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은, 그리고 시민은 억울하기만 할까
조국 1심 선고 판결문 확인해보니... 유재수 감찰무마, 심각한 혐의로 간주 표창장外 입시 허위서류도 10여건 발견 조국도, 시민들도 제 역할과 자리 찾자
지난 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21-1부(재판장 마성영)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징역 2년과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했다. 조 전 장관은 선고 직후 “8~9개 정도의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다만 직권남용 등에 대해서는 유죄 판결이 선고됐습니다”라며 마치 상당수의 혐의가 무죄로 판명되고 일부 혐의만 유죄가 인정된 것처럼 입장을 밝혔다. 과연 사실일까? 판결문 전문을 확인해 보았다.
조 전 장관에게 적용된 혐의는 총 20개인데, 이번 1심 재판에서는 이 중 9개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었다. 나머지 11가지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것이다. 그렇다면 대충 절반의 승리라고 봐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중요한 것은 유무죄의 개수가 아니다. 20개의 혐의는 모두 동등한 비중이 아니다. 여기에는 비교적 가벼운 사안과 대단히 심각한 사안이 섞여 있다.
심각한 사안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가장 비중이 크고 심각한 혐의는 무엇일까? 이는 조 전 장관이 유재수 당시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에 대한 감찰조사를 무마시켰다는 혐의, 즉 ‘직권남용’ 혐의이다. 이 재판에서 유일한 ‘권력형 비리’이며, 판결문에서도 유독 이 부분을 지적하며 강조하고 있다. 재판부는 다른 혐의에 대하여는 “죄책이 무겁다”,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며 절제된 표현을 사용했지만 이 직권남용 혐의에 있어서는 “국민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시킨 것으로서 죄질이 불량하고 죄책도 무겁다”며 강도높게 비난했다.
‘직권 남용’ 혐의를 둘러싼 사실관계는 비교적 명료하다. 김태우 전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 수사관이 유재수 전 국장의 각종 비리 혐의를 포착하여 감찰을 진행해 왔는데, 도중에 정치권에서 유 전 국장을 잘 봐 달라는 취지의 청탁이 다수 들어오게 되었다. 결국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조 전 장관은 더 이상 감찰을 진행하지 않고 유 전 국장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선에서 감찰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조 전 장관도 이러한 사실관계의 큰 흐름은 부인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감찰반 수사관은 감찰을 위한 사실관계 확인 및 후속조치에 관여할 고유한 권한이 있다”며, 조 전 장관이 감찰을 중단시킨 것이 수사관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직권남용 범죄라고 보았다. 반면 조 전 장관은 “감찰을 진행하는 것은 수사관의 권한이 아니라 민정수석의 고유 권한이다. 따라서 감찰을 중단시킨 것을 수사관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항변했다. 조금 복잡한 이야기라서 법률전문가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심지어 담당 재판부의 판사들 3명 중 1명은 조 전 장관과 같은 의견을 냈다는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재판을 담당한 판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던 만큼, 이 쟁점은 2심은 물론이고 3심까지도 계속해서 논란이 될 것이다. 필자는 이처럼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는’ 애매한 경우에는 무죄가 선고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In dubio pro reo)”라는 라틴어 격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법 해석이 모호할 때에는 함부로 유죄를 선고하지 말고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법치국가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물론 조 전 장관의 감찰중단 결정을 옹호하기는 어렵다. 유재수 전 국장의 비리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었고, 유 전 국장이 감찰에 임하는 태도도 대단히 불량했기 때문이다. 조 전 장관이 유 전 국장이 스스로 조용히 물러날 수 있게 봐준 탓에 유 전 국장은 부산시 경제부시장으로 자리를 옮겨서 또다시 전횡을 일삼기도 했다. 조 전 장관과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잘못된 결정에 대하여 사과하고 정치적 책임을 졌어야 한다.
입시비리 혐의에 대해서도 재판부 생각 달라
나머지 혐의들은 어떨까? 나머지 혐의들도 ‘직권 남용’ 혐의처럼 정치적 책임의 문제를 검찰이 억지로 법적 판단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온 것일까? 안타깝지만 그렇지 않다. 특히 자녀의 입시와 관련된 혐의는 부인하기 어려운 다수의 증거가 존재한다. 게다가 널리 알려진 ‘동양대 표창장’ 외에도 10여 개의 입시관련 문서들이 전부 허위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 전 장관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을 반복하고 있다. 누가 봐도 허위임이 명백한 서류조차도 ‘문제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대체 어떤 이유에서 일까?
조 전 장관은 억울할 수 있다. 검찰은 수사 당시 입시 비리를 캐낸다며 수많은 인력을 동원하고 광범위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심지어 입시 비리는 조 전 장관이 민간인이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라서 ‘권력형 비리’라고 볼 수도 없었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이 추진한 검찰개혁에 반기를 들고 ‘먼지털이식 수사’를 한 것이다. 입시 관련 혐의 중 상당수는 이런 식으로 컴퓨터와 휴대폰, 이메일을 샅샅이 뒤지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조 전 장관이 억울한 마음을 가지는 것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우리는 정치인을 신격화하고 있지는 않나
문제는 조 전 장관의 태도가 진보진영 지지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진보 진영 지지자들은 털어도 먼지 한 올 나오지 않는 ‘초인(超人)’ 조국을 기대했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지만, 조 전 장관은 예외이길 바랬다. 그런데 먼지가 나와버렸다. 이 때 조 전 장관이 “이것은 제 몸에서 나온 먼지이지만 검찰개혁과는 관계없는 먼지입니다. 검찰개혁은 계속되어야 합니다”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4년이 넘도록 조 전 장관의 혐의를 둘러싸고 소모적인 갈등과 논쟁이 계속되는 것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조 전 장관은 “이것은 먼지가 아니다”라고 말해버렸다. 진보진영의 많은 인사들도 “맞다, 저것은 먼지가 아니다”라는 태도를 취했다. 그 뒤로 이어진 갈등과 분열의 시간은 누구의 탓일까? 먼지 한 올 없는 초인을 기대한 지지자들의 탓일까? 정치인을 신격화하고 우상화하는 우리 정치문화의 잘못인 걸까? 분명한 것은 조 전 장관의 탓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조 전 장관 개인이 억울함을 느끼고 재판에서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심지어 자녀들의 인생까지 걸린 일이 아닌가. 만일 이를 나무란다면 이는 조 전 장관에게 또다시 초인의 면모를 요구하는 셈이 된다.
우리는 정치인에게 ‘정치’를 기대해야지, ‘초인(超人)’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보통 사람과는 다른 초인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는 순간, 정치인은 구세주가 되어 버리고 시민은 신도로 전락한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상대는 사탄이 되어버리고 선거는 전쟁이 되어 버린다. 그러다가 구세주가 사실은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현실을 부정하며 다른 구세주를 찾아나서게 된다. 종교에 빗대었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조 전 장관의 1심 판결을 지켜보던 필자의 아쉬움은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사법부도 아닌 우리 시민 사회에 대한 것이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