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발사’는 왜 남산에 이발소를 차렸을까
한남동에서 ‘바버샵’ 운영하는 권오훈 이발사
[류인규 법무법인 시월 변호사] 북한남동이라고 들어본 적 있을까. 행정구역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남산과 매봉산에 둘러싸여 한남동의 일부가 ‘섬’ 처럼 분리된 곳이다. 인적이 드문 이 동네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건물. 그 건물 지하에 이발소가 있다.
아는 사람이 아니면 찾아올 수 없는 이곳에서 권오훈 이발사를 만났다. 권오훈 이발사는 기네스 북에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이자, 영국 왕실 이발소로 유명한 ‘트루핏앤힐’의 한국지점 창립멤버로 참여한 엘리트 이발사였다. 권오훈 이발사가 홀연히 이곳에 둥지를 튼 이유는 무엇일까.

-위치가 좀 특이하네요.
“전에 일하던 곳은 강남이었는데요. 빌딩과 차들로 둘러싸인 곳을 떠나 조용한 곳을 찾다가 한남동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한남동은 임대료가 만만치 않았기에 고민하던 중 우연히 이 건물을 만나게 되었는데, 바로 앞에 산이 있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 바로 계약했습니다. 사실 건물의 층고가 너무 낮았고, 처음 오는 분들이 찾아오시기에 쉽지 않은 위치여서 고민이 많았지만 그런 것을 다 감수할 만큼 너무 좋았던 거죠”
-위치적인 특성상 지나가다가 간판을 보고 불쑥 찾아오는 손님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간판을 보고 찾아오시는 손님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래도 손님에 대한 고민은 크게 하지 않았습니다. 기존 단골 손님들이 있기도 했고, 일단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을 했죠. 그 당시에는 정말 제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것 같아요. 집 보증금까지 뺐기 때문에 1년반 정도는 가게 구석 창고에서 지냈습니다.”
-여기까지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대부분 30대 후반 이상의 어느정도 나이가 있는 분들이 찾아오십니다. 공통점을 찾자면 대부분 예민하시고, 조금 재미있게 얘기하자면 변태 기질이 있으셔서 머리카락 한가닥 튀어나오는 것까지 신경쓰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방문 간격이 짧은 편입니다. 저희 손님들은 한달에 서너 번씩 오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발소 이름이 ‘더노블핸즈’에요. 어떤 의미죠?

“이발사 일이 손으로 하는 일이고. 일 뿐만 아니라 제가 취미로 하는 기타나 오토바이 같은 것들도 전부 손으로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손이 되게 귀한 손이구나”하는 생각에 더노블핸즈라고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아, 본인 손이 바로 노블 핸즈다?
“네네. 그렇죠”
-전에 근무하셨던 ‘트루핏앤힐’과는 분위기가 좀 다른데요.
“아무래도 트루핏앤힐은 왕실 브랜드이다보니, 저도 그곳에 근무할 때는 늘 격식을 갖추어 수트에 타이까지 차려입었죠. 응대하는 방식도 많이 다릅니다. 다만 손님들이 일상에서 벗어난 경험을 하시는 것도 좋지만, 저는 일상처럼 오고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발은 일상이니까요.”

