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의 역설, 문화는 운명이 아니다

― 한국의 다음 꽃피움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우리나라 전통 놀이인 농악.
우리나라 전통 놀이인 농악.
  • 한국의 성취를 가능하게 한 문화적 에너지 근면성·교육열·집단적 협력·빠른 적응력은 한국의 경제발전과 민주화, 한류의 세계적 성공을 이끈 문화적 자산이다.
  • 같은 문화의 두 얼굴 집단주의와 위계질서, 눈치와 체면, 성취욕은 발전의 동력이면서도 배제와 동조 압력, 갑질, 과도한 경쟁을 낳는 원인이 될 수 있다.
  • 배제에서 포용으로, 새로운 꽃피움으로 문화는 운명이 아니다. 눈치를 공감으로, 체면을 건강한 자존감으로, ‘우리 안의 정’을 ‘우리 밖으로 확장되는 정’으로 바꿔 나갈 때 한국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한국인의 역설

한국인은 참으로 흥미로운 사람들이다. 엘리베이터에 타면 문이 조금이라도 빨리 닫히도록 ‘닫힘’ 버튼을 누르고, 식당에서는 종업원을 기다리기보다 테이블 위의 벨을 누른다. 무엇이든 빨리 처리하려는 ‘빨리빨리’ 문화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한국인이 자녀교육이나 입시, 취업 준비처럼 미래의 중요한 목표를 위해서는 놀라울 만큼 오랜 시간을 참고 견디며 노력한다.

현재의 일에는 성급하지만 미래의 목표에는 인내한다. 나는 이것을 한국문화의 흥미로운 역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언어학자로서 오랫동안 언어와 문화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나는 한국인의 일상적인 말과 행동 속에 숨어 있는 문화적 원리를 발견하는 데 관심을 가져왔다. 왜 한국인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이를 물을까? 왜 ‘눈치가 빠르다’는 말은 칭찬이지만 ‘눈치를 본다’는 말은 부정적으로 들릴까?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를 그토록 의식할까?

이러한 질문들을 탐구하면서 최근 『Decoding Korea: From Potential to Blossoming』이라는 영문 저서를 출간했다. 이 책에서 내가 시도한 것은 한국문화의 특징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특징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한국인의 사고와 행동을 형성하고 현대 한국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일이었다.

최근 필자가 영문으로 출간한 책『Decoding Korea: From Potential to Blossoming』.
최근 필자가 영문으로 출간한 책『Decoding Korea: From Potential to Blossoming』.

한국의 성취를 가능하게 한 문화적 에너지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세 가지 성취를 이루었다. 경제발전, 민주화, 그리고 한류의 세계적 확산이다. 이 세 가지 성취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일어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작용한 문화적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의 경제발전에는 정부정책, 국제정세, 기업가정신, 기술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다. 그러나 집단적 근면성, 높은 교육열, 빠른 문제 해결 능력, 변화에 대한 적응력과 같은 문화적 특성 역시 중요한 자원으로 작용했다.

민주화 과정에서도 우리는 오랜 시간 좌절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참여하고 저항했던 시민들의 끈질긴 노력을 발견한다. 한국인의 장기지향성과 집단적 참여의 에너지가 새로운 역사적 조건 속에서 발휘된 것이다.

한류 역시 마찬가지다. K-pop의 화려한 무대 뒤에는 오랜 훈련과 준비가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외부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왔다. 빠른 변화와 적응, 집단적 협력, 오랜 준비를 견디는 인내가 세계적인 문화적 성취로 이어졌다.

나는 이러한 성취를 한국문화의 잠재력이 서로 다른 시대와 조건 속에서 꽃핀 사례로 바라본다.

같은 뿌리에서 피어나는 성취와 갈등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질문 하나가 남는다. 같은 문화적 뿌리는 언제나 아름다운 꽃만 피우는가? 그렇지 않다. 한국문화의 강점으로 여겨지는 특성들은 동시에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집단주의는 강력한 협동과 연대의 힘이 되지만, 집단과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왕따 문화로 나타날 수 있다. 위계질서는 조직의 효율성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약자에게 부당한 행동을 하는 갑질로 변질될 수 있다.

눈치는 상대방의 마음과 상황을 민감하게 읽는 훌륭한 사회적 능력이다. 그러나 지나치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추도록 만드는 동조 압력이 된다.

체면 역시 타인에 대한 예의와 사회적 책임을 지키는 장치가 될 수 있지만, 지나치게 남의 평가에 의존하면 지위와 성공을 둘러싼 경쟁을 강화한다. 높은 교육열과 성취욕은 국가발전의 동력이 되었지만, 오늘날에는 극단적인 입시 경쟁과 사회적 불안을 낳기도 한다.

