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러시아 대사 “러-우 갈등, 러시아 관점서도 봐야”

[지노비예프 러시아 대사 인터뷰②] “러, 충돌 피하려 노력해...우, 폭격 도발” “우內 신나치주의가 원인...깊은 이해를” “많은 전쟁을 일으켰던 미국은 제재 안받아” “한국의 독립에 소련도 기여...감사 있어야” “한국인들, 러시아측 입장에 관심 없어”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의 스탈린그라드 전투 승리 81주년을 기념해 지난 2024년 2월 4일 러시아 남부의 볼고그라드(옛 스탈린그라드) 주 스레드녜아흐투빈스키 지역에서 붉은 군대 복장(오른쪽)과 나치 독일 군복(왼쪽)을 입은 러시아 역사 재연 참가자들이 전투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사진=AP 알렉산더 쿨리코프/연합뉴스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의 스탈린그라드 전투 승리 81주년을 기념해 지난 2024년 2월 4일 러시아 남부의 볼고그라드(옛 스탈린그라드) 주 스레드녜아흐투빈스키 지역에서 붉은 군대 복장(오른쪽)과 나치 독일 군복(왼쪽)을 입은 러시아 역사 재연 참가자들이 전투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사진=AP 알렉산더 쿨리코프/연합뉴스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 인터뷰 ①에 이어

러시아가 약소국을 침략했다는 비난에 대해

문 기자: 이번 인터뷰는 대한민국과 러시아가 전쟁 이전의 상태로 우호적인 관계를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과거 대한민국 역시 식민 지배를 받았고, 독립을 위한 강대국 간 협상에서 발언권을 갖지 못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공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세계 질서는 강대국들에 의해 형성되며, 약소국이 희생되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원칙은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 예술, 정신을 지닌 러시아가 이러한 접근에 동의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약소국을 공격하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노비예프 대사: 사실상, 문 기자님께서 말씀하신 각 문장은 각각 하나의 질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자님의 핵심 메시지는 양국 관계를 전쟁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자는 것입니다. 만약 인터뷰 하나로 그것이 가능하다면 정말 훌륭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양국 관계는 이미 ‘다진 고기’와 같아서 다시 고기 분쇄기에 넣을 수는 없습니다. 모든 양자 관계는 일정한 역사적 기반 위에 형성됩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며, 이를 비극으로 만들거나 오늘날의 관계를 과거의 환상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잊고 백지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아무리 원한다 해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는 모든 복합적인 양자 관계에 해당되며, 러시아-한국 관계도 예외는 아닙니다.

따라서 관계가 회복되기를 희망하지만, 아마도 다른 기반 위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양국 협력의 정상적인 발전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다시 말씀드릴 수도 있습니다.

미국은 지난 6월19일 예고도 없이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했다. 사진=SBS뉴스 캡쳐
미국은 지난 6월19일 예고도 없이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했다. 사진=SBS뉴스 캡쳐

“미국이 훨씬 자주 약소국을 공격했어요”

이제 마지막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약하고 작은 국가를 공격하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대한민국의 주요 동맹국인 워싱턴(미국)은 정기적으로 자국보다 훨씬 약한 국가들을 공격해왔습니다. NATO 역시 약소국을 공격합니다. 예를 들어, 1999년 유고슬라비아 폭격(주권 국가에 대한 침략), 이라크 침공, 리비아 침공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최근 역사에서 가장 명백하고 규모가 큰 사례들입니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제가 이미 언급한 베트남- 미국의 군사적 모험이며, 대한민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사례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파나마, 그레나다 등 여러 역사적 사례들이 존재합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공식 인사들이 미국이나 NATO의 잘못된 행동을 비난한 사례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러시아는 끊임없이 이른바 ‘국제사회’와 비교되고 있습니다. 누구도 국제사회를 대표해 발언해서는 안 됩니다. 국제사회는 단일한 조직, 즉 유엔(UN)을 통해 존재합니다. 제재를 부과할 권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있으며, 안전보장이사회는 러시아 연방에 대해 어떠한 제한도 부과한 바 없습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의 평화적 해결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했으며, 다수의 안보리 회원국이 이에 찬성했고, 그중에는 대한민국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면 프랑스, 영국 등 일부 서방 국가들은 기권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국제사회이며, 그 목소리입니다.

