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논란 속 ‘민생’ 타령...표현도 바꿔야

윤 대통령, 보여주기式 ‘진정성 없어’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인데... 정치권은 ‘민생’이라는 말 쓰지말자 ‘시민들의 총체적 삶’이 바람직한 표현

시민단체가 윤석열 대통령의 보여주기식 물가점검 현장에서 '대파 875원' 논란을 일으킨 것을 비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민단체가 윤석열 대통령의 보여주기식 물가점검 현장에서 '대파 875원' 논란을 일으킨 것을 비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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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상징이 된 ‘대파’ 논란

22대 총선 국면에서 엉뚱하게 대파 논란이 불거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농산물 마트 방문에서 “대파 가격이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된다”고 한 발언이 나온 뒤다. 야당은 이 가격이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가격이라고 대통령의 ‘보여주기식 물가 점검’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비판이 거세지자 이수정 국민의힘 경기 수원정 후보가 ‘한 뿌리 가격’이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정치권은 물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증폭되는 역효과를 낳고 말았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대파 한 단에 875원이라고 믿고 그걸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말한 대통령, 참 부끄럽고 창피하다”며 “윤석열 정권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대파 때문에 망할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필자는 대파 논란의 사실 관계와 그 해석을 둘러싼 정치인들의 말싸움에 끼어들기보다는 이 기회에 언어학자로서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 평소 중요하다고 생각한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정치인의 ‘민생’이란 표현 적절할까

한국 정치인들이 여야 진영을 떠나서 습관적으로 널리 쓰는 대표적 용어가 ‘민생’이다. 그들 대부분은 ‘민생’을 들먹이면 자신이 정치적 사익을 추구하는 소인배 정치꾼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를 구현하는 참 정치인의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언어 표현은 그것이 말 그대로 지칭하는 외연적 의미(denotation) 외에도 내포적(connotation) 의미가 중요하다. ‘민생’이라는 용어는 한자어로서 ‘백성의 삶’이라는 그 외연적 의미가 일견 정치적 적절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용어는 시대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후진성과 편협성을 숨기고 있다. 이 용어는 한국 사회가 현대화되기 훨씬 전 왕조 시대에 ‘민과 관’이라는 상하 통치 구도 속에서 파생한 용어로서, 시민이 정치의 주인공인 민주주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이 용어는 정치인들이 쓸 때 그릇된 내포적 의미를 전달한다. 화자가 어떤 용어를 선택적으로 잘 쓸 때 화자 태도(speaker attitude) 의미도 암묵적으로 미묘하게 전달한다. 한국 정치 현장에서 여야 가릴 것 없이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이 용어와 함께 전달되는 ‘관이 위에 있는’ 태도를 남발한다. 가뜩이나 국민을 위하는 척하면서 정치적 패권과 이익만 추구하는 후진적 정치 행태로 국민들에게 짜증과 분노를 일으키는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Facebook의 유명 논객인 김상수 감독은 일찌기 ‘민생’이라는 용어가 ‘관이 민 위에 있음’을 넌지시 전달하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대신 ‘시민 경제’같은 용어 사용을 제안한 바 있다. 필자는 그의 근본적인 지적에 동의하면서도 민생의 대체 용어로 ‘시민 경제’를 쓸 경우 여전히 시민들의 삶의 경제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는 한계성 때문에 ’시민들의 삶‘ 혹은 다소 길더라도 ’시민들의 총체적 삶‘이라는 용어를 제안하고자 한다.

정치인들이 ‘민생’을 언급할 때마다 주로 시민들의 경제적 삶을 향상시키는 것이 정치의 최우선이자 본령이라는 협소한 정치관을 드러내고 이 협소성이 한국 정치의 건강성을 해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선거 때만 되면 여야를 떠나 정치인들이 ’민생‘을 들먹이며 평소에는 별로 관심 없던 전통 시장을 방문해 서민들이 먹는 음식을 먹으며 사진을 찍고 각종 상품의 가격을 물어보며 마치 그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진 척 ‘쇼’를 하곤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파가 875원이면 합리적 가격”이라고 발언한 내용을 보도한 MBC. 사진= MBC 캡처
윤석열 대통령이 “대파가 875원이면 합리적 가격”이라고 발언한 내용을 보도한 MBC. 사진= MBC 캡처

