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잔이 울려 퍼질 무렵
[레시피 나라의 앨리스]

야스미나는 숙소의 안뜰을 둘러봤다. 여기를 담아보면 어떨까 싶었다. 기둥과 벽을 아우르는 타일의 색 조합도 예쁘고, 회랑을 둘러친 아치의 디자인도 볼만했다. 하지만 이미 이런 건 많이 찍었다. 마라케시나 메크네스에서도 비슷한 건축물을 질리도록 보지 않았는가. 카사블랑카를 종착지로 놔둔 건 분량이 많이 나올만한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 예상외로 이 도시가 특별한 감흥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슬람 대도시 풍경 곳곳에 비집고 들어가 있는 기능적 신 건축물 같은 것들이 이상하게 신경을 건드렸다.
그리고 그것은 야스미나가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이중적인 감정이기도 했다. 태어나 자란 나라와의 유사성이 안도를 주는 한편, 주변 풍경과의 부조화, 디테일에서 엿보이는 조악함 같은 것이 야스미나의 심리 표피 안쪽을 뭉근히 침범한다고 할까. 이를테면, 포틀랜드의 백인 중산층 동네에 섞여 살면서도 어딘가에서 민족 색채를 드러내는 모친 마리엠의 취향을 일시에 대용량으로 접하는 기분 같은 것. 마리엠이 생뚱맞은 고향 물건을 동원해 집안 장식을 바꿀 때마다 야스미나는 치를 떨곤 했다. 그 보자기를 거실 정중앙의 테이블에다 깔아두는 건 깬다고 정말, 하는 식으로. 그랬던 야스미나가 모로코에 가겠다고 하니 마리엠은 혀를 찼었다.
“웬일이니? 하기야. 돈벌이가 될 것 같으니 너도 별수 없구나?”
마리엠으로서는 의외다 싶었을 것이다. 딸이 별안간 모로코에 신경을 쓰는 게 컨텐츠 욕심 때문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지만. 순수한 호감으로 가겠다는 것이면 마리엠도 이죽거렸을 리 없다. 제법 구독자가 생긴 유튜브 채널을 본격적으로 운영해보겠다며 어렵게 들어간 약대를 휴학해 속을 뒤집어 놓았던 딸이, 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던 부모의 모국을 찾아가 돌아다니겠다니 곱게 보일 턱이 있나. 야스미나는 무슬림 가정 출신인 걸 온몸으로 거부하며 자랐다. 마리엠이 일부 아랍계 여자들처럼 머리카락을 가리고 다니는 유형이었다면 야스미나가 엄마와 함께 집 밖으로 나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회랑을 지나가던 바리크가 야스미나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점심시간은 지났고, 관광을 나선 단체 투숙객들이 돌아올 때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서 호텔은 한가했다. 바리크는 야스미나에게 손을 흔들어 보일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이 호텔에서 여름 일손을 보태고 있지만 이런 경우, 말을 걸어주는 게 나은 건지 무심한 척 지나치는 게 나은 건지 알아볼 만큼 노련하게 고객을 응대하는 기술은 아직 무리였다. 아무려나 이 조그만 숙박업소의 적막한 시간, 안뜰에 혼자 나와 앉아있는 젊은 여자 투숙객을 무심하게 지나치기란 쉽지 않다.
“이것 좀 드실래요?”
야스미나는 안뜰 한가운데의 미니어처 분수를 찍는 중이었다. 돌아보니 프런트를 지키기도 하고, 방으로 추가 타올 따위를 가져다주기도 하는 남자가 작은 쟁반을 들고 서 있었다. 야스미나는 쟁반 위의 바클라바와 민트차를 흘끗 쳐다보고는 이어 남자를 올려다봤다. 하얀 셔츠의 가슴께에 매달린 명찰에 바리크라고 적혀있었다. 야스미나는 애플워치를 찬 바리크의 팔목에 한번, 허리춤의 벨트에 한 번, 짧게 시선을 줬다. 얼핏 봐서는 어느 정도의 재력을 가진 집안의 아들인지 드러나지 않았다. 야스미나는 바리크가 내민 쟁반을 받아들며 테이블 건너편 의자를 가리켰다. 모로코에 온 후로 쭉 혼자 있어서 대화 상대가 필요하기도 했고, 오랜만에 영어를 좀 하는 또래 남자와 차 한 잔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지식층의 언어가 프랑스어인 나라에서 야스미나의 영어는 신통한 게 못되었다.
야스미나가 호텔에 체크인하던 날, 바리크는 모로코 여자의 마스크를 가진 이가 의외로 프랑스어에도 아랍어에도 서투른 걸 눈치채고는 얼른 영어로 말을 바꿨다. 야스미나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프랑스어 억양으로 영어를 하는 무슬림 남자라니. 친구들과 외국인의 영어 억양을 흉내 내며 까불어댈 때마다 인도 억양, 이탈리아 억양과 더불어 프랑스 억양은 단골 소재였다. 남자의 영어보다는 자신의 아랍어가 낫겠다 싶으면서도 야스미나는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둘 중 하나는 바보가 되어야 한다면 상대방이 그 역을 맡는 게 나으니까.
바리크는 몽펠리에 소재의 대학원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야스미나가 짐작하길, 고국에서 여름 일당을 버는 처지로 보아 별로 넉넉한 형편은 아니겠거니 싶었는데, 바리크가 이어 들려준 바로는 호텔 오너가 삼촌이라고 했다. 낡고 작아서 호텔이란 말이 무색하긴 하지만. 야스미나가 바클라바와 민트차를 달게 먹고 마시는 걸 보자 바리크는 용기가 났다.
“저기, 음, 이따가 같이 밥먹을래요? 저 오늘 저녁 비번이거든요. 옥상에 아지트가 있어요. 요리는 제가 하죠.”
