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를 옭아매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었죠”

장편소설 ‘소나무극장’ 출간한 홍예진 작가 인터뷰

소설가 홍예진.
소설가 홍예진.

[문주용 기자] 극장의 유령이 배우 한사람의 몸을 골라 연기를 한다는 얘기로 독자의 관심을 끌 때는 마치 좀비소설을 읽는 듯했지만,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을 지나 5공시절까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스토리가 이어질 때는 대하소설이 연상됐다.

신간 소설 ‘소나무극장’(출판사 폴앤니나)은 부드럽지만 날카로워 읽는 내내 촘촘한 스토리로 독자들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나무극장을 70여년째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가여운 유령을 소설의 중심에 둬 판타지 소설 같은 분위기도 연출했다.

홍 작가는 경희대 산업디자인과, 프랑스 파리 ESAT 무대미술과를 졸업한 뒤 아트디렉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2014년 단편 ‘초대받은 사람들’로 외교부 주관 재외동포문학공모상에서 대상을 받으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에 들어갔다. 앤솔러지 ‘소설 뉴욕’에 단편 ‘미뉴에트’를 발표했고, 재미 작가 프란시스 차의 ‘살아가는 동안’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2021년에는 산문집 ‘매우 탁월한 취향’을 출간했고 이번에 첫 장편소설 ‘소나무극장’을 냈다.

미국 코네티컷주에 거주하는 홍 작가는 ‘더 칼럼니스트’의 필진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홍 작가와 e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소설 ‘소나무극장’에서 나오는 사건, 장소, 인물들은 픽션과 넌픽션의 경계를 넘나든다. 소나무극장은 실제로 존재하는 극장을 모델로 해 묘사하신 건가요?

“소나무극장의 실제 모델이 된 극장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제가 지금껏 가봤던 모든 극장의 부분들이 조합되어 자연스럽게 하나의 극장 이미지가 되었어요. 이 소설은 한국 근대사의 주요 사건 몇 가지를 맥으로 놓고 그 지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얽혀있는 셈인데요. 읽으면서 연상되는 역사적 사건이 있다면 소설 속 셋팅이 그것과 무관하다고 보긴 어렵겠죠.”

-소설 ‘소나무극장’은 추리소설의 얼개를 가지고 있으면서 판타지 요소도 들어가 있어요. 처음부터 이 두가지 장르적 기법을 의도하고 쓰신 건가요?

“저는 소설을 구상할 때 씨앗이 되는 하나의 그림 같은 이미지에서 출발하는 편인데요. 이 소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 날 불현듯 한 무대와 그 주변을 떠도는 정령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그 상상 장면이 점점 뚜렷해지면서 동적인 생명력을 갖게 되더라고요. 장르를 염두에 둔 의도 같은 건 없었고, 독자를 옭아매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고민을 하다보니 저절로 서스펜스가 생겨난 것 같아요.”

-영화로 풀어낼 장치가 다분한 소설이라고 느꼈습니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할만큼 애틋한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는 고전일지라도 언제나 어필하는 소재이기도 하죠. 외화 ‘사랑과 영혼’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판타지적 요소가 깔린 러브스토리로 영화화가 된다면 저자가 전달하려고 했던 작품의 본래 의도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일지 궁금합니다.

“자신이 쓴 이야기가 극으로 만들어지는 걸 마다할 저자가 있을까요? 소설을 읽을 땐 문장을 따라 상상하는 재미가 있고, 그 문장들이 일어나 가시적인 영상이 되어 눈앞에 펼쳐진다면 그건 그대로 또 짜릿할 것 같아요. 저자로서 영광이죠.”

-독자의 예상을 빗나가게 하는 지점이 많아 파격적이었어요. 인석이 오페라 글라스 상자를 보면서 느끼는 예감, 수찬과 신중호의 만남, 그 아들 혁수의 이야기까지 여러 겹의 함정 같은 복선이 배치되어 혼선을 주고 끝날 때까지 예측을 어긋나게 만들더군요.

“소설을 쓸 때 대략의 얼개를 짜놓고 쓰는 경우도 있고, 쓰면서 저자 스스로도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풀려나가는 경우도 있는데요. 제 소설은 주로 후자 쪽인 것 같아요. 물론 쓰고나서는 이것이 얼토당토않게 툭 튀어나왔다기보다 제 안에 있던 게 껍질을 뚫고 나오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기도 해요. 계획하지 않고 쓰는 방식이 클리셰를 피하기에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우리의 실제 삶이 우연과 필연 중 어느 쪽에 기대어 흘러간다고 보시나요? 소나무극장에서 인석의 죽음은 필연이라기보다 우연, 말하자면 좀 황당하게 벌어지잖아요? 반면 인석과 영임의 만남은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필연으로 그리셨어요. 우연으로 점철된 세상이라도 만나야할 사람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는 필연적 대상이라는 의미의 메시지인가요?

“개인적으로는 세상 대부분의 일들이 우연을 통해 굴러간다고 생각하는데, 그 우연의 물길 아래에서 뭉근히 필연을 만들어내는 힘 같은 것이 있다고 여겨요. 흔히들 ‘못말린다’고 표현되는 것들이 그렇죠. 못말리는 사랑, 못말리는 열정, 못말리는 취향 같은 것들이요. 그런 것들이 우연의 세상에서 필연의 물길을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나무극장에 등장하는 인물들 다수가 필연의 물길을 트는 사람들이죠.”