“소련군 장병들, 조선의 독립 위해 피 흘려”

우크라이나 문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기자님께서는 대한민국이 과거 식민 지배를 받았던 경험 때문에 키예프(우크라이나)에 공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크라이나 위기의 원인에 대한 깊은 오해이며, 일본의 점령과 식민주의로부터 대한민국을 해방시킨 주체를 잊고 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자유와 독립은 대한민국에 저절로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소련의 병사들과 장교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사실일 수 있지만,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입니다. 그러한 희생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것이, 역사를 덮어두는 것보다 바람직할 것입니다.

덧붙이자면, 저희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대한민국과는 현재와 같은 관계를 맺고 있는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의 극동 지역 종전과 관련된 역사에 크게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의 종전 80주년은 몇 달 후에 기념될 예정입니다. 물론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는 이 주제에 대한 고유한 시각과 접근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승리가 한반도의 탈식민화와 해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또한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일본의 지상군은 오직 소련과 중국을 상대로 대규모 군사 작전을 벌였으며, 중국을 점령하려 했습니다. 반면 소련의 작전은 탈점령 성격을 띠었으며, 당시 전쟁에 남아 있던 유일한 추축국인 일본을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유엔 헌장의 기초가 된 국제적 의무에 따라 수행된 것이며, 해당 헌장에는 모든 회원국이 테헤란, 얄타, 포츠담 회의의 결정을 무조건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소련이 일본과의 전쟁에 참전하기로 한 결정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현대 국제 질서의 기반이 된 회의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부정하거나 재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길입니다.

일본군이 항복한 뒤 철수하는 장면이 담긴 그림. 사진=주한 러시아대사관 제공/연합뉴스
일본군이 항복한 뒤 철수하는 장면이 담긴 그림. 사진=주한 러시아대사관 제공/연합뉴스

“우크라이나내 신나치주의, 전쟁의 원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감과 관련하여, 대한민국에서는 2014년부터 8년간 동부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키예프 정권에 의해 지속적인 폭격을 당한 것에 대해 아무런 공감도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평화로운 도시들이 GRAD 로켓 시스템, 공군, 정규군의 공격을 받았는데, 이는 그들이 헌법을 위반한 쿠데타와 그 주도자들이 제정한 법률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해당 법률들은 이 지역의 모국어인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 한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지 못하도록 금지당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그 상황이 좋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크라이나의 경우는 훨씬 더 정교한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모국어를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사용하는 것조차 금지되었습니다. 이러한 관행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고, 2014년 이후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며 유혈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서방은 이를 알고 있지만 침묵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 편향된 서방 언론의 보도는 안타깝게도 한국의 대중매체에도 널리 반영되어 반러시아적 서사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만약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우크라이나가 2022년까지 평화롭게 번영하다가, ‘사악한 거대한 러시아’가 공격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당연히 모두가 불쌍한 우크라이나에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불쌍한 우크라이나”가 8년 동안 자국민을 공격했고, 결국 그들을 외면했으며,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그들을 “개체”라고 불렀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그는 “사람이 있고, ‘개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즉, 우크라이나에는 사람이 살고, 동부 우크라이나에는 어떤 ‘개체’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에게 “당신이 러시아인이라고 느낀다면 러시아로 떠나라”고 권고했습니다. 이는 제가 앞서 언급한 우크라이나의 전형적인 신나치주의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바로 특별 군사 작전의 시작 배경이 되었습니다. 러시아는 2014년부터 이 갈등을 동결시키려 했으며, 당시 우크라이나군은 아직 저항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 시점에서 키예프 정부는 동부 지역에 자치권을 부여하고, 자국을 방어한 시민들에 대한 법적 처벌을 하지 않기로 한 민스크 협정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협정은 완전히 무시되었고, 해당 지역에 대한 정규군의 포격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러시아가 2022년에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을 국가로 인정하고, 외교 관계를 수립하며, 그들을 방어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을 공격했을 당시, 서방 사회나 대한민국 언론에서는 이에 대해 아무런 보도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상황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도 극소수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예를 들어 2014년 5월 2일 오데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당시 약 50명이 의도적으로 산 채로 불태워졌습니다. 참고로, 화형은 가장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처형 방식입니다. 이들은 러시아어 사용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며 시위를 벌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신나치주의 성향을 가진 ‘울트라스’들이 이들을 건물 안으로 몰아넣고 불을 지른 뒤, 창문으로 탈출하려는 이들을 기꺼이 마무리했습니다. 이후 우크라이나 전체가 이러한 행위에 열광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그 어떤 사람도 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행위는 은밀히 조장되고 있습니다. 전선에서 싸우는 가장 급진적인 신나치 무장 세력들- 예를 들어 악명 높은 ‘아조프’라는 이름의 전(前) 대대(현재는 여단 혹은 다른 형태)- 은 명백한 나치 성향의 조직입니다. 제가 언급한 사건들은 사실상 2014년 이후 현재의 우크라이나 국가 체제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한국 언론은 사태의 원인과 본질을 왜곡 인식”