야스미나가 옥상으로 발을 내딛었을 때 바리크는 상을 차리고 있었다. 서편 하늘을 배경으로 모스크의 첨탑이 솟아오른 전망이 제법이었다. 투숙객에게 옥상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바리크가 말했다.
“안전장치도 그렇고, 루프탑 분위기 연출해 제대로 꾸미려면 공사 비용이 좀 드는데 호텔 사정이 지금 별로거든요. 어쨌든 덕분에 우리가 오늘 여기를 독차지했잖아요. 숙박비도 싸고요. 자, 거기 앉아요!”
하기야 야스미나도 저렴한 숙박비에 낚여서 이곳으로 오긴 했다. 유튜브가 수익을 좀 내고 있긴 하지만 아직 학교를 휴학한 명분에 힘을 실어줄 정도라곤 볼 수 없었다. 돈을 아껴야 했다. 학교로 돌아가긴 할 거냐고 묻는 바리크의 질문에 야스미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글쎄요. 실은 작년 여름에 약국에서 인턴을 했었어요. 전공 살린 경력을 만들려고요. 그리고 알게 됐죠. 약사는 나랑 가장 안 맞는 직업 중 하나로구나 하고요.”
바리크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음식을 권했다. 바리크가 타진 냄비의 뚜껑을 열자 야스미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눈치챈 바리크가 자알룩을 싫어하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야스미나는 얼른 표정을 바꾸고 곁들여나온 빵으로 자알룩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럴 리가 있냐고 짐짓 태연하게 중얼거리면서.
할머니가 포틀랜드에 왔을 때 야스미나는 아홉 살이었다. 할머니는 집 밖으로 나갈 땐 꼭 히잡을 써야 하는 구식이었는데, 미국에 놀러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하필 그 기간에 야스미나가 소속된 팀의 소프트볼 시합이 있었고, 날씨 맑은 토요일이라 시합을 보러온 가족이 많았고, 야스미나네도 예외가 아니었다. 할머니의 히잡은 대번에 눈에 띌 수밖에 없어서 그날 이후로 야스미나는 동네의 ‘공식 무슬림’이 되었다.
반에서 어울려 노는 아이들 사이에서 여왕벌이었던 에이브리가 혹시 너희 가족 중에도 테러리스트가 있는 거 아니냐고 물은 걸 시작으로, 너에겐 여러 명의 엄마가 있느냐는 둥 야스미나는 걸핏하면 이방인 취급을 받게 되었다. 옷을 예쁘게 입고 다녀도, 공부를 잘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야스미나가 펑펑 울며 소리쳤다. 할머니는 히잡 좀 벗고 다니면 안 되느냐고. 할머니는 당황했고, 아버지는 버릇없이 군다며 야스미나를 호되게 야단쳤다. 원래 두 달 예정으로 미국에 왔던 할머니는 일정을 앞당겨 모로코로 돌아갔다.
할머니가 떠나고 이틀 후였다. 배가 고팠던 야스미나가 냉장고를 열었는데 잡다한 플라스틱 용기 사이로 오목한 질그릇 하나가 보였다. 뚜껑이 없는 그릇이라 사이즈가 얼추 맞는 접시로 윗면이 덮여 있었는데, 플라스틱 용기를 좋아하지 않는 할머니의 살림 흔적이었다. 야스미나는 접시를 들어 올려 내용물을 확인했다. 할머니가 있을 때 만든 음식 중 야스미나가 가장 즐겨 먹던 자알룩이었다. 손을 대지 않은 상태인 걸로 보아, 떠나기 전 할머니가 만들어 넣어둔 것 같았다. 야스미나는 자알룩 그릇을 냉장고 안쪽으로 도로 밀어 넣고는 식빵을 꺼내 피넛버터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이후 할머니를 다시 볼 기회는 없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고 나서, 할머니는 모로코의 고향 마을에서 세상을 떠났다.
야스미나는 바리크가 만든 자알룩에 빵을 찍어서 오물오물 씹어 삼켰다. 식도 아래에서 무언가 쿨럭이며 올라오고 있었다. 봉인된 것을 풀어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야스미나는 헛기침을 한 뒤 올라오는 것을 눌러 삼켰다. 그리고 나불대기 시작했다.
“있잖아요, 바리크. 난 무슬림처럼 보이는 게 정말 싫었는데 내가 모로코계치고도 좀 피부가 짙은 편이잖아요? 머리카락도 완전히 검고요. 그게 어떤 때는 편리하더라고요. 밤색 피부를 가진 다른 민족인 척을 해도 되거든요. 그러니까, 인도계나 파키스탄계인 척을 하는 거예요. 그 사람들도 미국에선 소수긴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테러리스트 어쩌고 하는 소리는 안 듣거든요.”
바리크는 침묵을 지키며 물컵만 만지작거렸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명랑한 말투를 구사하는 야스미나는 필사적으로 바리크와 시선을 맞추길 피하고 옥상 너머 시가지 쪽에다 눈을 두고 있었다.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바리크는 짐작할 수 있었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 야스미나의 표정이 무언가를 터뜨릴 것을.
멀리서 아잔이 울려 퍼졌다. 야스미나는 난간 쪽으로 걸어가 섰다. 서쪽 하늘로 기울고 있던 태양이 모스크의 첨탑 뒤로 몸을 숨기며 쪼개진 빛을 쏘아 보냈다. 야스미나의 등 뒤로 늘어진 머리카락의 가장자리가 석양을 흡수해 붉게 나부꼈다. 몇 걸음 뒤에 선 바리크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그 모습을 지켜봤다. 야스미나가 침착한 표정이 되어 돌아설 때까지 기다려줄 작정이었다.
- 레나앨 프로젝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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