바로 여기에 한국문화의 역설이 있다. 우리를 발전시킨 문화적 에너지가 동시에 우리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가진 문화적 특성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문화는 운명이 아니다

한 개인의 삶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조건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조건이 삶의 모든 가능성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자신의 약점과 한계처럼 보였던 것들을 부단한 노력과 성찰을 통해 새로운 강점으로 바꾸기도 한다. 운명처럼 보였던 난제를 극복하면서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 가기도 한다.

한 나라의 문화도 마찬가지다.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문화적 특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한 사회의 미래까지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문화적 특성도 어떤 역사적 조건과 만나고,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집단주의가 협력과 연대의 힘이 될 수도 있고, 배제와 동조 압력의 원천이 될 수도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계질서와 눈치, 체면, 빨리빨리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특성이 지닌 에너지를 어떤 방향으로 발휘하고 승화시키느냐이다.

돌이켜 보면 한국의 경제발전과 민주화, 한류의 세계적 성공도 이러한 문화적 전환과 발전의 사례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인은 물려받은 문화적 자산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그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하고 발전시켜 왔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갈등과 문제 역시 피할 수 없는 문화적 운명으로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가진 문화적 에너지를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과제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문화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까?

‘범 내려온다’ 이날치의 춤과 노래. 출처=한국관광공사

배제를 통한 안전에서 포용을 통한 안전으로

나는 그중 하나가 불확실성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한국 문화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가 불확실성 회피 (Uncertainty Avoidance) 성향이 매우 강하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낯선 사람이나 자신과 다른 집단을 경계하는 경향이 강했다. 익숙한 사람들끼리 모이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규범을 공유하면서 안정감을 얻으려 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은 더 이상 그런 방식만으로 안정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외국인과 이주민이 증가하고, 세대와 가치관이 다양해지고 있으며,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공존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것은 오히려 새로운 갈등과 불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제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제도와 문화를 만드는 것이 더 안정적인 사회를 만드는 길이 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배제를 통한 안전에서 포용을 통한 안전으로(Security through Exclusion → Security through Inclusion)”의 전환이라고 부르고 싶다.

다른 문화적 특성들도 마찬가지다.

눈치는 권력자의 마음을 읽고 자신의 행동을 맞추는 능력에서 벗어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체면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에 매달리는 태도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엄과 가치를 스스로 존중하는 건강한 자존감으로 발전할 수 있다. ‘빨리빨리’의 조급함은 더 빠른 경쟁이 아니라 사회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내는 혁신의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특히 한국인의 ‘정’이 가진 가능성에 주목한다.

한국인은 가족, 친구, 학교, 직장, 고향처럼 자신이 속한 작은 ‘우리’ 안에서 강한 유대와 따뜻한 관계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그 따뜻함이 때로는 ‘우리’ 밖의 사람들에게는 배타적인 경계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정’의 범위를 넓힐 때다. 나와 다른 사람, 다른 세대, 다른 문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까지 정을 확장할 수 있다면 한국의 관계문화는 새로운 모습으로 꽃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안의 정(Jeong within us)’에서 ‘우리 밖으로 확장되는 정(Jeong beyond us)’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한국의 다음 꽃피움은 무엇이 될까?

한국은 이미 경제발전과 민주화, 한류라는 놀라운 꽃을 피웠다. 그러나 한국의 꽃피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성취는 단순히 더 부유한 나라, 더 강한 나라, 더 유명한 나라가 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약자를 존중하며,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배제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성숙한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표현의 자유와 창의성, 다양성과 포용성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우리가 가진 문화적 잠재력은 새로운 방식으로 발휘될 수 있다. 문화는 우리를 특정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자원이다.

한국문화의 뿌리는 우리의 출발점이지만, 그 뿌리에서 어떤 꽃을 피울지는 결국 우리 자신의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다. 한국은 이미 여러 번 놀라운 꽃을 피웠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앞으로 어떤 꽃을 피울 것인가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꽃피움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글쓴이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

이창봉 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교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언어학 박사(화용론 전공). 언어와 문화의 밀접성 관련 주제를 주로 연구하며 영어교과서와 학습교재와 일반 인문 교양서 집필 활동도 하고 있음. 최근 <미국이라는 나라 영어에 대하여> (사람in 출판) 책을 출간함. 최근 『Decoding Korea: From Potential to Blossoming』이라는 영문 저서를 출간했다. Facebook에서 언어학자로서 언어를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글도 활발히 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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