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라이프

천년 객잔

[레시피 나라의 앨리스]

팔각의 향미로 즐기는 쫄깃한 삼겹살 요리 홍소육
팔각의 향미로 즐기는 쫄깃한 삼겹살 요리 홍소육
홍소육
홍소육

칼 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대체 누가 이 밤중에 장검을 휘두르는 것일까. 천장을 보며 시간을 거슬러 되짚어 보았다. 이 객잔을 발견한 건 두 시진 가까이 모래바람에 시달린 후였다. 길을 잃어 의도치 않게 사막으로 들어서게 되었고, 이후로는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만 맴도는 기분이었다. 사막에서 밤새 얼어 죽게 되려나 자포자기하는 심사가 되었을 무렵, 저 앞에서 희미한 불빛이 나타났다. 근경의 모래 언덕들 사이에서 비쳐오는 불빛이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나보다 싶어 양가죽 주머니 속 마지막으로 남겨둔 몇 모금의 물을 말에게 먹여 기운을 차리게 한 후 다독여 끌고 언덕 위로 올라섰다. 아래편에 기적처럼 집 하나가 서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샘도 있었다. 한달음에 다가가 보니 문 위에 붙은 현판에 ‘천년 객잔’이라는 상호가 새겨져 있었다. 민가라도 기뻐 날뛸 판국인데 객잔이라니. 나는 말을 바깥에 묶어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객잔은 주인 여자 혼자 지키고 있었다. 내부의 기운은 고적했고,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여자의 말에 따르면 모두 식사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상인들은 일찍 곯아떨어진답니다. 거친 모래바람을 가로질러 온 터라 몹시 고단하기 마련이지요.”

여자가 이어 들려준 말은 실망스러웠다. 음식은 충분히 내줄 수 있지만 방이 다 차서 묵어가기엔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피로에 지쳐 읍소하는 내 처지가 딱했던지 여지를 주었다.

“제 거처를 나눠 쓰는 것도 괜찮다면 하룻밤 묵어가셔도 좋습니다. 단, 반드시 날 밝기 전에 떠나야 합니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허기를 면하고 잠깐이라도 벽과 천장이 있는 곳에서 눈을 붙일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여자가 나를 식당으로 안내했고, 곧 음식과 술이 나왔다. 정신없이 음식을 먹고, 연거푸 따라 마신 술로 오른 취기를 만족스럽게 즐기는 중인데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가 내게 재촉했다.

“식사를 마치셨으면 이제 침소에 드시지요.”

내 잠자리는 방 안쪽에 마련되어 있었고,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입구와 가까운 쪽이 주인 여자의 잠자리였다. 그렇게 방으로 들어와 잠들었는데 느닷없는 칼 소리에 다시 깨어난 것이다. 슬며시 가림막을 들춰보니 여자가 보이지 않았다. 조심스레 일어나 방 밖을 내다보았다가 난간 아래의 광경을 보고 주저앉을 뻔했다. 중정 바닥에 사내 셋이 쓰러져 있고, 주인 여자가 그 한가운데서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버티고 서있는 게 아닌가.

순간 누워있던 사내 중 하나가 부들부들 떨며 몸을 일으키려 했고, 그걸 본 주인 여자가 손에 쥔 장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여자의 칼날이 하강하기 직전, 내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시야에 들어온 장면들이 파편으로 부서져 튀어 오르는 것을 보면서 나는 까마득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 비명을 들은 여자가 위층 난간 앞의 나를 돌아봤고, 사내가 여자에게 달려들었고, 이어 누구 것인지 모를 피가 튀었다. 그리고 암흑이었다.

‘일어나요!’

분명 누군가 속삭이는 것 같았는데, 눈을 떠보니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아침 해가 내리쬐는 사막에 등을 대고 누워있었다. 휘몰아치던 황사도, 샘도, 객잔도, 여자도 사라지고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래 언덕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사막에서야 흔히 벌어지는 일이지만 뚫린 시야로 마을이 보이니 안도가 됐다. 간밤의 나는 황사 때문에 한 치 앞을 보지 못하고 사막 경계선에서 멀지 않은 곳을 헤맨 것이다. 긴 여행을 동고동락한 준마가 콧바람 소리를 내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말도 기력을 회복한 모양이었다.

“천년 객잔에서 묵고 오는 길이군요.”

마을 어귀로 들어서던 중이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좌판을 펴고 약재를 파는 남루한 노인이 말에 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말에서 내려 노인에게 다가갔다. 간밤에 겪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으나 우선은 내가 객잔에 있었던 걸 알아본 연유부터 묻고 싶었다.

“냄새로 알았지요.”
“냄새?”

나는 내 몸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고, 노인은 이야기를 듣고 싶으면 셈을 치러야 한다고 했다. 물건을 팔기 전이라 수중에 돈이 없다고 하자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돈이 아니오. 사연을 듣고 나면 무얼 주어야 할지 알게 될 텐데 그리 하시겠소?”

그러겠다고 하자 노인이 입을 열었다.

