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제 활성화? 다른 명분은 없었을까

“국가경제 활성화”가 진짜 사면 명분인가 재벌총수가 할수 없는 명분 내세우지 말고 꼭 실천할 명분을 내세워 실천하게 해야

8·15 광복절을 맞아 복권 또는 사면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사진=연합뉴스
8·15 광복절을 맞아 복권 또는 사면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사진=연합뉴스

경제인들의 한 줄짜리 사면·복권 명분

지난 15일, 광복절을 맞아 윤석열 정부의 첫 사면이 실시됐다. 법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총 1693명의 사면 대상자들의 사면 사유를 공개했다. 이 중 대다수인 1638명의 일반 형사범과 32명의 소상공인을 제외한, 나머지 23명의 사면 사유에 대해 특히 상세한 설명이 덧붙여졌다. 암으로 인해 남은 생이 몇 개월 남지 않은 수용자, 생활고 끝에 7만원어치 마늘을 훔쳐서 징역을 사는 수용자, 교도소에서 아이를 출산한 수용자 등 누가 보아도 딱한 사연을 지닌 수용자들이 11명이다.

나머지 12명은 노사관계자 8명과 주요경제인 4명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상수 민노총 공공운수노조위원장, 허권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이 여기에 속한다. 국민들의 관심의 대상은 사실 이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법무부의 보도자료는 이 대목에서 갑자기 궁색해진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사면 사유는 “경제 활성화를 통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라는 한 줄로 끝이다. 조상수 민노총 공공운수노조위원장, 허권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의 사면사유도 “집단적 갈등 상황을 극복하고 노사 통합을 통한 사회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이 전부다. 이정도 설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 이 설명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 있을까?

재벌 총수에 대한 사면부터 보자. 이 부회장은 가석방 상태여서 등기임원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해외출장을 다녀오는 등 삼성그룹의 경영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신 회장은 아직 집행유예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롯데그룹 총수로서 올해 상반기에만 102억원이 넘는 보수를 받으며 활발한 경영활동을 해 왔다. 이들이 가석방 상태라는 이유로, 또는 집행유예 기간이라는 이유로 경영활동에서 물러나 칩거하고 있는 상태였다면 모를까 별다른 장애없이 마음껏 경영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사면해 준다고 해서 대한민국 경제에 어떤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까? 사면을 해 줬다고 해서 이들이 갑자기 투자를 확대하고 고용을 늘리기라도 할 것으로 기대한 것일까?

오히려 반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부회장은 가석방 상태였고, 신 회장은 집행유예 기간중이었다. 이는 곧 이들이 ‘몸 조심’을 해야 하는 상태였음을 의미한다. 가석방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가석방이 취소될 수 있으며, 집행유예 기간에 죄를 지으면 집행유예 취소는 물론이고 가중처벌을 받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을 사면함으로써 족쇄를 풀어주었으니 준법경영에 대한 의지가 약해졌으면 약해졌지, 강해졌을 리 없다. 이것이 대한민국 경제에 어떤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큰 선물이 된 이재용 부회장 복권

무릇 ‘선물’은 받는 사람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 부회장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사면은 두가지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우선, 10년동안 달고 있는 ‘부회장’ 딱지를 떼고 ‘회장’으로 승진할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 부회장은 2021년 8월 13일에 가석방된 이후 ‘취업제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 사면으로 인해 취업제한이 풀리면서 삼성에서 정식으로 임원등기를 하고 급여 등을 수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삼성의 경영에 자유롭게 관여해 왔지만 ‘회장’ 직함을 달기에는 취업제한 조치가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벌써부터 언론은 ‘이재용의 대관식’이 11월이니 12월이니 하며 이 부회장의 승진을 확정한 분위기다.

두번째는 현재 진행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재판에서 유리한 분위기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재판이 증거를 바탕으로 공정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이 가석방해주고 현직 대통령이 사면까지 해 주면서 ‘국가경제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인물이라고 강조한 사람을 다시 구속시킬 배짱이 있는 판사가 몇이나 될까. 현재 형사재판이 진행중인 인물을 대상으로 정권에서 이 정도의 호의를 베풀어준 전례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이처럼 재벌 총수에 대한 사면은 새 정부가 주는 ‘선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노조 간부에 대한 사면은 어떤가? 정부가 내세운 ‘노사 통합’이라는 명분은 이해하기 어렵다. 조상수 민노총 공공운수노조위원장은 벌금형을, 허권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상태였다. 구속된 노조 간부를 풀어주는 것도 아니고 벌금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이들을 굳이 사면한다고 해서 ‘노사 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가? 사면을 받은 당사자들의 복직 소송에 도움이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노사문제의 본질과는 전혀 무관한 사면이다.

게다가 불과 한달 전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의 파업을 두고 윤 대통령이 ‘무력 진압’을 시사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윤 대통령의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후보시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사면에 노조 간부들을 포함시킨 것은 그저 재벌총수 사면에 덧붙여 ‘구색 맞추기’를 위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든다.

명분을 정확히 해야, 대상자들의 행동이 바뀐다

필자는 이번 사면 결정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면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이 부회장의 경우, 사면에 반대하는 여론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다수의 국민들이 사면에 호의적이다. 사면이라는 것 자체가 사법적 절차가 아닌 ‘정치적 행위’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사면은 옳은 사면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명분은 바로 세워야 한다. 그래야 사면의 혜택을 받는 이들이 명분에 따라 향후의 행보를 달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때, ‘국가 경제 활성화’라는 막연한 명분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경제 활성화라는 것이 재벌총수가 마음먹는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배구조 개선을 약속하고 성실히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사면한다”는 식이었으면 어땠을까? 이 부회장이 약속한 지배구조 개선 작업이 더 속도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작년 이맘때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을 가석방 하면서 “백신분야에서 역할을 기대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에 이 부회장은 가석방 직후 미국으로 날아가 백신제조사 모더나 의장을 만났다. 이번 사면에서 정부가 제대로 된 명분을 내세우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운 이유다.

윤 대통령은 빠른 실행력을 본인의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해야 되는 일이면 빠르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왜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누락되면 곤란하다. 이제 ‘주어진 사건을 해결하는’ 검사가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류인규 변호사

류인규 변호사는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법무법인 시월의 대표변호사로 재직중이며, 대학원에서 경제법을 전공하고 형사전문변호사로 다양한 경제범죄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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