민스크 협정에 관해서는, 이제 그 목적이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 공개적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지도자들은 당시 우크라이나가 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상태로 갈등에 휘말리면 패배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군사력을 강화하고 방어력을 보강한 뒤 돈바스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 벌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매우 공개적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전 대통령 포로셴코는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 갈 것이고, 돈바스의 아이들은 지하실에 앉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모든 내용은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대중 뉴스에서는 이에 대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점들이 현재 우크라이나 갈등의 원인과 성격에 대한 대한민국 내 인식이 상당히 왜곡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국제사회’의 관점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언론이 이해하는 ‘국제사회’란 결국 서방 국가들, 유럽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발트 3국이 의제를 주도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의 핵심 국가 이념은 러시아 혐오입니다.

그들은 러시아에 해를 끼치기 위해 존재하며, 그것이 그들의 주요 목표입니다. 현재 이들은 유럽 관료들과 정치계에 자신들의 입장을 설득한 상태입니다. 그 이후 유럽연합(EU)도 같은 논리를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통합된 유럽의 역사적 과업과도 완전히 부합하는데, 유럽은 역사적으로 통합될 때마다 결국 러시아에 전략적 패배를 안기려는 과제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에 대해 한국인들에게 근본적인 이해를 요청하는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 사진제공=주한 러시아대사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에 대해 한국인들에게 근본적인 이해를 요청하는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 사진제공=주한 러시아대사관

역사상 수많은 공격을 받아온 러시아

문 기자: 이번 전쟁은 한국 사회에서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처음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먼저 공격한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해했고, 이후에는 곡물과 에너지 부족 사태가 언제 끝날지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한국의 평론가들은 중앙 및 동유럽의 지정학,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상황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다시금 러시아 문학과 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궁금합니다. 예술과 문화의 나라 러시아에서 왜 20세기에 비인도적인 스탈린주의가 지배했는지, 그리고 이후 아프가니스탄 침공, 크림반도 공격,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거치며 왜 전투적이고 승리주의적인 국가 이미지가 형성되었는지요? 러시아는 전쟁을 즐기는 나라입니까? 약소국 침공에 대해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닙니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지노비예프 대사: 선생님께서 이해하신 많은 부분은 서방 언론의 보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는 제가 앞서 설명드렸습니다.

