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실패한 비핵· 개방· 3000 다시 할 건가?
[고수석의 통일수첩] 윤 대통령, 北 비핵화하면 ‘담대한 제안’ 비핵화 전제조건 내세우면 실현가능성 낮아 ‘비핵화를 수용하도록’으로 조건 전환해야
이미 성공하지 못한 비핵‧개방‧3000과 흡사
안타깝게도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을 재탕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건만 결국 그것을 선택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의 지난 22일 업무보고에서다. 윤 대통령은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를 수용할 경우 제시할 담대한 제안에 대해 현실성 있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해 촘촘하게 준비하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북한이 비핵화를 수용할 경우’, 담대한 제안’은 얼핏 들어보면 맞는 말이다. 북한이 아닌 다른 나라라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게 통할 말이 아니다. 그리고 이미 이명박 정부가 시도했다가 성공하지 못했던 정책이다. ‘네가 하면 내가 하겠다’는 식은 결과적으로 북한에게 공허했다.
비핵‧개방‧3000은 북한이 핵 포기 절차를 시작하고 개방을 추진한다면 우리가 그에 걸맞게 북한과 실질적인 경제협력을 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10년 내에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에 이르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전제조건이다. 북한이 먼저 핵 포기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을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이라면 참 낭만적인 기대가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부의 ‘그랜드 바겐’ 내용은
당시 이명박 정부의 고민은 이랬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경제협력과 사회적‧문화적 교류를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고 그런 변화를 토대로 북핵 및 안보 문제까지 논의를 확대하려고 노력한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2006년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감행하는 등 도발이 이어지자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해석했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위협하는 북핵 및 안보 문제를 북한·미국 간의 대화에만 맡겨두고 과거 정부가 제 3자처럼 물러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대북정책을 북핵과 안보 분야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벤트성 남북 대화는 의미가 없다고 평가하고, 고되고 힘들며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비핵을 앞세워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는 2009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비핵‧개방 ‧3000 구상 이행 프로그램을 담은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 구상’을 발표했다. 북한이 핵 포기 결심을 보여준다면 경제·교육·재정·인프라·생활수준 향상 등 5대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남북한 재래식 무기와 병력 감축을 통해 예산과 비용을 줄이자고 제안했다. 그 연장선에서 그해 9월 21일 미국외교협회(CFR) 연설에서 ‘그랜드 바겐’을 제안했다.
그랜드 바겐은 ‘선(先)지원 후(後)핵 폐기’가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북한의 핵 폐기와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과 경제적 지원을 동시에 일괄 타결하는 방안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안보상의 우려를 국제사회가 해소하고 북한 경제도 본질적으로 발전시키자는 제안이다. 북한이 핵 포기 절차를 시작하면 언제라도 가동될 제안이었지만 북한은 끝내 대응하지 않았다.

북한이 무대응한 이유는
결국 북한의 무대응으로 비핵‧개방‧3000은 성공하지 못했다. 북한은 그 용어부터 불편해 했다. 우선, 북한은 비핵의 협상 대상을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정부가 1991년 12월 31일 남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합의했다고 주장하지만, 북한에게는 이미 지나간 일이 돼버렸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의 범위를 단지 한반도에 머물지 않고 괌까지 확대 해석하고 있다. 유사시 북한이 가장 무서워하는 B-52 등 전략폭격기가 괌에서 출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런 군사위협이 있는 한 먼저 비핵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가 어떠한 ‘담대한 제안’을 제안하더라도 북한이 비핵화를 수용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미 이명박 정부에서 경험하지 않았나. 윤석열 정부는 북한 보다 오히려 미국을 설득하는데 지금보다 10배, 100배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북한도 그것을 한국에게 기대하는 것 같다.
개방은 중국이 가능할지언정 북한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넓은 영토를 가진 중국은 일부 지역을 경제특구로 지정하고 시범적으로 확산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바로 중단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영토가 좁아 문제가 생기면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게다가 각종 제재로 중국처럼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북한은 나선경제무역지대를 지정했다가 투자가 제대로 되지 않아 혹독한 경험을 했다. 개방은 북한에게 아직은 꿈일 뿐이다.
북한이 비핵‧개방‧3000에서 비핵·개방보다 더 불편하게 생각한 것은 3000이다.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는 권위주의 독재국가가 민주주의 국가로 가는 필요조건이다. 한국의 경우도 1980년대 후반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였다. 북한도 ‘국민소득 3000달러’가 민주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북한은 기업인 출신 대통령에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비핵‧개방‧3000에 관심을 보이다가 그 의도가 북한을 붕괴시키는 것으로 간주했다.
다소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윤 대통령이 지시한 ‘북한이 비핵화를 수용할 경우’, ‘담대한 제안’이 과거 이명박 정부의 ‘북한이 핵 포기 절차를 시작하면’, ‘그랜드 바겐’과 흡사 해서다. 담대한 제안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일지는 두고봐야 하겠지만 그랜드 바겐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왜냐하면 그랜드 바겐에 웬만한 제안은 다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접근법을 바꾸자...”북한이 수용하도록”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말이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외교안보 라인이 윤 대통령 주변에 다시 뭉쳤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 1차장이 그들이다. 그들은 권영세 통일부장관의 업무보고에도 배석했다. 윤 대통령의 말을 견주어보면 비핵‧개방‧3000이 다시 부활하는 듯하다. 네이밍(naming)은 다르게 할지언정 내용은 흡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핵‧개방‧3000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라졌다가 10년 만에 다시 살아나는 동안 북한은 4차례 핵실험을 더 했고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9년 9월 ‘그랜드 바겐’을 제안할 때보다 몸값이 수십 배로 뛰었다. 따라서 ‘북한이 비핵화를 수용할 경우’, ‘담대한 제안’은 이명박 정부 때처럼 학계의 영역이지 정부의 영역은 아닌 듯 싶다.
차라리 ‘북한이 비핵화를 수용할 경우’ 보다 ‘북한이 비핵화를 수용하도록’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전자는 수동적이고 후자는 능동적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수용할 경우를 가정하면 임기 5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는 얘기로 들릴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를 수용하도록’을 가정하면 공격적으로 일을 하겠다는 뜻이다. ‘담대한 제안’을 고민할 시간에 북한이 비핵화를 수용하도록 미국과 머리를 맞대는 것이 더 현명하다. 비핵화는 결국 미국이 해결해야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이다.
세상에는 ‘현상’과 ‘본질’이 있다. 북핵의 현상은 북한이고, 본질은 미국이다. 신(神)이 왜 이런 장난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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