어지지 않는다 해도 할 말은 없다. 우선, 이 모든 것이 선상의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시작된다는 것부터가 비현실적이니까. 물론 연예인들이나 부자들이 강이나 바다에 호화 요트를 띄우고 노는 사진 같은 걸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조차 SNS 홍보를 위한 보여주기식 연출일 뿐 실제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문화는 아닐 거라고 여겨져 딱히 동경이 생기지도 않았다.
그러니 내게 선상 파티 초대장이 왔을 때 그것이 실제로 있을 법한 이벤트라고 여기기가 쉬웠겠는가 말이다. F.I.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 로고가 박힌 우편물 안에는 정식 초대장 하나와 편지가 들어 있었는데, 초대장이 하나라는 것도 이상하다면 이상했다. 초대장이라면 보통 2장은 보내는 게 기본 아닌가. 그 단 하나의 초대장에는 아무튼 내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고, 동봉된 편지에 따르면 칵테일 파티로 시작해 연회로 이어지는 행사의 마지막 절차로는 그날의 하이라이트인 개별 체험이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생각해보라. ‘플로팅 아일랜드 프로젝트는 그리운 사람이 과거에서 보내는 선물입니다. 부디 이 특별한 파티에 참석하셔서 평생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를 경험하는 행운을 누리세요. 당신은 선택된 사람이니까요!’라는, 상업 광고 냄새가 물씬한 문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를. 하지만 나는 결국 그 파티에 가고 말았는데, 서면 초대를 시작으로 이메일과 전화 상담원을 동원해 반복 접촉을 시도하는 F.I. 코퍼레이션의 끈기에 호기심이 일기도 했고, 그 회사 웹사이트를 확인해보고 나자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째서 이런 첨단기술 스타트업 회사에 내 정보가 갔는지 몰라도 어차피 난 연말에 불러주는 곳도 없는 처지였다. 맛있는 음식이나 실컷 먹고 파티 분위기에 젖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고 합리화를 해버리니 더 이상 망설여지지도 않았다. 설령 그 행사가 뭔가를 홍보해 팔기 위한 낚시성 파티라도 넘어가지 않고 꿋꿋이 버티고 있으리라는 자신감……이라기엔 좀 그렇고, 나를 잠정 고객으로 알고 초대한 거라면 오판도 그런 오판이 있을까 싶게 실상 내가 개털이었으니 겁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없는 돈을 쥐어짜 산 새 옷을 입고 그날 한강 둔치와 배를 잇는 다리를 건너고 만 것이다. 그날의 그 다리 건너편에선 환한 배가 인디고색 밤 속에 떠 있었고, 통로 양쪽으로 늘어선 불빛들은 강물 위에 떨어뜨린 반사광까지 동원해 내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금을 그어버린 그 이상한 사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칵테일 파티와 식사가 곁들여진 연회는 별다를 게 없었다. 연말 흥을 내기엔 충분할 만큼 공들인 행사였으나 단단히 각오했던 판촉 기획 같은 건 없었다. 무엇보다 초대된 사람이 나를 포함 단 열 명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왁자지껄한 익명성에 묻혀서 적당히 노닥거리다 오겠다는 내 계획은 틀어졌다. 초대 손님 모두가 개별적으로 극진히 대접받는 분위기의 행사였으니까. 배 안에는 행사를 기획한 F.I. 코퍼레이션 직원 열 명, 초대 손님 열 명, 음식 서빙을 하는 사람 셋, 그리고 배경 음악을 깔아주는 뮤지션 넷이 있었으니, 실상 초대된 사람 수가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 수에 미치지 못하는 좀 이상한 파티였다.
행사 중에 F.I. 코퍼레이션이 생화학과 첨단기술 양쪽을 커버하는 회사라는 소개 시간이 있긴 했지만, 어차피 내가 알아먹지도 못할 분야의 이야기라 대강 흘려들었고, 따라서 후식으로 나온 초콜릿 수플레에 0.01 밀리그램(㎎)의 향정신성 식용 약제 ‘미라지’가 들어있다는 정보에도 별 경계심을 품지 않았다. 워낙에 극소량이기도 한 데다, 중독성이 없어 식약청의 허가도 난 성분이라니 문제 될 게 없다고 여긴 것이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라는 개별 체험은 초콜릿 수플레를 먹고 15분쯤 있다가 참여하게 되어있었다. 초대객들, 그러니까 체험자들은 각각 갑판에 부착된 원형의 캡슐에 탑승하는 것이었고, 캡슐은 배의 본체를 벗어나 강 위를 떠 다니다가 한 시간 후 돌아오기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었다. 탑승 전 캡슐 입구 앞에서 F.I. 코퍼레이션 직원들이 체험자들에게 1:1로 붙어서 몇 가지 일러둘 점을 숙지시켰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것은 과학적으로 안전한 것이니 놀라지 말고 상황을 받아들일 것, 캡슐의 입구는 안전을 위한 잠금장치가 걸리게 될 것이니 운행 중 억지로 문을 열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 등등.
평소 같았으면 의심스럽다고 여겼을 상황이긴 했지만 나는 별 저항 없이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연말의 파티 장소가 주는 일탈성, 아마도 수플레 때문일 게 분명한 초자아적 의식 상태 같은 것이 경계심을 허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내 탑승을 담당한 주최 측 직원의 표정이 어찌나 따뜻한지 그의 말을 믿지 않으면 불경스러운 것처럼 여겨진 것이다.