-소설속 인물들에게 비극을 가하는 주체는 무엇인가요? 일제 시대, 한국전쟁, 독재 정권 등 우리 근대사의 비극이 이야기 속에 순차적으로 등장해요. 우리의 후세가 앞으로 이런 비극을 겪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나 비전 같은 걸 가지고 계시나요?

물론 고민합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세상사에 깊이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저도 잘 모르겠어요. 차라리 확신이 있으면 마음이라도 편하겠는데, 올바른 미래의 비전에 관해선 누구도 정답을 미리 알긴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소설 속에서 비전을 보여주려고 했다기보다 근대를 살아온 우리의 자화상을 그려냈다고 생각해요. 그 그림을 보고(읽고) 의식의 흐름이 어떻게 흐를지는 독자의 시각 차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일테고요. 창작자의 역할은 거기까지라고 생각합니다.

-뭉근하게 강한 통증을 유발하는 소설이더군요. 깊게 베인 건 아닌데 통증은 크다고 할까요. 상처 묘사를 직접 하지 않는 절제와 축약이 오히려 더 큰 임팩트를 내는 것 같은 느낌인데.

”희로애락을 대놓고 묘사하지 않는 건 기본적으로 장착해야 할 소설 작법 중 하나라고 소설가들의 세계에서는 많이들 언급합니다. 인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느끼는지 일일이 표현하지 말고 인물의 행동을 그려내 보여주라고 하거든요.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그 기본 작법에 따라 소설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절제와 축약을 말씀하셨는데, 방대한 분량의 원고가 출판 과정에서 압축이 되면서 문장도 축약된 면이 있기는 합니다. 물론 긴장감 유발을 위해 의도적으로 짤막하게 쓴 문장도 있지요. 그런 면이 강한 통증을 남기는 임팩트로 작용한 것이라면 저자로서는 듣기 좋은 말입니다.

홍예진 작가가 집필하는 모습.
홍예진 작가가 집필하는 모습.

-소설 속 뮤지컬 소재인 한유와 오경선의 스토리가 너무 간결하게 진행되고 만 것 아닌가 싶은 면도 있더군요. 중요한 모티브가 될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였거든요.

“원래는 쓱 지나가는 공연 소재로만 내비치려고 했었어요. 오히려 제 입장에서는 계획에 없이 그 둘의 사연에 디테일을 주어버린 셈인데요. 공연의 소재가 되는 이야기의 배경을 저자와 독자 모두가 꿰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정보를 촘촘히 깔아놓게 된 거랄까요. 소설 속에서 또 하나의 이야기로 진행시킬까 고민도 해봤지만 전체 구성을 위해 꼭 필요한 건 아닌 만큼 서사의 축만 복잡하게 만들 것 같아서 작은 액자로 놔두었습니다.”

-전작인 산문집 ‘매우 탁월한 취향’에서 사용한 문체와 장편소설 ‘소나무극장’에서 쓰인 문체가 사뭇 달랐어요. 소설의 초고는 훨씬 분량이 많았던 걸로 아는데, 원고를 압축하는 작업이 문체에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산문집의 문체가 좀 더 세밀하다고 느꼈거든요.

“산문집과 소설의 문체가 같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산문집은 자신의 내면을 포착해 풀어내는 사유의 글인데 반해 소설은 저자가 안보여야 하는 글이니까요. 한 가지 더하자면, 저 같은 경우는 소설 속 인물의 특징과 내용에 따라 문체가 변하더라고요. 제가 쓴 단편 모음만 봐도 문체가 다 제각각이랍니다. 소나무극장의 문체도 내용의 분위기와 분량에 알맞게 스스로 윤곽을 만들었을 거라고 믿어요.”

-문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묘사를 절제하면서도 스토리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습작 시절 문장 연습을 많이 하셨나요? 아울러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글쓰기와 관련해 해주실 이야기가 있다면요.

“연습을 따로 했다기보다는 제가 원래 문장을 무지하게 고쳐가며 쓰는 유형이에요. 그 스타일이 저한테 붙어버렸는데 다른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단 신들린 듯 쓰고 퇴고하면서 문장을 다듬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저도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되어서 이젠 성향대로 작업하는 걸 인정했어요. 이런 것 하나만 봐도 사람마다 다 달라서 제가 다른 분들에게 해드릴 이야기가 따로 있을지 모르겠어요.

다만 제가 저에게 점수를 주는 부분은 꽤 오랫동안,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글을 썼다는 점이에요. 즉각적인 보상이 없는 그 일을 꾸준하게 하면 때로는, 아니 사실 자주 절망이 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계속 쓰는 동안 무언가를 만나게 되더라고요. 그 무언가는 공모전 수상 결과일 수도, 출간의 기회일 수도, 자신의 글에서 무엇을 고쳐야하는지 알아보는 객관성일 수도 있지요. 제게는 셋 다 어렵게 왔어요. 더 버틸 수 있을까 싶을만큼 저를 구석으로 몰아넣은 후에요.”

홍예진 작가의 신작소설 '소나무극장'(출판사 폴앤니나 )
홍예진 작가의 신작소설 ‘소나무극장’(출판사 폴앤니나 )
글쓴이

문주용 기자

문주용 대표이사 겸 기자는 31년간 언론인 생활을 바탕으로 새로운 언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힘든 세상에서 위로받고 지혜를 얻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이 바라는 미디어를 만들려 합니다.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집단지성의 지혜를 쌓을 것입니다. 전문가그룹과 소비자들이 함께 하는 미디어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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