엉뚱한 보여주기식 물가점검 쇼

이번 대파 논란도 대통령이 보여주기식 물가 점검 쇼를 한 데에서 시작된 것이다. 대통령은 왜 하필 하나로마트를 방문했을까? 하나로마트는 농협중앙회 산하 농협유통이 직접 운영하는 농산물 전문 마트다. 그곳은 농산물이 규모의 경제 원리에 따라 다른 곳에 비해 가격이 더 쌀 수밖에 없다. 물가가 올라 고통받는 서민들의 실상을 확인하려면 일반 마트나 재래시장에 가야지 왜 가장 싼 곳을, 더구나 특별 할인 행사까지 하는 곳을 찾아가서 현실과 동떨어진 가격표를 보고 그릇된 인식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야 했을까?

정작 조선 시대 때 왕들은 ’민생‘을 살피기 위해 평범한 선비 복장으로 자신의 신분을 가리고 시장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현장 곳곳을 살폈다. 민초들을 직접 만나서 그들의 고충과 어려움을 직접 듣고 민고(民苦)를 해결하려고 애썼다. 대선 시기에 자신의 손바닥에 ’왕‘자를 쓰고 나와서 큰 논란 거리를 만든 적이 있는 윤 대통령은 왜 ’민생‘ 행보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조선 시대 왕의 모습을 구현하지 못헸을까? 윤 대통령이 바로 ’민생‘이라는 용어의 구시대적 의미의 후진성과 편협성에서 못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통령이 시민들의 총체적 삶의 모습을 살피려는 진정성이 있었다면 참모들이 이끄는 특정 마트 한 곳만 방문해서 보여주기식 물가점검 행보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서민들의 삶에 깊은 연민과 지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선 시대 성군(聖君)이 그렇게 했듯이 서민의 복장을 하고 수행원도 최소화하고 과다한 언론 노출을 피하려 했을 것이다. 그런 모습으로 불시에 여러 마트와 시장을 시찰하고 아파트 주변 단지 상가 등을 들러서 영세업자들의 고충을 듣고 의료 개혁 쟁점과 관련해 동네 의원에도 둘러보는 등 진정성 있는 광폭 행보를 했을 것이다.

야당도 ‘민생’을 경제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총체적인 시민들의 삶의 모습이라고 보는 순간, 대파 가격 논란 자체를 지나치게 정쟁화하지 않고 오히려 더 실질적이고 본질적인 서민들의 삶의 어려움을 지적하는 더욱 건설적인 비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민의 총체적 삶’에 관심 기울여야

‘민생’ 아닌 ’시민들의 총체적 삶‘을 고달프게 하는 원인은 정치와 사회와 경제 거의 모든 영역에 얽혀 있게 마련이다. ’시민들의 총체적 삶‘을 향상시키는 것이 정치가 할 일이고 의무다. 여야를 떠나 모든 정치인들이 마치 습관적으로 ’민생‘이라는 구시대적 용어가 주는 이미지에 그치는 보여주기식 소모적 쟁점에 매달리기보다 ’시민들의 총체적 삶‘의 향상을 위해 정치가 어떻게 바뀌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두고 경쟁해야 한다.

이번 선거 운동 기간 중 여야를 떠나서 후보들이 전통 시장 등 경제 현장만이 아니라 병원, 공장, 학교, 유치원, 학원, 요양원 등 실로 다양한 삶의 현장을 방문하고,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가까운 곳에서 목격하며 간접 경험하고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대안들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언어는 사고에 영향을 끼친다. 정치가 변하려면 정치인들이 변해야 한다. 올곧은 정치를 위해서 당신들의 언어부터 바꾸라. ‘민생’을 대체할 용어는 오히려 간단하면서도 명확하고 총체적인 뜻을 전달하는 ‘시민들의 총체적 삶’이 옳다.

글쓴이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

이창봉 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교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언어학 박사(화용론 전공). 언어와 문화의 밀접성 관련 주제를 주로 연구하며 영어교과서와 학습교재와 일반 인문 교양서 집필 활동도 하고 있음. 최근 <미국이라는 나라 영어에 대하여> (사람in 출판) 책을 출간함 Facebook에서 언어학자로서 언어를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글도 활발히 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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