이제 그 순간에 대해 말해야 하는데, 나는 이럴 때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새삼 실감한다. 일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 캡슐 안에서 겪은 걸 온전히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느끼니까. 놀이공원의 데이트 컵처럼 생긴 캡슐 내부는 두 사람이 마주 보게 되어있는 좌석 구조였는데, 내가 들어가 앉자마자 버클이 채워지고, 입구가 닫히는가 싶더니 곧바로 칠흑 같은 암전이 왔다. 그때 누군가 맞은편의 좌석에 앉아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너무 깜깜해서 확인할 길은 없었다. 잠시 후 캡슐은 배를 벗어나 개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어딘가, 그러니까 캡슐이 한강 어딘가쯤으로 가 멈추고는 혼자 동동 떠 있다는 기분이 들 때 맞은편에 앉은 이의 정체가 드러났다. 믿기 어렵게도, 이십 년 전에 죽은 아빠가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었다. 생생한 육성으로, 선아야, 하고 나를 부르면서.
아빠와 F.I. 코퍼레이션의 인연에 관해 들은 건 캡슐 체험 후 내 담당이었던 직원과 독대하는 자리에서였다. 20년 전의 이날,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날 밤, 아빠는 같은 자리에서 벌어진 선상의 투자설명회에 유령 같은 얼굴을 하고 앉아있었다고 했다. 자신의 수명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청천벽력을 받아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던 때였다.
아빠가 투자설명회에 가게 된 계기까지는 허유석-내게 초대장을 보냈고, 이 모든 이야기를 해주었으며, 나의 캡슐 탑승을 담당한 F.I. 직원 이름이다-도 알지 못했지만, 그는 그날 아버지를 설득해 투자를 끌어낸 사람으로서, 큰 힘을 실어준 초기 투자자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고인이 된 아버지 대신 상속자인 나를 수소문해 찾아냈다고 했다.
바이오, 홀로그램, 딥페이크, A.I.가 동원된 시뮬레이션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치료법 같은 이야기는 지금의 나도 그렇지만 당시의 아빠로서는 더더욱 이해할만한 개념이 아니었을텐데, 그럼에도 아빠는 듣도 보도 못한 스타트업 회사에다 무려 1억이라는 거액을 투척한 것이었다. 당시 아빠가 처했던 특수한 상황이 평소의 아빠라면 하지 않았을 도박성 결단에 불을 붙였을 테지만, 아빠가 만에 하나 있을 수도 있는 그 ‘대박’의 행운을 쥐게 될 사람으로 떠올린 사람이 누구인지는 자명했다.
그날, 캡슐 안에 나타난 아빠의 존재를 반 쯤은 믿고 반 쯤은 의심하면서도 나는 거기서 모든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었다. 한강에 둥둥 떠있는 밀폐 캡슐 안에서 내 처지의 밑바닥을 다 드러내 보이며 울부짖고 응석을 부리면서 껍질 속의 맨얼굴로 무너진 것이다. 전남편과 재혼한 여자의 SNS를 훔쳐보며 양육비를 조금이라도 더 받아낼 여지를 궁리하는 것도,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공부를 못하는 데다 성격까지 까칠해 어미 마음에 못을 박는 것도, 내 성격이 전과는 달리 걸핏하면 뾰족하게 말을 받는 유형이 되어버리니 친구들조차 멀어져서 만날 사람이 없다는 얘기까지, 어찌 보면 아빠가 실제로 살아있다면 오히려 하지 못할 이야기까지 다 쏟아낸 것이다.
캡슐 안의 아빠는 시각과 청각은 물론 촉각으로도 느낄 수 있는 존재였는데, 나는 손에 만져지는 아빠의 팔을 끌어다 붙잡고 엉엉 울면서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아빠의 옷소매에다 닦기까지 했다. 캡슐 바깥으로 나와서 허유석과 독대할 때, 그의 소매가 젖은 걸 보고는 스치는 생각이 있기는 했는데 그때는 그냥 모른 척했다. 미라지의 힘이든, 딥페이크 홀로그램이든, 인공지능이든, 캡슐 안에서 내가 보고, 듣고, 만졌던 존재는 분명 아빠였으니까.
20년 전 아빠가 투자한 1억이 얼마나 큰 액수로 불어났는 지 굳이 풀어놓을 생각은 없다. 대놓고 하는 자랑에도, 은근히 돌려 하는 자랑에도 당할 만큼 당하고 살아온 나다. 내세울 만한 것은 못되지만 박탈감에 관해서라면 논문도 쓸 수 있다. 플로팅 아일랜드 프로젝트가 대서특필되고 F.I. 코퍼레이션이 상장된 지도 9개월이 지났으니 지금의 한선아가 과거의 한선아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말해도 되겠지만.
올해에도 나는 선상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한다. 작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F.I. 코퍼레이션의 주주 자격으로 초대 받았다는 것이다. 아 참, 작년과 달리 올해에는 두 장의 초대권을 받았는데 이번에도 나는 혼자 참석할 예정이다. 새로 이사 온 집 욕실은 수압이 좋아 샤워할 맛이 난다. 젖은 머리를 타올로 감은 채 드레스룸 안에서 한참 동안 시간을 보냈다. 파티를 위해 쇼핑을 따로 할 필요는 없을 만큼 옷이 넘쳐나게 많아졌지만, 옷장 앞에서 고민하는 여자인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목 주변에 금색 스팽글이 박힌 원피스를 꺼내들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도로 걸어놓았다. 장식은 없어도 소재가 부드러워 몸매가 자연스럽게 돋보이는 초록색 새틴 원피스를 침대에 펼쳐놓고 보니 이거다 싶었다. 이런 스타일이 허유석의 눈길을 끌 것만 같았으니까.
- 레나앨 프로젝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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