“곡물과 에너지 부족 사태는 언제 끝날까요?”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가스관 폭파가 멈출 때 끝날 것입니다.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던 가스관을 폭파한 것은 저희가 아닙니다, 그렇죠? 저희가 유조선에 집착하거나 석유 금수 조치를 도입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은 일부 국가들입니다. 곡물 문제에 대해서도, 러시아는 수출 제한을 하지 않았고, 우크라이나 역시 곡물을 충분히 수출할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서방이 러시아를 세계 경제 체계에서 배제하려고 하면서 시작되었고, 그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스탈린주의’나 ‘비인도성’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의 역사에 낙인을 찍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국가의 역사에는, 대한민국도 포함하여, 적잖은 복잡하고 논쟁적인 순간들이 존재합니다. 모든 국가가 민주주의의 깃발 아래 태어난 것도 아니고, 국가 형성 과정에서 민주적 가치를 구현한 것도 아닙니다. 다른 나라에 낙인을 덜 붙일수록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 ‘민주주의 가치의 화신’인 나라는 없어”

“약소국을 쉽게 침공하는 전투적인 국가”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왜 제재를 가하지 않았습니까? 이라크는 미국에서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나라이고, 아무런 이유 없이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대한 제재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일관된 기준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경우, 갈등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러시아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낙인을 찍기보다는 러시아가 어떤 나라인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러시아는 끊임없는 생존 투쟁 속에서 형성된 나라입니다. 한국의 역사에서도 몽골, 일본, 만주족의 침략으로 인한 깊은 민족적 상처가 남아 있죠. 여러분은 그 비극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러한 침략을 거의 매 세기마다, 때로는 한 세기에 여러 번 겪었습니다. 끊임없이 누군가가 침입해왔습니다—처음에는 야생 초원으로부터, 그 다음에는 동쪽에서 몽골이, 그리고 서쪽에서도 젊고 미약했던 러시아 국가에 치명적인 위협이 지속적으로 가해졌습니다.

“서방으로부터 ‘전략적 패배’를 강요받아”

서방은 언제나 러시아에 전략적 패배를 안기려는 목표를 설정해왔습니다.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하나인 성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공은, 몽골의 침입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방의 위협이 동방보다 더 위험하다고 보았습니다. 독일 기사단은 러시아를 정복하려 하면서 러시아 국민을 ‘가톨릭화’하고, 그들의 민족적 정체성과 의식을 바꾸려는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이러한 가톨릭화 프로젝트는 리투아니아 대공국 내 러시아인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초강대국’이었던 폴란드는 러시아가 약해지자마자 크렘린에 자신들의 인물을 앉혔고, 그는 즉시 러시아를 가톨릭화하려는 시도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멸망 직전까지 갔으며, 오직 민중의 의병이 일어나 나라를 통합하고 침략자를 몰아내며 16세기 말~17세기 초의 권력 위기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 시기는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암울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위협은 반복되었습니다. 17세기에는 당시 군사 초강대국이었던 스웨덴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에 전략적 패배를 안기려 했습니다. 주요 전투는 폴타바에서 벌어졌습니다. 몇 시대를 건너뛰어 나폴레옹의 사례를 보면, 유럽이 통합되자마자 러시아를 공격하려 했습니다. 12개 언어를 사용하는 거대한 군대, 나폴레옹 아래 통합된 유럽 전체가 열광적으로 그의 침략에 동참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1855~1856년의 크림 전쟁에서는 왜 유럽이 손을 잡았고, 왜 러시아와 싸우기 위해 크림으로 향했을까요? 이 전쟁은 심지어 캄차카에서도 전투가 벌어질 정도로 대규모였습니다. 러시아는 그 이전에 유럽에 평화를 되찾아주었고, 나폴레옹을 물리쳤으며, 여러 국가들의 주권을 회복시켰습니다. 그러나 기회가 생기자마자 프랑스와 영국은 러시아에 전략적 패배를 안기려 함께 움직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러시아에 혼란이 시작되자마자 프랑스군은 오데사에, 일본군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영국군은 북쪽 무르만스크 지역에 나타났습니다. 모두가 개입하고 싶어했습니다.러시아에 전략적 패배를 안기려는 시도의 정점은 제2차 세계대전, 즉 대조국전쟁이었습니다. 유럽이 통합되고 자신감을 갖게 되면, 러시아를 무너뜨리려는 프로젝트가 다시 등장합니다. 히틀러는 유럽을 통합했고, 우리가 나중에 해방시킨 모든 국가들이 그의 소련 정복·분할·말살·인종학살 프로젝트에 열광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기자님께서 ‘비인도적인 스탈린주의’라고 표현하신 체제가 산업 기반을 구축하고 국민을 동원하여 파시즘에 맞서지 않았다면, 그러한 계획은 실제로 실현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쯤이면 우랄산맥까지의 러시아 영토에는 독일의 부르주아들과 유럽의 귀족들이 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현지 주민들은 매우 비참한 운명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열등한 인간’이라 불렸고, 독일과 그 동맹국이 점령한 지역에서는 ‘인종적 순수성’을 위해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탄압당했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실례지만, 저희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약자를 공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사실 누구도 공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항상 공격을 받습니다. 누군가는 항상 러시아를 침범해왔습니다. 만약 러시아가 스스로를 지킬 수 없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먹혀버렸을’ 것이며, 세계사 속 수많은 왕국들처럼 사라졌을 것입니다. 저희는 국가 안보를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그 외의 어떤 국가나 국민을 해치거나 말살할 의도는 없습니다.

