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고 아쉬웠던 5년의 ‘평화’
[고수석의 통일수첩] 文대통령의 평화정착 노력 인정해야 남북·북미 정상회담, 2018년 평화 스토리 하지만 회담 실패 이후 추가 노력 아쉬워 미·일 협력 있어야 평화 성공하는 교훈 얻어
- 대한민국의 제 19대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5월9일 공식 퇴임합니다. 전임 대통령 탄핵으로 인수위원회 없이 선거당선후 곧바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 입니다. 지난 5년 동안 그가 이룩한 성과는 무엇이고, 완수하지 못한 것은 무엇이며, 잘못한 부문은 또 무엇인지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더칼럼니스트>의 전문가 필진은 물론, 페이스북 등에서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민초’들도 참여해 다양한 시선과 눈높이로 지난 5년을 돌아보며 추억을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대통령의 자리에 앉는 순간 고통의 시간이 시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그 자리에 앉지 못해 안달이다.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대목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해되는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부분 이해되지 않더라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문 대통령의 지난 5년을 돌아보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단어는 ‘평화’다. 청와대가 유튜브에 최근 올린 문재인 정부 5년 다큐의 제목도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1부 오직 평화입니다’로 정했다. ‘통일’이 아니라 ‘평화’에 방점을 둔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통일은 남북한이 서로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하는 단어다.
북한은 남한이 주장하는 통일을 ‘흡수통일’로 해석하고, 남한은 북한이 주장하는 통일을 ‘적화통일’로 받아들인다. 같은 단어지만 해석이 서로 달라 ‘평화’가 서로에게 편하다.
2018년은 문재인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9.19 평양 남북정상회담. 특히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은 남북관계사에 새로운 이정표로 남을 만한 일이다.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그토록 오매불망 바랐던 일이지만 신(神)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것을 해결한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공(功)이다.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1953년 정전 이후 65년 만에 드디어 한반도에 평화가 올 것으로 설레게 만들었다.
야박하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에 속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과 협상을 한번이라도 해 본 사람들은 엄지척을 내민다. 문 대통령 특유의 친근감이 절묘하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마음을 흔든 것을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신(神)이 선물한 시간이 더 남아 있지 않았다. 야속하게도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설레었던 기대가 산산조각이 났다. 지금 와서 누구 탓이라고 하는 것은 소용없다. 신(神)이 선물한 시간이 거기서 멈춘 것이다.
여기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 있다. 신(神)에게 시간을 더 달라고 절절하게 매달리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최선을 다해 불씨를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변명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부족했다. 토라진 김 위원장과 국내 문제에 빠진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지 못했다. 잠시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을 했지만 준비 없이 진행된 ‘깜짝 이벤트’에 불과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대비해본다면
부족했다고 지적하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사례와 비교하면 알 수 있다. 2000년 6월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조명록 북한 총정치국장이 그해 10월 중순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다. 연이어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10월 하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해 11월 실시된 미국 대선이 법정투쟁으로 이어지면서 선거 이후 35일이 지나서야 공화당 부시 후보가 당선자로 결정됐다. 절호의 찬스가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결국 방북 대신 김정일 위원장의 워싱턴 방문을 요청했지만, 북한이 이를 거절했다. 부시 대통령과 함께 등장한 네오콘은 클린턴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휴지통에 던져 버렸다.
김 대통령은 미국을 찾아 부시 행정부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this man’이라는 소리를 듣는 등 불신을 받고 돌아왔다. 여기서 중요한 순간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의 세계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일본을 한국 편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2002년 9월 김정일 위원장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 기존 일본 정부의 대미 접근과 매우 다른 태도였다. 당연히 미국은 부정적인 입장을 일본에 전했다. 하지만 당시 한일 협력이 버티고 있었다. 미국도 자신의 동맹국가들의 행동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일본 정부도 미국 정부에 북한 협상팀 파견을 요청하는 등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2002년 10월 켈리 차관보의 방북으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변화를 기대했지만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다. 미국이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개발 의혹을 제시하면서 제2차 북핵 위기를 맞았다. 이로써 김 대통령의 노력은 결실을 거두지 못한 채 끝났다. 그렇지만 김 대통령의 노력은 평가받을 만하다. 미국 정치의 변화에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우군을 확보해 부시 행정부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 결과 노무현 정부 때 6자 회담, 부시 대통령의 종전 선언 제안 등으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에게는 이런 부분이 아쉬웠다. 김대중 정부와 달리 한일 관계가 불편해져 우군을 확보할 수 없었다. 가슴만 태우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일부는 금강산 개별관광이라도 재개해 남북관계를 개선했어야 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겹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남북관계는 참 어렵다.
문 대통령에게 기회는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잘 살렸다. 하지만 화룡점정을 하지 못했다. 한반도의 불행한 지정학적 입장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일본의 협력 없이는 어렵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아마 문 대통령은 지금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더 공격적으로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음 대통령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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