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사면,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할건가
‘확정 판결’을 무력화시킨 ‘박근혜 사면’ 무엇을 얻어야 하고, 누가 끝맺음 해야 하는가
오늘(31일) 오전 0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석방됐다. 구속된 지 4년 9개월만이다. 박 전 대통령은 두 차례의 재판을 받으면서 총 22년의 징역형이 확정된 상태였다. 5분의 1정도를 복역하고 석방된 셈이다. 별다른 예고 없이 취해진 전격적인 사면 결정이었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뜨끈미지근 하다.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후보들 중 누구도 이슈화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본인이 박 전 대통령을 수사한 장본인인데다가, 윤 후보 최측근인 권성동 의원이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앞장선 인물이기 때문에 사면을 환영하는 것이 어색하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의 지지층이 윤 후보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 형식적인 덕담을 건네는 정도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불과 몇 달 전 경선 과정에서 경쟁자였던 이낙연 전 의원이 박 전 대통령의 사면 필요성을 언급했던 것을 강력히 비판했었다. 이제 와서 사면이 잘된 일이라고 하기는 곤란한 입장이다. 그렇다고 사면을 반대하자니 같은 당의 문재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셈이 되어 쉽지 않다.
이런 정치권의 묘한 반응을 두고, ‘문 대통령의 묘수’라며 감탄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뇌물범죄에 대해서는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했던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떠올리며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다. 필자는 후자에 가깝다. 법률가인 필자는 치열한 사법적 결과물인 ‘확정 판결’을 정치적 결단이라는 이름으로 무력화 시키는 사면제도가 달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면제도, 현대에도 있는 특별함에 대해
가만 생각해 보면 사면제도는 이상한 제도다. 물론 과거 절대 왕정 시대에는 사면권의 존재가 자연스러웠다. 모든 권한을 가진 왕은 죄인을 풀어줄 권한도 가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오늘날 3권 분립이 확보된 근대국가에는 도대체 사면제도가 왜 필요한 걸까? 심지어 사면제도가 없는 나라가 없을 정도로 필수적인 제도로 자리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의 사면제도는 절대 왕정 시대의 사면제도와는 이름만 같을 뿐 본질에서 차이가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절대 왕정 시대에는 ‘왕이 베푸는 은혜’로서 작용했지만, 오늘날은 ‘법과 다른 이념과의 조화’를 이루는 제도로 받아들여진다. 법대로 하자면 처벌받아 마땅한 사람이지만, 세상에는 법보다 중요한 것도 있기에 풀어준다는 취지다.
우리는 사면으로 무엇을 얻으려 했던가
그렇다면 법보다 중요한 것은 대체 무엇일까? 지나간 사면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가 법보다 중요하게 여긴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우리의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사면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다. 이들은 각각 사형과 징역 22년6개월이 확정된 상태였으나 김영삼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 사면을 결정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해 9월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가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건의하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며 거부했는데, 연말에 입장을 바꾸어 “국민 대화합을 위해 필요하다”며 사면을 실시했다.
이는 올해 초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대통령에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건의하겠다”고 발표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문 대통령은 “아직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으나 연말이 되자 “통합과 화합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전격적으로 사면을 결정했다.
묘하게 닮은 두 사면은 모두 ‘국민 화합’을 이유로 들고 있다. 엄정한 법질서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두 갈래로 나뉘어 싸우는 것을 그대로 두고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화합을 이토록 열망하게 된 것일까? 그리고 전직 대통령을 사면하는 것이 화합에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걸까?
정당정치가 자리잡은 국가에서 국민이 양갈래로 나뉘어 대립구도를 형성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것을 억지로 하나로 합치려는 시도는 적절하지 않을 뿐더러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다. 사면권이 행사될 때마다 언급된 ‘국민 화합’은 이런 정상적인 대립구도를 없애겠다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미래로 전진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초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예컨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공감대 없이 대일외교를 논할 수 없으며, ‘6.25는 북한의 남침’이라는 공감대 없이 통일정책을 논할 수 없다.
이번엔 박 전대통령이 ‘사과’로서 ‘우리 상처’ 치유해주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할 때는 ‘5.18은 독재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이라는 사실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전두환 전 대통령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과를 거부하고 5.18을 왜곡했다. 덕분에 지금도 ‘5.18 북한개입설’이 사라지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국민적 공감대는 무엇일까. ‘우리 국민은 촛불집회를 통해 평화롭게 정권에 저항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공감대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태의 진실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함으로써, 이를 둘러싼 각종 음모론을 잠재워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을 계속 감옥에 수감시켜 둔 채로 사과를 받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사면이 필요했다.
이제는 박 전 대통령의 시간이다. 박 전 대통령은 건강이 매우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쾌유를 빈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이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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