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쌍욕’에 ‘담대한 구상’ 좌초되나
[고수석의 통일수첩] 대통령실, 김여정 반응 예상못했나 섣부르고 MB구상과 비슷...’욕 불러’ 경제-핵 교환 협상은 가능성 낮아 북미관계 개선에 주력할 타이밍
김여정, 윤 대통령에게 ‘쌍욕’
윤석열 대통령이 며칠 전 ‘쌍욕’을 들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19일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고 비난했다. 김 부부장은 올해 34세이다. 윤 대통령 이 살아오면서 그런 욕은 처음 들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이런 ‘쌍욕’을 들으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황당하고 분노할 일이다.
김 부부장은 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담대한 구상’에 대해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검푸른 대양을 말리워 뽕밭을 만들어보겠다는 것만큼이나 실현과 동떨어진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말했다. 또한 “10여 년 전 이명박 역도의 산물로 버림받은 ‘비핵‧ 개방‧3000’의 복사판에 불과하다”며 담대한 구상을 깎아내렸다. 급기야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고까지 말했다.
대통령실도 가만있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북한이 대통령 실명을 거론하며 무례한 언사를 이어가고 우리의 ‘담대한 구상’을 왜곡했다”며 반박했다. 그리고 “북한 비핵화와 남북 관계 발전을 추구한다는 우리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으며, 북한이 자중하고 심사숙고하기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6가지를 제시했다. ▶대규모 식량 공급 프로그램 ▶발전과 송배전 인프라 지원 ▶국제 교역을 위한 항만과 공항의 현대화 ▶농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기술 지원 ▶병원과 의료 인프라의 현대화 지원 ▶국제투자 및 금융 지원 등이다.
핵-경제협력 교환 협상 가능성 봉쇄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 제안과 김 부부장의 ‘쌍욕’에 두 가지 의문이 든다. 첫째, 핵과 경제협력의 교환이 가능할까다. 김 부부장은 “세상에는 흥정할 것이 따로 있는 법, 우리의 국체인 핵을 경제협력과 같은 물건 짝과 바꾸어보겠다는 발상이 윤석열의 푸르청청한 꿈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천진스럽다”고 비난했다.
김 부부장의 비난을 떠나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북한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10개를 포함해 온갖 경제제재를 감수하면서까지 핵 개발을 해왔다. 경제발전을 먼저 생각했다면 핵 개발을 벌써 중단했을 것이다. 북한이 핵 개발에 매진했던 이유는 체제 안전보장이다. 따라서 체제 안전보장 없이 핵 개발을 경제협력과 바꿀 수 있다는 접근은 연목구어다. 학자들이 세미나 주제로 다룰 수 있지만, 현실에서 실현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비핵·개방·3000이 경제 쪽에 유인책을 대부분 두고 있다면 ‘담대한 구상’은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정치 즉 북한의 체제 안전에 대해서도 다룬다”고 밝혔다. 담대한 구상은 경제·군사·정치 등 3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아직 군사·정치, 즉 북한의 체제 안전에 대해서는 어떤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지지 않았다. 6자 회담에서 북핵 시설의 폐쇄와 불능화, 대북 에너지 지원 등을 합의하고도 실패했는데, 이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핵과 경제협력 교환 가능성에 의문
둘째, 대통령실이 김 부부장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을까다. 윤석열 정부는 ‘선(先) 비핵화’가 아니라 비핵화 협상과 동시에 ‘담대한 구상’이 가동된다고 설명한다. 과거 이명박 정부의 구상은 핵포기 시작부터 단계별로 북한을 지원하는 내용이었다. 이번 윤석열 정부의 구상은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비핵화 협상에 나설 경우부터 지원하는 내용이다. ‘담대한 구상’의 시점을 과거 ‘핵포기’ 에서 ‘핵협상’으로 앞당겼다. 하지만 비핵화는 협상을 통해 얻어내야 할 결과물이다.
그런데 북한은 군사·정치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 없이 경제협력으로 비핵화 협상을 시작하자고 하면 협상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김 부부장의 말마따나 10여 년전 비핵화를 전제조건으로 제시해 이미 퇴짜를 놓았는데 비슷한 내용으로 또 노크했다고 받아들인다. 김 부부장은 “역사의 오물통에 처박힌 대북정책을 옮겨 베껴놓은 것도 가관이지만, 거기에 제 식대로 ‘담대하다’는 표현까지 붙여놓은 것을 보면 진짜 바보스럽기 짝이 없다”고 비난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담대한 구상’ 제안에 앞서 지난 5월 취임사에서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7월 22일 통일부 업무보고에서도 ‘담대한 제안’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그렇다고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 맞출 필요는 없었다. 이번에 발표를 준비하면서 시간상으로 북한의 반응을 충분히 검토하고 예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 포함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6가지 구체적인 내용도 새롭지 않다. 과거 정부에서 발표하거나 검토했던 내용이다. 조급하고 서두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권 통일부 장관은 “과거에 있었던 여러 가지 비핵화 관련 대북 제안을 집대성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밝혔다. 과거 청와대는 광복절 경축사마다 대북 메시지를 포함하려는 관성이 있었다. 단조로운 내용보다 대북 메시지가 담기면 국민과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무 라인과 홍보라인에서 국가안보실에 주문하곤 했다. 그것이 윤석열 정부로 이어졌을 수 있다.
‘담대한 구상’에 앞서 북미관계 개선 도울 때
‘담대한 구상’은 김 부부장의 원색적인 비난에 좌초될 위기를 맞았다. 추가로 군사·정치 즉 북한의 체제 안전에 대해 발표하더라도 북한의 호응이 없으면 과거 비핵·개방·3000의 전철을 밟게 된다.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발표하기 전에도 여러 가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필자도 7월 24일 칼럼 ‘윤석열 정부 실패한 비핵· 개방· 3000 다시 할 건가?’ 에서 지적했다.
정부 관계자들이 ‘담대한 구상’과 비핵· 개방· 3000과 차이가 있다고 설명해도 현실성이 없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비슷하다. 정책은 호응이 없으면 공허해진다. 만 5세 조기입학에서 쓰라린 경험을 했다. 김 부부장의 담화에서 북한의 호응을 확인했다.
아인슈타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제와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한다면 바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담대한 구상’이 이름에 걸맞게 담대해지려면 북미관계 정상화에 더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북한을 설득하려는 노력은 당분간 미국으로 돌려야 한다. 미국을 설득해 북미 대화를 재개하고 이후에 ‘담대한 구상’을 추진하는 것이 아인슈타인이 지적한 우(愚) 범하지 않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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