앵글로색슨족이 아메리카를 정복했을 때, 그들은 현지 주민들에게 무엇을 했습니까? 이 모든 아메리카의 대초원과 광활한 땅이 원래 자신들의 것이었던 인디언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러시아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유고슬라비아,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등 국경에서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문제에 관심을 두는 미국과는 달리,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안보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문 기자께서 언급하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전히 소련과 러시아에 대한 매우 좋은 태도가 남아있는데, 이는 우리가 그곳에서 누구도 잔혹하게 다루지 않았고, 죽이지 않았으며, 처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경제를 발전시켰고 안정적인 지방 정부를 확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의 국가 건설을 어떻게든 발전시키려 했던 시기를 향수하며 기억합니다. 물론 다양한 관점이 있지만, 제 생각에는 단순히 낙인을 찍는 것은 건설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파시스트 독일에서 비롯된 반러시아 시각”

러시아인을 공격적이고 호전적이며 약자를 괴롭히는 존재로 낙인찍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러시아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서방의 선전에 의해 사고가 흐려진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선전은 소련과 관련된 여러 문제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뿌리는 파시스트 선전- 즉 괴벨스식 선전-에 있습니다. 그들은 동쪽에는 ‘열등한 인간들’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매우 사악하고 위협적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래서 파시스트 독일이 서구 문명을 동방의 야만인들, 즉 러시아로부터 구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던 것입니다.

오늘날 서방 언론의 보도를 보면, 겉모습은 좀 더 세련되었을지 몰라도, 그 내면의 서사는 매우 유사합니다. 핵심 메시지는 여전히 “서구 문명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를 ‘문명국’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는 이 표현을 즐겨 사용하고, 한국에서는 이를 ‘국제사회’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다시 말씀드리자면, 진정한 국제사회는 200개국 이상이 참여하는 유엔(UN)입니다. 누구도 국제사회를 대표해 발언하라고 위임받은 적은 없습니다.

‘크림 침공’에 대해서는 솔직히 어떤 침공을 말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누가 누구를 공격했다는 것입니까? 크림의 인구 98%는 러시아인입니다. 2014년에 집권한 키예프 정권은 “러시아어 사용을 중단하라. 서부 우크라이나에서 네오파시스트 대대를 보내어 우크라이나어를 가르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크림은 “우리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고, 동부 우크라이나도 같은 입장을 밝혔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은 크림에는 진입하지 않았지만, 동부 우크라이나에는 2014년에 진입하여 자국민을 대상으로 유혈 사태를 일으키며 이른바 ‘반테러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앞서 말씀드린 우크라이나 갈등의 시작입니다. 제가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한국의 친구들이 러시아의 관점을 듣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관점은 이곳에서 인기가 없고, 거의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③으로 이어집니다.

글쓴이

문주용 기자

문주용 대표이사 겸 기자는 31년간 언론인 생활을 바탕으로 새로운 언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힘든 세상에서 위로받고 지혜를 얻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이 바라는 미디어를 만들려 합니다.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집단지성의 지혜를 쌓을 것입니다. 전문가그룹과 소비자들이 함께 하는 미디어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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