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릿 패션의 아이콘’ 버질 아블로, 영원히 빛나다

‘오프-화이트’, ‘루이 비통’의 천재 디자이너 41년의 짧은 생애...불꽃같은 크리에이터의 삶

41세의 나이로 눈을 감은 루이 비통의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 사진= 오프-화이트 인스타그램
41세의 나이로 눈을 감은 루이 비통의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 사진= 오프-화이트 인스타그램

[김서나 기자] 스트릿 패션과 하이패션 사이의 벽을 허물어뜨리며 세계 트랜드를 흔들어 놓은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Virgil Abloh)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패션계가 슬픔에 잠겼다.

2년간의 암 투병 끝에 지난달 28일(미국 현지시간) 41세를 일기로 눈을 감은 아블로는 자신의 스트릿웨어 브랜드 ‘오프-화이트(Off-White)’의 인기를 발판으로 오랜 전통의 명품 브랜드 ‘루이 비통(Louis Vuitton)’에 입성하며 패션계 거물로 급성장한 인물.

의상 디자인 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창작 욕구를 불태웠던 크리에이터, 버질 아브로의 지난 시간들을 되짚어본다.

남다른 아이디어로 스트릿 패션을 장악하다

1980년 9월 30일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이민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성장한 버질 아브로는 패션을 체계적으로 배우진 않았다.

대학에서 토목공학 학사와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명품 브랜드 ‘프라다(Prada)’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는 것을 보고 패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짬짬이 티셔츠를 만들면서 개인 블로그에 관련 컨텐츠를 올리던 아블로는 시카고의 한 인쇄소에서 그의 패션 커리어를 이끌어줄 친구를 운명적으로 만났는데, 그가 바로 힙합 뮤지션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였다.

아직 세계적 스타로 성공하기 전이었던 카니예 웨스트는 음악 외에 패션에도 관심이 많았던 만큼 아블로와 대화가 잘 통하면서 가까워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힙합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부와 명성을 거머쥔 웨스트는 한 음악 시상식에서의 경솔한 발언으로 잠시 활동을 쉬게 되었을 때에도 아블로와 함께 명품 브랜드 ‘펜디(Fendi)’에서 인턴 생활을 하며 패션에 대한 교감을 나누었다.

이후 현업에 복귀한 웨스트는 그의 창작 에이전시 ‘돈다(Dond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아블로를 정식 임명한다. 웨스트의 음악 활동에 필요한 디자인 작업들을 도맡은 아블로는 2011년 웨스트와 제이지(Jay-Z)의 합작 앨범 ‘Watch the Throne’의 커버 디자인도 연출하면서 그래미상 후보에까지 오르며 이름을 알렸다.

이에 자신의 재능에 확신을 갖고 2012년 첫 브랜드 ‘파이렉스 비전(Pyrex Vision)’을 런칭한 버질 아블로는 유명 브랜드의 중고제품을 사들여 그 위에 재미있는 프린트를 첨가해 되파는 방식을 택했는데, 기존의 패션계를 비웃는 듯한 이 파격적인 패션 실험은 남다름을 추구하는 패션 리더들의 심리를 제대로 공략했다.

이러한 저돌적인 마케팅으로 패션계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 아블로는 2013년 이번엔 스트릿 패션의 고급화 전략을 가지고 두번째 브랜드 ‘오프-화이트’를 런칭했다. 명품 브랜드들에 비해 스트릿 브랜드들은 값싸고 투박하다는 인식을 깨기로 한 것.

아블로는 굵은 대문자와 따옴표, 케이블 끈, 바리케이드 테이프 등 특유의 시그니처 디테일들을 내세워 다른 브랜드들과 차별화하면서 가격도 높게 책정해 스트릿 패션계의 명품 포지션을 점거하는데 주력했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오프-화이트를 통해 선보인 버질 아블로의 디자인. 사진=오프-화이트 인스타그램
오프-화이트를 통해 선보인 버질 아블로의 디자인. 사진=오프-화이트 인스타그램

‘스트릿 패션’고급화 성공하며 루이 비통에 입성

전세계에 매니아를 형성하며 핫 브랜드로 떠오른 버질 아블로의 오프-화이트는 2010년대 후반 스트릿 패션이 트렌드의 주도권을 잡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박시한 실루엣의 티셔츠와 후디, 워크웨어, 트레이닝, 스니커즈 등이 인기를 모으면서 이들 스트릿 코드의 아이템들이 많은 패션 브랜드들의 상품 구성에서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했고, 버질 아블로의 감각을 탐내며 협업을 원하는 브랜드들도 계속해서 늘어갔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은 아블로는 ‘나이키(Nike)’의 대표적인 스니커즈 10가지를 재창조하는 ‘더 텐(The Ten)’ 프로젝트로 신드롬을 일으킨데 이어 ‘이케아(IKEA)’의 가구를, ‘에비앙(evian)’의 물병을 디자인하는 등 패션 외 분야에까지 크리에이터로서의 영향력을 키웠다.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가는 스트릿 패션 열풍을 명품업계도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었다.

차츰 기존 명품 브랜드들도 스트릿웨어 스타일을 반영하거나 스트릿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추진하면서 대세 트렌드를 따르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이에 그치지 않고 아예 스트릿 패션으로 인기를 끈 스타 디자이너들의 영입에 나선 케이스들도 생겨났다.

오프-화이트와 함께 스트릿 패션의 인기를 폭발시킨 ‘베트멍(VETEMENTS)’의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가 ‘발렌시아가(Balenciaga)’에 발탁되었고, 스케이트보더들의 브랜드, ‘슈프림(Supreme)’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스트릿 패션 매니아들의 규모를 직접 확인한 루이 비통은 버질 아블로에 러브콜을 보냈다.

2018년 3월 남성복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으며 루이 비통에 입성한 아블로는 루이 비통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취임한 첫번째 아프리카계 인물이라는 역사적 의미까지 가지면서 그해 ‘타임(TIME)’지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루이 비통에서도 자유분방한 스트릿 감성을 잃지 않은 아블로는 기발하고 유머러스한 아이디어로 독창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패션계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켰다.

버질 아블로가 디자인한 루이 비통 남성복의 광고 캠페인. 사진=루이 비통 인스타그램
버질 아블로가 디자인한 루이 비통 남성복의 광고 캠페인. 사진=루이 비통 인스타그램

지난 2019년 심장 혈관육종을 진단받은 버질 아블로는 2년 간 투병을 이어가며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LVMH(루이비통 모에 헤네시)’의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 회장은 그가 천재적인 디자이너이자 선각자였으며, 아름다운 영혼과 위대한 지혜를 가진 인물이라며 추모했다.

마치 힙합 아티스트가 기존 곡을 샘플링해 새로운 곡을 만들어내듯 기존의 디자인에 약간의 변화만을 더해 새로운 디자인을 탄생시킨다는 ‘3% 접근법’을 주장해 일각으로부터 반감을 사기도 했지만, 그의 창작열은 진심이었다.

디자이너로서 오프-화이트와 루이 비통의 인기를 유지해 나가는 동시에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고 현대 미술 전시회를 열며 DJ로 무대에도 서는 등 다방면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쏟아냈던 스트릿 스타일의 아이콘, 버질 아블로.

그를 떠나보내면서 이제 중심 축이 흔들리게 된 스트릿 패션의 트렌드는 과연 지금과 같은 기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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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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