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억울한 옥살이, 위자료 40억 많은걸까
법원, 윤성여 씨에 큰 대가 인정 ‘이례적’ 기준·근거 없는 법원의 위자료 산정 “충분한 위자료” 인정하는 판결 나와야 양형처럼 ‘위자료기준’ 위원회 만들자
‘이춘재 사건’ 누명 쓴 윤성여씨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윤성여 씨에게 국가가 18억7천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국가가 윤씨에게 배상해야 할 금액이 43억원 가량된다고 봤다. 국가가 이미 지급한 25억 가량을 제외한 나머지 18억7천만원 가량을 추가로 지급하라는 취지였다.
윤 씨는 1988년 9월 경기 화성 태안읍 진안리 자택에서 당시 13세였던 박 모양을 성폭한 뒤 살해한 혐의로 20년 가량 복역하고 2009년 8월 출소했다. 그런데 2019년 10월 이춘재가 “내가 한 범행이다”고 자백하면서 진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윤 씨는 2020년 12월 공식적으로 무죄를 선고받고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억울하게 20년간 옥살이를 한 셈이다.
이후 국가는 윤 씨가 경찰의 가혹행위로 허위자백을 했다는 점을 인정하여 윤 씨에게 보상금으로 25억원 가량을 지급했다. 윤 씨는 추가적인 배상이 있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번에 그 결과가 나온 것이다.
위자료 산정기준은 따로 있나
필자는 43억원이 넘는 금액이 산정된 근거가 궁금했다. 아직 판결문 전문이 공개되진 않았으나, 배상금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40억원이 ‘위자료’라는 보도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위자료’란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금’을 의미한다. 윤씨가 20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함에 따라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금이 40억원이라는 것이다. 나머지 3억여원은 일실수입과 사망한 부친의 위자료 상속분 등이었다.
이쯤 되면 다들 궁금할 것이다. 정신적 고통에 따른 손해배상금은 어떤 기준으로 산정되는 것일까? 고통의 종류나 기간, 고통을 입은 사람의 나이, 성별, 직업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될 수 있도록 나름의 공인된 기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착각’이다. 그런 기준은 없다. 그냥 담당 판사가 마음속으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금액으로 판결하는 것이다. 황당하겠지만 이것이 우리나라 사법의 현실이다.
물론 실제로 판사들이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금액이나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유사한 사례들끼리 유형화해서 최대한 형평에 맞는 판결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 예컨대 이혼소송에서 위자료는 대개 1천만~3천만원 선에서,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사망사건의 위자료는 대개 1억원 선에서 결정되고 있다.
주먹구구는 아니라지만 합리적이지도 않아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있다. 금방 언급한 교통사고 사망 사건을 예로 들어 보자. 대부분의 재판에서 교통사고 사망 사건 피해자 유족들에게 위자료로 1억원을 인정한다. 피해자의 사회적 지위나 소득과 관계없이 평등하게 1억원이다. 평등의 측면에서는 나름 타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딘지 이상하지 않은가?
흔히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들 하는데, 사고로 어린 자식을 잃은 슬픔과 부모를 떠나보낸 슬픔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오늘 아침까지 한 이불을 덮고 지내던 가족을 잃은 슬픔과 의절하여 20년간 연락도 하지 않던 가족이 떠난 슬픔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 있을까? ‘교통사고 사망’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어서 처리하는 것은 너무나 무성의하다.
금액도 문제다. 서울 아파트 평균값이 10억원을 훌쩍 넘은 시대에, 가족을 잃은 슬픔에 대한 보상이 1억이라면 누가 납득할 수 있을까?
사망에 대한 위자료가 1억원만 인정되다보니, 그 외의 사건은 훨씬 적은 금액이 인정되고 있다. 의료사고로 실명한 경우에도 1천만~2천만 원의 위자료만 인정되는가 하면,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해도 눈에 띄는 상처가 없다면 위자료 1백만~2백만 원도 감사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위자료는 충분한 금액이어야...기준 만들자
이런 현실속에서 법원이 윤씨에게 위자료로 40억원을 인정한 것은 ‘파격’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정도 금액이라면 누구라도 “너무 적다”는 말은 쉽게 꺼내기 어려울 것이다. 위자료는 본래 이래야 한다. 정신적인 고통을 돈으로 배상하려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터무니없이 부족한 배상금은 새로운 정신적 고통을 추가할 뿐이다.
법원이 인정하는 위자료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위자료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논의는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그간 특정 분야를 대상으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위자료 산정기준을 마련하려는 시도가 몇차례 있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는 실정이다. 이번 ‘40억원 위자료’ 판결이 위자료 개혁의 방아쇠 역할을 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과거 우리나라는 판사 마음대로 결정하던 ‘형사사건에서의 양형’을 개혁하기 위해 양형위원회를 만들어 양형기준을 세분화하고 이를 공개했다. 이로 인해 ‘고무줄 양형’이라고 불리던 형사재판의 양형은 보다 투명해지고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위자료도 위원회를 설치하여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세분화되고 투명한 기준을 공개하면 어떨까. 적어도 “왜 이 금액이 나왔는지” 의문은 없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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