『누란을 거쳐 가는 상인치고 천년 객잔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객잔 주인 아만이 절세미인이라 그렇다고 수군댔으나 그건 진짜 이유가 아니었다. 객잔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주요인은 바로 음식이었다. 먼 길을 온 상인들은 천년 객잔의 향기로운 요리에 사족을 못 썼다. 피로를 풀어주고 병치레를 막아주는 귀한 식재료가 비법이었다. 그 물건을 아만에게 공급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아만의 연인인 위옌이었다. 위옌은 남쪽에서 물건을 구해 싣고 서방으로 가져가 파는 일을 했다. 교역의 거점인 누란에서 거래할 수도 있었지만, 더 멀리까지 싣고 가 팔았다. 서방 귀족들과의 직거래로 고수익을 내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아만의 객잔에 와 머물 때마다 위옌은 물건을 한 자루씩 남겨주고 떠났다. 위옌이 떠나면 쓸쓸해지기는 해도 아만에게는 이면의 감정이 있었다. 위옌을 붙들어두고 싶은 마음과 물건만 남겨놓고 가주는 게 고맙기도 한 양가감정이었다. 아만은 자신의 옆자리가 비어있을 때 객잔에 손님이 더 많이 든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또한 위옌이 누란에 터를 잡으면 물건 공급도 끊길 테니 객잔의 요리도 전 같을 순 없을 터였다. 사랑도, 객잔주로서의 성취감도 포기할 생각이 없는 아만은 이중적인 마음을 잘 다스리며 삶을 꾸려갔다. 위옌 역시 아만의 실리적인 면모를 좋아했고, 그렇게 두 사람은 잘 들어맞는 한 쌍이었다.

객잔을 드나드는 상인들 중 둘 사이를 갈라놓고자 안달하는 이가 있었다. 아름다운 아만, 객잔, 위옌의 물건과 판로 모두를 빼앗고 싶어하는 바르첵이라는 자였다. 어느 날 바르첵은 위옌이 취급하는 물건과 비슷해 보이지만 실상은 맹독성을 지닌 다른 식물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남쪽의 섬에서 그것을 구해 왔다. 바르첵은 위옌이 객잔을 떠나기 전날 밤 물건을 바꿔치기했고, 다음 날 객잔에서 아침을 먹은 사람들은 모두 독이 몸에 퍼져 죽었다. 위옌도 그중 하나였는데, 일하느라 식사할 새가 없었던 아만만이 그날 객잔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모든 게 바르첵이 바라던 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주검이 무더기로 나온 객잔은 문을 닫게 되었고, 아만은 위옌을 잃은 슬픔을 가눌 새도 없이 비난에 시달리다가 누란에서 자취를 감췄다. 바꿔치기로 위옌의 물건을 손에 넣은 바르첵이 객잔을 접수해 일으켜보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천년 객잔도, 천년 객잔의 요리에서 나던 향에도 진저리를 치며 외면하게 되었으니까. 퇴물이 된 객잔에서 술만 퍼마시던 바르첵은 어느 날 고주망태가 되어 거리를 쏘다니다가 과거 원한을 샀던 흉족 패거리와 시비가 붙은 끝에 객사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얼마의 세월이 흐른 뒤, 일대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특정 품목을 취급하는 상인들이 근방을 지나게 되면 황사를 만나 길을 잃고 헤매다 객잔 하나를 발견하고 묵게 되는 일이었다. 기이한 일은, 동이 트는 순간 객잔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데 그 자리에 남겨진 상인 중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죽는 것이었다. 생과 사의 여부는 상인이 지닌 물건에 있었다. 물건의 순도가 온전하면 살 것이요, 물건에 가짜가 섞여 있으면 죽는 것. 팔각회향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맹독을 가진 붓순열매가 물건에 하나라도 섞여 있으면 그 상인은 객잔에서 살아나올 수 없었다. 천년을 번성하라는 의미로 지은 객잔의 상호는 천년을 이어가는 사막의 저주가 되었고, 팔각회향을 싣고 이 일대를 지나는 상인은 모래바람 속에 홀연히 나타나는 천년 객잔의 부름을 받고 통과의례를 치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장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째서 내게 천년 객잔이 나타났는지, 어째서 나는 살고 간밤의 그 사내들은 죽었는지, 노인이 내게서 난다는 냄새가 무언지 깨닫게 되었다. 내 표정을 읽은 장 노인이 손을 내밀었다. 노인에게 뭘 주어야 하는지 알게 된 나는 말에 실은 물건 일부를 헐어내 자루에 옮겨 담아 내밀었다. 불순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완벽한 팔각회향 한 자루를. 언뜻 내려다보니 노인의 좌판에 진열된 약재 중 팔각회향은 빠져있었다. 좌판 앞에서 발길을 떼고 마을로 입성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귀한 물건을 획득하기 위해 노인이 꾸며낸 이야기 아닐까 하는.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앞으로도 계속 물건의 순도에 심혈을 기울이게 될 이야기를 받아온 셈이니 한 몫 떼어준다 한들 그리 손해날 일은 아니겠거니 하고.

- 레나앨 프로젝트 -

음식 황창민 사진 이정민 소설 홍예진 그래픽 최소영

글쓴이

레나앨 프로젝트

신개념 요리 컨텐츠 [레시피 나라의 앨리스]를 위해 모인 사람들. 셰프 황창민, 사진작가 이정민, 소설가 홍예진이 빚어내는 [레나앨 프로젝트]는 음식 및 요리법에 초단편 소설을 곁들여 소개한다. 입체적 요리 컨텐츠를 추구하는 크리에이터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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