-사실 이 질문을 먼저 했어야 하는데, 어떤 계기로 이발사가 되었나요.
“군대가기 전에 용돈벌이를 하려고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요. 그 것 때문에 군대에서 이발병으로 차출이 되었는데요, 막상 해보니 흥미가 있어서 군 제대하고 미용실에서 제대로 배워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발사가 아니라 미용사로 시작한 거군요.
“제가 미용실이 아닌 바버샵에서 일을 시작한 때는 2013년도 쯤이었는데 그 때는 지금처럼 바버샵이라는 개념도 사람들이 잘 몰랐고, 지금은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 유명한 소수의 타 바버샵 몇 군데만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바버가 10명을 왔다갔다하는 숫자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여기서 호칭 정리를 한번 하죠. 바버샵이 사실 우리말로 이발소인데요. 같은 말이지만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당사자분들은 어떻게 불리시기를 원하나요.
“젊은 이발사들 사이에는 아무래도 이발소 보다는 바버샵으로 불리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있었죠. 레스토랑과 식당의 뉘앙스 차이와 비슷하달까요. 느낌이 다르니까요. 근데 저는 사실 한국어가 더 정감이 가고 좋습니다. 누가 뭐하냐고 물어보면 이발소 운영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오히려 상대방이 “바버샵이요?”라고 되묻더라구요.”
-기존의 이발소로부터의 전통이 이어지지 않고 바버샵이 새로운 개념으로 등장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글쎄요. 아마도 퇴폐이발소로 인한 이미지 하락 문제도 있었을 것이구요. 남자들이 스타일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면서 미용실로 많이 이탈한 것도 이발소의 쇠락 원인인 것 같습니다. 블루클럽 같은 남성전문 미용실들이 공격적으로 영업을 한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구요. 그래서 기존 이발소는 대부분 60대 70대 이발사분들이 운영을 하고 있고, 저희 같은 바버샵에서는 20대, 30대 이발사들이 많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중간 역할을 해 줄 40대 50대 이발사들이 거의 없는 거죠.”
-그래서 유학을 결심한 건가요.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국내의 실력있는 이발사 분들에게서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몇 분을 직접 찾아뵙기도 했습니다. 근데 예상밖의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하고 어려움이 많더라구요. 아무래도 세대차이가 너무 많이 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죠.”

-영국의 이발기술은 한국과 다르던가요
“어차피 사용하는 도구가 정해져 있으니 기술적인 차이가 다르다기보다는, 오히려 이발사들의 애티튜드에서 많은 걸 느끼고 배웠습니다. 고객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모든 것이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항상 정해진 위치에서 정해진 동작으로 정확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어요.
한 예로 영국에서는 이발사가 면도를 할 때, 시작한 자리에서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모든 서비스를 끝내야 한다고 배웠어요. 대체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내가 왔다 갔다 하면 손님들이 불편하다”고 하더라구요. 이런 배려를 통해서 고객은 이발사가 나를 굉장히 중요한 사람처럼 대해준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거죠.”
-최근 바버샵 열풍이 불다보니, 미용업계 쪽에서 견제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은데요. 특히 “바버샵은 비슷비슷한 머리만 할 줄 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더라구요.
“충분히 견제를 할 수 있죠. 사실 초기에 바버샵을 찾는 손님들이 가르마를 타서 넘기는 그런 스타일을 많이 하다 보니까 선입견이 생긴 면이 있구요. 바버샵 입장에서도 미용실과 차별화 될 수 있는 쪽으로 홍보를 해야 하다 보니까 또 그런 스타일 위주로 홍보를 하게 되는 악순환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바버샵에서도 미용실에서 하는 다양한 스타일을 다루기도 하고 점점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미용실 중에서도 바버샵 처럼 인테리어를 하고 남성 손님 위주로 영업하는 곳도 있구요.
“맞습니다. 면도만 안하면 미용자격증으로도 바버샵 비슷하게 운영할 수 있죠”
-요즘 바버샵이 굉장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데요. 걱정되시는 부분은 없으실까요.
“과거에는 바닥 쓰는 것부터 시작해서 몇 년을 현장에서 조수로 일하면서 배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요. 요즘은 학원에서 정해진 코스로 교육을 받고 바로 개업하는 케이스로 많이 변화된 듯 합니다. 세상이 워낙 빠르게 흘러가니까요. 다만 그런 경우가 많아지다보니 처음 바버샵을 방문했던 손님이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해서 바버샵이라는 것 자체에 실망하는 경우가 꽤나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게 걱정입니다.”
-바버샵이 질적으로도 변화를 겪게 될까요
“남성 그루밍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남성들도 자기 자신에게 시간과 돈을 많이 투자하는 세대니까요. 지금의 바버샵 서비스만으로 미래에도 사람들이 만족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미 남성전문으로 손톱, 발톱 관리를 하는 곳이 있구요. 두피관리나, 탈모를 커버하기 위한 두피문신 같은 그런 다양한 서비스들이 바버샵과 합쳐지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포부가 있다면요
“더노블핸즈라는 브랜드를 이발소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다양한 방면으로 확장할 생각입니다.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약속한 시간이 지나고 예약 손님이 이발소를 찾았다. 곧바로 옷걸이로 걸어가 자연스럽게 웃옷을 거는 걸 보니 단골손님이 분명하다. 권오훈 이발사는 어느새 정해진 위치에 서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일상을 만나는 곳. ‘더노블핸즈’와 권오훈 이발사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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